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켰다. 한글창의 하얀 화면을 보니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이 된다. 시간은 이미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랜시간 잠을 자지 못 해 푸석해진 얼굴을 한번 쓸어넘겼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왔다. 한숨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였다. 노트북 위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드디어 손을 움직였다.
「빅스 N 그리고 차학연에 대한 진실.」
*
"학연아! 학연아!! 아악, 씨발. 밀지말라니까. 여기봐!"
"차학연!!!야!"
몸이 제 멋대로 휘청거렸다. 음악방송이 끝나고 나오기만 하면 늘 이 지경이다. 멤버들을 먼저 보내고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학연을 붙잡고, 미는 팬들덕분에 방송국 앞 주차장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되버렸다. 매니저의 보호 속에 학연은 벤으로 들어왔고, 문을 닫자마자 학연의 입에서 자연스럽게도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멤버들 그 누구도 그런 학연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재환이 말없이 가방 속에서 꺼낸 밴드를 건냈을 뿐. 학연은 재환이 건낸 밴드를 받으며 팬들의 밀침에 의해 생채기가 난 손가락에 붙였다. 익숙함은 무서웠다. 데뷔 3년차, 학연과 멤버들은 몸에 늘어나는 생채기만큼이나 점점 익숙해지는 상황들에 지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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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4일 Super Hero라는 곡으로 엠카운트다운에서 빅스가 데뷔를 했다. N은 빅스를 이끈 리더이자, 그들의 든든한 형이었다. 2016년 10월경 N의 돌연 탈퇴 이후..」
학연이에 대한 기초정보를 적어내는데만 한시간이 걸렸다. 도저히 더 이상 글이 진전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학연에 대한 진실을 그리고 거짓을 말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와 한 잔 마시며 다시 자판 위로 손을 올렸다.
*
음악방송 퇴근길의 지옥같았던 시간들이 지나고, 학연은 단독 스케줄을 하기 위해 혼자 케이블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잘 다녀오라는 멤버들의 말에 손을 한 번 흔들고는 벤에서 내렸다. 빅스로서 데뷔 후 3년, 학연은 데뷔초부터 차근차근 밟아왔던 예능을 토대로 이제는 케이블 방송국의 고정 서브 MC를 맡게 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팬들과 그들이 내는 소리로 인해 학연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고 자신에게 웃음을 강요하며 따라붙는 그들에게 어떠한 리액션 조차 할 수 없었다. 매니저가 달라붙는 팬들에게 폭언을 쏟았지만, 더이상 학연은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데뷔 후 2년동안 학연은 어딜가든 이어폰을 꼽지 않았다. 팬들의 힘내라는 소리를 듣는게 가장 큰 낙이었으니까. 그들의 말에 웃어주었고, 그들의 사랑에 고마워했다. 그러나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사랑한다는 말의 무게가 참 가볍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학연은 어딜가든 노래가 크게 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팬들을 향한 매니저의 폭언이 들리자 학연은 어김없이 이어폰을 꼽았고, 사진을 찍는 팬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갔다. 방송국에 들어가자마자 숨이 트였다. 더 이상 팬들은 자신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아니였다.
*
하연은 부장의 재촉하는 전화에 핸드폰을 끈 뒤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시켰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져있는 코트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담배는 하연이 몇일동안 얼마나 긴장하고 초조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빈 통이 되버린 담배곽을 바닥으로 던지면서도 여전히 3줄에서 벗어나지 못한 학연의 기사를 쳐다봤다. 결국 기사를 다 쓰지 못하고 저장한다음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코트를 급하게 입으면서 원룸을 벗어났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연은 그런 하늘을 보고는 욕을 내뱉으며 차 안에 올랐다.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은 하연은 핸드폰에 다시 배터리를 넣으면서 핸들에 고개를 박았다.
"날씨까지 좆 같네."
*
카메라의 빨간 불이 켜졌다. 굳어진 얼굴을 움직여 웃음을 지었다. 차학연이 아닌 빅스 멤버 N으로서 활동을 해야하는 자리였으니. 서로 보이지 않는 견제가 가득한 촬영장이었기에 학연은 더 필사적으로 행동했다. 엠씨의 말에 과한 웃음을 짓기도 했고, 더 과한 리액션을 보이기도 했다. 육체 노동보다 감정 소모는 더 힘든 일이었다. 방송이 끝난 후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잘 했다고 인사하는 동료 연예인들에게 똑같이 가식적인 웃음으로 화답했다.
