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비타님, 리로님 감사합니다.
김성규는 여우가 아니다 05
W.여우
며칠 째 동우의 곁을 맴도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탁탁- 거리는 타자소리, 성규가 만들어 낸 소리……. 동우는 쇼파에 기대어 성규의 타자소리를 가만가만 들어보았다. 타닥- 탁. 동우는 성규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아무래도 맡은 일이 많다고 하더니 사실인 것 같았다. 성규는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한참이나 성규를 바라보던 동우가 결국 입을 열었다. 언제 집에 들어갈꺼야……. 축 처진 목소리가 동우답지 않았다. ……안 들어갈꺼야. 성규는 한참이나 정적을 유지하는가 싶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내 멈추어있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키보드 위를 움직이는 손이 하늘하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바빠서, 대답도 시원찮냐. 동우의 질문에도 성규는 그저 묵묵히 일을 할 뿐이었다. 동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냉장고로 가 시원한 맥주 두 캔을 가져왔다. 칙-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올라왔다. 동우는 이내 그것을 성규에게 전해주었다.
"쉬엄쉬엄 좀 하시지, 일은 스트레스 풀라고 있는 게 아니거든-."
"바빠,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원고나 마저 쓰는 게 낫잖아."
보고 재밌으라고 하는 방송인데-, 그렇게 짜증나서야 어디 시청자들이 재미있겠어?-. 성규는 동우의 말에 정곡이 찔린 듯 인상을 찌푸렸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탄산이 시큼했다. 이래서 맥주가 싫어-. 성규는 다시 한 모금 맥주를 들이켰다. 차라리 소주 댓병을 가져다 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성규는 위로 아닌 위로라며 농담을 건넸다. 동우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과자를 한 입 물었다. 바사삭- 하는 소리가 성규의 귓가에까지 울렸다. 술안주로 과자 먹는 게 제일 처량해-. 성규의 말에 동우의 인상이 팍- 써졌다. 맛있거든?-, 태클이야- 태클이. 성규는 그런 동우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담아주었다. 동우는 성규의 노트북 화면을 힐끔 바라보았다. 근데- 지금 뭐하는 거야? 동우를 쳐다보던 성규가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창 작업하고 있는 대본이었다. 인기스타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프로젝트라는데-, 봄 개편에 쓰일 프로그램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한 눈빛으로 성규를 바라보았다.
"이거 나 시켜줘, 나, 나, 나, 동우, 동우- 동우."
"글쎄- 너가 조금만 더 평범했더라면 고려해봤을지도 모르겠다-."
동우는 뾰루퉁히 입술을 내밀었다. 성규는 그런 동우가 귀엽다는 듯이 입술을 콕 찝었다. 허, 어떻게 이런 놈이 세계적인 광고쟁이가 됐냐……. 성규의 말에 동우는 길길이 날뛰었다. 크리에이티브디렉터야-!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성규는 결국 알았다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동우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해주었다. 바라보는 성규의 눈빛이 사랑스럽다는 표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는 누구에게나 애교로 사랑을 받던 동우였다. 특히, 성규에게서는 더욱이-, 물론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성규는 동우의 볼을 콕콕 찌르며 생긋 웃어주었다. 근데, 너말고 명수나 성열이가 하는 게 훨씬 시청률은 잘 나올껄?-. 진심어린 말투에 동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성규는 에휴-, 하고 한숨을 쉬고는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이제 일 안 할 거야……? 동우의 질문에 성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겹잖아-, 일하는 거……. 성규는 기지개를 켜고는 동우의 집안을 휙 둘러보았다. 한 눈에 다 담기도 어려운 집안은 청소하려면 한숨부터 나올 것 같았다.
"도대체 몇 평이냐."
"70평……가까이 될 걸 아마?"
"어흐, 혼자 뭘 살겠다고……. 이 비싼 청담동 빌딩은 얼마나 들었어?"
"평당 2800잡고, 거의 260억? 90억? 뭐 혼자사려고 샀나, 밑에 다 기업들 세주고, 장사치르는 거지……."
"우리 동우가 돈이 많나보네? 오, 센데?"
"대신 나는 꾸준하지가 않잖아-. 우현이는 꾸준히 벌어다 주고……."
