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귀걸이 」
# 7
교재를 넣으러 개인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물함의 경쾌한 잠금 소리 뒤에 사물함 뒤를 활짝 열었다.
내가 너무 방심한 탓이었을까. 그날 이후로 사물함에는 장미잎 한조각이나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 탓에 해이해진 것 같았다.
눈앞에 팔랑팔랑이며 바닥으로 떨어져내리는 꽃잎들과 후각에 훅 끼쳐오는 장미 향기.
이제 나아버린 손바닥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의 장미 한송이와 달리 그보다 많고 개별로 분해된 장미꽃잎들이 사물함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붉은 꽃잎 더미 속의 알파벳이 적힌 종이가 묻혀 있었다.
적혀진 알파벳의 글자는〈Y〉였다. 이번에는 봉투에도 싸여 있지 않았다.
"...뭐야. 정말."
소름이 끼쳤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꽃잎 더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말 누군지 궁굼했다. 왜 나에게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지 몹시 알고 싶었다.
손을 뻗어 장미 꽃잎을 한움큼 집었다.
거친 손동작때문에 꽃잎들이 다시 팔랑이며 바닥으로 하강했다.
움켜쥔 장미 꽃잎들을 바닥으로 던지고 사물함 내부에 있는 꽃잎들도 모조리 긁어내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끄집어 내고 사물함을 닫았다.
기분이 나빴다. 장미 향기 또한 전혀 향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끈끈하고 질척한 기분 나쁜 냄새와 같았다.
바닥은 붉은 꽃잎들로 뒤덮혀졌고 꽃잎을 밟고 지나치는 나의 신발에 짖이겨졌다.
그 때문에 더러워진 바닥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조금도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불안감과 공포감에 쿵쾅쿵쾅 뛰는 심장 박동때문에 어서 떠나고 싶었다.
"미치겠다."
그러나 정체모를 그녀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집요하게 장미꽃잎과 알파벳이 적힌 편지를 눈앞에 대령했다.
점차 알파벳들이 모여 수중에 가득했지만 맞춰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종이들은 손안에서 구겨져 구석에 처박아 놓았고 차마 버리지는 못했다. 버렸다가는 더 큰 화가 올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목적인 것일까. 무엇때문에.
정말 내가 좋아서 이러는 것일까. 일종의 삐뚤어진 애정 표현인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점차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선배들한테...조언을 구해볼까?"
이런 난감한 상황을 말하고 답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성용 선배와 태환 선배밖에 안 떠올랐다.
특히 이런 건 성용 선배가 잘 알 것 같았다. 장난을 많이 치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들어줄 때는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이런 일로 선배들을 귀찮게 해도 괜찮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통이 생기도록 며칠을 고민했지만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주말에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선배. 상담하고 싶은게 있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쑨양》
문자 메세지가 간 후 얼마 후 답장이 왔다.
《지금은 안되는데~ -성용》
《그럼 언제 되세요? 선배가 가능한 시간 말씀해주세요. -쑨양》
《저녁 7시. OK? -성용》
《네. 좋아요. -쑨양》
《정문에 7시까지. -성용》
답장을 받고 한가지는 해결된 기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수업시간에는 마치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가만히 있지 못해서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 잔소리까지 들어다.
수업이 끝이 나고 학교 정문으로 뛰어갔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오가는 정문에는 아직 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쪽에 기대어 성용 선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여!"
성용 선배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성용 선배가 있었고 그 곁에는 태환 선배와 구자철 선배가 있었다.
혼자 올 줄 알았던 나는 얼떨떨하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성용 선배가 씨익 웃으며 친구들을 곁눈질 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선배가 혼자보다는 셋이 더 좋지 않겠냐?"
"아...네."
아직 구자철 선배라는 사람은 잘 모르는데,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될까.
조금 걸렸지만 성용 선배의 친구이고 태환 선배와도 친해보이는 것이 상관없어 보였다.
네 명이서 학교 근처에 있는 술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술집으로 가는 내내 우리들에게 꽂히는 시선이 수많이 존재했다.
수근거림도 있었지만 원체 떨어져 있어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술집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간단한 안주거리와 소주 한병, 사이다 한병을 주문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소주를 들어 뚜껑을 열며 성용 선배가 물었다.
"그래. 상담할게 뭔데?"
