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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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결론적으로 스무 명이 넘는 가족들의 가장을 앗아간 명백한 살인범입니다. 남은 가족들의 생계는 물론이고 정신적 피해들을 고려해 1심의 재판결과를 그대로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한국의 융통성 없는 옛말은 상당히 비효율적입니다. 재판을 내린 한국의 입장에 박힌 시선보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그는 아내를 잃은 피해자였으며, 그런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한국과 미군의 강압적인 처리방식의 희생자였습니다. 1심의 사형은 또 하나의 피해자를 끌어다 묻어버리는 잔인한 판결입니다. 선처해주십시오.
선처라니요, 남은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하나 더 박는 꼴입니다.
검사님, 여기한명의 피해자가 더 있다는걸 잊으셨습니까.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있습니다. 우리는 탄력 있는 재판을 진행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고인 아내의 가족들도 와계신다는걸 잊지 말고 발언에 유의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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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뉴스입니다. 이곳은 워싱턴D.C의 거리한복판입니다. 플로리다에서부터 시작된 한국계미국인인 전 주한미군대위를 옹호하는 서명운동이 시위로 여기까지 번져왔습니다. 일부는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있군요. 여러 방송국에서 그의 미군시절과 전후사정을 편집해 방송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함께 진행한 1심의 결과를 뒤집을지, 뒤집지 않을지는 오늘오후 5시에 공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심판의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판결을 기다려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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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군이었다며?
결혼 후에 주한미군으로 한국으로 갔다잖아. 만약 내가 그라면 나도 똑같이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함께하던 동료들한테 뒤통수를 맞고 지켜주던 한국에게 한대 더 맞은 꼴이지.
그에게는 그때 조금 더 따뜻한 손길이 필요했을 뿐 일거야. 안타깝네. 퇴근하자. 미국시민이 모두 보고 있는데 결과는 곧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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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봤어?
미국도 골치가 아플거야. 그래도 살인죄를 물러줄 수도 없고, 사형을 물릴수는 있어도 석방까지는 바라지도 못하지. 어떤 결과가나와도 그게 판사역량의 까지껏이야. 그이상해주진 못해.
안타깝네. 미국을 지켜주던 사람인데..
#4 Years later.
Florida주, 남쪽 끝.
“Anton! 내 동생의 풍선 좀 구해줄래요?”
“어디 있는데?”
“저기, 나무에...”
울고 있는 어린소녀와 손을 잡고 찾아온 소년을 바라보며 그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Alright, 조금만 기다려. 가방을 내려놓고 자켓을 벗은 그가 가뿐하게 나무에 올라 걸려있는 풍선을 내렸다.
“이제 놓치지 않도록 동생의 손목에 잘 묶어줄래?”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가 안경을 고쳐 쓰곤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갖춰 입은 쓰리피스정장이 꽤나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우와! 고마워요 Antony! 오늘 어디 가나봐요?”
“한국이라고, 아시아야.”
“꽤 먼 곳 같아 보이네요...이제 돌아오지 않는거에요?”
“글쎄, 네가 멋진 어른이 될 때쯤 다시 와서 놀아줄게. 그때까지 여동생을 잘 지키고 있도록.”
“Yes, sir!”
경례를 하는 꼬마를 지나친 남자가 푸르름이 가득한 마을을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루에 기차가 세 번 정도밖에 거치지 않는 정도의 시골.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어 여권과 서류들을 펼쳐보던 그가 안경을 벗고 눈을 문지르다가 오른손을 쥐어보았다. 이래저래 손을 움직여보다가 주머니에 숨어있는 왼손을 꺼냈다. 보기 흉한 화상자국과 꿰맨 자국이 손을 뒤덮고 있었다. 남자는 제한적인 손의 움직임을 확인하곤 다시 안경을 쓰고 시트를 눕혀 몸을 뉘였다. 창 밖으론 커다란 수수밭이 지겹도록 펼쳐지다가 해안선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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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으며 색종이와 씨름을 하고 있던 유권이 꾸깃하지만 완성된 학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책상위에는 다 만들어지지 못한 학들이 즐비했다. 다행이야, 내일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겠어.
주방으로 걸어가는 그를 보고 리사가 꼬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컵을 씻고 리사에게 다가와 그를 쓰다듬는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꽤나 싱그러웠다. 정말 봄인가봐, 리사. 산책갈래? 하네스를 흔들어보이자 리사가 왈! 하고 짖었다. 이정도면 겉옷을 안입어도 되겠는데? 입고있는 아이보리색 니트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현관을 열었다. 요 앞의 공원으로 가자. 말하기 무섭게 저를 이끄는 리사를 느끼며 다시금 웃어보였다.
