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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멍하게 길을 걸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기에 펼쳐진 눈은 새하얗고 투명하여 발자국을 새길 때마다 지저분한 흙이 뚜렷이 드러났다. 눈처럼 냉담한 얼굴이 표정을 감추고 더럽혀진 눈을 덤덤히 응시한다.

 

재밌어요?”

 

고저 없는 음성에 고개를 돌리니 앳된 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 영재를 본다.

 

“...누구?”

젤로, 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됐어요. 근데 길을 잃어 버려서...”

 

영재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던 발을 멈췄다. 소년의 얼굴이 눈만큼이나 희다. 젤로...

이상한 이름이야. 타국 출신인가? 소년을 훑어보던 그는 나이와 다르게 저보다 훌쩍 큰 키를 인지했다. 여린 인상을 단박에 뒤집는 풍채다.

 

성은 저 쪽 뒤편에 있다. 직접 알려줄 정도로 친절하진 않아서...알아서 찾아가도록 해

냉기 서린 말에 주눅이 들만도 한데 표정 변화가 없다.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애. 그는 잠시 관심을 두다 지워냈다. 어차피 저에 대해 알게 되면 말도 붙이지 않겠지. 지금까지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들 전부가 그랬다.

 

당신이 영재라는 사람인가요? 후작이 아끼는 성 노예라고 들었어요.”

 

. 그가 웃음을 토해냈다. 그게 궁금해서 내게 말을 건 거였나. 괜한 걱정을 했다.

...그래. 칼날처럼 자신을 후비는 바람을 맞서며 생각을 정정한다. 그에 대해 모든 걸 알면서도 굳이 말을 붙이는 자들도 있긴 있었다. 대게 시비를 걸기 위함이 그 목적이었지만. 그들은 무리 지어 와서 영재를 툭툭 건들다 반응이 없는 그를 향해 욕을 뱉곤 했다.

 

맞아. 이제 좀 호기심이 풀렸어?”

 

평소 같았으면 수긍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영재는 상당히 날카로워진 상태였고, 이국의 소년이 거는 시비를 잠자코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니? 눈을 치켜뜨자 소년이 아무런 감정이 묻어나지 않은 표정으로 덤덤히 자신을 본다. 햇빛에 고스란히 드러난 잿빛 눈이 자신을 담는다. 영재는 서늘한 눈매로 그의 얼굴을 살피며 의도를 파악하다가 눈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 본 거였나. 소년의 얼굴엔 제 질문의 답을 확인했다는 뜻 밖에 없었다. 외국 사람들의 눈은 다 그런가. 감정이 없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그의 눈은 언젠가 동생과 시장에서 보았던 유리구슬과 꼭 닮아 있었다. 맑고 깨끗하지만 불투명했던. 그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둘렀다. .

소년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연다.

 

당신은 행복한 가요?”

?”

 

뜬금없이 나온 질문에 영재가 얼굴을 구겼다. 소년이 동요 없이 그를 바라본다.

 

제가 요즘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근데 다들 물어도 당신처럼 화를 내거나, 당황해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행복. 그건 별과 자신만큼이나 제게 있어서는 거리가 있는 단어였다. 그런데 그를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여겼던가. 씁쓸한 웃음도 잠시, 날 선 어조가 튀어나왔다.

 

너는 내가 행복해보여?”

행복한 사람은 웃어요. 근데 나는 잘 모르지만 당신은 웃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건...”

 

머릿속으로 정리를 한 소년이 다시금 말을 잇는다.

 

행복한 게 아닐 거에요. 그렇지만 당신은 후작 가에서 제공한 곳에서 자고, 먹고, 다른 사람들처럼 험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아직 젊어요. 노예긴 하지만 후작은 성격이 온화하고 따스한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혼인했지만 당신을 찾을 정도로 아낀다고들 하구요. 이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다른 노예들에 비해 월등히 나은, 만족할 만한 처사잖아요. 그런데 왜 당신은 행복 하지 않나요?”

....”

 

그는 끓어오르는 화기를 참아냈다. 이 소년의 말이 맞았다. 그래, 드러난 부분만 보면 그가 만족해야만 하는 요인들이 수없이 있을지 모른다. 폭력당하는 것쯤이야 노예들에게 있어선 비교적 흔한 일이고. 그러나...무심하게 속을 비집는 말에 불편한 감정이 떠올랐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 따위로 말 하지 마. 적어도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내게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자들이지, 네가 아니야.”

