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정 맛보기 01
w. 달비
유난히 햇볕이 내리쬐는 하루였다. 남향에 위치한 카페, 커피를 담아내 탁해진 유리잔은 시럽 대신 쏟아지는 햇빛으로 농도를 맞추고 옅은 그림자만 테이블 위로 늘어질 뿐이었다. 창가에 앉은 손님 발치 끝으로 떨어져 조각난 햇빛은 내가 서있는 곳까지 길게 이어지고 오른쪽 발을 한 뼘 뒤로 옮기면 누군가의 발치에 내 뒤꿈치가 닿는다.
…김태형.
“햇빛 피하기 놀이 해?”
“……?”
“그럼 그림자밟기 놀이야?”
“뭐라는 거야.”
“귀-여-워.”
큼지막한 두 손으로 볼을 살짝 움켜잡은 채 꾹꾹 눌러대며 말을 늘려댄다. 내가 화장했을 땐 볼 만지지 말랬지. 짐짓 화난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김태형을 가만히 노려보면 네가 노려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푸스스 웃으며 머리를 살짝 헝클여놓는다. 얼마 전, 마카오 프로젝트를 끝낸 후 약 한 달 동안 닫았던 카페를 다시 열어 들뜬 마음에 한껏 꾸민 노력들을 하나 둘 망가뜨리는 김태형에게 화를 내려다 손님들이 많은 오후 시간이라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대신 이따 넌 죽었어. 조용히 입모양으로만 읊조렸다.
“김탄소, '넌'이 아니라 ‘오빠‘는.”
그래봤자 김태형은 귓등으로도 듣지도 않은 채 능글맞게도 내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을 뿐이었지만.
지난 번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들 소식이 끊겼다. 뭐, 이번에만 그런 게 아니라 이제껏 그래왔지만 말이다. 서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일상 속으로 서로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물론 나와 김태형은 예외. 그 이유를 설명해보자면, 나는 어릴 적부터 이중생활을 해온 탓에 고등학교까지만 겨우 다녔다. 하필 고등학교 3학년 때 쏟아지던 프로젝트들에 수업 일수를 다 채우지 못해 유급 당할 뻔했던 적도 있고…. 다들 고등학생 아니라고 날 막 굴리긴 했어. 아무튼, 대학 등록금도 없었을 뿐더러 대학 진학할 성적도 되지 못했기에 자연스레 대학 진학은 포기하게 됐고 내가 쌓아온 인간관계라고는 망할 여섯 명밖에 없는데 연락은 안 되고. 그때 날 거둬갔던 게 김태형이었다.
“네가 무슨 오빠야.”
“우리 탄소 몇 살? 오빠는 스물 넷.”
“어쩌라고요, 후배님.”
“어, 그 호칭은 여기서 쓰는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고-작 스물 둘, 인생후배님?”
하, 저 개새끼.
김태형을 만났을 때부터 ‘오빠’라는 호칭을 썼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만남이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이었으니까. 부모님이 일찍부터 돌아가신 탓에, 그리고 김석진이 미리 훈련을 받고 있었던 탓에 나는 남들보다 몇 년씩이나 일찍 그 험하디 험한 곳으로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보통 평균 나이 대에 들어온 김태형이라지만 그에게 ‘처음‘이 나에겐 ‘이미‘였는 걸. 그리고 그곳에선 나이보단 순서였다.
그래서인지 김태형은 유독 프로젝트가 끝난 뒤의 일상을 좋아했다. 사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의 일상을 좋아했기보단 나에게서 온전히 ‘오빠’가 되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때가 지금과 같은 일상밖에 없으니 말이다. 내가 오빠라고 불러주지 않음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불러주지 않을 것을 앎에도 김태형은 더러운 말버릇까지 만들어가며 오빠라는 호칭을 갈구했다. 더러운 말버릇이라고 할 것 같으면 말머리에 오빠는, 오빠가 같은 말을 덧붙인다는 것. 끔찍하다.
“너 진짜 나한테 조준 당하고 싶냐.”
“헐. 탄소 손에 죽는 거라면 행복할 것 같아. 대신 오빠라고 불러주면 깔끔하게 조준 당할게. 괜찮지?”
“…죽여 버리고 싶어.”
“그러니까, 오빠 소리 해주면 네 소원 성취라니까?”
“닥쳐. 일이나 해.”
