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로 그대 감사합니다.
[인피니트/다각/수사물] 제 8의 피해자 08
W. 여우
멍하니 앉아있던 성종이 어깨를 움츠렸다. 성규가 와서 일곱번째 피해자의 신원을 알아내라며 호원을 닦달하는데도, 성종은 그 곁에서 아무 말도 할 수 가 없었다. 아니, 해서는 안 됐다. 현장으로 나가보아야했지만, 나가지도 않았다. 몸이 안 좋다는 핑계였다. 성종은 지금 스스로를 자해하고 있었다. 나약한 삶의 의지로 인해, 진실규명을 위해 앞장서야 할 자신이 이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현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멍하니 몸을 떨고 있는 성종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 우현 특유의 다정한 어투였다. 성규의 눈을 피해, 사르르 녹는 음성이 성종을 울렸다. 성종은 푹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두 눈을 반짝이며 생긋 웃고 있는 그 모습에 대하여 성종은 스스로 자괴감을 느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말할 수 없는 갈등들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성종은 우현의 질문에도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겉으로는 위선적인 행동을 내보였다. 속상했다. 그러다, 성종이 벌떡 일어섰다. 몸이 안좋아 나오지 않겠다던 성열, 성열을 만나야했다. 더 이상의 여지는 없었다. 성종은 그렇게 천천히 회의실을 나가려, 제 자신을 나가려 애쓰고 있었다.
"성종씨, 어디가요?"
"……범인을 이야기하러요-."
"뭐? 이성종씨-. 성종씨! 야, 너 어디가, 임마!"
* * * * *
어느 한적한 카페, 성열과 성종이 마주했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느냐 할 것도 없이, 고요한 적막만이 그들을 감쌌다. 허탈한 이야기들-. 성종은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카운터와 가까운 쪽에 앉아있던 성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종은 자연스럽게 시럽을 외쳤다. 성열이 피식 웃으며 성종의 커피에 시럽을 넣었다. 성열이 커피를 가져오고, 뜨거운 목넘김이 성종을 괴롭혔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성종은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겉옷 안쪽에 들어 있는 증거봉투가 손에 잡혔다. 괴로운 듯 떨려오는 손이, 성종에 의해 탁자위로 올려졌다. 한껏 커피를 녹인 아메리카노가 성열의 입에 닿았다 떨어졌다. 성열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성종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 지문이 범인의 지문일까-. 성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에 성종은 고개를 떨구었다. 똑똑-, 눈물이 떨어졌다. 성열이 급하게 손을 뻗어, 봉투를 열어보았다. 똑똑히 보여져 있는, 지문-. 한숨이 흘러나왔다.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성종이 지금까지 자신들을 속이고 있었다는 느낌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이성종, 이거 뭐야?"
"……범인 지문-."
"……이걸, 왜 이제서야 갖고 오는데? 언제 얻은 거야? 대조는 해 봤어? 너,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여섯번째 피해자가 죽고 나서-. 대조 해봤어. 범인이 누군지도 알아, 만나도 봤어……."
"……뭐? 너, 미친거야?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말하지 않을……."
"……명수 형, 김명수야-."
성종의 푹 젖은 목소리가 카페 안을 울렸다. 성종을 괴롭히던, 성열의 목소리가 멈칫-, 그리고 이내 가라앉았다. 성열이 하하하-,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믿을 수 없다는 인상이 그득히 담긴 웃음소리였다. '말도 안돼-. 무슨 소리야.' 성열은 계속하여 이 말만을 반복했다. 성열은 지금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믿기 싫은 이야기들이었다. 성종이 앞에 놓여진 커피를 들어올렸다가, 이내 다시 떨어뜨렸다. 도무지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성열은 다시 진지한 눈빛으로 성종을 바라보았다. 진실이 무엇인지,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성열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진실이 타협할 수 있는 그 거리안에서-. 성열은 거짓을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내 사실은 드러났다. 주체할 수 없는 자괴감을 드러내는 성종의 눈동자가……, 성열을 울리고 말았다. 깔깔-. 평소와 다름없이 크게 웃어제끼는 성열의 웃음 위로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정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지난 밤까지도, 범인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자신의 이불을 다독여주던 명수였다. 그런 명수가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 지독하게 버릴 수 있을리가 없었다. 성열이 그렇게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성종은 그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다. 천천히 성열의 웃음이 가라앉고, 성열이 얼굴에 비친 눈물들을 닦아냈다. 다시, 평소와 같이 차갑게 식은 형사의 목소리가 드러났다.
