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노 - 소년이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
윤기가 어느 날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몸을 눕히고 자는 쿠션을 든 채로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코를 쿡 박고 몇 번 킁킁 거리다가
귀 끝을 파르르 떤 뒤에
쿠션을 침대에 패대기를 쳤으면 좋겠다.
쿠션에 한 맺혔어요?
야.
네?
이거 악취에 쩔었어.
... 아. 냄새 난다고요? 그럼 빨아달라고 해요. 그냥.
아까부터 뭐하는건가 싶어 보고 있던 남준이가 이유를 알고 허탈하게 웃었으면.
와중에도 험한 말 자꾸 쓴다며 윤기의 볼을 한 번 꼬집었으면.
그리고 침대 구석에 있던 쿠션을 가져오고는
손으로 툭툭 털다가 자신도 냄새를 한 번 맡아봤으면 좋겠다.
... 냄새가 나는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는 남준이의 말을 들은 윤기가 귀를 바짝 세웠으면.
정말 냄새가 난다며 세모눈을 뜨는 윤기의 모습에 남준이가 알겠다면서
세탁기에 쿠션을 그대로 박아넣었으면 좋겠다.
세제를 넣고,
섬유유연제는 윤기의 주문대로 한 가득.
그리고 시작버튼을 꾹 눌렀으면.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을 본 윤기가 남준이의 옆으로 오더니 침대를 한 번 보고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으면 좋겠다.
야, 나 오늘 어디서 자?
쿠션 없으면 못 자겠어요?
... 잠깐만.
처음부터 남준이가 위에서 자라고 준 쿠션이었던지라 쿠션이 없으면 어떨지 몰라
윤기가 토끼로 변해서는 침대 위로 뛰어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몸을 일자로 펴 쭉 눕는데 뭔가 푹신함이 부족해 주섬주섬 일어났으면.
못 자겠어요?
남준이가 살짝 허리를 숙여 물으면 토끼의 고개가 끄덕끄덕거렸으면 좋겠다.
보란듯이 일자로 다시 눕더니 미간을 팍 찡그린 뒤에 주섬주섬 일어나서 이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 하얀 토끼의 모습에
남준이가 순간 터질뻔한 웃음을 겨우 참았으면 좋겠다.
그럼 어떻게 하지? 다른 쿠션이라도 찾아볼까요?
남준이의 말에 윤기가 얼른 가져오라는 듯이 두 뒷발로 서서 침대를 한쪽 발로 툭툭 두드렸으면 좋겠다.
누군가 선물로 준 것 같으나 기억은 나지 않은 하트 쿠션은
모양 때문에 불편해서 탈락.
옷장 구석에 있던 낡은 쿠션은
먼지가 너무 많아서 윤기가 툭 건들인 뒤에 아예 뒷발로 차버리면서 탈락.
담요를 둘둘 말아서 만든 임시 잠자리는 윤기가 올라갔다가 남준이가 평평하게 말아주지 않아서
그대로 훅 몸이 앞으로 쏠려 침대로 데굴 굴러간 뒤 탈락.
마지막에는 구르고 난 뒤에 웃음이 터져 웃다가 저를 째려보는 토끼의 눈빛에
남준이가 모른 척 하면서 담요를 치우다가 검지손가락을 물렸으면 좋겠다.
결국 윤기의 마음에 드는 쿠션이나 대체품을 찾지 못한 남준이가 이따 잘 때 그냥 베개 하나 꺼내 줄테니
사람 모습으로 그거 베고 자라고 하면 그제야 윤기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고 잠을 잘 시간이 될 즈음
윤기가 먼저 침대에 사람의 모습으로 베개를 벤 채로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
옷장 아래에 넣어둔 이불을 꺼내려던 남준이가 곤히 자고 있는 윤기를 보고 고민했으면 좋겠다.
옷장을 열자니 낡은 옷장이라 소리가 커서 윤기가 깰 것 같고,
그러자고 그냥 자신이 맨바닥에 잘 수도 없고.
잠시 어쩌나 고민하던 남준이가 눈을 한 번 굴리다가
불을 껐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심히 침대를 더듬다가 윤기를 피해 몸을 눕혔으면 좋겠다.
벽과 윤기의 틈 사이로 눕는 걸 성공하고 나서
바로 귓가에 울리는 윤기의 숨소리가 평소 토끼의 얕은 숨소리가 아니라서 긴장했으면 좋겠다.
꼼지락 꼼지락
괜히 간지러워지는 발 끝을 시트에 부비다가
불편한 것 같은 몸을 뒤척였으면.
어떻게 잠은 청하기는 하는데, 계속 옆에 누워있는 윤기의 존재감이 너무 뚜렷해서 이불을 지금이라도 꺼낼지, 말지 고민했으면.
윤기가 몸을 뒤척였으면 좋겠다.
절로 옆에 새로 생긴 온기를 따라 몸을 웅크렸으면 좋겠다.
베개에 불편하게 머리의 반만 어중간하게 걸친 윤기를 보던 남준이가 베개를 조금 더 밀어주려다가
윤기가 잠투정을 부리면서 안으로 파고 들어와 얼결에 팔베개를 해줬으면 좋겠다.
바로 지척에 다가온 윤기의 얼굴에 남준이가 어쩔 줄 몰라했으면.
자세를 바꾸느라 이불을 놓고 있던 윤기가 되는대로 더듬다가 남준이의 가슴팍의 옷깃을 꾹 그러쥐었으면 좋겠다.
남준이가 잠시 숨을 멈춘 채로 당황했으면 좋겠다.
결국
남준이는 한참동안 그 자세에서 움직이지도 못 하고,
잠을 이루지 못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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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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