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관 - 이방인
출격! 애증남녀!
0 5
그의 부탁
"정국아"
커튼으로 창문을 가린 탓에 아침이 되어서도 어두침침한 정국의 방에 한줄기의 빛이 새어들어왔다. 석진이 조심스럽게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평소 먹을 거라면 죽어도 좋다고 달려들고 식사 시간 때는 절대 빠진 적이 없던 아이가 어제저녁부터 쭉 얼굴을 비추지 않자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완전히 밝아질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는 경우가 석진이 세 살고 있는 3년간 손에 꼽을 정도였던 정국이었다. 괜히 어제 잠깐 동네 좀 돌고 오라 그랬나, 낮에 잠깐 나갔다가 저녁 무릇에 돌아온 뒤로 쭉 저 상태네. 석진은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이미 일은 일어난 뒤였다.
밤새도록 정국은 뜬 눈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OO를 다치게 만들었던 그날을. 수많은 기억들 속에 남몰래 숨어있었던 그날은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투명할 정도로 선명해져갔다. 그저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잊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OO를 뿌리친 정국의 귀에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친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어지러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몸 그리고 바로 앞에 쓰러져있는 OOO. 잊은 게 아니라 피했던 것이다. 모든 시선이, 눈동자가 저들끼리 속삭이며 한 곳에 모이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도망쳤다. 무서워서 도망쳤다.
OO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속내를 깨달은 정국은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댔다.
화날만했지.
대답 없는 정국에 석진은 물이 반쯤 찰랑이는 컵을 든 채 살금살금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정국의 쌕쌕 거리는 숨소리만이 방 안에 가득 들어찬다. 석진은 큰 흔들림 없이 정국이 누워있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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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부터 밥도 안 먹고 왜 그래"
"..."
"외숙모가 걱정하시더라, 너 어제 저녁부터 얼굴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
"무슨 일인지나 좀 알려줘. 나도 너 이러는 거 처음 본다"
"... 형"
정국이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형을 부르자 석진은 어, 하며 목을 쭉 빼고 정국의 얼굴 살폈다. 정국은 밤새 제대로 된 잠을 이루지 못해 불그스름하게 충혈된 눈을 부비며 허리를 일으켰다. 양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꾹꾹 눌러 정리하던 정국은 평소답지 않게 푹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애써 괜찮은 척 석진이 건네는 물을 넘겼지만 힘없는 손이 금방이라도 툭하며 떨어질 것 같다.
빈 컵을 받아들고 제 옷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는 석진에 정국은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다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형은 만약에 형이 누굴 다치게 만들었으면 어떡할 거야?"
"너 뭐 실수했어?"
"형은 어떻게 할 거야?"
재차 질문을 하는 정국에 석진은 잠깐 입을 닫았다가 피식거리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연히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사과도 못했는데..."
"네가 나빴네. 사과를 못하는 게 어딨어, 네가 그냥 안한 거겠지"
진짜 형은 나 위로해주러 온 거야, 놀리러 온 거야. 석진의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반응에 매가리 없이 웃던 정국은 다시 쓰러지 듯이 풀썩 침대에 누웠다. 고작 두 끼 안 먹었다고 천장이 빙빙 도는 것 같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마치 사과하는 방법을 다 까먹어버린 것 같다.
텅 빈 눈동자로 천장을 응시하는 정국에 가만히 있던 석진은 깨끗하게 비워진 컵을 정국의 하얀 이마 위로 쏟았다. 토독, 차가운 물방울 몇 알이 떨어져 이마에 닿자마자 정국은 앗, 하며 눈을 있는 힘껏 꾹 찌푸렸다. 뭐 하는 거냐며 손등으로 물기를 훔쳐내자 석진이 입을 열었다.
"이러고 있는다고 누가 너 속상해하는 거 알아주냐"
"뭐?"
"다치게 만들었다며, 사과하고 책임져야지"
사과하고 책임..., 정국이 이마에 손을 올린 채 잠자코 있으니 석진은 괜스레 검지로 정국의 옆구리를 간지럽도록 찔러댔다.
