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초경이 되기 일각을 먼저 앞서 기방 앞에 도착한 그는 약속 시간에 맞춰 올 당상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곤색의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입고 기방 담벼락에 멀뚱히 서있는 그를 향해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눈길을 주자 남자는 곧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흠..하고 헛기침만 해댔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기생 팔에 끌려나오는 누군가의 소란에 문앞으로 시선을 돌리자 곱게 분칠을 한 젊은 여인네가
샐쭉 웃으며 고주망태가 된 누군가를 배웅하러 나왔다.
딱 봐도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남자가 기생의 팔을 붙들고 알아 들을 수 없는 술주정을 하고 있다.
그의 앞에 놓인 가마를 보니 양반 가문의 자제인것 같으나 인사불성이 된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쯧..하고 혀를 찼다.
겨우 겨우 가마에 남자를 태워보내고 한숨을 내 쉰 여인네가 치마자락을 매만지고 돌아서 들어가려다 이내 걸음을 멈추고는
멀뚱히 서있는 그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러더니 얼굴 가득 반색을 하며 그에게 다가오는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누구셔요~"
자신을 아는 듯 고운 얼굴에 한가득 함박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낯선 여인의 행동에 그는 흠칫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니~어찌 여기 계십니까~? 이리 들어오시지요."
그의 팔을 살며시 붙들고는 기방안으로 들이려는 여인의 행동에 잠시 망설이던 그가 천천히 여인의 손을 떼어내고는
다시 한발짝 떨어져 섰다.
"나를 아시오?"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묻는 그의 말에도 여인은 여전히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럼요~ 알고 말고요. 청나라에서 오신 사신이 아니십니까~? 젊은 나이에 그까지 당도하신것도 대단한 일인데...
인물까지 훤하시다고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어찌 모르겠습니까~?"
입을 가리고 곱게 미소를 지어 보인 여인은 실례가 되지 않게끔 그를 쭉- 훑어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듣던대로 훤하십니다~ 어찌 키도 이리 크시답니까? 초경에 당상관 어르신과 오신다 들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 어서 들어가시지요."
여전히 멀뚱히 서있는 그를 향해 양손을 앞으로 곱게 모으고 고개를 숙인 여인은 그가 걸음을 떼기만을 기다렸다.
이걸 어찌해야하나 곤란한 표정을 짓던 그는 저멀리 보이는 가마 하나에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다시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시지요."
요지부동인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여인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곤 몸을 돌려 기방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제서야 한숨을 내 쉰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이는 가마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아니. 먼저 들어가 계시지 않고 어찌 여기에 서 계십니까?"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가마에서 내리자마자 그의 앞으로 득달같이 걸어와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남자의 인사에 대답 대신 살짝 미소만 지어보이고는 기방으로 모시려는 그의 행동을 조용히 제지했다.
그러고는 흠..하고 헛기침을 내뱉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오늘은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제가 다른곳으로 모시지요."
다른곳으로 가자는 말에 남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이내 억지로 웃어보이고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인을 즐기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더만 곧 죽어도 싫다는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남자는 우길 여지가 없었다.
가마꾼에게 대략 위치를 설명해준 그는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나가 곧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희미하게 사라진 그의 뒷 모습과 기방을 번갈아 쳐다보던 남자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다시고는 가마에 올라탔다.
"아니~쑨양 사신께서는 이런 곳을 어찌 아셨소?"
산자락 끝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술집에 당도한 두 남자는 은은한 불빛이 비치는 마루 위로 올랐다.
나무가 우거져 분위기 좋은 평상이 술 한잔 마시기엔 좋았지만 날씨가 추워진 탓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방으로 몸을 들였다.
주모도 보이지 않는 내외술집은 사람도 북적거리지 않아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어찌 맘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소란스러운 곳보다 이런 곳을 좋아하는지라..."
모시려던 기방을 끝내 거부한것이 조금은 미안했던터라 쑨양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는 사과를 대신했다.
"아닙니다~ 좋습니다.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사과에 마주 고개를 숙여보인 남자는 이리저리 휙- 둘러보고는 허허..작게 웃어보였다.
잠시후, 문에 닿는 작은 손기척에 쑨양이 방문을 밀어보이자 그 틈으로 정갈한 음식과 술병이 올려진 작은 상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상을 들인 주모의 모습은 문틈으로 살짝 보였을뿐 금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모 얼굴 보기 힘든 술집이 있다 듣기는 하였으나 이리 와 볼 줄이야..."
그새를 못참고 문틈으로 잠시 비친 주모의 뒷 모습을 눈으로 쫒으며 남자는 신기하다는 듯 웃어보였다.
"받으시지요."
하얀 주병을 들어 남자에게 내보이자 그가 얼른 잔 하나를 들어 술을 받았다.
서로 한잔씩 주고 받은 두 남자는 먼길 온 갈증을 달래려 달게 술 한잔을 비워냈다.
"근데...어찌 기방을 그리 싫어하십니까? 사내라면 여인의 품을 그리는 법인데..."
몇잔을 연거푸 마신 남자가 취기가 살짝 오른듯 용기내어 궁금 했던 것을 물었다.
대나무같이 곧은 성품에 혹 호통을 치진 않을까 눈치를 보고 뱉은 말에 쑨양은 대답 대신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글쎄요... 정이 통하지 않은 여인을 품에 안아 무엇을 얻겠습니까. 그런 마음은 두고 싶지 않습니다."
