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부부
11
오랜만의 단둘이서의 외출에 신이 나 빙글빙글 웃어대는 정국이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그를 진정시켰다. 마스크 하나와 모자를 대충 쓰고 정국이의 차에서 내렸다. 그 역시 반반한 얼굴 덕에 인터넷에서 사진이 떠돈 전적이 많아 그에게도 모자를 씌워 주니 그게 또 좋다고 몸을 꿈틀거린다.
정국이는 한 살 밑의 경호원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경호팀에 들어가 연예인들의 경호를 맡으며 종종 얼굴이나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그의 얼굴을 완전히 익혔을 때쯤에 유독 낯을 가리던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성격이 같았고, 그가 그때부터 미쳐 있었던 게임을 제외하고는 관심사도 거의 똑같았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그는 친근하게 ‘누나’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러왔고, 민윤기의 외도를 알아차렸을 때에도 그는 좋은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열기운에 하루 종일 기운 없이 축 처져 있는 날에도 그는 집 앞에 죽이 든 종이가방을 포스트잇과 함께 두고 갔다. ‘전복죽 10000원. 정산 바람.’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포스트잇을 구겨 던진 후 종이가방을 집어 들었었다.
마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전정국은 카트 손잡이를 잡았다. 카트를 끄는 그의 앞으로 걸으며 냉장고에 넣어둘 재료들을 골라 카트 안으로 집어넣었다. 끼니를 제때 챙겨먹는 법이 없는 민윤기가 떠올라 몸에 좋다는 먹거리들도 마구 던져넣었다. 전정국은, 뭣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고르는 먹거리 중 열에 아홉을 도로 카트 밖으로 꺼내려 했다. 채소만 기가 막히게 골라내 카트 밖으로 빼 놓는 전정국의 등짝을 세게 치니 손을 뒤로 해 맞은 자리를 부여잡고는 끙끙거린다. 눈 깜짝할 새 사라져 버린 그를 찾아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과자 봉지를 가득 품에 안고 뒤뚱대며 걸어와 카트에 과자를 가득 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정국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검은색 캡 모자의 챙 부분을 손바닥으로 쳐 그를 아프지 않게 벌주었다.
“태형이 형이랑은 뭐, 어때요?”
“그냥 잘 지내. 자주 만나고, 가끔 같이 술도 마시고.”
넌 그 사람이랑 많이 친해? 둘이 만나면 무슨 얘기 해?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을 땐,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말을 흘려들으며 요거트를 고르고 있었다. 멍한 그 표정을 보아하니 요거트에 단단히 정신이 팔렸구나 싶어 그의 옆으로 붙어 그의 눈앞에 있는 요거트 팩을 집어 흔들어 보였다. 이거 맛있더라, 이거 먹어.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웃어 보였다. 뭔가 싶다가도 내가 마주 보며 웃어주니 이내 더욱 크게 입을 벌려 아이같이 웃는다. 다시 카트에 손을 올려 앞으로 움직이는 그를 따라 걸었다. 냉동식품 코너로 가 냉동 만두며 냉동 피자, 냉동 치킨 등을 모조리 쓸어 담는 전정국의 모습에 당황해 그의 행동을 바라보고만 있으니 시선을 느낀 전정국이 ‘같이 사는 형들이랑 먹으려고요.’ 하고 빠르게 말한다. 생각해 보니 이놈도 집밥을 자주 못 먹었겠구나 싶어 문득 그가 안쓰러워졌다. 측은해하는 눈으로 그의 등을 손으로 쓰다듬으니 그가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더니 징그러워요, 누나, 하며 내 손을 잡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먹거리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전정국의 차로 향했다. 차 문을 열고 차 뒷좌석에 놓여 있는 박스에 전정국이 고른 것들을 옮겨 담았다. 내가 열심히 먹거리들을 옮기며 장바구니의 반을 비우는 동안 전정국은 운전석에 앉아 나를 지켜보며 내 손에 조금 무게가 나가는 것이라도 올려질라 치면 소심하게 손을 뻗었다가 내가 무사히 그것을 옮기는 데 성공하면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몸은 다 큰 주제에 성격은 막 철이 들어 가는 초중생이 따로 없다. 전정국의 몫을 다 옮기고 겨우 조수석에 바로 앉으니 곁눈질로 나를 본 전정국이 시동을 건다. 검은 차가 움직인다. 한 손을 운전대로부터 뗀 그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나 역시 휴대폰을 꺼내 메세지를 확인했다. 김태형은 계속해서 애교 섞인 메세지를 보내는 일을 접은 모양이었다. 이전에 비해 한층 간결해진 메세지를 읽으며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쓸데없는 감정으로 괜히 혼자 침울해져 있을 때쯤, 정국이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요즘도 바닐라 라떼 마시나?”