"그런 건 초등학교에서 배우고 나와야지, 내가 알려줘야 하는 거면 어떡해. 정국이 다 큰 줄 알았는데 덜 컸네 덜 컸어, 아직 아가야"
"아, 이럴 거면 저리 가"
석진의 되지도 않는 장난에 말은 퉁명하게 하는 정국이었지만 배시시 새어 나온 웃음기는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밤을 새우면서까지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던 정국이었던 터라 작은 웃음에도 힘이 빠지는지 금세 지쳐버리고 말았다. 석진은 정국의 허리까지 덮여있던 이불을 완전히 걷어내버리고는 말했다.
"이제 알았으면 나와서 밥 좀 먹으세요. 전정국 어린이"
"알았다니까. 조금만 더 누워있다가"
빈 컵을 정국의 방을 빠져나가던 석진은 문틈 사이에 껴서는 조금만 더 누워있다가 나가겠다는 정국을 비스듬히 흘겨보았다.
"늦게 나오면 없어"
"편의점 가서 사 먹지 뭐"
편의점 가서 사 먹겠다는 여유로운 정국의 말에 석진은 사춘기 아들램을 둔 엄마처럼 진저리를 치며 문을 닫았다. 하여튼 말은 드럽게 안 듣지. 그런 석진의 반응이 재밌는지 정국은 둥글게 눈꼬리를 휘었다.
석진이 나간 방 안에는 다시금 정국의 얕은 숨소리가 가득 찼다. 점점 강해지는 햇볕이 커튼 틈 사이로 들어와 배 위에 올려둔 정국의 손등에 하얀 줄을 쳤다. 그다지 크지 않은 창문임에도 흐드러지듯 쏟아지는 빛에 정국은 선명하게 반짝이는 눈꺼풀을 떨었다. 말간 눈동자로 온전히 볕을 받아냈다. 왜 하필 오늘은 이렇게도 날이 서글스러운지. 무언가에 홀리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꽉 닫힌 창문의 숨통을 트여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선한 바람이 정국의 볼에 스친다.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게 동네는 한결같다. 창문에 기대 턱을 괴던 정국은 문득 OO의 집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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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늘 아래, 분명 가까운 곳에 있는데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너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출 격 ! 애 증 남 녀 !<<
W. 선옥
'이유도 없어? 전정국 너 지금 사람 놀려? 싫다고 욕하다 무시하다 친한척하다, 내가 네 개야? 네 마음이면 좋다고 다 받아줘야 돼?'
'도대체 너는 나한테 바라는 게 왜 그렇게 많아?'
침대에 누워 꾸역꾸역 재미있지도 않은 핸드폰을 하고 있던 난 드문드문 기억나는 어제저녁에 입꼬리를 꾹꾹 내려눌렀다. 내 말에 되려 자기가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짓던 전정국을 잊기가 힘들다. 그렇게 나의 상처를 다 털어내면 편할 줄 알았다. 오히려 전정국이 나한테 겨우 그거 가지고 쪼잔하게 화를 내냐며 더 나쁜 놈처럼 굴어주기를 바랐다. 아예 일말의 정도 없어져버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이건, 그냥 오히려 내가 가해자 같잖아. 그 생각에 애써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참 웃기지도 않아. 만난 지 한 달도 안된 놈한테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건 또 무슨 일인지.
핸드폰을 멀리 던져놓고는 숨 막힐 듯 베개에 푸욱 얼굴을 묻은 나는 잘못 없는 침대만 내리쳤다. 도대체 이런 정신머리로 집에 돌아와서 선옥이한테 메일은 어떻게 보낸 거야, 아직까지 별다른 말이 없는 걸보니 이상한 부분 없이 잘한 거 같긴 한데. 이 상태로 내일 학교에 가봤자 교수님 말씀이라고는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올 것 같다. 그냥 자체 휴강해버릴까 하는 나쁜 생각과 함께 손가락 끝으로 벅벅 소리 나도록 침대 시트를 긁었다.