대쪽같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보인 남자는 더이상 묻지 말자 생각하고는 가득 채워진 잔을 들어 입속으로 털어넣었다.
술도 달고 맛깔스런 안주에 기분이 좋아진 두 남자는 한잔 두잔을 비워내며 정세에 대해 이런 저런 논의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달 밝은 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저고리를 입고 앉은 태환은 경대에 자신을 비춰 가채를 매만지고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얀 뺨에 붉게 물든 연지가 그의 얼굴에 생기를 북돋아준다.
가지런히 놓인 눈썹을 살며시 매만지고 붉은 입술을 오물거려 촉촉하게 적신후에야 만족한 웃음을 지어 보인 그가
조용한 인기척과 함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햐~ 오늘도 선월, 그대는 이리 아름다운가!"
자주 그를 찾아오는 단골 손님의 등장에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손을 내리고 생긋- 웃어보이자 선비의 입가에 침이 흘러나올 지경이다.
선월은 자신의 모습에 홀려 넋이 나간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쯧쯧... 내가 네놈과 같은 것을 달고 있을거라 생각지도 못하겠지. 어리석은 자여.
자신의 앞에 털썩 주저앉아 급히 잔을 들이미는 그에게 곱게 술 한잔을 따라주고는 선월은 힘겨운 일이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두어시간째 술에 절어 꼬부라진 혀로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 사내를 바라보며 예의 웃음을 짓던 선월은
그마저도 지겨워져버려 그 몰래 한숨만 쉬어댔다.
어찌 술만 마시면 하나같이 인사불성이 되는지 '대화방' 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주망태들만 들끓는다.
차라리 어려운 서적을 읽고 그것에 대해 논의하는게 더 흥미로울거라 느껴지는 선월이었다.
그를 빨리 보내려 병에 담긴 술을 바닥에 놓인 그릇에 몰래 버리던 선월이 갑자기 자신의 손을 붙드는 사내의
행동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찌...얼굴도 고운데 손까지 이리 곱소? 그대는 정녕 선녀인것이오?"
낯간지러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떡 주무르듯 자신의 손을 주무르는 그의 손길에 선월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사내의 손을 힘을 주어 떼어냈다.
"어찌 이러십니까~ 신체적 접촉은 그 무엇도 아니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많이 취하신듯 한데 그만
돌아가시지요."
"집에 돌아가봐야 여편네 바가지만 긁히지... 여기서 그대와 살고 싶소."
한껏 풀린 눈으로 헛소리를 하는 그에게 살짝 웃어보이고 술에 잔뜩 취한 그를 내보내려 술병과 잔을 정리하던 선월은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란에 곧 손을 멈추었다.
새로 손님이 오셨는지 작은 실랑이가 들려오고 곧이어 선월이 있는 모란실로 여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선비님~ 많이 취하셨네 그려! 이제 가셔야지요~"
술에 취해 비틀대는 남자의 팔을 끌어 부축하던 여주인이 다급하게 누군가를 부르자 산만한 덩치의 장정 하나가
여인에게서 그를 옮겨받고 모란실을 빠져나갔다.
"선월~ 중요한 손님이 오셨소! 자네가 좀 받아야겠소~"
뭐가 그리 신나는지 싱글벙글 웃는 여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던 선월은 경대에 자신을 모습을 다시 비추어보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구길래 그리 호들갑이오? 대감이라도 오셨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만지던 선월은 그의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이는 여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피식- 하고 웃어넘겼다.
"아무리 훤칠한들 뭐하오? 나와 같은 사내인것을..."
"에이~ 그래도 메주같이 못난 사내들 보다는 낫지 않겠소? 반듯하게 생긴것이 술주정도 없을 듯 보이던데.
일단 여기로 들여보내겠소~"
여전히 신이 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 돌아나가는 여주인의 뒷 모습을 쫒다가
선월은 탁자 위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한숨만 푹- 하고 내쉬었다.
그의 속은 얼른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밖에서 들리던 소란도 사라지고 이제나저제나 들어올까 입구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선월은 모란실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단정히 앉아 그를 맞을 준비를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낮게 깔린 저음의 목소리.
그 누구도 이곳을 들어올때 저런 말을 건네는 인사는 없었건만 예를 갖춰 들어서는 그의 등장에 선월의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커다란 키에 짙은 곤색의 두루마기를 단정히 입은 사내는 인사를 끝으로 입을 꾹 다문채 그를 내려다보고만 있다.
짙은 눈썹 밑으로 깊은 눈매를 담은 그는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훤칠하게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잘빠진 몸이며 커다란 키까지..
여자 여럿 울렸겠다 싶은 외모에 어느새 입이 벌어진지도 모르고 선월의 눈이 그의 모습을 쭉- 훑어 내려간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오는 여주인의 인기척에
그제서야 서로에게서 눈을 떼고 다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왜이리 빨리 연재하고 있는건지...
지금 일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라 글을 쓸 처지가 아닌데
정신을 놓고 있네요ㅋㅋㅋ
그나저나 둘이 드디어 만났군요?
둘의 만남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맛보기로 살짝 뵈 드립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정신없이 바쁠것 같긴 한데...
미쳐서 또 다음이야기 적어올지도 몰라요ㅠㅠㅠㅠㅠㅠ
늘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