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비타님, 리로님 감사합니다.
김성규는 여우가 아니다 08
W. 여우
우현은 동우가 가고 난 자리를 치웠다. 기껏해야 맥주 한 병과 마른 안주 뿐이었지만, 공허한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우현은 알 길이 없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집에서 말을 한 지도 꽤 됐던 것 같았다. 아-아. 우현의 목소리가 텅 빈 거실을 빙빙 돌아다녔다. 우현은 천천히 안방으로 발을 옮겼다. 옷을 갈아입는 와중에도 미칠 것 같은 정적이 우현을 괴롭혔다. 혼자 눕기에 너무 큰 침대도 짜증났다. 우현은 괜히 혼자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 침대가 이렇게 컸었던가……. 우현은 몇 번 목을 가다듬는가 싶더니 천장을 향해 통통 말을 이었다. 웅웅대는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아아-, 이게 내 목소리인가……. 남우현, 너 뭐하냐……. 너 김성규 좋아하잖아. 아니야?"
천장은 대답이 없었다. 에이씨……, 답도 없네. 우현은 중얼중얼 욕설을 읊었다. 이럴 때 꿈 속에 자신과 대화라도 하면 좋으련만. 지독히도 잠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우현은 이불을 안았다가, 다시 풀었다가를 반복하다가, 지쳐 곧게 뻗어버렸다. 아, 정말 나 뭐하냐-. 우현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 한 순간, 지나치는 권태기일까……. 우현은 베개 밑에 두었던 휴대폰 화면을 켰다. 통화목록을 열어보자, 익숙한 번호들이 부재중으로 찍혀있었다. 본가, 그리고 엄마……. 우현의 눈쌀이 보기 싫게 찡그려졌다. 도대체 언제쯤 결혼 소식을 들고 올 것이냐며 타박하는 전화일텐데……. 성규랑 연애를 하면서도 그렇게 달달 볶이는데, 아마 성규랑 헤어진 것을 알면 노발대발하실 것이다. 우현은 당장 선부터 보라며 길길이 날뛰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진짜……. 남우현 너 왜 그러냐, 멍청하게……."
* * * * *
성규는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도 두통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아으……, 목 말라……. 성규는 습관적으로 시각을 확인했다. 새벽 4시네……. 성규는 타오르는 목에 물한잔을 마시려다가, 차마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한 몸을 느끼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천천히 눈을 감자, 어지러운 머릿속이 천천히 정리되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성규야……. 너 어떡하냐…….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렇게 비참했던 적이 있었던가. 성규는 또 혼자만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억울하고 서러워졌다. 왜 나만 이렇게 아파……, 왜, 나만…….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냥 싸우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우현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큰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심과 흥분이 고조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별별 상상까지 다 하고 말았던거라고. 지금이라도 우현에게 찾아가 사과할까-. 하지만 성규는 이내 다시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러다 성규의 머릿속에 누군가 차올랐다. 집에서 우현과의 결혼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였다. 도대체 언제쯤 늙은 에미에게 국수 먹여줄 날이 오냐며 타박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우현과 처음 교제한다고 했을 때에도 아무런 말이 없으시던 어머니셨다. 밤새 성규몰래 울 지언정, 겉으로 티 한 번 안내시던 어머니였는데……. 성규는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 덜덜 가슴을 떨었다.
"……진짜 내가 우리 엄마때문에 못 살아……."
* * * * *
우음, 밥 맛있다……. 동우는 성규가 차려놓고 나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분명 아침을 위해 차려놓은 식탁이었기에 이미 식은 지 오래였지만, 오랜만에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동우로서는, 맛있는 한 끼임에 틀림이 없었다. 동우는 김치찌개에 퐁당 빠져있는 고기를 건져먹었다. 그래도 아직 밥에는 온기가 약간 남아있었다. 그렇게 아프다더니 빨리도 출근했네……. 동우는 중얼중얼 거리며 음식을 씹었다. 으흠……, 어쨌거나 너무 맛있다. 동우가 음식을 먹는 모습이 무척이나 복스러웠다. 동우는 굳은 달걀후라이를 음미했다. 한참의 식사를 끝낸 동우가 싱크대에 그릇을 담그었다. 이내, 흥얼흥얼 거리는 노랫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아, 기분좋다- 기분좋아……. 동우는 샤워까지 끝낸 몸으로 머리를 탈탈 털었다. 아직 물기가 배어있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특별히 약속이 있는 날도 아니었고, 일도 시작하려면 조금 시간이 남아있었다. 오늘 같은 날에 데이트를 하는 건데…….
