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귀걸이 」
# 8
방금 성용 선배가 뭐라고 말했지? 내 귀가 이상한가보다.
태환...? 태환 선배라고? 하하.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뭐..라구요?"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시선으로 쳐다보니 성용 선배는 미간에 더욱 주름을 새기며 한숨을 푹 내쉰다.
소주잔을 들어 술을 삼키더니 내 앞에 놓인 소주병을 잡아채서 자작하기 시작했다. 몇잔을 원샷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박태환이라고. 그날 밤 상대가 환이 그 자식이라고. Do you understand?(이해했냐?)"
"......"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부정하자 성용 선배는 다시 되짚어 정확히 읊어주었다.
그의 말은 아주 잔인하게 내 귓속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해하는 순간 나의 정신은 그대로 붕괴하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 대가는 아주 컸다.
시야는 회색으로 물들고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눈앞이 흐려지며 초점을 상실했다.
"후우...야, 구자봉! 야 이자식아. 일어나. 야. 야."
테이블에 엎어져 잠든지 오래인 구자철 선배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성용 선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떠드는 비속어는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에 안타깝게 흩어졌다.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용 선배의 움직임을 쫒아갔다. 흐릿한 윤곽만이 시야속에 들어왔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성용 선배가 돌아오고 잠들어 잠꼬대마저 하는 구자철선배를 일으켜 부축하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술값 계산은 했다. 난 이 새끼 데려갈테니까 넌 환이 책임져라. 아직 화장실에서 안나온 것 같은데 거기서 쓰러졌던지 자고 있던지 둘 중 하나다."
"어?.....네?"
멍청하게 쳐다보는 나를 내려다보던 성용 선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다가 먼저 간다며 가게에 나갔다.
그가 떠나간 이후에도 한참을 그대로 자리에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복잡하게 엉킨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태환 선배와 내가 섹스를 했다고?
직접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았고 혼란스러웠다.
정신없고 뿌연 상태에서도 느꼈던 달아오른 분신을 조이는 수줍은 몸짓, 얇은 허리를 잡고 거칠게 움직였던 나, 손에 걸린 부드러운 피부의 촉감.
그 모든 것이 태환 선배였다니, 몹시 충격이었다.
생각나지 않았던 상대의 얼굴이 태환 선배의 얼굴이라니. 하아. 이게 뭐야. 쑨양아, 너 뭐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만져보니 차가운 손바닥과 달리 몹시 뜨거웠다.
아무리 술과 약에 취했다지만 태환 선배와 잤다니 믿을 수 없었고 미칠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스토커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러 왔다가 되려 문제더미를 껴안은 것 같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갔다.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냥 미칠 것 같고 부끄럽고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태환 선배와 섹스를 했다면 성용 선배는 뭐한거지? 옆에서 본건가? 설마?
무엇을 상상하든지 소름끼쳤다.
난교파티를 좋아하는 특이한 성애자가 아닌 이상 섹스라는 것은 둘만의 비밀스럽고 은밀한 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꽐라가 되서 비몽사몽이 되었든 어쨌든 간에 두 사람이 섹스를 하는데 한 사람은 지켜본다?
말이 안된다. 지금까지 겪었던 성용 선배를 봤을 때 짐작하건데 아닐 것이다. 아니겠지.
"대체 뭐야..."
난생 처음 겪었고 황홀했던 그날 밤의 상대자가 태환 선배라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어느새 함께 왔다던 성용 선배의 위치가 신경쓰였다.
회로가 잔뜩 엉킨 기판이 과부하로 펑!하고 터지는 기분.
한숨은 지속적으로 터져나왔고 몰려오는 두통에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쌌다.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에 내 안에는 하나의 결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왜 상대자가 태환 선배였다는 것에 충격은 컸지만 상당히 빨리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한 결론을 말이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심장이 떨어질 듯 두근거렸고 기분이 나빴다가도 좋아졌다.
나도 연애를 안해본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좋아해보지도 않은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 살 때 겪어보았던 것이고 단지 그 상대는 항상 여자였을 뿐이다. 그런데 태환 선배는 남자였다.