역시, 오빠는 못 죽이겠지? 귀여워. 하며 은근슬쩍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김태형의 시도에 치를 떨며 피해 다니다 때마침 들어온 주문에 나는 뒤로 몸을 빼고 김태형이 아쉽다는 듯 눈 꼬리를 축 내린 채 카운터 쪽으로 향한다. 꽤나 오랫동안 주문하는 여자 손님에 김태형은 뒤를 돌아 갑자기 내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하더니만 곧 진동 벨을 쥐어주며 자리로 돌려보내고, 그에 김태형은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활짝 펴고선 나한테 걸어오는 꼴이, …또 무슨 일 쳤네. 망할 놈.
“왜, 뭐.”
“아까 그 손님이 번호 알려달라고 했는데, 여자친구가 저기 있어서 안 된다고 했어. 잘했지?”
“지랄. 너 프로젝트 들어오기만 해. 네가 첫 빠따야. 바로 조준.”
“힝. 너무해.”
“주문 들어온 커피나 만들어.”
이제는 입 꼬리까지 축 내려버린 김태형은 주문 받은 음료를 만들러 가고,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지면 발신자가 석진오빠…, 김석진? 생각지도 못한 발신인에 당황스러워 김태형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아직 연락 올 때는 안 된 것 같은데…. 괜한 불안함에 입으로 향하는 손톱만 잘근잘근 괴롭혔다.
“…여보세요?”
- 뭐해.
“그냥…. 김태형이랑 카페지.”
“누구야?”
다 만들어 내놓은 것인지 김태형은 내 옆으로 와 입에 물린 손을 대신 빼내며 누구냐 물었고, 그에 입 모양으로 석진오빠라고 말해주자 표정이 싹 굳는다.
- 옆에 김태형?
“응.”
- 지령 떨어졌어. 마지막 프로젝트래.
“마지막?”
- 응. 그렇다네. 얼른 정리하고 와. 애들 다 와있어.
“알았어…. 이따 봐.”
- 그래. 조심해서 와.
보통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최소한 3개월은 쉴 수 있었다. 짧게는 3개월부터, 길게는 6개월까지. 근데 지금 저번 프로젝트가 끝난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아까 당황했던 이유도 3개월이 지났더라면 전화가 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을 텐데 지금은 너무 이르니까. 일러도 너무 이르니까. 김태형의 표정이 굳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나저나 마지막 프로젝트라…. 우리는 철저하게 팀 위주로 흘러갔다. 각 팀의 리더가 이십 대 후반이 되면 마지막 지령이 떨어지곤 했으니까.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맨 처음 들어와 훈련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만들어진 팀은 프로젝트 수행 도중 누군가 죽지 않는 이상 멤버 교체 없이 마지막 프로젝트를 받을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애초에 이 멤버가 아니면 안 될 수밖에 팀워크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니 다들 팀 선정에 예민할 수밖에.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리더, 몇 살인 리더를 만나냐에 따라 일을 끝낼 수 있는 날이 달랐으니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엿 같은 복불복인 거지. 아주, 엿 같은.
석진오빠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됐다. 스물일곱, 확실히 남들보단 이른 편이다. 얼마 전, 리더가 스물아홉 살이었던 다른 팀이 마지막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 프로젝트를 받는다는 것은 이제 온전한 제 일상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거다. 온전한 일상, 이제 그런 힘들고 엿 같은 훈련 따위는 받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제 이런 프로젝트도 더 이상 없는 거고.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내게 온전한 일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했다면 기억에도 남지 않은 아주 어릴 적, 우리들이 만나기 훨씬 이전의 아주 어릴 적이겠지. 이중생활로써 거의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갑작스러운 온전함이 주어진다면 그때 느낄 수 있는, 느껴야 하는 감정이 무엇일까.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마지막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내 옆의 김태형도 아무 말 없이 제 발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자.”
“어?”
“석진이형이 오라고 했잖아. 얼른 정리하고 가자.”
“…….”
“마지막 프로젝트도 얼른 끝내고 매일 이렇게만 살자.”
“…….”
“프로젝트 끝나면 다시 카페 열고 아무 걱정 없이…, 남들처럼 살자, 탄소야."
“…그래, 그러자.”
.
.
.
