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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락비/범권] 선이없는 경계 0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3/3/3/3337c21a66073aa6c747ecdf961c498b.jpg)
어젯밤 한국에 방문한 미군이 S호텔에서 토막 난 채 발견되었습니다. 벌써 같은 범행수법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이 더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당시에 같은 층의 모든 룸이 그의 카드로 결제된 상태라 같은 호텔에 묵고있던 사람들도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몰라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당국은 하루빨리 용의자를 검거하기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추가피해자가 있는지 면밀히 수사하고 있습...
팟-.
정돈이 덜된 집안, 소파에 앉아 뉴스를 듣고있던 유권이 티비를 꺼버린다. 토막 살인이라니...무섭네... 나른하게 중얼거리다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권씨, 기다리시던 안내견 분양확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늘이후로 오셔서 데려가실 수 있게 되셨구요. 원하시면 집 앞으로 차량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오후세시 괜찮으십니까?"
"아...차는 괜찮습니다. 혼자갈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여섯시 전 까지 신분증 챙겨 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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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긴 신호음을 가만히 듣다가 방긋 웃은 유권이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휴대전화, 배터리...가방이랑 지갑도 잘 챙겼고, 케인*(시각장애인이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흰 색깔의 지팡이.)도...
물건을 점검해본 그가 문을 더듬어 잠금장치를 풀었다.
한숨한번, 오늘도 잘 다녀올 수 있을 거야. 물론 도움을 받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폐를 끼치는건 죽어도 싫으니까...문을 열자 와 닿는 찬바람에 목도리에 고개를 파묻었다.
꼬박 한 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안내견 학교, 케인을 잡은 손이 찬바람에 빨갛게 얼어있었다. 네댓번을 사람이나 장애물에 부딪쳐 도착했더니 벌써 지칠 지경. 네댓번이면 그나마 양호한편이지. 장애물은 케인을 이용해 알아낼 수 있다지만 이것으로 사람이 어느 쪽에, 몇 명이 서있는지는 알수가 없으니까, 순전히 청각이나 바람을 이용해 알아내야했다. 신호등도, 시각장애인용 안내기가 있는곳은 수월했지만 모든 신호등에 붙어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옆 사람에게 살갑게 물어볼 만큼 트인 성격도 아니고...처음엔 정말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새삼 이렇게 적응을 하기 시작한 내가 신기했다.
다섯시쯤 됬으려나... 서둘러야겠단 생각에 입구를 찾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유권씨 오셨네요."
"네..날이 춥네요. 오늘은 리사랑 같이 갈수 있는 건가요?"
허공에 머물 수밖에 없는 눈에 생기가 비추자 데스크에 있던 그녀가 안쓰러운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어쩌죠...안 그래도 오늘 보내려고 마지막 훈련을 시키고 있었는데 자꾸 왼쪽발을 절더라구요, 방금 검진했는데 발목에 살짝 금이 갔어요...정말 죄송합니다. 지금상황에서 안내를 하는 건 무리라 상태를 더 두고봐야할 것 같네요. 오늘 차로 리사와 함께 데려다 드릴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리사를 따로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게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금세 시무룩해진 그가 손을 꼼지락 거리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제가 병원에 데려가면 오늘 같이 갈수 있나요?
▷
주위를 살펴보던 민혁이 불과 1분도 안 걸리는 시간 안에 숨어든 아파트 현관문을 땄다. 다행히 집안엔 인기척이 없었다. 전력량 소비도 제일 낮은걸 보면 여행으로 집을 비웠거나 했겠지.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근 그가 욕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어낸다. 반항하는 그를 제압하느라 깊게 베인 상처가 아려온다. 떨리는 손끝에 잘리던 살과 뼈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거실로 나와 식탁에 앉은 그가 소총기가 달린 총을 꺼내 총알을 확인하곤 프린트된 지도를 꺼냈다.