학연은 대기실에 돌아와서 그대로 의자에 뻗어 누웠다. 그런 학연을보던 코디가 파스를 가지고 와 허리에 뿌려줬다. 장시간의 녹화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학연의 허리는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멤버들보다 더 바쁜 스케줄로 인해 조기에 치료하지 못한게 화근이었다. 허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난 학연의 입에서 얕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결국 학연은 코디의 어깨에 기대어 방송국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미친거 아냐?"
"아 진짜 코디 저거 눈웃음 살살 칠 때부터 알아봤다."
방송국 앞에는 여전히 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학연이 나오자 카메라를 들던 팬들은 코디를 보자마자 인상을 찡그리며 수근거렸다. 너네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한 학연은 평소처럼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벤으로 향했다. 팬이라는 이름의 그들은 학연이 아픈 것보다 자신들의 인형이 여자와 붙어있다는 사실이 먼저 보이는 듯 했다.
"또 레스트한다고 지랄하겠네."
차에 타서 눈을 감은 학연은 조용히 말했다. 뭐라고? 라며 묻는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혼잣말. 공식 계정이 아닌 비공식 계정의 트위터로 학연은 들어가 자신의 홈마스터들의 멘션을 하나씩 읽었다.
「적어도 팬들 앞에서는 그러지 말았어야지.」
「학연아, 실망이야.」
「초심을 잃은게 누구인지 잘 생각해보길. 더 이상 웃지않는 너의 얼굴을 찍는 우리는 우스운거지?」
「오늘 학연이 퇴근길 사진은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학연이가 되길바라며.」
그럴 줄 알았다. 너희는 늘 가벼웠으니까, 내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너희가 이렇게 될 줄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새로운 아이디로 가입해두었던 공식카페에도 역시나 내 욕으로 가득했다. 무슨 일이냐, 변했구나, 초심을 잃은 것 같다. 피드백 전혀 안한다, 지친다 등등의 글을 보고있으니 비소가 터져나왔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그 누구도 내 아픔을 알아주는 팬들이 없었다. 이러니 내가 웃을 수 없는거야. 핸드폰 전원을 끈 학연은 차 시트에 핸드폰을 던진 채로 눈을 감았다.
*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차를 운전해 결국 학연의 집 앞까지 와버렸다. 기자들이 진을 치고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학연의 집 앞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학연은 혼자 살았으니 안 오는건가."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살면서 얼마나 고통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서 내려 학연의 집 담장 주위를 둘러보다 복잡해지는 심경에 마트로 가서 담배를 샀다. 여자가 담배를 사니까 이상하게 보는 아줌마를 보며 재촉하다가 한 갑을 더 달라고 해 두 갑을 받았다. 코트 속 주머니에 한 갑을 넣고 한 갑은 뜯어서 담배를 입에 하나 물며 마트에서 나오니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쓴 채로 학연의 집 앞을 서성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그 자리에서 그 남자를 바라봤다.
"한.. 상혁?"
앞뒤 잴 필요도 없이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그에게 다가갔다. 학연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상혁의 팔목을 잡았다. 벌개진 눈으로 날 쳐다보며, 내 손을 쳐내는 상혁을 보았다.
"스포츠서울, 김하연 기자입니다."
"인터뷰 못 해요.. 그만 돌아가주세요."
기자라는 내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며 다시 자신의 차로 돌아가려는 상혁에게 조용히 말을 건냈다.
".. 학연이에 대한 거짓을 떠드는 기자들과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싶어요. 얼마나 학연이가 고통받았는지 멤버였으니 더 잘 아시잖아요."
상혁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다시 학연의 집 대문을 열었다. 들어오라는 말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상혁이를 보다가 차 안에 놓여져있는 노트북을 챙겨서 다시 학연의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 묻혀버린 학연에 대한 진실, 나는 그것을 풀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학연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으니.
하연과 상혁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싸늘한 학연의 집은 여전히 학연의 냄새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믿기지 않은 듯 쇼파를 쓸어보던 상혁은 쇼파에 앉아서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하연은 노트북 선을 연결하여 아까 다 쓰지 못한 한글창을 휴지통에 집어넣은 뒤 새로운 창을 꺼냈다. 기자들이 뻔히 쓰고 있는 거짓들이 아닌, 진심으로 학연을 위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옆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개 같은 부장'이 뜨자마자 하연은 핸드폰을 받아 욕을 날렸다. 씨발, 자르든 말든 맘대로 하세요 라는 하연의 마지막 말과 함께 하연은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시켰다.