“어, 뭐. 거의.”
“이쪽 가면 카페 하나 있는데 가 볼래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전정국의 발이 엑셀을 밟았다. 나는 계속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전정국은 뻣뻣한 고개로 앞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킬 뿐이었다. 전정국은 휴대폰을 꼭 붙들고 있는 내 손을 힐긋거렸다. 그러던 중에 알림음이 작게 울렸고, 확인한 메세지는 간단했다.
[몸이 안 좋아서]
괜히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어 시간 좀 내 줄 수 있냐고 물었던 문자에 대한 답이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요, 다음에 만나요. 휴대폰 화면을 끄고도 자꾸 눈이 가 내 손으로 뺨을 살짝 때리며 휴대폰을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2층짜리 카페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국이가 주문을 하고 오는 사이 눈으로 카페 구석구석을 훑었다. 2층 자리에는 사람이 몇 명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주변을 대충 훑다가 시선을 거두려는 찰나, 눈에 익은 체형의 남자를 발견했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자의 등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주보는 자리에는 예쁘장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휴대폰을 꺼내 김태형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요? 집으로 갈까요?’
[혼자 있어야 잘 낫더라고요]
빠르게 받은 답장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다시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국이가 라떼 두 잔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는 중에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눈은 어느새 부드럽게 마주잡힌 두 사람의 손을 향해 있었다. 까무잡잡한 큰 손이 여자의 작고 하얀 손을 덮었다. 내 시선을 따라간 전정국이 남자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옅게 미소 지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태형이 형!’ 고백하자면, 달려나가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김태형이 고개를 돌렸고, 전정국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몸을 조금 더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내가 먼저 눈을 피했다. 먼저 고개를 숙였고, 정수리 위로 느껴지는 그의 시선을 그대로 느껴야만 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시점에는 이미 김태형이 여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을 즈음이었다. 코트를 입은 여자의 허리를 감싸안은 김태형은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혼자 멍해 있었고, 혼자 눈으로 그를 쫓았으며, 혼자 고민했다.
그 날 하루, 그리고 그 다음날, 또 이틀 정도 다음날까지는 그의 연락을 피했다. 그의 태도가 뻔뻔하다며 그를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를 믿고 싶을 뿐이었다. 민윤기를 믿고 믿다 뒤통수를 맞은 전적이 있더라도 나는 그를 믿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연락을 피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김태형은 그리 참을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어대던 그는 조금씩 날카로운 말투의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낯설어 가만히 지켜만 보다 정국이와 만난 날로부터 일주일째 되는 날, 김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 그가 잘게 웃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를 따라 웃어줄 생각이 없었다. 우리의 관계가 한층 깊어진 만큼의 진지한 이야기를 그와 나누고 싶었다.
일주일만의 만남을 가졌다. 이제 김태형은 그때와 비교해 조금 더 능숙하게 차를 몰 줄 안다. 부드러운 운전에도 심장은 요동쳤다. 겨우 준 마음이 버려질까 겁이 나 안전벨트를 꼭 붙들고 있었다. 그가 브레이크 위로 올린 발에 천천히 힘을 실을 때도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지 못했다.