여유롭게 냉장고를 열고 맥주캔을 따 마른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맨 안쪽 주머니, 반으로 고이 접힌 사진을 꺼내어 짧게 입을 맞추자 뺨을 타고 뭔가가 흘러내렸다. 어, 나 지금 우는 건가? 뺨을 만져보던 민혁이 멍하니 눈물을 흘렸다. 리사, 내가 잘한거겠지? 뉴스도, 펼쳐진 지도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 동그라미에 X자를 그은 지도에 불을 붙인다.
맥주캔을 비우고 고개를 숙인 민혁이 20일간 밤낮없이 장소를 바꾼탓에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제 그들이 날 잡기직전에 목숨을 끊기만 하면...그러면 모두 끝나는 일이었다.
▷
아, 그래서 오늘 데려 온거야?
응..내일 병원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무모하게 데려왔나 싶기도 하고...
가까운 동물병원은 알아?
...아니...이사온지 얼마 안되서...
너 때문에 못산다. 이웃들한테나 물어보던지..안되면 같이가자
고마워 형...
태일과의 전화를 끊은 유권이 꼬리를 흔드는 리트리버 리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얼마나 만남을 고대해왔던지, 미용이 잘된 털의 감촉이 좋아 한참을 어루만져 준 것 같다. 이삿짐 속에 주인 없이 방치되어있던 밥그릇과 사료도 이제야 제 주인을 찾았다.
![[블락비/범권] 선이없는 경계 0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e/e/2eef31d0d1d49b848ad2113f78816186.jpg)
밤 11시, '리사' 라고 적힌 목걸이를 리트리버에게 채워준 유권이 이제 자자, 하고 벽을 더듬고 일어나 걷다가 문지방에 발을 찧었다. 끙끙대며 그를 핥는 리사를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 입을 맞춘다.
앞으로 잘 부탁해.
눈을 감은 유권의 방엔 며칠 전 켜진 형광등이 여전히 꺼지지 않은채였다.
웬일인지 이어지던 어둠의 끝에서 옅은 파노라마가 '보였다.' 혼자 있는 방, 바닥에 깨어진 화분과 널브러져있는 옷가지. 다 만들어지지 못한 음식물이 쏟아진 가스레인지. 그 맨 안쪽, 세탁된 채 잔뜩 구겨진 침대시트 위에 유권이 멍하니 누워서 눈을 깜박인다. 손끝에 잡힌 물집을 만져보다가 벽을 더듬어 일어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나간다. 깨진 화분이 대체 어디에 쏟아져 있더라? 칫솔은 대체 어디 있지?
그렇게 벽을 짚고 걸어가다 보니 손끝에 툭하고 불을 켜는 스위치가 걸렸다. 멍하니 허공을 보던 그가 탁, 탁. 스위치를 껐다가 켰다가. 열댓번을 더 하고 나서야 손을 멈춘다.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온다. 이젠 정말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것들마저도 새카만 어둠에 잠식되어버렸다. 스물세 살, 두 눈으로 보다 많은 것을 보며 알아 나가야할 세상이 새카맣게 변해버린 해. 혼자서는 밥도 먹지 못하고, 떨어트린 칫솔조차 찾지 못하며 매일 아무렇지 않게 가던 화장실마저도 두어 번은 부딪쳐야 도착하는 무능력함이 나를 두 번 무너지게 했다. 주저 앉은 채 서럽게 울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뻗는다.
얼굴을 핥아대는 리사때문에 유권이 눈을 반짝 떴다. 햇볕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집안이 여느 때보다 아름다우나 그의 눈엔 투영 되는 것이 없이 그저 어둠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괜히 그때를 생각나게 하는 꿈을 애써 고개를 저어 떨쳐버렸다. 배가고픈지 리사가 헥헥 거리며 밥그릇을 코로 밀어대는 소리 탓에 얼른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이젠 벽을 짚지 않아도 걷는 유권이 리사가 물고 있는 밥그릇을 가져와 사료를 담았다. 찹찹, 사료가 씹히는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며 그가 옅게 웃는다. 단지 리사가 들어온 것 뿐인데 주변이 밝아진 기분, 하지만 분명 다리를 절고 있겠지...오늘은 반드시 동물병원에 가봐야 했다.