"..뭘 알고 싶은거에요?"
"학연이, 아니 빅스의 리더 N의 지난 5년이요. 빅스라는 아이돌의 리더라는 자리에서 학연이 버텨왔어야 했던 모든 일들을 사실대로 말해줘요. 빅스가 해체 된 후 1년은 제가 가장 잘 알테니까. 상혁씨는 5년동안의 N을 말해주면 되요."
상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학연이 형이 방 안에서 울었던게 아마 우리가 데뷔하고, 대상도 받고 3년차였나 그 때 였을거에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상혁의 이야기에 하연은 녹음기를 킨 뒤 상혁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
"형! 왔어요?"
학연은 여전히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멤버들은 아무 대꾸없이 방 안으로 향하는 학연을 보면서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무슨 일 있었나. 각자 할 일을 하던 멤버들은 학연이 문을 닫고 들어간 방만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밥을 먹던 상혁이 꿀우유를 타서 방으로 향했고, 방문을 연 상혁은 더 이상 학연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멈칫 할 수 밖에 없었다. 집 안에서 우는 학연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첫 쇼케이스 날, 첫 1위 날, 그리고 대상을 탄 날 울었던 것을 제외하면 학연은 상혁의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우는 학연에게 다가간 상혁은 말 없이 우유를 옆에 내려놓고는 방을 나왔다. 자신을 쳐다보는 멤버들의 시선에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학연이는?"
매니저가 들어와 학연의 행방을 물었고, 상혁은 말 없이 고개짓으로 방문을 가르켰다. 한숨을 쉬는 매니저의 행동에 원식은 왜 그러냐며 물어봤고, 매니저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대충 설명을 해주었다. 팬들을 관리해야하는 매니저 대신 코디가 학연을 부축하며 내려왔고, 그런 학연을 보며 팬들이 SNS로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고, 그리고 그게 공식카페로 이어지면서 꽤나 큰 일이 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매니저의 말이 끝나자 재환은 '미/친년들' 이라며 욕을 뱉었다.
상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종종 이제 자신은 팬들하면 지긋지긋하다고 웃으며 말하던게 학연이었다. 멤버들에 비해 독보적인 방송 횟수만큼 학연의 모든 행동은 팬들의 화두에 올랐다. 그런 팬들의 반응을 본 다음부터 학연은 SNS고, 카페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며 상혁에게 말했었다. 그런 학연이 팬들의 반응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앞에선 강한 척 하면서 뒤에서는 누구보다 팬들 반응 하나하나에 민감해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마 이 날 이후로 학연이형 성격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그래도 팬들에게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 감정표현을 하던 사람이 그 다음 날 부터는 웃는 것 밖에 못했으니까. 팬들이 옆에서 난리를 피우든, 뭘 하든 웃는 것 밖에 안했어요. 멤버들은 그냥 학연이형이 웃으니까, 이제 괜찮나보다라고 생각한거죠. 그게 아니었는데.. 저희가 바보같았어요, 그 웃음이 진짜 웃음이 아니라는 것 쯤은 조금만 살폈어도 알았을텐데. 우리도 활동하면서 힘이 드니까, 학연이형까지 돌아 볼 여유가 없었던거죠."
상혁의 말을 받아적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하연의 손이 멈췄다. 학연을 처음 만났었던 때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인턴생활이 끝나고 연예부 정식기사가 되서 처음 맡게 된 인터뷰가 빅스 N의 인터뷰였다.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H.O.T에서 끝났던 하연인지라 요즘 아이돌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그래도 대상도 받고 요즘 가장 유명한 아이돌이라는 말에 성격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긴장하며 인터뷰 장소로 향했었다. 싸가지 없을거란 하연의 생각과 다르게 학연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때는 그냥 잘 웃고, 착한 아이돌의 리더 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혁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조차도 다 가면의 일부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연은 다시 건조해진 얼굴에 마른세수를 했다. 그런 하연을 본 상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냥 그 후로는 계속 잘 해왔던 것 밖에 없어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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