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guard
w.클로이
03
"어.... 일단 여기로 앉으세요."
경수는 그를 내가 앉아 있는 소파로 안내했다. 나는 가만히 치킨을 내려놓았다. 루한은 안내 받은 소파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나와 경수를 번갈아 보았다. 우리의 생김새를 기억하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그의 이름을 발음 해 보았다. 루한. 예쁜 이름이다. 리을을 발음하며 입속에서 움직이는 혀의 느낌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그의 이름과 얼굴이 썩 마음에 들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눈에 매료되어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루한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두 분 중에 누가 김민석씨죠?"
그의 한마디에 넓디 넓은 일 인실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경수가 연예인 못지않게 잘생겼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실제로 과거 케이블 파일럿 방송 MC를 보던 시절, 경수와 함께 방송국을 다니다 보면 많은 분들이 경수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경수는 미안한 마음에 내개 사과를 했고 나도 대인배인 척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경수한텐 말 못했지만, 그때의 일은 내게 트라우마가 되어 버렸고, 날 더 가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인터넷에서 모두들 내 이야기를 했고, TV광고에는 내 얼굴이 나왔다. '김민석' 이라는 내 이름은 싱글녀 검색어 순위 10위권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고, 얼마 전 개봉한 내가 주연인 영화도 '김민석 효과'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흥행했다. 이런 나를 모른다니. 내 자존심에 금이 가다 못해 가루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경수는 분노를 감출 수 없어 시뻘게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보며 당황한 듯 큰 눈을 이리저리로 굴렸다. 루한은 눈치가 영 없진 않은지 재빨리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서."
"아하하하하.괜찮아요. 뭐 관심이 없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안 그래? 도매니저?"
"그....그렇죠...하하"
어색한 미소로 상황을 마무리 했다. 하지만 이미 가루가 되어버린 쿠크다스같이 여린 내 마음은 어찌 수습 할 수가 없었다. 입술은 튀어나와 있었고 툴툴거리게 되는 내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연예인 보디가드를 하게 될 것 같으면 사전조사를 했었어야지. 완전 철저함이라고는 없네. 하 진짜 김종대는 뭐 이런 애를 골랐어. 아 진짜. 김종대, 사람 잘 골랐네 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았던 그의 첫인상은 멀리멀리 저 구름 뒤로 날아가 버렸다.
"제가 오늘 연락받고 급하게 온 거라 사전조사도 못하고 왔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루한이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봐달라는 듯이 씨익 웃었다. 그의 미소는 마치 한 마리의 꽃사슴이 숲속에서 뛰노는 듯이 아름다웠다. 그의 미소에 건조해진 내 마음에 가습기를 튼 것만 같았다. ㅅ...생각보다 루한은 괜찮은 사람일 거야. 아 나는 어쩔 수 없는 외모 지상주의의 노예인가 봐.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루한씨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요?"
"올해 27살 입니다."
"뭐야 나랑 동갑이네. 말 놔요. 이제부터 매일 볼껀데 편한 게 좋잖아. 안 그래요? "
"저는 괜찮습니다. 민석이 제게 말을 놓고 싶다면 놓으셔도 좋습니다."
"같이 말 놓죠. 한쪽만 말 놓으려니 이상하잖아요."
"저는 민 석의 보디가드입니다. 말을 놓을 수 없습니다."
"아 됐어요 됐어. 그럼 나만 반말할 꺼야."
동갑이라는 말에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 말을 놓자고 한 건데 끝까지 말을 놓지 않는 루한에게 심통이 났다. 동갑내기 친구는 크리스 이후로 처음이었다. 학창시절 사귄 친구가 몇 없을 뿐더러 그마저도 연락이 끊겼다. 경수가 곁에 있었지만 동갑인 친구가 생겼으면 하고 늘 바래 왔었다.
"민석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면 그때 말을 놓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러든가 말든가."
**
비슷한 나이대여서 그런지 우리 셋은 제법 말이 통했다. 루한과도 처음보다는 제법 가까워졌다. 시간이 늦어 경수가 집에 돌아갔다. 제법 늦은 시간 때문에 잘 준비를 했다. 루한은 소파에 이불을 폈다. 간병인 침대보다 편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도 자리에 누웠다. 루한이 걸어가 불을 껐다. 어둠속에서 소파에 눕는 루한의 소리가 들렸다. 잠이 안와서 병원 천장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민석 잡니까?"
"아니 안자."
"혹시 아직도 나한테 화났습니까?"
그의 미소에 현혹되어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는 루한에게 화가 났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세상에 나를 모르는 사람은 많다. 루한도 그 중 한명이었을 뿐이다. 내가 분발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하지 않았다.
"...."
"내일 저랑 같이 민석이 나온 영화랑 드라마 봅시다. 의뢰인인데 민석에 대해서 아는 게 없네요."
"그래. 그러자."
"......"
"근데 루한. 루한은 왜 보디가드 하려고 생각했어?"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몸 쓰는걸 잘하는데 공사판엔 가긴 싫고 그렇다고 조폭이 될 순 없다는 생각에 선택한 직종입니다."
"목표 같은 건 없어?"
"딱히 없습니다. 일이 나름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구요. 이만 잘까요?"