준비해야겠다, 하고 일어선 유권이 느리게 샤워를 한 뒤, 옷장 문을 열어 잡히는 옷을 침대위에 늘어놓고 천천히 만져본다. 그러고 보니 이정도도 처음엔 힘들었지...옷을 다 입고 나니 리사가 하네스*(안내견 몸통에 끼운 핸들)를 물고 옆에 다가와 있었다. 착하지, 목을 쓰다듬어준 그가 하네스를 채우고 손잡이를 꼭 잡는다. 복도로 나와 오늘은 별 수 없이 택시를 타야겠네...혼잣말을 하자 리사가 짧게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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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파병은 피했으면 좋겠네요...너무 걱정되요.
그간 계속 피해왔잖아 리사, 파병이라 하기도 뭣해. 잠깐 미국에 다녀오는 것 뿐인걸. 나만한 사람이 없다 잖아. 그리고 플로리다도 경유할 예정이야, 네가 살던 마을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국으로 돌아온 후 말해줄게요.
대신 연락자주해요...기다리고 있을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한국에 있는 전우들이 잘 케어해 줄거야. 다녀올게요.
군화끈을 다 묶은 민혁이 일어나 그녀에게 짧은 입맞춤을 선사했다. 문을 열고 나서는 그를 배웅한 리사가 끝내 보여주지 못한 임신테스트기를 만지작거리다 거실로 향했다.
5일이 지난밤, 술 냄새를 풍기며 문을 두드린 그의 동료와 상사들에게 윤간을 당한 아름다운 그녀는 모두가 사라진 새벽,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천장에 매달린 그녀가 한이 차고 넘치는지 쉴 새 없이 삐걱거리며 흔들린다. 바닥에 떨어져 소파 밑에 들어간 테스트기와 고깃덩어리로 변한 그녀를 발견한건 3일이 더 지난오후, 민혁이 미국에서 돌아온 날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어...그 아름답고 생기 넘치던 그녀가 혀를 빼물고 죽어 있다는게. 몸 곳곳에 남은 손자국, 벗겨진 하의,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는 눈...그눈.......
민혁이 악몽에서 깨어나듯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이것은 이미 일 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지독한 악몽이었다. 리사...나의 리사...아직 축축이 젖어있는 눈가를 문질러 닦는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중얼거리던 민혁이 마음을 추스르려 티비를 켰다. 뉴스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을 써놔서 수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조용히 수사하겠다 이거야?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는 그야말로 딱 산송장의 꼴이었다.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는..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덧나기 시작한 어깨의 상처에 미간을 찌푸린다.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 집안을 차례차례 뒤지기 시작했다. 구급상자마저 없다니, 나오는 건 조그만 반창고 몇 개. 한숨을 쉰 그가 욕실에 들어가 윗옷을 벗고 상처를 씻어냈다. 쓰라림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숨을 삼킨다. 꽤 깊숙이 베였던지 잘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을 들어보려다 내려놓았다.
별 수 없이 거실로 걸어 나온 민혁이 왈! 하는 개 짖는 소리에 소총을 집어 든다. 장전을 마친 그가 인터폰으로 바깥을 살피다가 한숨을 쉬었다. 복도엔 골든 리트리버의 안내줄을 꼭 잡은 미소년이 난간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뒤돌아서려던 그의 뒤로 '천천히 가자 리사' 하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문고리를 돌려 문틈으로 복도를 살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더듬어 누르는 소년을 바라보던 민혁이 그가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눈으로 그를 쫓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민혁이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나왔다. 바로 옆집? 도어락 커버를 열고 망설이다 머물던 집으로 다시 들어와 베란다 창을 열었다. 개를 키우니까 환기를 자주할 거란 말이지, 소년의 도어락을 망가트리긴 아까워서, 고정된 배수파이프를 밟고 위태롭게 아파트 벽에 붙어 손을 뻗었다.