[딩동-.]
"어, 누구세요-."
"난데, 문 좀 열어줘-."
동우가 낯익은 목소리에 문을 열었다. 현관문이 탈탈 거리며 열리자 그 뒤로 성열이 나타났다. 하이, 마이 프렌드? 익숙한 한국어발음에 동우가 깔깔댔다. 헐, 이성열 발음봐-, 깔깔. 성열이 인상을 찌푸리며 동우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외국물 좀 먹었다고 무시하냐-?. 동우는 성열의 짜증에도 그저 웃으며 쟁반에 과자를 담아왔다. 성열은 당연하다는 듯이 쇼파에 앉아 동우가 전해주는 과자를 받아들었다. 맨날 과자만 먹지?. 동우는 성열의 핀잔에도 생글대며 과자를 집어먹었다. 동우는 예상외로 달고 오지 않은 명수의 출처를 물었다. 뭐야-, 김명수는? 성열은 집어먹던 과자를 멈추고, 리모콘을 찾기 시작했다.
"빨리도 찾네, 걔 오늘 광고촬영있어. 아, 그나저나 나 왜 부른 거야?"
동우가 성열에게 리모컨을 찾아 건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열은 대체 자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며 추궁하기 시작했고, 동우는 난감하다는 듯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아, 대체 왜 불렀냐니까?. 동우는 큼큼- 몇 번 목을 가다듬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어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누가 들으면 안 되는 거야? 성열은 쟁반 끝에 놓인 오렌지주스를 들이켰다. 동우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어, 아니 그게……, 남우현이 바람났어……. ……컥-, 크켁켁. 성열이 먹던 오렌지주스를 내뿜었다. 헐, 말도 안돼- 무슨 바람이야……. 동우는 고개를 숙였다. 진짜래도……. 아, 우…우선 기다려봐. 성열은 동우가 건네 준 화장지를 받아 거실 바닥에 뿌려진 오렌지주스를 닦아내고는 쓰레기통에 젖은 화장지를 버렸다. 성열은 재빨리 쇼파에 다시 달려와서는 동우를 바라보았다. 동우는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성열을 바라봤다. 정말이야? 너 진짜 이런 걸로 거짓말 하면 벌 받아……. 동우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결코 거짓이 아니라며 단언했다. 성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와, 남우현 그렇게 안 봤는데 김명수보다 쓰레기네."
"……성규를 이제 안 좋아하는 것 같대……."
"그래서 나보고 뭐 어떡하라는 거야……."
"혹시 성규한테 소개시켜줄 만한 사람 없을까? 아니, 꼭 소개팅이 아니어도 되니까. 고민이라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우리 있잖아."
"……알잖아, 성규 자존심 센 거……, 우리한테 그 속을 다 말하고 싶겠어? 그냥 스쳐지나갈 인물이라도 이렇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해……."
성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김성규 성격에 제 속내까지 다 털어놓으며 질질 짠다니, 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성열은 잠깐 사색에 잠겼다. 누가 있을까, 남자와 남자의 연애에도 놀라지 않고,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 성열은 자신의 주위를 돌던 게이 모델들을 생각해보았다. 어, 누가 있더라……. 하지만 다들 입이 그리 무겁지 않은지라 오히려 걱정만 될 뿐이었다. 대체 장동우는 내 어딜 봐서 남자를 소개시켜달라는 거야……. 성열은 잔뜩 미간을 구겼다. 명수에게 시달려 친하던 동료들까지도 거리를 두게 된 지 오래였다. 덕분에 성열에게 오래된 애인이 있다는 것 까지 들키며. 성열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주변에 성규를 소개시켜줄만한 위인은 없었다. 솔직히 터놓고 말하자면, 저렇게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타입을 달래고 어르어 연애할 사람이 있는 것조차 신기할 따름이었다. 성열은 결국 자신을 향해 구원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동우에게 입을 떼었다.
"……크흠, 없어."
"……정말, 정말 없어? 거짓말 아니고?"
"아니래도."
동우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며 성열을 닦달했다. 성열은 마지못해 다시 생각하는 척 하며 눈을 감았다. 아씨, 뭐라고 하냐- 진짜 없는데……. 성열이 다시 없다며 입을 떼려는 순간, 성열의 뇌리를 스치고 간 인물이 있었다. 아……, 이성종……. 성열은 자신의 동생을 떠올렸다. 자신과 함께 모델계에서 활동한 덕분에 게이에 대해서는 융통성있게 생각해줄 것이고, 워낙에 남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스타일이기에, 그렇게 특별히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성열은 기쁜 표정으로 동우를 쳐다보았다. 잔뜩 긴장한 눈빛을 한 동우는 이내 표정을 풀며, 성열을 바라보았다.