성규는 동우의 입에서 나오는 우현이라는 단어에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동우는 성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 아파트도 거의 60억대일껄……. 성규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하마터면 마시던 맥주가 사레에 들릴 뻔 했다. 아 맞다, 우현이네 부모님께서 해 준 아파트였지……. 컥컥-. 순간 성규의 입에서 커다란 기침이 나왔다. 결국 사레에 들고 만 것이었다. 일개 서민인 자신이 대기업 임원에게 그 비싼 아파트를 분할해 달라고 한 것일 터이니……, 성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성규는 고개를 숙였다. 마음 한 구석이 편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 구석은 불편하고 괴로웠다. 동우는 성규를 보다가 한숨을 뱉어냈다. 어쩜 저렇게 사람이 융통성없이 고지식해빠졌냐……. 하지만 역시나 성규는 대답이 없었다. 어쩌면 동우와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피하려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우는 답답하고 속상했다. ……그러니까 바람을 피웠지, 멍청아…….
"뭐……?"
"나야, 어차피 섹스파트너로 만난 사람인데다가, 그 사람은 원래 이성애자였다고. 그런데 넌 15년동안 뭘 한거야."
"난 남우현 보호자……."
"너가 왜 보호자야, 연인이지. 너가 당연한 사람이 된 것 같다며……, 근데 그 이전에 너가 당연한 사람이 되버린 건 아니야?"
"……."
"아프면 아프다, 괴로우면 괴롭다-,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 속상했다. 한 번이라도 대놓고 티내본 적 있냐고. 우현이가 처음부터 안 묻고, 안 궁금해했겠어? 근데 맨날 너는, 아니야-, 괜찮아. 이 말 뿐이니까 우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속상했겠어. 자기는 하루종일 있었던 이야기 다 말하고, 비밀 같은 거 하나도 숨기지 않는데, 너는 비밀은 커녕- 네 감정조차 제대로 말해주지 못하고 있잖아."
성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동우의 말에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반박할 수 없었다. 너무 정확해서-,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서. 툭툭-. 성규의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렁그렁거리던 눈망울은 이내 건조해졌지만, 다시 곧 차올랐다. 성규는 그 동안 왜 이렇게 혼자 어른인 척을 했던 걸까. 하지만 결국 김성규는 김성규였다. 성규는 잘 정돈했던 동우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 피운 게 용납 될 수는 없어……, 먼저 잘게. 성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탄산이 다 빠진 보리차 맛이 났다. 우현이 빠진 저 같았다. 성규는 어둑한 방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토할 것 같은 매스꺼움이 성규를 괴롭혔다. 성규는 침대 맡 협탁에 놓여진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홀드버튼을 누르자 눈부시게 밝혀진 액정은 아무것도 표시하고 있지 않았다. 그 흔한 문자 한통-, 우현은 그것조차 용납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가 보다……. 그래, 어쩌면…… 나 스스로 우현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걸지도 몰라……. 성규는 휴대폰 홀드를 눌렀다. 까만 액정이 기분나쁘게 펼쳐졌다. 성규의 세상이 일렁거렸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이 성규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까만액정에도 성규가 보였다. 톡톡-, 떨어지는 눈물이 성규의 액정을 타고 흘렀다. 성규는 입밖으로 새어나올 것 같은 소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성규는 입술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이 작은 울음도 동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성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밀려오는 잠 속에서라도 우현이 보고 싶었다.
* * * * *
동우는 성규가 들어간 방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아, 나도 이제 자야겠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동우는 시각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몇 달 한국에 있으면 또 다시 외국출장이 잡혀있는 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동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 두 캔을 집었다. 부엌으로 가 싱크대에 콸콸 들이붓는 동안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개수대로 흘러들어가는 모양새가 예쁘지 않았다. 하얀 거품을 몽글몽글 일으키는 모습이……. 동우는 생각했다. 이 적은 술이 바다로 흘러들어갈 때, 정화할 물은 얼마나 필요할까……, 다친 성규마음을 치료하려면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할까. 괜히 동우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동우는 머리를 짚으며 부엌불을 껐다. 아, 이놈의 야맹증……. 이럴 때면 이렇게 큰 집이 별로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동우는 앞을 짚어가며 침실로 들어섰다. 활짝 문을 여는 순간, 거실테이블 위에 놓은 휴대폰 화면이 반짝거렸다.
[지잉-.]
