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런 소리, 쿵쿵대는 음악,
부산한 발걸음들, 코 끝을 찌르는 아릿한 땀 냄새.
"세봉아, 세봉아 괜찮아?"
내 몸을 흔드는 익숙한 목소리
"걱정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진작에 다이어트고 뭐고 다 집어치우랬지.
너 충분히 말랐다고"
힘겹게 뜬 눈 앞에 보인,
"...........최승철?".
[세븐틴/홍일점]
이터널 선샤인 (2/5)
"야, 괜찮아? 무슨 일이야. 놀랬잖아아-"
이 익숙한 목소리는 권순영 목소리고,
"그러니까 내가 어제 귤 줄 때 먹었으면 이런 일이 있어?"
툴툴대는 이 목소리는 부승관.
"괜찮아? 얼굴이 하얘. 응급실 가야되는거 아냐?"
이건 우리 세봉맘 윤정한.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세봉. 쉬어가면서 하자"
영어쓰는 이 사람은 홍지수.
각자 한 사람씩 돌아가며 툭툭, 내뱉는 말.
얼마만에 들어보는 진심어린 걱정인지.
북밭친 감정,
아이처럼 엉엉우는.
"야, 왜 울어-"
"울지마 세봉아. 아, 진짜 부승관-"
"왜!! 뭐!!"
+
한참을 그 웅웅대는 공간에서 울다가,
나를 달래오는 투박하지만 조심스러운 손길들에 진정되어 ,
눈물을 겨우 닦고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13명의.
"세.....세븐틴? 진짜 세븐틴이예요?"
"아, 형. 얘 상태 진짜 이상해-"
티비속에서만 보던, 나의 동경의 대상 세븐틴,
그리고, 날 잘 아는 듯 대하는 세븐틴.
일단, 승철의 부축을 받아 방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의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익숙한 초록벽지.
여기가 메로나 감옥이야?
"세봉아. 일단 우리끼리 연습하고 있을테니까, 좀 쉬고 있어.
뭐 갖다줄까? 뭐 먹을래? 아, 순영이랑 준휘랑 편의점 갔는데 전화해줄까?"
".....아...아뇨"
"이야, 우리 세봉이 철 들었는데? 오빠한테 존댓말도 쓰고~"
자리에 앉아 사태를 대충 파악해보니까,
난 일단 세븐틴의 멤버인게 확실했다.
그것도 보컬 유닛.
연습 중간중간에 석민과 승관이 계속 내 옆으로 와 시끄럽게 말을 걸며
화음 맞추기를 요구하는 걸 보면 확실했다
(두 사람은 아픈 애 괴롭힌다며 승철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머리가 띵하고 아파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분명히 타이레놀을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녔는데.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손에 잡힌 휴대전화 하나.
이질적으로 반짝이는 로즈골드색 아이폰.
이건 내 것이 아냐.
그래도,
이게 있으면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겠지.
전원 버튼을 누르자 보이는 세븐틴의.
아니, 세븐틴과 나의 단체사진.
그리고 걸려있는 비밀번호
기회는 세번.
세번 틀리면 휴대전화는 5분 동안 잠긴다.
일단, 평소에 쓰던 비밀번호
"삑-"
이건 아니고,
두번 남은 기회.
내 생일?
"삑-"
마지막 기회
음..세븐틴 데뷔일?
"띠링"
경쾌한 소리를 내며 풀리는 휴대전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이 공간에서의 난,
내 자신이 세븐틴임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는게 틀림없다.
난 한번도 내 생일을 비밀번호로 지정해본적이 없었다.
내가 너무 싫어서,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휴대전화의 잠금을 풀고 갤러리를 터치하려던 그 순간,
"우리 왔다~"
들리는 순영과 준휘의 목소리.
두 사람의 목소리에 놀라서 잠시 몸을 움찔했지만.
일단 난 갤러리에 들어가봐야겠어.
갤러리 아이콘을 터치하자 보이는 수많은 사진.
그리고 보이는 수많은 나의 셀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이곳의 나는,
나 자신을 참 사랑했구나.
난 아니었는데.
학급 행사나 학교 행사때마다 친구들과 사진한장 찍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방긋 웃고 있는데 나 혼자 우울하게 있는게 싫어서.
내 사진을 구경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데,
"뭐해? 안 가?"
들리는 자랑자랑한 목소리.
이건 권순영이다.
"예?"
내가 크게 되묻자, 놀라서 뒤로 자빠지는 순영
"쿱스형! 얘 진짜 아픈거같은데?? 얘 존댓말 쓰잖아!"
"철 들었대- 아 부승관, 씨 내 슬리퍼어!!!!"
"그런가?"
"아 쿱스형 미안!!!! 우윷빛깔 최!승!철!!"
또 지들끼리 낄낄거리는 13명의 소년들.
내가 당황해 눈을 도록도록 굴리자,
나를 바라보며 손에 달랑달랑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뒤적대는 순영
그리곤 이내, 내 앞으로 다가와 쭈그려 앉으며
몰래 건네는.
