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아니된다니까. 더이상 그 짓은 안해요."
"너 자꾸 이러기야? 너를 찾는 사람이 너무 많단 말이야. 한번만 도와줘."
징징거리며 그의 소매를 쥐고 놓지 않는 여인네의 쇠고집에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서 사내와 같은 매서운 힘이 나오는지 당장이라도 울듯이 고집스럽게 붙잡는 통에 그가 다시 주막 평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한 값을 쳐준다며 그의 마음을 흔드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손가락을 걸어 기어이 약속을 받아내고는 활짝 웃는다.
만날 시간을 그의 귀에 조곤조곤 속삭이고는 늦지 않게 오라고 몇번이고 당부를 하고서야 여인이 주막을 나섰다.
여인이 떠나고서야 힘없이 몸을 일으킨 그는 인사를 건네는 주모에게 힘없이 웃어보이고는 터덜터덜 길을 나섰다.
겨울이 오려는지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껴입은 솜옷을 추스리며 장터 길로 걸음을 내딛었다.
바래진 옷을 얼굴까지 끌어올려 몸을 잔뜩 웅크린 모습에도 지나가는 여인네들의 시선이 한번쯤 그에게 머물다 간다.
훤하게 드러난 이마에 가지런한 눈썹.
그 아래로 단정하게 자리 잡은 동그란 눈매가 지나가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얗고 보드라운 피부가 매서운 바람에 터져 붉어진 뺨마저도 연지를 바른듯 고운 빛을 내는 그의 얼굴은
커다란 키에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네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시선이 신경쓰이지도 않은지 묵묵히 걸음만 옮기던 그가 다시금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잰걸음으로 장터 길을 벗어났다.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숲길을 걷는 그의 짚신 아래에 바짝 마른 나뭇가지들이 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몸을 잔뜩 움츠린채 종종 걸음으로 어두운 숲길을 걷는 그의 모습이 한 두번 온 곳이 아닌 듯 정확하게 약속 장소를 짚어나가고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에 차오르는 숨을 크게 고르고는 약속된 시간이 늦을까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보오. 나 왔소."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허름한 목채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누가 들을새라 조용히 누군가를 불렀다.
잠시후 인기척과 함께 낮에 주막에서 만났던 여인이 반가운 기색을 비치며 그에게 손짓을 했다.
불빛이 비치는 방대신 여인을 따라 집 뒤로 걸음을 옮긴 그는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헛간으로 급히 들어섰다.
"태환. 늦지 않게 와줘서 고맙소~ 이제 준비를 해볼까?"
한기가 드는 헛간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벗겨내는 여인의 손동작이 부산스럽다.
별다른 표정없이 그녀가 이끄는대로 몸을 내맡긴 그는 여인이 내어주는 옥빛 저고리와 꽃분홍 치마를 받아들고
익숙한 솜씨로 하나 하나 입어 나갔다.
여인보다 커다란 키 때문에 치맛단이 짧아 발목이 드러났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자네 온다는 소리에 미리 약속한 손님들이 많다우~ 오늘도 잘 부탁해. 심심치않게 챙겨줄터이니."
싱글벙글 웃으며 그의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는 여인의 흥이 난 목소리에 그도 마주 웃어주고는 여인의 손길에
두 눈을 감고 얌전히 얼굴을 맡겼다.
겉에서 보면 흔한 목채집이지만 비밀리에 사람들이 찾는 오늘 같은 밤이면 이곳은 화려한 장사집으로 변했다.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의 구조를 바꿔 여러칸으로 나뉜 실내에는 양옆이 보이지 않는 밀실이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서 여인과 외로운 남정네들이 한쌍씩 짝을 이뤄 길고 긴 밤 술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대화방'이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남자라는 신분을 잠시 감추고 '선월' 이라는 이름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기생집과는 다른 차원의 술집이었다.
몸을 팔지 않아도 되고 그저 대화 상대나 되어주는 일이다보니 힘들것도 없었다.
워낙 고운 얼굴때문에 분칠만 조금하면 그 누구 하나 그를 사내라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하체가 가려지는 탁자 덕분이라도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본 모습을 들키지 않고 일 할 수 있었다.
장터에서 가끔 주어지는 일로는 입에 풀칠하기 급급했고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그는 늘 노심초사했다.
이 일을 그만두겠다 몇번이고 마음 먹었으나...그때일 뿐 다시 그를 붙잡는 이곳 여주인때문에 쉽게 벗어날수 없었다.
아니...벗어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햐...넌 정말 곱다. 어찌 이 얼굴이 사내란 말이냐."
입술에 붉은 연지까지 찍어 바른 그의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여주인이 탄성을 금치 못했다.
짙은 속눈썹을 깜박이며 눈을 떠올린 그가 경대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는 만족한듯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늘도 모란실에 들어가면 되오?"
어느새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바뀐 그의 어투에 여주인이 실소를 터트리고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밑단이 발에 걸릴까 꽃분홍 치마를 살포시 치켜든 그가 총총 걸음으로 배정 받은 장소로 걸음을 옮기는 뒷 모습을 보며
여주인은 마냥 웃음을 짓고 서있었다.
누가보아도 혀를 내두를 만큼 아름다운 '선월' 이었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한동안은 못올거라 생각했는데..갑자기 이야기 하나가 떠올라서 왔어요ㅎㅎㅎ
기다려주신분들이 계실런지...ㅠㅠㅠㅠㅠㅠ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나 완결이 어떻게 날지 생각하지 않아서...
매끄러운 연재는 좀...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 글처럼 빨리 빨리 올리지는 못할것 같아요~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적어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기다려주실거죠? ㅎ
조선시대..쯤이 배경인데 대화체를 구체적으로 몰라서 어색할지도 몰라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ㅠㅠㅠㅠㅠ
그리고..저 시대에 저런 대화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ㅋ
그냥 제 상상속의 모습이니..함께~~~빠져주세요!
다음이야기로 다시 올께요~너무 짧아서 죄송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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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박보검한테 끌려가서 같이 러닝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