학교 선배이고 연상의 남자이다. 존경할만큼 착한 성품에 상냥하고 다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배제했다. 그저 예뻐서 심장이 두근거리는거고 존경할만큼 멋진 선배라서 좋아하니까 결코 이성적인 상대가 아니라고 무의식적으로 제외했다.
그런데 아닌 모양이다. 머리만 오롯 그렇게 생각할 뿐 마음은 본능적으로 이미 느끼고 있었다.
"좋아...하는 건가."
그러니까 혐오스럽지 않은 걸거다. 아무리 약에 취한 나를 위한 행동이라지만 같은 동성과 섹스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혐오할만한 것이었다.
특히 호모포비아라면 그럴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편견없던 나라도 당혹스럽고 기분 나빴을 테니까 당연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박태환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태환 선배라는 사실이 좋았다.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여전히 좋았고 심장도 두근거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제에 나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약한 미소가 맺혔다.
그냥 아끼는 후배에게 그렇게 해줄 선배는 없었다. 그것도 여자 선배가 아닌 남자 선배가 그렇게 해줄 일은 확률적으로도 희박한 수치였다.
그러니 태환 선배도 나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근두근 맥박치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장시간 계산도 끝마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나는 술병에 남아 있는 잔술을 따라 마셨다.
알콜로 마비된 미각은 더이상 소주의 알싸함을 전해주지 않았다.
맹물같았다.
"후우..."
술을 연거푸 마셨다. 술이 조금 취하는 기분이다.
어찔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정리된 것 같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가 있었지만 더이상 생각하다가는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까 그만 생각하고 싶었다.
이 감정에 대한 정의를 매우 정확하게 진단 내릴 수 없었지만 좋아한다는 것은 알 수 있으니까 지금은 여기까지만 생각할련다.
막혔던 숨통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다. 남은 술로 자작을 하다가 태환 선배를 퍼뜩 떠올랐다.
아까 전에 화장실 간다고 사라졌던 사람이 아직도 돌아오질 않고 있었다. 성용 선배가 책임지고 데리고 나가라고 했는데 아직도 있을까?
손목에 자리한 시계는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저녁 7시에 자리잡고 술을 마셨더랬다.
그래도 술을 퍼마신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다.
성용 선배의 폭탄발언으로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생각한 시간이 제법 길었나보다.
자리에 일어나 가게 깊숙한 곳에 위치한 화장실쪽으로 걸어갔다.
"...태...환..선배...?"
시끌시끌한 가게안과 달리 구석진 화장실쪽은 조용했다. 선배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혹시 집에 간 것일까 하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화장실은 남녀공용이었고 두 개의 칸막이와 소변기 그리고 세면대가 있었다.
두 개의 칸막이 중에서 한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선배?"
"으..응..."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미약하지만 태환 선배의 목소리였다.
손을 대고 문을 잡고 당겼다. 잠기지 않은 문은 삐그덕하는 소리을 내며 열렸고 그 안에는 변기통을 잡고 앉아 있는 태환 선배가 보였다.
입술이 번들거리는 것이 토악질이라도 한 듯 했다.
겨우 소주 두 잔을 마셨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토하고 맥없이 있다니 생각한 것보다 술이 너무 약했다.
허리를 굽혀 몸을 숙였다. 태환 선배의 어깨를 잡아 살짝 흔들었다.
"선배. 정신 차려봐요. 선배. 선배."
"음...어? 양? 헤헷. 나 찾으러 왔어?"
입꼬리를 말고 해사하게 웃는 태환 선배를 보니 심장이 쿵쿵거렸다.
"기선배는 구선배랑 먼저 갔어요. 우리도 이제 가요."
"성용이가? 치사하게..."
"....그런데, 선배..."
"어?"
"기선배가 말해줬어요. 그날 밤...그때 호텔에서..."
"아...말...했어? 알았구나...하아...그래..."
"왜...그러셨어요?"
직설적으로 이 말을 던진 이유는 태환 선배의 심중을 알고 싶어서다.
일반 상식으로 생각 할 때 단지 아끼는 후배에게 할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지금껏 겪어본 그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1%정도는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그러나 옆에 있었을 성용 선배가 백프로 말렸을 것이 분명한데 했다는 것은 나에게 감정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술기운을 빌어 태환 선배에게 물었다.
