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부부
10
이름이 외출 준비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이 마주칠세라 급하게 컵을 들어 물을 들이킨 후 방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아직까지도 그 작은 아내는 보살펴야 할 열아홉 살의 아이 같았다. 혹여나 위험한 인물이라도 마주치게 될까 외출 때에도 이것저것 간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관뒀다. 의자에 대충 걸터앉아 작업 중이던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러나 사흘 밤을 샌 결과인 작업물은 오히려 머리를 더 어지럽힐 뿐이었다. 결국 책상 위로 머리를 떨궜다. 이름이는 여전히 분주했다. 오늘 역시 태형과의 만남인지, 아니면 오해할 것 없는 단순한 외출인지 알 수 없어 괜히 상상만 더 커져갔다.
결국 다시 한 번 방문을 열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겉옷을 걸치고 있는 이름과 눈이 마주쳤다. 입을 꾹 닫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몇 초쯤 뒤에야 눈을 떼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서랍장에 넣어둔 갈색 목소리를 꺼냈다. 어느새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장 속 신발을 눈으로 훑고 있는 이름이의 뒤로 가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하도록 했다. 놀라 커진 눈으로 윤기를 바라보던 이름이의 머리 뒤로 손을 옮겨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일주일쯤 전에도 겪었던 상황에 이름이 경직된 몸을 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목도리를 둘러주던 윤기의 손이 느려졌다. 목도리를 둘러주는 행동으로라도 이름이의 외출을 미루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름 역시 더딘 속도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나 만나는 사람 있어요.”
윤기의 손이 멈췄다. 그러나 잠시였을 뿐, 다시 손을 움직여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긴 목도리를 세 바퀴 정도 감고 나서도 그대로 이름을 내보내기 싫어 말없이 목도리를 매만졌다. 이름이 고개를 들어 윤기를 올려다봤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약간은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이름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니.”
“좋은 감정으로 만나는 사람 있어요.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나 그럴 자격 없어. 네가 나 믿었던 만큼 나도 너 믿을 거야.”
나긋나긋하지만 단호한 그 어투에 이름이 입을 꾹 다물었다. 목도리를 매만지던 윤기가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 크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발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윤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머릿속 많은 생각들을 꺼내고 있었다. 윤기의 입장에서는, 내심 그 상황이 놀라우면서도 불안했다. 이름이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설레는듯 기쁘면서도 혹여나 아이의 안에서 나쁜 변화가 일어나 버린 것은 아닌지 초조해했다.
석진의 일로 만남을 가져야 할 사람이 있어 남는 시간 음악 방송 특별 무대에 오르게 된 남준과 얼굴 보고 짧은 대화나 할 겸 방송국에 들르기로 했다. 방송국 건물에 도착해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고개를 치켜들어 숫자판의 숫자가 바뀌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기의 바로 옆으로 태형이 멈춰섰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였다. 이 겨울날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심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곁눈질로 태형을 보는 것을 멈추고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윤기의 뒤를 따라 태형이 가볍게 올라탔다. 윤기의 하얀 손가락이 숫자 24에 멈췄고, 반대편 구석에 서 있던 태형의 손이 숫자 11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느린 속도로 올라갔다. 급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어 딱히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코드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앞쪽에 붙이고 있던 몸을 살짝 뒤로 해 태형과의 거리가 조금 좁혀졌다. 엘리베이터는 6층에서 멈춰섰다. 문이 열렸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윤기가 미간을 좁히며 닫힘 버튼을 눌렀다.
“아내 분께서 참 미인이세요.”
왼쪽에서 들려온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살짝 돌려 태형을 바라봤다. 태형은 시선을 그대로 앞으로 둔 채 빙글빙글 웃을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건네는 말인지 알 길이 없어 아, 예, 하고 대답하며 대충 상황을 넘기려 했다. 태형의 입에 집사람의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얼굴 보면 닳을까 봐 얼굴도 안 보고 사시나.”
한쪽 눈썹을 올렸다. 엘리베이터는 10층에 다다랐다. 숫자가 11로 넘어가는 순간, 태형이 한 걸음 앞으로 가 등을 보였다. 그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태생부터가 남 일 혹은 남 말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태형이 걸어오는 무례한 장난을 받아 줄 생각은 없었다. 애써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태형이 작게 웃었다. 그 웃음에 다시 윤기의 관심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어차피 이미 닳고 닳은 몸 아닌가?”
