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구름의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뜨겁게 내리쬐던 햇볕도 사라졌다.
학연이 언을 떼었다.
" 청하. "
" ..예. "
" 그 이름에 걸맞게 내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구나. "
" ... "'
" 푸른 강. "
그 처럼.. 잔잔히, 그리고 미동 없이.
학연이 먼저 뒤를 돌았다.
살짝 상체를 숙인 홍빈이 이내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차학연.
순한 척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얼굴 표정은 잘도 숨기면서, 저 거만한 뒷모습은 가리지 못하는구나.
학연의 뒤를 줄지어 따라가는 내관들이 모두 사라질 때 까지, 홍빈의 시선은 거둬지지 않았다.
하늘이 높게 이어진다.
선선한 바람이 홍빈의 발치를 간지럽힌다.
향기가 짙은 꽃이, 단단히 내게 그 향기를 뿌렸나 보다.
숨 쉬는 내내 너의 향이 잊혀지지를 않으니..
윤이는 잘 있으려나.
프슬, 습관처럼 웃음이 나왔다.
홍빈은 그랬다.
행복해도, 즐거워도, 슬퍼도, 고통스러워도, 분노가 치솟아도 웃었다.
마치, 탈을 쓴 것 처럼..
시도 때도 없이 웃는 모습을 보는 주위 신하들은 그 몰래 홍빈을 이리 칭하곤 했다.
' 광대. '
* * *
" 또 밥을 거른 것이냐. 그 놈의 고집 하나 만큼은 정말 세구나. "
" ... "
손도 대지 않은 밥상을 힐끗 바라 본 홍빈이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어 섰다. 며칠 새 초췌해진 택운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봤을 적의 그 희고 뽀얗던 뺨은 어디 가고 푸르죽죽하게 늘어져 병색이 짙다.
굳게 닫힌 입술은 여태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홍빈의 눈꺼풀이 느리게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다. 따스하기만 했던 방 안의 공기가 삽시간에 차갑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아아, 시들거리는 얼굴은 정말이지 보기 싫어.
홍빈의 머릿속에 희미한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아주 어린 유년시절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아 지금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반듯한 얼굴 하나.
죽었다고 했었지. 꽤 오래전에..
결국, 인생의 절반을 넘게 앓기만 하다 갔구나. 어리석은 형님은.
" 그러고 있으니, 꼭 나의 죽은 형의 모습 같구나. "
" ... "
" 병든 것 마냥 빌빌대는 꼴이, 참으로 보기가 싫어. "
" ... "
총명하고 착한 첫째 아들에 정신이 팔린 양친은 벼슬자리에 올라 태양을 보필하게 된 둘째 아들은 안중에도 없다.
형의 죽음도 어찌어찌 전해 들은 것이로니.
뭐, 형님이 남긴 유품 하나는 내가 가지게 되었으니.. 그리 섭섭할 것도 아닌 겐가.
택운의 눈동자가 홍빈을 향하다 이내 다시 돌려진다.
택운의 몸상태는 실로 최악이었다.
강제로 범해진 이후, 전신 곳곳이 아려 잠 조차 잘 수 없었다.
홍빈이 야속했다.
그 이후로 처음 얼굴을 비추며 하는 말이, ' 병 든 모습이 꼴 보기 싫다. ' 라니.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세게 물었다.
" 나비, 좋아하느냐? "
" ... "
뜬금 없이 나비 타령이 웬 말인가.
살짝이 호기심이 일어 자신을 바라보는 택운에 홍빈이 웃었다.
나비 그림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한 번 구경 해 보겠느냐?
끄덕.
말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인다.
나비.. 나비라.
익숙한 그 두 글자가 가슴에 깊게 박힌다.
홍빈이 몸을 빙글, 돌려 장롱 쪽으로 다가간다.
이 쯤 뒀을 터인데.. 이 곳인가?
" 아, 이것이로구나. "
한참을 뒤적이다 꽤 커다란 종잇장 하나를 꺼내 든 홍빈이 택운에게로 터벅터벅 다가갔다.
팔랑-.
눈 앞에 펼쳐진 누릿한 종이에 택운이 멍하니 그것을 바라 보았다.
" 죽은 나의 형이, 세상을 뜨기 전 그렸다더구나. "
" ... "
" 물에 빠진 것을 간신히 건져 낸 지라 그림이 왠지 성치 않아. "
" ... "
재환 형님은, 하늘에서도 실쭉이 웃고 있으려나.
아니면, 또 병이 들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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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27편이 초록글에 잠깐 올랐었더라구요ㅠㅠ 평일에 타이밍 좋게 오른거였지만 기분이 너무 좋네요ㅠ 캡쳐를 해놨는데 그게 어딜 갔는지 사라져 버렸네요ㅠ 전부 독자님들 덕분이에요! 항상 감사합니다 ㅎㅅㅎ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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