나이스, 힘없이 드르륵 베란다 창이 열려 읏차. 하고 가뿐히 난관을 넘어 들어온 그가 아무도 없는 집안을 한 번 더 둘러보다가 발치에 걸린 밥그릇을 들어올렸다.꽤나 정갈한 글씨로 '리사'라고 적혀있다.
리사라...
조금은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 거실을 뒤진다. 이사 온지 얼마 안됐네. 딱히 장식품이랄 것이 없는 간소한 집안 살림, 구급상자를 찾아 열어본 민혁이 상의를 벗고 소독약을 들이부었다. 빠르게 멸균거즈와 붕대로 상처를 감은 그가 옷을 꿰어 입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느 때보다 무기력하고, 가치 없는 하루. 차라리 빨리 누군가 날 찾아 머리라도 날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리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악마 같은 녀석들을 모두 썰어버리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품안의 미소 짓는 그녀의 사진이 왠지 묘하게 우울해 보인다. 어째서...어째서 하나도 개운하지 않은 거야. 오랜 기간 고된 훈련으로 상처가 가득한 손을 펴보자 궂은 훈련을 받던 날들이 스쳐지나간다. 모든 과정을 함께한 전우들...나의 전우...
사방으로 피를 튀기며 반으로 잘리던 두개골, 으깨어진 두부마냥 흘러나오던 뇌. 리사와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던 전우를 트렁크에 구겨 넣었을땐 배신감보다는 허탈함이 훨씬 컸던 것 같기도 하고.
소파위에 몸을 깊숙이 뉘인 민혁이 눈을 감고 뜨끈뜨끈해지기 시작한 눈두덩에 한숨을 쉬었다. 열이 날 모양이군. 항생제가 필요한데. 주변을 둘러보다가 일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꽤 넓은 거실에 방이 2개. 대낮인데도 하릴없이 켜져 있던 불을 보곤 손가락으로 가볍게 스위치를 튕겨 불을 껐다. 잠시 서있던 그가 다시금 장식품이 없는 거실을 돌아다봤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네.
▷
결국 깁스를 한 채 나온 리사를 데리고 콜택시에 올랐다. 두 번이나 퇴짜를 맞고 겨우 올라탄 택시. 안내견이라고 설명을 해도 오늘따라 유달리 까칠하게 구는 기사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의기소침해 진달까. 덕분에 내성적으로 변해버린 유권이 그렇게 시각장애인으로 살아나가는 법을 혼자서 깨우쳐나갔다. 물론 함께 대학을 다니던 선배인 태일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혼자서 수 백번은 무너진 그를 타이르고, 채찍질하며 일으켜 세운건 그였다. 참 고마운 사람. 요즘은 졸업논문을 쓰느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겠지.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응시하던 그가 도착했다는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우울하게 문을 열었다.
집으로 가자.
발을 절뚝이며 걷는 리사에게 걸음을 맞춘다. 한동안은 외출을 삼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향해 걸었다.
문 앞에 도착하자 왜인지 리사가 약하게 몸을 떨었다. 왜지? 발이 아픈가? 빨리 집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도어락을 열어 번호판을 손끝으로 더듬는다. 열쇠가 더 편하려나. 아니 일단 열쇠는 떨어트리면 찾기 힘드니까. 천천히 번호를 누르던 그가 왈! 하고 짖는 리사 때문에 흠칫 몸을 떨었다.
쉿, 짖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지도 몰라...