나의 물음에 태환 선배는 좀처럼 답하지 않았다. 재촉하지 않고 그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니까."
"네?"
"...좋아하니까. 양...네가 좋아서 그랬던거야. 알고 나니까...싫었어? 기분 나쁘니?"
평소의 나긋한 목소리와 달리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기대했던 것과 같은 답안. 그러나 보다 더 달콤한 말이 흘러나왔다.
입안에 침이 고여서 꿀꺽 삼켰다.
혀로 마른 입술을 훑었다.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요. 싫을리가...그리고..나도...그런 것 같아요. 확실하지 않지만...그런 것 같아요."
내 대답을 들은 태환 선배는 화장실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다 휘청이는 그의 몸을 붙잡았다.
나의 팔을 붙잡고 몸의 중심을 잡은 태환 선배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시선을 마주했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물기에 젖은 검은 눈동자가 너무 예뻤다.
동요에 흔들리는 눈동자가 촉촉히 빛이 났다.
"...정말?"
"그게...이런 건 처음이라...잘 모르겠어요. 하지만...선배를...보면...기분이 좋아져요."
"그래...그거면 됐어."
조밀한 대답 뒤에 태환 선배는 나의 품에 기대었다.
옅은 색의 머리카락은 코끝 아래에서 살랑이며 간지럽혔다. 타인의 체온과 맞닿은 부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얼마 만큼 포옹하고 있었을까. 태환 선배가 떨어지며 짧게 말을 흘렸다.
"이만 가자."
그 말을 하며 태환 선배는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이 몹시 아련하고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만지고 싶었다.
태환 선배가 먼저 화장실에서 나갔고 나도 뒤따라서 나갔다.
가게를 나서니 새카만 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차가운 가을 바람이 뺨을 스치었다.
앞에서 걸어가는 태환 선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없이 따라 걸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길을 따라 걸었고 그 도착지는 나의 자취집이었다.
"...도착했다."
"......"
"그럼 들어가. 나 갈게."
"네? 선배는요!"
"난 집으로 가야지. 양, 그럼 잘자."
그말을 끝으로 다른 길로 옮기는 태환 선배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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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폭탄투척으로 독자님들 멘붕오신 것 같던데...
다음편이 다음편이 아닌 것 같네요...ㅎㅎㅎ
술에서 깨면 과연 어떨지...ㅋㅋㅋ 또다시 쑨양의 멘붕올까요?ㅎㅎㅎ
아, 태환은 성용에게 설명을 떠민거에요. 그리고 화장실로 직행...자리피함.
솔직히 본인 입으로 말하기가 그렇죠??☞☜
하하하...7일동안은 언제 쓰죠.
두개의 귀걸이 한편 더 쓰고 쓸까요?
아님 이편으로 마무리하고 7일동안에 매진할까요?
답글은 오늘내로 전부 달아드릴게요. 먼저 글 써서 올리고 다는게 나을 듯하여...^^
【암호닉】
ㅌ/흰구름/꽃게/유스포프후작/우구리/마린페어리/박쑨양/촹렐루야/잼/초코퍼지/쌀떡이/꾸워엉/탱귤탱귤/응가/햄돌이/토야/이율/아와레/허니레인/태꼬미/포스트잇/샤긋/딸기빼빼로/소띠/광대승천/태환찡/쥬노/빠삐코/초코퍼지/잼/렌/비둘기/박태쁘/아스/아마란스/뺑/피클로/하늬/양갱/화뉴/옥메와까/밧짱과국대들/탱귤/찰떡아이스/또윤/토야/응가/고무/사과담요/부레옥잠/소어/태쁘니/연두/레인/귤/수풀/리엔/고구미/눕는독자ㅇ〈-〈/텔라/@(골뱅이)/하양/양양/차느/너구리/식빵녀/앙팡/하늬/까망이
★ 오타지적환영!
★ 오늘은 10/04 태쁘 입소일이죠! 입소일도 썬샤인하네요. 천사^_^
밤톨같은 머리가 참 귀여웠어요>_< 4주간 훈련 잘 받고 다녀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