2016년 3월, 프로젝트 「221」
장기 프로젝트이자 마지막 프로젝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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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비의 말 (약간의 공지가 적혀있으니 길더라도 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11일 만이네요. 하하. 그동안 많이 바빴어요. 육체적으로 바빴다기 보단, 생각할 거리가 참 많았어요. 자세하겐 말씀 못 드리지만 개인사정이라고 해둘게요. 11편을 마무리하고 그 개인사정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 쓰며 마음고생 엄청 하다가 결국 답글도 하나도 못 남겨드리고 이렇게 요상한 글로 찾아뵙게 되었네요. 제가 몇 개월간 학회장 윤기 글에 손을 못 댔던 이유도 어떤 글을 쓸 시기에 무슨 이유에서든 마음고생을 하면 한동안은 그 글이 손에 안 잡히더라구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학회장 윤기 글을 얼른 써서 찾아뵙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까 속상하기도 했고, 근데 또 글은 쓰고 싶고... 다행인 건 모든 게 좋게 끝났다는 거예요! 이제 글만 쓰면 되는데 아직 학회장 윤기... (먼 산)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에 그거 마무리 시키고 다시 써볼게요. 아, 그리고 일단 답글 하나도 못 남겨드린 거 너무 죄송해요. 거짓말 안 치고 댓글 올라올 때마다 최소한 세 번씩은 읽거든요. 그냥 너무 감사해서요. ㅠㅠ 글을 올려 놓고 바로 다는 게 아니니까 뭔가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서 우물쭈물 하다가 11일이나 지나버렸네요. 뭔가 약간 그런 느낌 있잖아요. 뭐야, 왜 저 작가는 글은 안 올리면서 답글은 며칠 뒤에도 계속 달고 그래? ... 그래요. 최강 소심이 여기 있습니다. 아직 글은 쓴 게 없는데 며칠 내내 답글만 달면서 보내기엔 눈치 보여서 글이 손에 안 잡힐 때마다 와서 댓글 보곤 했어요. 모두모두 감사해요. 정말. ▼ 아마 여기서부터 공지가 될 듯 하니 바쁘신 분들은 여기서부터 읽어주세요! ▼ 자! 여기까지 제 근황 아닌 근황이었구요, 이 글에 대해서 말씀 드리자면! 네! 제가 일을 벌였습니다! 학회장 윤기도 마무리 안 짓고 데리고 온 차기작! 사실 언젠가 일상물이 아닌, 약간 좀 어두침침한 글을 써보고 싶긴 했어요. 그게 조직물이든 뭐든 간에요. 문제는 제가 어두운 글을 한 번도 안 써봤다는 거죠. (? 그리고 걸크러쉬 쩌는 여자 주인공을 한 번 써보고 싶기도 했구요. 그래서 쓴 게 이 글...(먼 산) 전혀 어둡지 않음...(착잡) 그래서 배경을 어둡게 해봄... 소용 없는 듯...(울컥) 차기작 고민하다가 조직물을 써보고 싶어서 삘 받은 새벽에 대충 틀을 짜보긴 했어요. 그때 쓴 틀로 이 맛보기 글을 쓴 거구요. 허허.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마 제가 들고 올 조직물은 마냥 어둡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 벌써부터 착잡해지는 작가의 마음... 많이 노력할게요... 그리고 아직 짜야 할 구성들이 많이 남아있고 부족한 점이 많아요. 무엇보다 학회장 윤기 완결도 안 냈구요. 우리 윤기 학회장님은 마무리 해야죠...☆ 그냥 아직 학회장 윤기는 쓰지도 않았는데 독자님들이랑 만나고는 싶고 이런 모자란 글을 써놨고... 그래서 그냥 들고 왔습니다. 포인트 무료로요. (당당) 이 맛보기가 수정될 가능성은 엄청나게 매우 높습니다! 본편이나 제대로 된 프롤로그가 올라올 때쯤이면 아마 많이 바뀌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 맛보기는 학회장 윤기 12편이 올라올 때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책임) 아니... 그냥 맛보기잖아요...? 0포인트고요... 그래요. 그냥 독자님들이랑 얘기하고 싶어서 들고 온 글이에요. 이 늦은 시간에 읽으실 분들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만간 학회장 윤기로 찾아뵙도록 할게요. 항상 기다려주시고, 올 때마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사랑해요! 알러뷰! (하트) +) 남자주인공 안 정해졌어요! 맛보기만 보면 태형인데 아마 본편 들고 올 때도 안 정해졌을 걸요? 허허. 저도 몰라요...! (도망) +) 2016년, 3월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3월에 들고 오는 거 아니에요! 글 속에서 3월이란 얘기예요! +) 제목 추천해주시는 독자님들 제가 뽀뽀해드립니다! 아... 일부러 안 해주시려나... 그럼 말고요...(주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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