동우의 시선이 분산되었다. 동우는 천천히 휴대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누구지……. 동우는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환한 화면으로 환한 번호가 떠올랐다. 동우는 은근한 감이 왔다. 아마, 그는 호원인 듯 했다. 데이터용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엄청나게 길게 보냈을 것이다. 동우는 확인버튼을 눌렀다. 이 문자 한 통 보내려고 또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동우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안절부절했을 호원을 생각하니 큭큭-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어린 게 귀엽단 말이지?-. 동우는 곧이어 뜬 메세지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안녕하세요-, 라는 정중한 표현으로 시작한 메세지는 동우의 스마일신경을 자꾸만 건드렸다. 결국, 동우의 입에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저 카페에서 번호를 가져간 이호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벌써 번호를 받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연락을 차마 드리지 못했습니다. 절대- 동우님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요, 제가 번호를 받았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단지, 그냥 너무 떨려서 자꾸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요, 아- 내일 시간 혹시 되시나요.]
크하하하-. 동우가 한참을 크게 웃다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다름이 아니라니……, 고등학교 안내장 이후로, 이렇게 정중한 표현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저렇게 일일이 변명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큭큭, 동우는 읽다보니 동우님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동우님……?. 동우는 호원이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애틋해보였다. 내일 시간 있냐는 말을 저렇게 돌려서 말한 단 말이야? 하하-. 동우는 발끝부터 올라오는 간지러움에 몸을 떨었다. 이렇게 떨리는 연애도 오랜만이었다. 동우는 무어라 답장을 해야할 지 살짝 고민을 하다가, 도도한 면으로 밀고 가는 것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토톡-. 자판을 누르는 동우의 손가락이 가벼웠다. 저녁에 시간 비네요-. 동우는 꼭 자신이 바쁜 사람인 것 처럼 굴었다. 좀 지난 후에 보낸 답장인데도, 호원으로부터는 칼같은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저, 그럼 내일 저녁에 뵈어요, 꼭- 꼭 저 만나주셔야 해요!]
동우는 다시 웃음을 삼켰다. 하- 정말 널 어떻게 해야하니. 동우는 답장할 글들을 생각하다 그냥 홀드버튼을 눌러버렸다. 으-, 속 한 번 썩혀봐라, 아가야……. 동우는 천천히 방으로 발을 옮겼다. 순간,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하지 뭐……. 방으로 향하는 동우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룰루랄라-, 이렇게만 됐으면 좋겠다. 동우의 얼굴에 실실 웃음이 번졌다. 침대에 누워서도 동우의 가슴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아니, 가라앉을 수 없었다. 답장이 오지 않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애타게 떨려할 호원이 표정이 생각나서, 자꾸만 기분이 좋아서.
* * * * *
호원은 자리에 누워서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내일 수업은 어떻게 듣지……. 답이 오지 않는 휴대폰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꿎은 기계를 보챈다고 답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흐음-, 이 기분은 뭘까. 떨리는 이 느낌이 싫지 않았다. 무언가 두근대고, 떨리고……. 숨을 쉬어도 자꾸만 공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있는 건가, 아니면 죽은 건가……. 흐흐흐-. 호원의 입속에서 해괴망측한 웃음소리가 나왔다. 호원은 휴대폰을 꼭 끌어안을 채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 건장한 25살 남성이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가 싶을 정도로. 호원은 내일 만날 동우의 생각에 눈이 또렷해졌다.
"아, 진짜 큰일났다……. 너무 좋다……."
* * * * *
*여우 사담*
안녕하세요, 그대들! 여우입니다.
김성규는 여우가 아니다를 사랑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김여다는 앞으로 매일매일 연재될 가능성이 크구요.
제가 아직 고등학생인지라 아마 늦게 올라올 것 같습니다.
대신 제가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관계로 집에 6시 55분 에서 7시 사이에 도착하는 바,
7시를 전후로 해서 7시 30분 사이에 업뎃할 생각이랍니다!
만약 30분이 넘어도 올라오지 않으면 '아, 여우가 오늘 꼬리를 떼먹어서 꼬리 챙기러 갔구나-.' 라던지..
'이 나쁜 지지배-, 내일 올릴 속셈인가?'라고 생각하시면서 싸닥션 콜라보레이션을 준비해주시면 된답니다..핰핰
ㅋㅋㅋㅋㅋㅋ사랑해여 그럼 여러분 저는 독서실로 뿅!
+) 아, 그리고 조회수에 비하여 덧글이 적군요, 엉엉.
저는 그대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요, 사랑은 덧글로 가능한 거 아시져?♥
아 오그리 터지네여, 그대들 그럼 제발 댓글 부탁드려요.
그거 몇 초 지난다고 지구가 종말하고, 손가락이 부러지는 거 아니잖아여 엉엉
사랑해요 그대들, 그럼 다음화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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