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끊어버리고 싶지가 않아서 무리하게 한 편으로 몰아봤습니다.
남준이와 윤기는 중첩된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재 속도와 같이 정체되어있던 대형견의 내용.
이제서야 흘려보냅니다.
윤기가 책장에서 책을 꺼내다가 잘못 빼내어서 위에 있던 책 몇개가 우르르 쏟아져내렸으면 좋겠다.
한두 개는 머리로 받아낸 윤기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정수리를 한 번 문지른 뒤
쭈그려 앉아 떨어진 얇은 책과 노트 등을 주섬주섬 챙겨들었으면.
윤기의 손 끝에 여러 얄팍한 종잇장이 모여들고, 또 모여들어서 두터운 한 뭉치를 만들어내었으면.
그리고 그 종이들 중 하나가 삐뚤게 튀어나와 윤기의 손 끝을 따끔하게 꾹 눌렀으면 좋겠다.
안 깼나?
소파에 길게 누운 채 쿠션에 오른쪽 귀가 눌린 채로 자고 있는 남준이를 힐끗 본 윤기가
다행스럽게 깨지 않은 것을 보고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면.
그리고 잠시 남준이를 내려보다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에어컨 온도를 높이고, 창밖을 바라보면서 꽤나 높아진 하늘을 올려봤으면.
쨍하지만 않은,
한 발자국 멀어진 햇빛이 윤기의 몸을 천천히 내리쬐고 있었으면 좋겠다.
윤기가 시간을 확인한 뒤 부엌으로 걸어가면서 조금 크게 남준이를 불렀으면 좋겠다.
준아.
남준아.
일어나.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잖아.
아직 날이 밝은 바깥을 고개를 돌려 바라본 윤기가 냉장고 문을 열면서 연신 남준이를 불렀으면.
다만 그 목소리에 남준이는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준아. 준아? 강아지. 멍멍아.
입에 익어버린 여러 호칭을 부르면서 남준이를 부르고, 또 불러도 진작에 일어났을 남준이는 여전히 깨지 않았으면.
얼마나 깊게 잠든거야. 요즘따라 잘 못 일어나네.
윤기가 그제서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냉장고 문을 닫고 남준이에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남준이의 앞에 서서
손을 뻗어 어깨를 그러쥐고
천천히 흔들었으면 좋겠다.
준아. 일어나.
몇 번 흔들자마자 금방 깨어나는 남준이를 보고 윤기는 또 고개를 갸웃거렸으면.
그리고 남준이가 멍하니 윤기를 보고 있을 때 윤기는 다시 남준이를 부르고,
미묘하게 변하는 남준이의 표정을 빤히 바라봤으면.
아….
왜 그래, 너.
그냥. 멍해서. 나 불렀어?
요즘 피곤한 일이라도 있어? 더워서 그래? 왜 이렇게 잘 못 일어나.
그러게. 왜 그럴까.
멋쩍게 웃는 남준이를 보던 윤기가 인상을 살풋 찡그렸으면 좋겠다.
어디 아파?
음, 아닐걸.
남준이가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 눌린 머리를 손으로 헝클였으면 좋겠다.
여름을 맞이해 짧게 잘랐던 머리가 푸스스 손 끝에서 흐트러졌으면.
윤기 너는 가만히 남준이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 남준이의 볼을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아프지, 너.
아프지는 않은데.
그럼 뭔데.
….
준아.
나 아프지 않아, 주인아.
네 거짓말. 나한테 안 통해.
윤기의 단호한 얼굴에 걱정까지 물들이는 것을 본 남준이가 잠시 시선을 천장으로 올렸다가,
입술을 벙긋거렸다가,
결국 옅은 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다.
그제서야 잠긴 목소리가 진실을 담은 채 윤기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
노화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딱히 병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늙어서 그러는거죠.
아마 더 시간이 지나면 오른쪽 귀도 안 들릴 가능성이 큽니다.
시력도, 점점 떨어질 거고요.
주인분도 이제 아이의 상태에 맞춰서 다시 훈련을 시켜주시고,
당황하지 않도록
불안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셔야해요.
윤기는 지금 이게 다 무슨 소리일까 싶어서 멀뚱히 현실성 없게 보이는 수의사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수의사의 목소리가 닿아왔다가 온전한 모양의 띄우기도 전에 바스라져서 그 형태를 알 수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끝난 것을 안 몸이 일어나서,
남준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으면.
잠시 아무 말 없이,
그저 손 끝이 희게 질릴 정도로 목줄을 쥔 채로 남준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너의 왼쪽 귀가 멀어버렸다고 한다.
나중에는 오른쪽 귀가 멀어버릴 것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눈이라고 한다.
내 목소리를 담을 때마다 쫑긋거리던 그 귀가 언제부터 내 목소리를 담지도 못 한 채,
그렇게,
언제부터.
왜 말을 안 했어.
여러 말이 울컥 솟아올라 윤기의 목구멍을 뜨겁게 달구며 발버둥쳤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하고
슬금슬금 사람의 모습으로 된 남준이가
미안하다는 듯이 웃으며 먼저 손을 뻗어 거실 한복판에 서있는 윤기의 두 손을 잡았으면.
윤기의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돌리고,
그 위에 자신의 손을 내렸으면.
미안해.
남준이의 말에 윤기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눈을 떴으면 좋겠다.
남준이를 올곧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다음에,
또 이러면 절대 가만히 안 있을거야.
너 오늘도 내가 눈치 못 채고 가만히 있었으면 말 안했을거잖아.
그러지 마, 준아.
나에게
너를 숨기지 마. 제발. 어떤 거라도 좋으니까 숨기지 마.
자신의 두 손 위에 올려진 남준이의 손을 마주잡은 윤기가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가다듬은 채로 남준이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떨리는 목소리에 못지 않은 떨리는 숨을 뱉어낸 뒤에
남준이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으면 좋겠다.
넌, 괜찮아?
응….
네가 원한다면 내가 지금 귀머거리가 될 게. 눈도 감고 있을게.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게.
….
괜찮아, 준아?
윤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준이가 윤기의 허리를 감싸 안았으면 좋겠다.
고개를 숙여 윤기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자신의 몸을 기대왔으면.
윤기는 자신에게 기대어오는 큰 몸,
어쩌면 그것보다 더 큰 마음을 살짝 휘청거리며 겨우 받아내었으면 좋겠다.
사실 무서워.
주인이 만들어준 노래를 더이상 듣지 못하게 될까봐,
주인의 목소리를 한쪽이라도나마 겨우 담지도 못하게 될까봐,
더 나중에
주인을 아예 느끼지 못할까봐.
더 더 나중에는
홀로 추하게 늙어가며 주인에게 큰 상처를 안겨줄까봐.
나를 보는 주인의 눈에 상처만 가득하게 될까봐.
나 너무 무서워.
윤기야.
그저 아무 말도 못한 채, 윤기 너는 남준이를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으면 좋겠다.
무더웠던 여름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조금씩 찬바람이 들어와 닫아버린 창문 앞 풍경이 더이상 울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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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예쁜 글씨와 귀여운 그림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트. |
[암호닉] 확인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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