"이성종 있어."
"어?"
"내 동생, 이성종."
* * * * *
"동우야, 저녁 먹자."
성규의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동우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설렁설렁 걸어오는 가 싶더니, 끄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식탁의자에 앉았다. 성규는 왜 이리 힘이 없냐며 타박을 하면서 수저를 들었다. 아, 말할까……. 이리저리 타이밍을 보고 있던 동우가 드디어 입을 떼었다. 성규야, 너 소개 한 번 받아볼래? 성규가 국을 한 입 떠 먹나 싶다가 사레가 걸린 듯 콜록대었다. 콜록, 콜록- 켁, 뭐… 크엑, 뭐라고? 성규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장난치지마……. 동우는 거짓이 아니라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왔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 정말로 소개한 번 받아봐. 진지한 동우의 말투에 성규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누군데……. 성규의 입이 떨어지자 동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당연히 화를 내며 내칠 줄 알았건만, 예상외로 성규의 태도가 침착했기 때문이었다. 어, 정말 받는거야? 동우는 오히려 자신의 질문에 되물어보기 까지 했다. 성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새 시작해야지."
"정말? 정말이지?"
"……뭐, 너가 소개시켜준 거니까 믿을 만 하겠지, 뭐."
"……아, 그건……."
"뭐야, 너가 소개시켜주는 거 아니야?"
"……이성열인데……."
성규가 코끝을 찡긋거렸다. 뭐야- 이성열을 어떻게 믿어. 성규는 성열을 믿을 수 없다며 틱틱댔다. 동우는 그래도 자신이 보장할 수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 성규는 말없이 밥을 한 번 떠먹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우는 밝게 웃으며 거실로 달려나가 휴대폰을 들고 왔다. 성규야, 번호 줄게-. 동우의 해맑은 목소리에 성규도 큭큭대었다. 정말- 장동우 너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동우는 성규의 말이 들리는 지, 들리지 않는지 그저 행복에 겨워 성규에게 번호를 불러주었다.
"성규야, 그게 번호가 010에……."
"알았어, 알았어- 밥 다 먹고 얘기하자. 알겠지? 장동우- 빨리 밥 다 먹어야 번호 받을꺼야."
* * * * *
*여우 사담*
안녕하세요, 여우에요! 그대들 하하, 제가 많이 늦었죠, 우선 사과의 말씀부터 올릴게여.
엉엉- 오늘은 교육강의가 있어서 듣는 날인데, 너무 피곤해서 한 교시를 도망치려고 했어여. 사실은 그대들이 보고 싶엇지여.
교육강의는 옆 남고에서 듣는데 빠져나오는 순간, 그 골목 어귀를 돌면 나오는 큰 길에 제가 다니는 독서실이 있찌여.
하하하하핳, 근데 그게 딱 하필 저희 여고 아이들의 야자가 끝나는 시간과 겹친 거에요!!!! 하하핳, 우연이져?!!!!!!
는 무슨, 그래서 애들이 그대로 끌고 독서실로 보냄. ㅋㅋㅋㅋㅋ 하필이면 독서실 다니는 애들이어서, 흡흡- 뭐 어떻게 할 것도 없이 직행했어여.
세 명이서 저를 질질 끌고 제 자리에 앉혀주고, 부모님께 가는 문자 암호도 대신 눌러주드라구여, 깔깔깔깔 못된 것들.
그래서 공부를 열심~!!! 은 아니고, 애들이 불러서 나가서 한참 얘기하다 들어왔어여, 죄송해여.
사실 8화도 어제 일찍 잠드는 바람에 못 쓰고 잠들어서, 오늘 학교에서 썻다는..ㅋㅋㅋㅋㅋㅋㅋ핰핰하ㅏㅎ카핰하
ㅋㅋㅋ다행히 특기적성시간에 자율하는 사람이 저까지 친한 셋밖에 없어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먹고, 잘 수 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하핳, 그대들 어쨋뜬 죄송해요, ㅠㅠㅠ
그래서, 대신 오늘은 될 수 있으면 9화 10화 모두 가져올게여, 그대들 사랑해여 뾰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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