낮은 목소리로 태형이 내뱉은 말에 눈이 돌아가 윤기가 손을 뻗어 열린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발을 붙이려는 태형의 어깨를 세게 잡아 그의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었다. 갑작스레 팔이 잡혀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몰아붙여진 태형이 조금은 놀란 눈으로 윤기를 바라봤다. 팔 위로 올려진 윤기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시선을 살짝 내렸다. 쉽게 감정을 내비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한 마디에 눈이 뒤집혀 사람 하나를 두고 죽일 듯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낯설었다. 윤기의 코에 걸쳐진 뿔테안경이 코 옆쪽 선을 타고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화를 꾹 참는 듯 입술까지 바르르 떠는 윤기에 태형이 그에게서 잡힌 팔을 빼내 보려 몸을 비틀었다. 윤기의 손에 더 큰 힘이 들어갔다. 팔을 더 세게 잡아옴에 태형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입, 함부로 놀리지 마.”
“오……. 말로 해요, 말로.”
매서운 눈으로 태형을 쏘아보던 윤기가 간신히 입을 여는 태형에 표정을 더욱 굳혔다. 눈까지 충혈되어 그 무서운 얼굴을 한 채 이를 악물고 말을 내뱉는 윤기의 모습에 태형이 몸을 흠칫 떨었다. 미간을 좁히던 태형이 웃음을 거두고 팔을 쥐고 있는 힘이 조금 풀린 틈에 윤기의 손을 떼어냈다. 괜히 침을 삼키며 다시 아려오는 팔을 뻗어 11층 버튼을 눌렀다. 생각보다 센 악력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엘리베이터가 24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19층 버튼을 누르고는 엘리베이터가 멈춰서자마자 도망치듯 밖으로 내리는 윤기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입가에 미소를 올렸다가 입꼬리를 내렸다. 해야 할 말을 했음에도 크게 기분이 좋지 않다.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고 윤기의 잔상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항상 해 온 생각이지만,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 생각을 끝으로 윤기에 대한 감상을 접고 휴대폰을 꺼내들어 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어지더니 녹음된 여자의 음성이 들린다. 얼굴로부터 휴대폰을 떼어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별 건 없었고, 확인 받고 싶었다. 그가 만족할 만한 일을 했다는 것을 인정 받고 싶었다. 글쎄, 만족할까. 태형 자신이었다면 이런들 저런들 제 머리를 쥐어뜯는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처음 시작부터가 틀어질 게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본인 책임을 대체 누구한테 돌리는 거야, 태형이 비속어와 함께 읊조렸다.
그대로 24층에 도착하지 못하고 19층에 내린 윤기가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 계단 난간에 머리를 기댔다. 이름이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꼈고,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의 변화이길 바라고 있었다. 한 발 뒤로 물러서 그 변화를 지켜보고 혼자 미소 짓고 싶었다. 그러나 죽었다 깨어나도 이름으로 하여금 제 옆에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찔러 곪게 만들어 버릴 사람을 옆에 두도록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주제넘는 일처럼 보여도 간섭해야 할 문제였다. 더 이상 자신은 이름이의 남편이 아닐지 몰라도 윤기에게 있어 이름이는 하나뿐인 아내가 되고 일에 있어 영감이 되는 작은 연인이었다. 이름이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았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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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죠 오늘 짧은 거 같아오 그래서 포인트를 내려써오... 오늘 깐태태 사진을 가져왔으니 참아주새오... 떠오르는 스토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음 글을 쓰려면 이쯤에서 끊어야 내용이 대충 맞을 것 같아서 ^♥^... 절케 앞뒤가 다른 남자는 만나면 안 됩니다 안돼요 태형이 부분 마지막 문단 이해 안 가요 하시는 분들 이해 안 하셔두 됩니다 뿌려놓은 떡밥은 금방 회수하도록 할게요 끙 근데 오늘 볼수록 짧은데 ;ㅅ;.....ㅋㅋㅋㅋㅋ 죄송해요...... 오늘 브금 태형이가 커버 한 번 해 주면 좋게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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