“우리 무슨 사이에요?”
적막감 속을 뚫고 입을 연 내 쪽으로 김태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더니 작게 웃는다.
“그걸 꼭, 응? 말로 해야 되나?”
“장난하는 거 아닌데.”
김태형의 눈꼬리가 조금 내려갔다. 무게가 조금 잡힌 눈빛을 하고 나를 보더니 내 앞으로 훅 다가온다. 그의 행동에 대한 놀람과 그가 이번만은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임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모두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잠시 내 눈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던 김태형이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는 입술을 부딪혀왔다. 정말로 좋은 감정이 있다면 차근차근 제대로 시작해 보고자 하는 내 맘과는 달리 이번에도 어물쩡 넘어가려는 그가 싫어 김태형의 어깨를 밀쳐냈다. 힘없이 밀려난 김태형이 축 쳐진 눈꼬리를 하고 약간 젖어 보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다시 한 번 입을 맞춰왔다. 처음의 예쁜 입맞춤과 비교해 한참이나 거칠게 파고들어오는 김태형을 또 한 번 밀어내 보려 했지만 이번에는 그가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결국 마지막에는 힘을 빼고 그를 받아들였다. 그가 입술을 떼 나를 보고, 내가 숨을 몰아쉴 때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물었다.
“내가 싫어?”
그의 축 쳐진 어깨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돌렸다. 그가 헤집고 간 입속이 씁쓸했다. 아메리카노 향이 코끝 주위를 맴돌았다. 처음의 입맞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덤덤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그를 뒤로하고 조수석 문을 열어 땅에 발을 디뎠다. 김태형에게는 끝내 대답을 주지 못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집 거실 소파 위에는 민윤기가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웬일로 거실엘 다 나오고. 그의 옆으로 다가가 바닥에 앉았다. 다리를 모아 팔로 감싸고 앉아 피곤한 얼굴을 하고 곤히 잠든 그를 조심히 관찰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음 놓고 민윤기를 바라본 게, 언제쯤이었더라.
몸을 돌려 그의 방을 보니 형광등이 환히 켜져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그의 방 쪽으로 걸어갔다. 스위치 위로 손을 올렸을 때, 책상 위에 놓인 수첩을 발견했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사진 한 장이 풀로 붙여져 있었다. 사진을 눈에 담아 보았다. 강원도, 펜션. 문 앞에 나란히 앉아 별을 보고, 처음으로 둘만의 긴 시간을 가졌었다. 온마음을 나눴고, 이대로라면 더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무의식중에 미소를 올리고 사진을 만지작거리다가 접힌 부분에 꽂힌 꽃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분홍색 라일락 한 송이가 말라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넣어둔 모양이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에도 사진 한 장이 붙여져 있었고, 히아신스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라일락, 히아신스, 에델바이스, 그리고 마지막 장의 민트꽃. 답지 않게 꽃을 좋아하던 민윤기는 나와 만남을 갖게 된 이후로 꽃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졌다. 민트꽃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방 너머로 민윤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나는 아직도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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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차 풀려써오..........! ^ㅁ^................... 세상에 글잡이 상당히 어색하네요 이게 얼마만에 눌러보는 글쓰기 버튼인지.... 는 일주일만임다 그케 오래 안 대써오 ^ㅁ^ ^ㅁ^ 신알신이 없는 비회원 분들께는 더 죄송해요ㅠㅠㅠㅠ 오늘은 고구마 글을 적은 것 같아여 빨리 모든 이야기를 풀어드려야 할 텐데 그래두 두세 개 정도 더 올리면 쇼윈도부부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쁨)(왕기쁨) 마지막 글에 글마다 해석글 올리면서 뿌려놨던 떡밥들 정리하고 갈게요 허허 우리 한 1~2주 정도만 더 보는 걸로 해요 ^♡^ 아 글구 처음까지만 해도 댓글이 15개 정도 달렸던 쇼윈도부부 첫 글이 댓글이 45개!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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