전정국한테 말을 너무 세게 했나. 그냥 너 때문에 다친 적이 있거든, 이 말만 해줄 걸 그랬나. 조금 충격받은 것 같던데. 아냐 그놈 자식은 당해도 싸. 뭐? 안 싫어해? 언제는 나 싫다고, 짜증 난다고 밀어 뜨려 놓고. 걔 때문에 아직도 무릎에 흉터 남았잖아. ...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 그냥 조금 순화해서 말해줄 걸 그랬나. 너 때문에 내가 많이 다쳤고, 나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거든.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단다, 이런 식으로.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순두부도 아니고 이게 뭐야.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 와서 어쩌겠다고.
"짜증 나 진짜..."
답답한 마음에 뭉그적거리며 던져버린 핸드폰을 다시 손에 쥔 나는 전화번호부를 살폈다. 메신저도 차단해버리고 아예 번호도 삭제해버릴 심산이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괜히 프로필 사진으로 오다가다 한 번씩 마주하게 되면 머리만 더 복잡해질까 봐. 성의 없이 수많은 전화번호를 내리고, 내리고 전정국의 이름이 보일 때가 돼서였다.
갑자기 액정화면이 까맣게 끊기더니 중간에 '전정국', 이 세 글자가 뜬 것이.
지잉, 거리며 울리는 핸드폰에 나는 그저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눈을 꿈뻑였다. 전정국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말을 하려 내게 전화했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딱딱하게 굳은 채로 한참을 가만히 있자 제풀에 지쳐버린 건지 뚝하고 진동이 끊겼다. 이 때다 싶어 얼른 번호를 삭제하려는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이 또다시 울리는 진동. 아무 말없이 이름만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소심하게 초록색 버튼을 끌어당겼다.
"..."
/... 여보세요?/
전화 너머로 전정국의 숨결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조심스럽게 여보세요, 하는 전정국에 짧은 대답도 않고 있자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OOO? 너 지금 어디야?/
"집. 왜, 어제 내가 해준 말로는 부족해?"
/아니, 그게 아니라. 할 말이 있어서/
멋대로 나온 날카로운 대답에도 전정국은 담담하게 말했다.
/얼굴도 안 보고 이야기할 건 아닌 것 같고/
"..."
/잠깐만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
/정말 잠깐이면 돼/
"..."
/네가 싫으면 안 나와도 되는데/
"..."
/나와줬으면 좋겠다/
떨리도록 차분한 전정국의 목소리에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언제 이렇게 훌쩍 커버린 걸까. 침대에 앉아 의미 없이 발끝만 바라보던 나였다. 전정국과 나는 오래도록 전화를 사이에 두고 입을 닫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전정국은 이야기의 정점을 찍듯 한 마디 했다.
/나는/
"..."
/지금 너네 집 앞이야/
...
"기다려"
기다려, 그 말을 끝으로 종료 버튼을 누른 나는 멍하니 앉아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반칙 아닌가, 나가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 우리 집 앞이라니. 내가 진짜 안 나가버리면 어쩌려고, 전정국. 양 다리를 접어 무릎을 꼭 안던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누워있느라 마구 엉켜버린 머리를 손으로 성의 없이 빗어내렸다. 잘 내려가다가 툭툭 끊기는 것이, 엉키기도 단단히 엉켰네. 빗다 빗다 못한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먼지 쌓인 거울 위로 오늘따라 유난히 초췌한 몰골이 비쳐 올라온다. 밤새 잠을 설쳐버린 나머지 퀭한 눈에 생기 없는 입술, 축 처져있는 입꼬리.
하, 진짜 이렇게 하고 전정국 얼굴을 어떻게 봐, 그렇게 바락바락 하고싶은 말 다 해놓고 내가 오히려 당장이라도 오동나무 관에 들어가 누울 상이잖아. 양 손바닥으로 꾸욱거리며 뺨을 누르던 나의 눈앞으로 언뜻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전정국이 스쳐 지나간다. 그대로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던 나는 우선 바로 옆에 놓인 빗을 쥐어들었다.
그래, 별다른 마음 없어. 전정국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나 들어보자.