그의 주둥이를 쓰다듬어준 유권이 잠금이 풀리는 소리를 듣고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
집안으로 발을 내딛으려던 그가 우뚝 자리에 박혀서버린 리사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들어가자니까? 목줄을 당겨도 요지부동.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리사..집에 들어가기 싫어? 짖지 말라는 명령에 끙끙대던 그가 옷자락을 물고 있다가 다시 집안을 향해 짖었다.
쉿! 그ㅁ..
리사를 제지하던 유권이 뭔가가 강하게 끌어당기는 탓에 순식간에 집안으로 딸려 들어갔다. 당황해 숨을 들이킨 유권이 상황파악을 하기 바빴다. 사람인가? 왜 아무도 없어야할 우리 집에서 사람이...
우당탕-.
아...
순식간에 돌려져 거실에 쳐박혀 버렸다. 욱씬욱씬 거리는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벽을 더듬는다. 도둑일까? 뒤이어 쾅 닫혀버린 현관문소리에 유권이 좌절했다.
미안, 놀랐어?
귓속에 박힌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게 근사해서 고개를 들었다. 이런 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니, 손끝을 스치는 털의 감촉에 그가 리사를 재빨리 끌어당겨 안았다. 꼬리를 안쪽으로 말고 겁을 먹은 리사도 몸을 떨고있었다. 그래도 같이 들어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누구...누구세요...
글쎄...알면 조금 놀랄까?
가까이 다가오는 그가 느껴진다. 훅 끼쳐오는 소독약냄새, 화약냄새...그리고...비린내? 옅게 풍겨오는 불가리향수...
리사가 영리하네.
하는 말에 움찔, 어깨를 떨었다. 리사를 알아요? 라는 물음에는 대답이 없었다. 조금 더 침착해지자, 침착해지자. 주문을 걸던 유권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생각해봤자, 뭘 해도 그보다 불리했다.
일어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유권이 몸을 일으켰다.
자..이제 나는 널 의자에 묶을거야.
벙찌기도 전에 그가 조금은 경쾌한 목소리로 무시무시한 계획을 줄줄이 내뱉었다.
리사는 침실에 가둬놓을 거고. 걱정마, 밥과 간식은 잘 챙겨줄게. 미안하지만 허튼짓하면 하나 남은 총알을 네 머리에 박아버릴지도 몰라.
▷
민혁이 박스포장용 테이프로 의자에 단단히 묶인 유권의 눈빛을 살핀다.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하나보군, 행운의 여신이 날 향해 미소 짓는 것 같네. 테이프를 던지고 소파에 앉은 그가 뉴스를 틀었다.
쏟아져 나오는 소식을 들으며 캄캄해지고 있는 밖을 바라보다가 커튼을 닫아버린다. 혼자 사는 곳 치고 꽤 넓은 거실을 휘둘러보다가 차곡차곡 정리되어있는 책상 모퉁이의 수첩을 꺼냈다. 김유권, 김유권, 김유권, 김유권. 줄도 엉망, 글씨도 엉망. 착, 착, 착. 수첩을 뒤로 넘기던 민혁이 마지막장에 가까워질수록 정갈해지는 글씨에 유권을 돌아다봤다. 리트리버의 밥그릇에 적힌 글씨가 오버랩된다. 김유권이라..꽤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무심한 듯 수첩을 다시 꽂은 그가 책상에 걸터앉는다. 상처만 소독하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주인이 너무 빨리 와버렸단 말이지. 괜한 일을 벌려 놓은 것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 와서 미안해해도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한동안 뉴스를 보던 민혁이 Good night. 하고 불을 껐다. 의자에 꼼짝없이 묶인 유권이 얕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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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 오늘 일찍올리려했ㅇ으나 바깥볼일이 생겨버려 야심한 시각에 업로드를 합니다.
새우깡님, 바게트님, 해바라기님, 우동님을 비롯해
늘 덧글 달아주시고 또 읽어주시는 모든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파가 이어지고 있네요 ㅜㅜ 다들 감기조심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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