유권은 태일의 도움으로 얼마 전 교육과정을 거쳐 시각장애아동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그와 달리 아이들은 확실히 선천성이 다수였다. 어두웠던 유권과 달리 천진하기만한 아이들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라서, 그는 꽤나 일이 맘에 들었다.
건널목을 두 개지나 50미터정도 걸으니 만들어진지 얼마안된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풀냄새. 벌써 공원엔 봄기운이 완연한듯했다. 리사와 함께 공원길을 산책하다가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공기 좋지?”
유권의 운동화를 베고 누운 리사가 눈을 깜빡였다. 문득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같이 봄을 맞았다면 좋았을 텐데...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봐요, 아저씨. 나는 4년이 지나도 당신을 잊을 수가 없네요. 기대어진 리사의 머리를 느끼면 발을 까닥거린다. 그후로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밤낮으로 울어대는 통에 태일이 티비 선을 모두 뽑아가 버린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의 소식을 듣기위해 애원했는데, 지금은 태일에게 감사했다. 잊을 수는 없었지만 그와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었으니까. 말끔히 잊어버리기엔 너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는 매일 그와의 기억을 회상했다. 상상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아마 그는 죄수복을 입고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조금 가슴 아팠다. 이제는 옛 추억이 되어버린 기억에 유권이 눈을 감았다. 공원에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의 소리들까지. 그의 싱숭생숭해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바람이 불어온다.
그의 발치에 있던 리사가 엎드린 채로 귀를 쫑긋거리다 몸을 일으켜 킁킁 냄새를 맡았다.
“...왜 그래, 리사?”
유권이 하네스 손잡이를 찾아 잡기도 전에 리사가 몸을 일으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안 돼! 리사..!!돌아와!!”
안 돼...난 케인도 안 들고 왔단 말이야...리사를 잡으려고 일어선 유권이 그의 소리를 들으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야? 어디 있어...? 아름답게만 들리던 소리들이 이젠 리사의 소리를 방해하는 소음 같았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톱을 물어뜯었다. 우왕좌왕 하던 그가 벤치를 더듬어 자리에 앉았다. 무섭다.. 제발 빨리 돌아 와줘...눈물이 막 차오르려할 때쯤 멀리서 리사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사..! 리사! 이리와!”
그를 애타게 부르자 남자의 구두소리와 리사의 뜀박질 소리가 가까워졌다. 품안으로 들어온 리사를 끌어안는다. 다신 날 혼자두지마..리사를 혼내는 흉내를 내던 유권이 하네스 손잡이를 쥐어주는 남자에게 목례를 했다.
“..감사합니다. 제가..잘 안보여서...”
옅은 웃음소리를 들은 유권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날 비웃는거야?
“...지금 웃으신 거에요?”
조금 날이 선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그것 때문에 웃은게 아니에요.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 ”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사과 하는게 느껴져 유권이 오히려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사과안하셔도 되는데... 괜히 예민했던 걸까..무안해져 뒷머리를 긁고 있자 비닐포장이 부대끼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감추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 내밀었다. 코앞에 다가온 그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권이 풍겨오는 향기를 맡았다.
“...프리지아...”
“...노란색이야.”
남자의 목소리를 타고, 그제서야 프리지아의 뒤에 감춰져있던 불가리향이 훅 끼쳐왔다. 꽃다발을 건네받은 유권이 기억 속에서만 수없이 반복되었던 목소리에 입술을 떨었다. 이건...말도 안 돼...
...화,확인해봐도...돼요?
벌써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유권의 눈가를 바라보던 남자가 말없이 안경을 벗고 몸을 낮추었다. 손을 뻗자 그의 뺨이 닿았다.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얼굴. 이마부터 눈, 코, 입과 귀...머리카락까지...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벤치에 앉아 유리구슬 같은 눈물을 한없이 떨구는 유권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리사가 울고 있는 그의 앞에 앉아 꼬리를 흔들고있을 뿐이었다.
유권의 울음이 잔잔해질 때 까지 말없이 기다린 그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사실 다른곳으로 갔으면 어쩌나 걱정했어. 말하는 목소리에 유권이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사갈수가 없었어요..혹시나 기억이 흐려질까봐...
"내가 너무 늦은건 아니지?"
"..물론이죠"
이제서야 웃어 보이는 유권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으로 갈까? 하는말에 손을 잡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잡고 가면 안돼요..? 묻는말에 민혁이 환하게 웃어보였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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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1편입니다. 한두편이 더 있을 예정이구요^&^ 말씀드린대로 에필로그까지 끝나면 텍파본을 가져올 예정이랍니다!
암호닉 주신
우동님, 치코리타님, 새우깡님, 해바라기님, 바게트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늘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분들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