"……이성종, 울지말고……. 어떻게…… 할 건데……? 어?"
"……모르겠어, 형-. 나, 나…… 너무 무서워."
"……장난해……? 이성종, 너 지금 장난해? 사람을 이렇게 벼랑 끝까지 몰아놓고, 사람을…… 이렇게 죽여버리고……. 어떻게 할 건데? 이제, 이제……. 김명수도 죽고, 나도 죽고-. 넌 어떻게 살건데. 이제 우리 모두 다 이렇게……, 끝나는 거네. 그래, 언제부터 내 인생이 해피엔딩이었겠어-. 다 정해져 있는거지."
"……형. 성열이 형……."
"……우선 명수 만나, 만나서……, 너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마지막으로 해-. 그 뒤로 내가 카페에 들어가서, 명수 손목에 수갑 채울게……."
"……형, 그래도 형이 어떻게 직접……."
"………내가 해. 내가, 내 손으로 직접-. 그 누구의 손도 맡기지 않을거야."
성종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울먹거리는 그의 모습처럼 여린 어깨가 덜덜 떨렸다. 성종은 그렇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없이 약하다고 생각했던 성열이 이렇게나 커 보였던 것은 처음이었다. 부모님께 쫓겨나, 서울 한 가운데에서 울었을 때도-. 명수와 결혼한다며, 조촐한 성당으로 그를 불러냈을 때에도-. 성열은 언제나 철없고, 재미있는 친 형-. 그런 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성열은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처단하고, 자신마저 파괴시키려하고 있었다. 성종은 그런 그를 말리지 못하고 있었다. 헛웃음을 넘어섰다. 이제 성종은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 날 현장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명수를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모든것이 엉켜버렸다. 성종은 스스로가 왜 이렇게 괴로워야만 하는지, 불타버린 가슴이 성열에게 옮겨진 것만 같아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옮겨진 불씨가 가라앉을리 없었다. 본래 자신의 땅인 양, 활활 타오르는 씨앗은, 성열의 표정에서 드러나듯-, 한없이 괴롭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성종은 시럽 가득, 달콤한 향을 품은 커피를 쓰게, 쓰디 쓰게 삼켜버렸다. 다 식은 커피가, 성종의 목구멍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 * * * *
진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성열이 나간 자리에는 명수가 들어와 앉아있었다. 성종과 명수만이 앉아있는 자리-. 성종은 이미 벌개진 눈을 하고서 울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 목이 메였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할까-. 명수는 이전부터 활짝 웃고 있었다. 자신의 결말을 예상하듯-. 명수는 그렇게 모든 것을 달관했다. 성종이 한참을 말이 없다가, 이내 작은 종이 하나를 꺼내었다. 정말 작고 작아서 깨알같은 글씨로 무엇을 적어낸 종이-. 성종이 들어올린 종이가 명수에게로 건네져갔다. 명수가 천천히, 받아들었다. 커다란 명수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종이가 작고, 또 작았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종이는 조심스러운 성종의 속내를 그렸다. 그 순간, 작은 종이 위로, 그리고 하얗게 질린 명수의 손바닥 위로-. 진한 핏방울이 번져갔다. 명수는 얼굴에 축축히 닿은 무언가의 느낌에, 반대편 손으로 얼굴을 닦아내었다. 진한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얼까-. 명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것-. 카페 안이 비명으로 가득찼다. 성종이 양 눈 가득 붉은 실핏줄을 터뜨리며, 코피를 흘렸다. 그리고, 입으로는 진한 핏방울들을 토해냈다. 명수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명수의 앞에서 성종이 고꾸라졌다. 그리고, 커다란 유리문 밖으로, 놀란 듯 뛰쳐들어오는 성열이 보였다.
"성종아! 이성종!"