한 번 들어나 보자.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에서 겨우 벗어난 나는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확인하듯 뿌연 거울에 이리저리 얼굴을 비춰보았다.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상태도 아니다. 최면을 걸 듯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마주치고 깊게 숨을 삼켰다. 너무 마음 쓰지 말자, 전정국한테 너무 마음 쓰지 말자. 걔는 적어도 나보다 훨씬 잘 살아왔겠지.
현관으로 나선 나는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덮친다. 오늘따라 유독 바람이 시리다. 터벅거리는 내 발소리에도 인기척 하나 없는 대문 밖에, 소리 없이 길가로 얼굴을 내밀었다.
![[방탄소년단/전정국] 출격! 애증남녀!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4/25/0/5fc57c7a92642b7f181ff4d16722f6d9.gif)
녹슨 철 소리가 덜컹거리자마자 우리 집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서있던 전정국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짜 와있었네. 얼굴만 내놓고 빤히 전정국을 쳐다보고만 있자 전정국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왼쪽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안녕' 이란다. 시답지도 않은 인사에 코웃음을 칠뻔했다. 이 상황에도 배알 없이 인사를 할 수 있다니 참 성격도 좋다. 하지만 나는 전정국만큼 성격이 좋지도, 유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저 말없이 대문 밖으로 나와 전정국과 마주 보고 섰다.
아, 어색해라. 전정국 얼굴 한 번, 발끝 한 번 번갈아 보던 나는 작게 운을 뗐다.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은데?"
내 질문에 어... 하고 대답을 망설이던 전정국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몸을 안절부절하지 못하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미안해"
전정국의 입에서 이토록 쉽게 미안하다는 말이 흘러나올 줄은 누가 알았을까.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전정국의 미안하다는 한마디에 내 머리는 누구에게 얻어맞은 것마냥 초토화 당했다. 아마 지금 내 얼굴 앞에 누군가가 거울을 비춰준다면 나는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라 넋이 빠져나간 얼굴이 아닐까. 이번 연도 들어서 최고로 당황스러웠던 일은 전정국을 만난 건 줄 알았는데 방금 전부터 전정국이 내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 게 일등을 먹었다.
전정국은 이런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바쁘다.
"진짜 미안해. 사과할 거면 그때, 너 다쳤을 때 해야 했다는 거 알아"
"..."
"지금은 너무 늦었을 수도 있는데, 내가 그때는 너무 어렸고 이기적이었던 거 인정해. "
"..."
"어제 너 말 듣고 정말 생각 많이 했거든. 나는 ..."
"..."
"네가 그런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사과할걸..."
초등학생처럼 서투르지만 진심만큼은 순수한 전정국의 사과에 정말로 웃음이 터질 것 같아 표정을 숨기려 머리를 푹 숙였다. 대답 없는 나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허둥지둥 거리던 전정국은 결심한 듯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입을 열었다.
"내가 책임질게"
"뭐?"
"네가 흉터 없애는 수술하고 싶다고 하면 돈 줄게, 나도 똑같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면 여기서 무릎 갈아버릴게, 나 때리면서 막 욕해도 돼"
뭐 이런 극단적인 소리를... OOO, 싸이코패스 만들기에 몰입한 전정국은 나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가 뚝,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살짝 숙였던 시선을 올린다. 전정국은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러다 눈을 두어 번 빠르게 깜빡이다 살짝 피해있던 눈동자를 똑바로 맞추고는 목을 울렁였다. 순하게 내려앉은 전정국의 눈가가 붉어진다. 굳게 앙 다문 입술을 겨우겨우 연 전정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 그만 미워하면 안 돼?"
난 너랑 불편하게 지내기 싫어. 묵묵히 전정국의 말을 듣던 나는 웃음기를 싹 지우고 고개를 들었다. 전정국이 이렇게 간절해 보이기는 처음이네. 내가 뭐길래.