"아, 그게..."
"어여 말해. 말하기 어려운거냐?"
성용 선배의 물음에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상담하고 싶다고 불러냈지만 쉽게 입밖으로 끄집어 내지 못했다.
주저하는 나에게 소주잔을 손에 쥐어주며 소주를 따라주었다.
찰랑찰랑 투명한 소주로 가득찬 소주잔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그럼 먼저 술 마시자. 알콜이 들어가면 말하기 힘든 것도 술술 나오거든."
"그래. 그렇지~ 오랜만에 기레기가 옳은 말 하네. 마시자. 태환이는 사이다지?"
"응."
음료수잔에 사이다를 부어 태환 선배에게 잔을 건네주는 구자철 선배를 보다가 건배하자는 말에 손에 들린 소주잔을 치켜들었다.
짠하고 유리잔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소주를 원샷으로 삼켰다. 소주의 쓴 맛이 혀에서 느껴졌고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크~좋다."
소주를 마시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마른안주를 씹는 구자철 선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얌전히 사이다를 홀짝홀짝 마시는 태환 선배를 바라보았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태환 선배는 대부분 음료수를 마셨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이다를 마시던 태환 선배가 성용 선배를 쳐다보더니 엎어놓은 술잔을 잡고 내밀었다.
"나도 술 좀 주라."
"엉? 왠일이냐? 술이 땡겨?"
"...그냥."
"어디 술이...어! 쑨 니 앞에 술병 있네. 니가 따라주라."
"아, 아, 네."
바로 앞에 놓여진 소주병을 잡고 태환 선배의 빈잔에 술을 부었다. 술잔에 술을 채우고 나니 소주 한병이 다 비워졌다.
"이모~ 여기 소주 한병 추가요!"
그렇게 소주를 하나씩 비우고 테이블 위에는 점점 술병이 늘어났다.
구자철 선배는 얼굴이 빨갛고 혀가 꼬이는 모양새가 취한 모양이다. 태환 선배도 두잔 밖에 안마셨는데 술기운이 오르는지 뺨이 발가스름했다.
제일 많이 마신 성용 선배와 내가 제일 멀쩡했다.
성용 선배가 새로운 소주병을 뜯으며 처음 물었던 질문을 던졌다.
"이제 분위기도 달아올랐고, 말해봐. 상담할 거."
"그게...후우...사실은......"
말했다. 지금까지 겪은 일을 말했다.
의문의 편지와 장미꽃잎이 개인 사물함 안에 놓여져 있고, 어떨때는 가방에 들어있고 처음에는 책 사이에 끼어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스토커네. 스토커. 미친년이 너한테 붙었나본데."
그리고 학과 모임이후 호텔에 갔던 이야기도 꺼냈다.
물론 잠에서 깬 다음날 호텔인 것을 알았이지만 말이다.
"...뭐엉? 그러니까...쑤우니는 여자아라앙 세엑스 해앴다아는거네엥~?"
"아니, 그게...."
"와아아아~ 부우러업다앙~"
혀가 잔뜩 꼬인 채로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하는 구자철 선배에게 우물쭈물 대답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좋았다. 그날 밤에 처음 겪어보는 황홀함으로 다음날까지 정신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이후로 묘하게 달라붙는 집요함에 소름끼쳤고 전혀 달갑지 않았다.
구자철 선배를 보다가 성용 선배와 태환 선배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말해줄까 궁금했다.
아마도 성용 선배는 능글능글하게 말을 시작하겠지?
그런데 내 생각과 다르게 성용 선배은 몹시 굳어 있었고 태환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깜빡거리더니 말문을 텄다.
"너...기억하는거냐?"
"네? 아뇨...상대는 모르겠는데...그거만..."
내가 말하고도 부끄러웠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숨기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야. 얘 기억하는데...말하는게 낫지 않겠어?"
"......"
성용 선배의 소근거리는 말에 태환 선배는 남아 있는 술잔안의 술을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용 선배의 어깨를 툭툭 치고 가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환이, 화장실."
"아..."
"후아...씨발. 기억 못할 줄 알았는데..."
"어엉? 뭐어가?"
"자봉아, 자라. 자."
"이 시빵이가...무어래...쿨."