내 질문에 화가 났나요?”

 

소년이 하얀 얼굴로 반문했다. 도대체 뭐 이따위 애가 다 있나. 질린 얼굴의 영재를 마주 보는 그는 여전히 백지 같았다. 아무것도 씌워져 있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내가 물으면 화를 내요. 아마 그건 내가 잘못 말했기 때문 일거에요.”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들은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아마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를 화나게 하겠죠. 창백한 얼굴에 드러난 삭연한 안색과 다르게 말은 평이하게 이어졌다. 혹시...표현하는 게 서툰 걸까. 그는 새삼 소년을 찬찬히 살펴봤다. 업이랑 비슷한 또래, 아니...어쩌면 더 밑일까? 분을 바른 듯 뽀얀 얼굴 위로 돋은 옅은 솜털이 햇빛에 모습을 비추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 큰 체구를 제외하면 그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게 앳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질문하는 것처럼, 무언가가 결핍된 소년의 말에서 그것은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영재는 깊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화낸 건 네가 제 멋대로 내 행복의 기준을 판단했기 때문이야. 난 가축이 아니니까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행복하지 않아. 또한 네가 들은 후작에...대한 건, 그건 그저 사람들의 말 일 뿐이고...”

! 제가 성급히 다른 사람들의 말로 판단했군요.”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글쎄, 초점은 그게 아닌데. 그러나 그는 딱히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내비치는 제 나이에 맞는 소년스러움이 기묘하게 와 닿는 까닭에.

 

고맙습니다. 다음부터는 사실에 기반 해서 물어봐야겠어요. 길 알려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그가 발을 돌리다 잠시 멈칫한다. 왜 또? 영재는 다시 아프게 고개를 들었다. 큼지막한 키에 어울리지 않는 유연성을 갖춘 그가 부드럽게 몸을 돌리곤 작은 소리로 말한다.

 

말레니아가 좋아요.”

갑자기 무슨...?”

거기는 여성이 대우 받는 곳이라 얼굴을 가리고 다니거든요. 제일 적합한 곳일 거에요.”

 

그래도 물론 혼자서는 무리겠지만. 담백한 어조로 조언한 후 고갯짓을 한다. 영재는 젤로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탈출그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있던 글자였다. , 하며 짧게 탄성을 뱉은 그는 눈을 거칠게 헤집었다. 차가운 눈에 파묻힌 손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걸 내보이다니,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인상을 찌푸리며 얼어붙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녹이는 그에게 낮은 목소리가 속삭인다.

 

저랑 가실래요?”

“...?”

그 쪽에 들를 일이 있거든요. 길 안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네가 날 도와주겠다고?”

 

영재의 검은 눈이 가라앉았다. 빛이 새어 들지 않는 망막 위로 하얀 상이 맺힌다. 그는 자신을 응시하는 소년을 바라봤다. 네 어디를 믿고? 고저 없는 목소리에 비웃음이 스민다. 자신이 아무리 죽기를 각오했다지만 처음 본 소년에게 제 몸을 맡길 정도로 사리분별이 없진 않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그가 겪은 일이 너무도 혹독했다.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기분이 상했나? 그러라고 던진 말이긴 하지만. 젤로가 하얀 손을 들어 목을 쓰다듬었다.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그는 마치 생각에 잠긴 것처럼 손가락을 들어 톡톡 목을 건들었다. 그리고 이내 아, 하며 꺾인 목을 반듯이 세우곤 손을 흔든다.

 

오해하지 마세요. 탈출을 도와주겠다는 게 아니에요. 그건 제 허용 범위 밖의 일인 걸요. 혹시 말레니아를 가실 거라면 아무래도 초행이실 테니 불편할 것 같아서요. 저는 일행이 하나 더 늘 뿐이니 상관없어요.”

...그게 뭐야.”

 

영재는 피식 웃었다. 경계 어린 눈이 스르르 풀린다.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또 뭘 잘못했나요? 아니, 그게....그게 아니라. 그는 숨을 죽이고 웃었다.

그러니까, 노예가 도피하는 걸 도와 줄 생각은 없지만, 가는 길이 같다면 동행은 해 주겠다? 그거 참 웃기는 사고방식 아닌가. 그 둘이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나?

냉소적으로 터져 나온 웃음을 지운 그가 조용히 답했다.