"그래 잘자."
저 건너편에서 루한이 잠에 들기 위해 자세를 잡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새근새근 잠에 든 듯 일정한 호흡소리가 들렸다. 잠에 들기 전에 경수에게 톡을 보냈다. 내일 올 때 USB에 내 드라마랑 영화를 넣어 오라고. 아, 병원 밥이 맛이 없을 것 같으니 도시락을 싸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
경수가 싸온 도시락을 깠다. 역시 도셰프다. 보온병에는 된장국, 도시락 통에는 계란말이와 장조림, 베이컨 말이, 샐러드, 김치를 싸왔다. 흰 쌀밥과 김도 잊지 않았다. 분명 맛도 훌륭할 것이다. 하지만 흠이 하나 있다. 경수는 손이 너무 컸다.
"경수야."
"네, 형"
"나 먹고 배 터져 죽으라구?"
"에이 형 설마요."
"누가 아침밥을 3단 도시락에 대포만한 보온병에든 된장국으로 떼우냐!!!! "
"루한이 형이랑 먹으면 되죠."
아, 루한을 잊고 있었다. 루한이 소파 앞에 놓여진 탁상에 도시락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자기 앞에 젓가락하나, 맞은편에 하나. 자기 앞에 숟가락하나, 맞은편에 하나. 자기 앞에 종이컵 하나, 맞은편에 종이컵 하나.
"민석, 앉아요. 먹읍시다."
어제 먹었던 굽네치킨을 먹었지만 세명이서 적은 양을 갈라 먹었기 때문에 제법 배가 고팠다. 계란말이를 하나 입에 넣었다. 역시 명불허전 도경수였다. 엄마한텐 미안하지만 도경수가 만든 요리보다 맛있는 요리는 아직까지 먹어본 적이 없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루한도 베이컨 말이를 하나 먹어보더니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말없이 숟가락과 젓가락 놀림을 빨리하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경수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새벽에 일어나 민석의 카톡을 확인하고 멘붕에 빠져 허둥지둥 요리하랴 USB에 드라마랑 영화 넣으랴 바빴던 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맛있게 먹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짜증났었던 감정이 사그라들며 왠지 모를 엄마 미소를 짓게 되는 경수였다.
그렇게 경수가 뿌듯함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민석과 루한은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의 경수를 꼬시면 맛있는 밥을 매일 먹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고.
경수가 싸온 어마어마한 양의 도시락을 다 먹고 루한과 나는 배를 통통 두드리고 있었다. 사실상 지금 루한이 할 일은 없었다. 병원 안에는 간호사도 있고 병실 입구에는 기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보디가드도 있었다. 뭘 할까 고민하던 중 병실 문이 세차게 열렸다. 코디 백현이었다.
"형!!!!!!!!!!!!"
"뭐야 어제는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어제 저 박찬열 1박2일 따라 갔었어요. 나 형 코딘데 요새 형 스케줄 없다고 계속 박찬열쪽으로 불려 가는거 있죠? 정수정은 어디로 보냈대. 진짜 웃겨. 와 내가 어제 도경수 전화 받고 얼마나 놀랬는지. 내가 달려오고 싶었는데 촬영하고 있으니까 오지도 못하고 아오. 형 내 맘 알죠?"
백현이는 끊임없이 쫑알쫑알 이야기를 했다. 역시 비글이라니까. 하루 못 봤다고 쌓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러던 중 자기를 못 쉬게 하는 박찬열을 끊임없이 욕하던 백현이 옆에서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한 남자의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는 놀라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형 대박 존잘. 이사람 누구에요."
"안녕하세요. 김민석씨 보디가드 루한입니다."
"대박 크리스형이 보디가드 붙혀준거에요? 역시 대세. 근데 이 정도면 박찬열보다 나은데 우리 회사에서 캐스팅 해가면 안 되나?"
"전 그쪽에 뜻이 없습니다."
"근데 루한이면 한국 사람이에요? 예명 같은 거예요?"
"저는 중국 사람입니다. 한국에 이민 온지는 10년 정도 되었구요."
"뭐???"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너무 놀라 소리쳤다. 이름이 예쁘다고만 생각했지 외국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의심은 했지만 외국인이라 하기에는 한국말을 너무 잘했다. 발음도 약간은 어눌하지만 이정도면 한국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제가 중국인이라고 하니 거부감 느껴지십니까?"
그 말을 한 루한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굉장히 차가워 보였고 가시를 곤두세운 고슴도치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매서운 눈초리에 나는 당황하였다. 난 그저 그가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놀랐을 뿐인데. 그가 이렇게 화난 모습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방황하는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이리저리 굴리고만 있었다. 이 고슴도치의 흥분을 어떻게 잠재워야 할지 방도를 찾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
경수가 매니저로 나오면서 본의아니게 도매니저가 되었네요ㅋㅋㅋㅋㅋㅋ
저번편보다 분량이 짧은거 같기도 하고.....소금소금
보디가드 연재는 주3회 정도가 될거 같구요 그 주3회는 랜덤일것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타지적은 늘 환영합니다.ㅎㅎ
한줄의 댓글은 클로이에게 큰힘이 됩니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피폐주의) 현재 모두가 주작이길 바라는 애인썰..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