"나는 너랑 불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
"근데 어떻게 이제 와서 사과를 하냐"
그래도, 고맙네. 솔직히 말하자면 전정국이 내 얼굴을 보고 나서 미안해, 이 한마디를 하기가 무섭게 화가 조금 풀리긴 했다. 평생 못 들을 줄 알았는데. 거기다가 웃기지도 않게 책임까지 진다니, 내가 다 황송할 지경이다. 좋다와 싫다 그 사이, 애매하게 걸쳐져있는 내 대답에 전정국은 나직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날도 좋고 하늘도 저렇게 높은데 딱딱히 굳어있기에만은 너무 아깝지. 전정국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 것처럼 나는 홀로 팔짱을 끼며 표정을 풀었다. 어쩌면 내 입술은 일찍부터 부드러운 곡선을 짓고 있을지도. 전정국은 상황 파악이 안된다는 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이 흉터 안 지울 거고 너한테 미안해하기 싫으니까 욕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을 거야"
그 말에 전정국은 그럼... 하며 어줍게 눈썹을 움찔거렸다.
"대신, 네가 나 한 번 따라다녀볼래?"
"... 따라다니라고?"
"왜, 있잖아. 내가 너 따라다녔을 때처럼 나 한 번 따라다녀보라고"
어지간하면 자존심 상할 만도 한 짓궂은 내 제안에 전정국은 시큰둥한 얼굴을 했다. 섣불리 좋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내가 들어도 분명 어이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왜 나를 한 번 따라다녀보라는 헛소리를 하냐면 무엇보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무리 지금 미안하다는 사과를 들었어도 그때 그렇게 전정국을 좋다며 따라다녔는데 얻은 건 트라우마와 흉터뿐이니 암만 억울해하지 않으려 해도 억울할 수밖에. 그렇다고 나중에는 전정국을 넘어뜨려 나와 똑같은 상처를 만들겠다는 변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다. 그저 그때의 전정국의 마음이 궁금할 뿐이다. 그러니 뭐, 거절하려면 거절하든가, 나는 별로 꿀리는 거 없으니까.
눈싸움하듯 당당하게 전정국을 쏘아보는 것도 한참, 전정국은 곤란하다는 듯이 제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 어떡하지, 하고 중얼거리며 시선을 괜히 회피하는데 생각이 있어 시간을 끄는 건지 아니면 별다른 생각이 없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싫으면 싫다고 하든가. 오래도록 그렇게 무언가를 궁리하고 있던 전정국이 입을 열었다.
"정말 그거면 돼?"
"응"
"후회 안 해?"
후회는 무슨 후회? 어깨를 으쓱거려 보이자 모호하게 반응하던 전정국의 얼굴 위로 언제 그랬냐는 듯 해사한 미소가 번졌다.
"그럼 그걸로 화 푸는 거다?"
"화가 어떻게 한 번에 풀리겠냐, 너 하는 거 보ㄱ, ..."
미적지근한 내 대답에 전정국은 손바닥 뒤집 듯 표정을 휙휙 바꿨다. 누가 보면 전정국 혼자 내 앞에서 원맨쇼하는 걸로 알지도.
"아, 알았어. 어디 한 번 나 잘 따라다녀봐"
"너 진짜 무르기 없기야"
알았다니까, 재차 확인을 하는 전정국에 조금은 성의 없이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대답에도 만족을 하는지 전정국은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발걸음을 옮기는 내게 잘 들어가라며 인사했다. 예나 지금이나 참 특이한 캐릭터야. 나도 마찬가지지만.
나올 때와는 정반대로 어, 너도 하며 전정국의 인사를 가볍게 받아준 나는 문득 생각했다.
반 장난이긴 했지만, 전정국하고 나하고 같은 학교도 아니고 내가 전정국 따라다니던 것처럼 잘 따라다닐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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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정국은 내 그런 형편없는 걱정을 비웃었다.
![[방탄소년단/전정국] 출격! 애증남녀!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10/08/9/877e4c3249780377a3ae2467db80906d.gif)
"OO야, 네 폰 터지려고 한다"
"냅둬요"
"아까부터 오던데?"