 

“....도와주겠다면 나야 거절 할 이유가 없지.”

 

도망 노예와 동행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건가. 노예가 주인의 집에서 도피할 때, 그 과정에서 공범자들이란 행위에 가담한 이들 뿐이 아니다. 법은 공정하지 않다. 특히나 그 대상이 노예 같은 하층민이라면. 그저 단순히 길을 같이 걷고 있을 뿐이라도, 도망 노예와 있다는 이유로 그자는 공범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새어나오는 웃음 위로 의아한 젤로의 목소리가 겹친다. 도와주는 건 아닌데요. 영재는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정말, 이상한 애다. 내 알 바 아니지만. 그는 얼얼한 손을 들어 젤로의 손을 맞잡았다. 냉기 서린 몸에 닿는 온기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또 오랜만?이네요. 시험들은 끝나셨나요?

전 한 20일...남은 것 같아요. 덕분에 과제가...ㅠㅠㅠ

변명처럼 느껴졌다면...맞습니다. 대신에 조금 구상을 구체화 하고, 뭐... 그랬어요.

아직 갈 길이 먼 데! 왜 이렇게 안 써질까요. 빨리 뒷 부분 쓰고 싶어요. 마음만은 이미 완결..ㅎ.ㅎ...

근데 한참 남았어요....이제 걸음마 한 듯.

 

무튼 오늘의 한 줄 요약 : 대현이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영재. 그러나 그는 결코 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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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오오..새인물의 등장이군녀..젤로는 정말로 순진한건가요?이상하면서도 신기한ㅋㅋ다음편 기대할게요!
10년 전
흩날린꽃잎
빨리 다른 인물들도 나와야 할텐데 말이죠ㅠㅠㅠ 젤로는 아직 알쏭달쏭하죠?.? 초반이라 아직 인물들 성격을 파악하긴 애매할 거에요. 뭐 대현이나 영재는 대충 견적이 나오지만요(?) 암튼 얼른 얼른 써서 진도 나갈게요~ 댓글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2
헉 오랜만이에요ㅠㅠ새인물이 나왔네요 젤로 말하는게 뭔가 로봇같다는ㅋㅋ다음편 기다리고있을게요!
10년 전
흩날린꽃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게요..의도는 했지만 로봇같은건ㅋㅋㅋㅋㅋㅋㅋㅋ타다생각나서 갑자기 빵 터졌어요ㅋㅋㅋㅋㅋ다음편 곧 올릴게요:D
10년 전
독자3
크랜베리 엄청 기다렸어요ㅠㅠㅠ오랜만이네요ㅠ이제 영재는 탈출하는걸까요..ㅏ음편도 기대할게요!!
10년 전
흩날린꽃잎
으와 기다려주셨다니 정말ㅠㅠㅠㅠ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음편은 금방 올라올거에요! 스릉합니다♡♡♡♡♡
10년 전
독자4
갑자기 젤로가 나와서 놀랬었요...그래도 재미었요~ 잘보고갑니다~
10년 전
흩날린꽃잎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쫌 지루하고 뜬금없는 장면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부분이라서ㅠㅠㅠ댓글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5
준홍이라 꼭 말안해도 딱 표현이 준홍이같네요 글만 봐도 그림이 그려지고ㅋㅋ 갈수록 글에 비밀이 많아지는 느낌
10년 전
흩날린꽃잎
아직은 초반이니까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어요! 언젠간 빵 터지겠죠?ㅎ.ㅎ 주농이가 제일 비슷한거 같아요. 뭔가 앳되고 때가 덜 묻은 고런 이미지...
댓글 감사합니다:D 금방 찾아 뵐께요~

10년 전
독자6
진짜 재밌어요!!!!짱짱
10년 전
흩날린꽃잎
댓글 하나하나 달아주셔서 저도 좋아요ㅠㅠ짱짱bb
10년 전
독자7
젤로는 진짜 순진순진. 생긴 것처럼 행동해서 좋아요 이런 캐릭터! 이래서 영재의 탈출 계획은 점점 확실해지고 그 결과도 점점 무서워집니다...흡ㅠㅠ
10년 전
흩날린꽃잎
준홍이란 이름 뭔가 주농주농 귀여워서 좋아하는데, 요 캐릭터엔 '젤로'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썼어요! 과연 젤로의 도움이 빛을 발할건지는...ㅋㅋㅋ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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