애타게 그 이름을 불러도 성종은 말이 없었다. 감긴 성종의 눈꼬리에서는 진한 색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열이 외쳤다. 성종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지만, 성종은 답이 없었다. 아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미 카페 안은 붉은 피로 초토화가 된지 오래였다. 명수는 멍하니, 서서- 성종이 주고 간, 쪽지를 그러쥐었다. 세게, 그리고 더 세게-. 손바닥에 깊은 손톱자국이 배길 때까지 명수는 쪽지를 잡았다. 작은 종이가 손바닥에 맺힐 듯-, 명수를 괴롭혔다. 하지만, 명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마치, 그 죄를 달게 받겠다는 듯-. 성열은 이내, 성종을 잡고 오열하다가 그렇게 성종의 위로 쓰러졌다. 누군가 112에 신고한 것인지, 우루루 경찰들이 몰려왔다. 119는 성종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체를 거두었고, 성열을 앰뷸런스에 태웠다. 그리고 명수는 두 손목 가득 어둡게 가려진 것을 채우고는, 경찰차에 올라탔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남겨진 것은 지워진 삶, 독한 커피뿐이었다.
* * * * *
성열이 성규의 앞에 섰다. 얼굴 한 가득 눈물이 차오른 그 모습이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다. 무슨 연유로 저런 슬픈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 저 그득히 아려진 표정 뒤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는걸까. 성열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성규는 멍하니 시선을 잃은 성열을 바라보았다. 아무말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심찮은 위로도, 장난스런 농담도-. 지금은 해야하는 것이 아니였다. 고요한 적막감이 둘 사이를 감돌았다. 성열은 울고 있었다. 말 없이 진한 눈물들을 흩뿌리고 있었다. 성규가 손을 들어성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아픔들은 그동안의 시련들을 모두 대변하듯 멈출줄을 몰랐다. 바라보고있는 성규의 표정또한 처참히 일그러 졌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지금 성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철저하게 외면당한 성열의 비애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였다. 그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누구에게 위임 한다고 하여 끝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을 뿐더러 책임이 전가 되는 것도 아니였다. 홀로 매일 밤, 고독한 적막과 싸우는 성열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김검사님, 김……검사님, 흐읍-."
"……네, 이경사님……."
"……나는, 나는…… 흡, 나 오늘 꿈을 꿨어요-. 흐윽, 내가, ……성종이를 죽여요-. 계속, 계속……. 살아나면 다시 죽이고, 다시 죽이고-. 눈을 뜰 수 없을 때까지……, 그렇게 숨을 없애버려요. 가슴에서 떨어지는 호흡들을……흐으, 흐으으읍, 내가……, 내가 짓밟아요……아윽, 내가- 내가! 내가!, 내가! 형인 내가, 내가 죽인다구요……!"
"……성열씨, 진정해요-. 우선 진정하고, 천천히……, 천천히 가라앉혀요……."
"……나, 명수를……만날래요-. 정말, 만날래요, 만나야……, 해요-. 흡."
성규의 표정이 안타까움만으로 구겨졌다. 걱정이 담긴 눈초리였다. 하지만 성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나야한다는 뜻이었다. 만나서, 왜 그랬는지. 왜 성종을 죽였는지, 어째서 죽여야만 했는지-. 성열은 지금 모든 것을 원하고 있었다. 명수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알아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진작에 알아차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성열은 스스로를 부정하다가, 다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을 반복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버릴 정도로 사랑했던 이의 배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다바쳐 기른 동생의 죽음이었다. 오히려 이쯤 되면 성규는, 성열이 미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멍하니, 앉아있던 성규가 성열의 대답에 응했다. 밖에서 지켜보고 있겠다는 대답이었다. 성열은 그것만으로도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성열은 명수와의 마지막 대화를 시작하려했다. 마지막, 아니 어쩌면 시작이 될 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었다. 성열은 성규와 눈을 마주했다. 굳은 신념이 담긴 표정, 아니 모든 것을 포기한 눈동자-. 성규는 아리송한 그의 외관에 당황하고, 가슴아파했다. 당연한 이야기들, 하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 성규는 그 누구보다도 그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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