연화 대학교 봉사 동아리 '봉나무'의 동아리실, 정호석이 책상 위에서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울리는 폰에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이 소파에 누워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봉사 동아리 이름이 왜 저따위인지는 동아리장인 김냄준에게 물어보도록. 공강 시간에 대충 마음 편히 있을 곳을 찾다가 동아리방이 괜찮겠다 싶어 아무 동아리나 골라왔는데 봉사 동아리였을 줄이야. 그래도 일단은 일차적인 목적인 동아리방은 훌륭하니 계속 활동은 하고 있지만서도 졸업 때가 걱정이다. 그때는 너무 바빠서 다 같이 활동도 못 다닐 텐데. ... 아닌가, 민윤기랑 정호석을 보면 또 그건 아닌 거 같고. 됐다. 졸업반은 졸업반 돼서야 생각하지 뭐.
"너 저러다 진짜로 폰 터진다니까, 알람이라도 꺼놔"
아휴, 귀찮아. 꾸물거리며 일어난 나는 책상 위에서 울리고 있는 폰을 들고는 다시 소파에 누웠다. 보나 마나 전정국일 것이다.
전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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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출격! 애증남녀!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28/20/447105af94c78a8c8ff7259cc1717921.jpg)
조각사 너무 재미없다;;
오늘 지각했는데
그냥 자체휴강할걸 오전 10:23
![[방탄소년단/전정국] 출격! 애증남녀!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28/20/447105af94c78a8c8ff7259cc1717921.jpg)
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잤다
어떡하지
... 오전 11:09
![[방탄소년단/전정국] 출격! 애증남녀!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28/20/447105af94c78a8c8ff7259cc1717921.jpg)
나 이제 진짜 제대로
수업들을거임 오전 11:10
그럼 제발 폰 내려놓고
오전 11:13 공부해
![[방탄소년단/전정국] 출격! 애증남녀!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28/20/447105af94c78a8c8ff7259cc1717921.jpg)
응 오전 11:13
![[방탄소년단/전정국] 출격! 애증남녀!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28/20/447105af94c78a8c8ff7259cc1717921.jpg)
밥먹었어??
나는 밥먹는즁
오후 1:46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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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버거 맛있다
우리 학교로 놀러오면
내가 쏜다
٩(`・ω・´)و 오후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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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너무 한입거리..... 오후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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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수업 듣고 있나 오후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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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자꾸
1이 사라져?
보고있음 점이라두
찍어주세요
OO님 오후 2:04
오후 2:09 .
너 지금 톡에
오후 2:10 일기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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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학교때문에 제대로
못따라다니니까 오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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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하게 따라다니는 중 오후 2:11
─────────
우리가 초등학생일 적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러면 도대체 사과를 받아내기 전이랑 다를 게 무엇인가.
약속 물리고 차라리 욕하고 때릴 걸 그랬나.
| (ง •̀_•́)ง 나 선옥쓰 사담인디 |
올라! 세뇨리따!
선옥입니다.
저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읍니다...
그 와중에 정구기는 여주 합법적으로 따라다닐 권리가 생겼지요.
축하해주세요!
+
독방에 막 애증남녀 추천해주고 다닌다는 독자님 계신게 참뜨루입니까...?
(੭╹3╹)੭⁾⁾ ㅃ... 뽀뽀...
+
인기글 오르고 여기저기서 독자분들이 많이 유입되고있어서 너무 기분 좋습니다 ' v')۶ 그와중에 어그로성 댓글이 있더라구요. 그냥 제가 좋아서 쓰는거고 마음맞는 독자님들과 함께 모여서 재밌자고 업로드하는 거에 굳이 찾아와가지고 그러시는디.. 저도 아이돌 좋아해본 거 한 두해 아니고 개인적으로 글 찔때가 많은데 이런 식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고요... 제 글에서 분쟁 일어나는 거 보기싫어서 보고나서 한참 생각하다가 비횐 댓글이라 일단 삭제는 했지만 댓글 쓴 분 마음이 그렇다고하면 존중은 해드립니다. 다만 글과 상관이 없고 다른 분들의 기분을 불쾌하게 하는 이야기는 속으로만 생각하시고 앞으로 제 글에서 쓸모없이 감정 소모만 일으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글잡온지 이제 막 일주일 됐는뎅 이게 무슨 일인지...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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