"자"
".......?"
"너 먹으라고. 내가 쿱스형 카드라서 좀 질렀어.
니가 좋아하는 초코 우유. 허쉬 쿠키맛. 맞지?"
아, 여기서의 나나 진짜 나나 똑같은 나구나.
"......맞아요"
"아, 진짜 이상하단 말야. 아까 쓰러지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나 쓰러졌었어요?"
"어엉? 하긴, 아까 계속 멍하더라.
너 다이어트 한다고 굶다가 아까 쓰러졌잖아.
그니까 우리 말 좀 잘 들으면 좀 좋아?"
".........."
"이봐이봐. 이상해. 원래같았으면 막 날 뛰어야 정상이라구"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순영.
"호우쉬! 가온아! 불 꺼야돼. 얼른 나와라"
승철의 말에 화들짝 놀라 내 손에 있는 초코우유를 뺏어 다시 비닐봉지 안으로 던져넣는 순영.
그나저나 가온? 가온이가 누구지?
"우..우리가 끄고 나갈게"
"그래라 그럼. 딴데로 새지마."
"아, 응"
열쇠를 짤랑거리며 바깥으로 걸어나가는 승철.
그리고 소란스러웠다 이내 잠잠해지는 연습실.
"자, 우리도 얼른 나가자. 가는 길에 초코우유 다 마셔라.
승철이 형한테 들키면 우리 둘 다 죽는거야. 우리 공범인거다. 알지?"
+
초코우유를 쪽쪽 빨며 순영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 도착한 숙소.
분명히 티비에서 볼때는 이런 구조가 아니었는데,
4개의 방이 있는건 동일하지만 가장 작은 방이 내 방이라는 점이 다르다.
원래 바닥에서 자는 몇몇 멤버들을 제외하곤 모두 침대에서 자는지,
나머지 3개의 방엔 2층침대가 두개씩 꽉꽉 들어차있었다.
"우와-"
무의식중에 드러난 속마음
"야. 정신차려- 너 술 마셨냐?"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다 뒤돌아선 틱틱거리는 김민규.
"예?"
".....뭐야! 왜 존댓말 써!"
"걔 좀 이상하다니까!!"
놀라는 김민규에 이어 부엌에서 소리치는 권순영까지.
+
"세봉아 잘자라"
".....응"
익숙치 않은 말투.
"이제 좀 원래대로 돌아왔네.
아, 내일 스케쥴 없으니까 우리 고기 먹을건데, 대표님 카드~~
너 내일은 다이어트 안하지?"
방문앞에 딱 붙어서는 장난스럽게 물어오는 승철.
"그럼"
"너 저번에 석민이랑 고기 배틀하다가 졌잖아. 내일은 꼭 이겨라.
나 부승관이랑 내기했다고"
"그럴게요. 아니, 그럴게"
"그래. 잘자-"
승철이 문을 닫고 나가고,
오롯이 나 혼자 남은 익숙치 않은 내 방.
예쁜 옷이 잔뜩 걸린 헹거, 길다란 전신 거울.
시험공부를 하다 만건지 널려있는 교과서들.
폭신폭신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여기가 진짜일까?
한성수 그 자식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법을 카톡으로 보냈다.
난 그걸 뭐에 홀린듯이 행했고,
시끄러운 소음, 밝은 햇살, 고꾸라지는 몸.
그리고 눈 뜨니 세븐틴 연습실.
이상하게 뒤엉킨 머릿속.
아........
답답한 마음에 휴대전화만 껐다키길 수십번.
그리고 그때 걸려온 전화
"세봉아-"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발신인을 확인하니 써있는.
*우리 예쁜 어머님*
이건 우리 엄마 목소리가 아닌걸?
"어...엄마?"
"오늘 쓰러졌었다며. 승철이한테 들었어.
엄마가 굶는 다이어트 하지 말랬지"
"........."
"내일부턴 꼭 삼시세끼 챙겨먹어. 알겠어?"
"으..응"
"피곤할텐데 얼른 자. 잘자-"
"응"
순식간에 끝이 난 통화.
지금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면,
한성수가 보낸 카톡을 보다가 그대로 했고,
눈 떠보니까 내가 세븐틴이고, 엄마가 바뀌었어.
이게, 정말 꿈일까?
다시금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휴대전화를 다시 켜고,
검색창에
세븐틴 김세봉
이라 검색했다.
그러자 나오는 나의 프로필.
그리고 이질적인 내 얼굴 옆에 이질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가온" 이라는 이름.
그래서 아까 승철이 나를.
세븐틴 커뮤니티에 들어가 이것저것 검색해보니,
활동명은 가온과 다온중에 고민했고,
석민이보다 많이 먹으며,
찬이 보다 호적상으론 한살 어린데 빠른이고.
나대는 건 부승관 급.
흔히 듣던 부석순이 아닌, 부석온순.
평소의 내 모습과 다른 나.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내 모습.
난, 난 가온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