구자철 선배는 술을 과하게 마셨는지 어눌한 말 한마디 내뱉고 그대로 테이블에 쓰러져 자기 시작했다.
그런 선배를 잠시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던 성용 선배는 나를 쳐다보고 말문을 열었다.
"자, 술 받아라. 후...사실 니가 여자랑 가는 거 봤거든. 태환이랑 나랑 다른 애들도 다 봤지. 니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멀뚱히 봤지."
성용 선배가 따라주는 술을 받고 술병을 건네받고 성용 선배의 빈 잔에도 술을 채웠다.
그는 소주를 한모금 마시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낯선 사람이러는거야. 저 여자 누구냐고. 애인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 그런데 없다고 한 놈인데 누군지 싶었거든."
"......"
"그래서 널 위해 친히 환이랑 함께 뒤쫓아갔다는 거 아니냐. 니가 보통 안취하는데 그날따라 취하고 거의 끌려가다시피해서 좀 걱정됐지. 그런데 택시 타더라? 썅. 욕하고 택시 뒤따라 갔는데 호텔이더라. 무척 비싼 호텔."
선배들이 호텔에 뒤쫓아왔다니...성용 선배의 말에 놀라서 말도 못하고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근데 벌써 로비에서 없어져서 호텔 프론트 족쳐갖고 너랑 그 여자가 잡은 객실번호 알아냈지. 개인 프라이버시때문에 안된다는 거 사람 잘못되면 책임질거냐고 막 협박했지. 역시 협박은 모든 대화를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어. 훗."
"......"
"아무튼 간에 객실 찾아서 쫓아갔는데 안에 들어가니...허...니가 당하기 직전이더라. 그 스토커같은 미친년이 덮치더라고."
"...에?"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거지? 점점 쿵쾅쿵쾅되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근접해서 들려왔다.
입안에 침이 고여 꿀꺽 삼켜버렸다. 주먹 쥔 손에 땀이 나서 손을 펴서 바지에 문질렀다.
눈앞이 뱅글뱅글 어지러워졌다. 성용 선배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환이랑 나랑 그년 쫓아보냈다. 무섭더라. 그날 처음 알았잖냐. 여자가 무섭다는 걸. 암튼 거의 발가져서 나체되기 직전인 널 챙겨갈려고 하는데...아이구야. 그 미친년이 약썼네. 병원 가야하나 어째야하나 고민하는데 넌 끙끙 앓고 있지. 약 효능 장난 아니더만. 어떻게 구했대. 비아그라 저리 가라야."
"......"
"야."
"....에?"
말을 잇다가 멈추고 나를 부르는 성용 선배를 쳐다보았다. 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너...그거 기억한댔잖냐."
"...네."
"내가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 알겠지? 그 상대가 누군지..."
"...네?"
맹하게 대답하는 날 쳐다보더니 더욱 눈쌀을 찌푸리고 말을 내뱉었다.
뭐 이런 병신이 다 있냐는 짜증난 눈빛이었다.
"태환이라고. 박태환."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전혀 인지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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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투척...(그러기에는 텀이 좀 있지만^^)
여기서 딱 끊어주는 센스 발휘!! 저 잘했죠?☞☜
아닌가?...돌 내려놓으시기~^^;;;
이번편으로 쑨양의 황홀했던 그날 밤의 상대자가 드러났죠?
그 부분에서는 독자님들의 궁금증을 덜어내드렸네요~ㅎㅎ
그럼 다음편에서 만나요~
【암호닉】
ㅌ/흰구름/꽃게/유스포프후작/우구리/마린페어리/박쑨양/촹렐루야/잼/초코퍼지/쌀떡이/꾸워엉/탱귤탱귤/응가/햄돌이/토야/이율/아와레/허니레인/태꼬미/포스트잇/샤긋/딸기빼빼로/소띠/광대승천/태환찡/쥬노/빠삐코/초코퍼지/잼/렌/비둘기/박태쁘/아스/아마란스/뺑/피클로/하늬/양갱/화뉴/옥메와까/밧짱과국대들/탱귤/찰떡아이스/또윤/토야/응가/고무/사과담요/부레옥잠/소어/태쁘니/연두/레인/귤/수풀/리엔/고구미/눕는독자ㅇ〈-〈/텔라/@(골뱅이)/하양/양양/차느/너구리/식빵녀/앙팡/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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