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현의 몫의 음식은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분위기도 내볼 겸, 축 처져있는 백현도 달랠 겸 레스토랑에 온 루한은 곧 체념했다.
백현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 끙끙거리며 앓을 뿐 물 한모금 마시지 않은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니꺼 내가 다먹는다?"
"니 맘대로 하셈"
백현은 아까 상황을 회상해보며 머리를 박고 후회중이었다. 미쳤다.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제 무슨 낯으로 연락한담.
백현은 방금 전 분명히 머리끝까지 짜증이 났던 상태였지만, 정신을 차리고 이성도 차려보니, 찬열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찬열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 섣부른 제 행동 탓이었다. 찬열에게 맞춰, 찬열 위주로 대화를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백현은 찬열과 이 사건을 계기로 연락이 끊어질까 걱정중이었다. 뭐 일반적인 자신의 연락이긴 했는데, 찬열은 그래도 꼬박꼬박 응대도 해주고, 부르니까 나와주기도 하고.
모든게 다 지랄맞고 비이성적인 제 성격탓이다. 백현은 고개를 모로 돌려 입술을 깨물었다.
"야, 똥마려워? 개새끼처럼 왜이렇게 끙끙대. 급하면 화장실가서 싸."
"지랄마"
"아 어 응.."
이렇게 삐걱거리는 상황을 만든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좀 참지. 참지 그랬어. 백현은 테이블에 머리를 쾅쾅 박았다. 몇분간격으로 머리를 박는 백현의 모습이 너무 익숙해 잠시 멈칫하던 루한도 그냥 음식을 삼켜내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찬열에게 연락이 올리는 만무했다. 백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난... 좀더 알아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
민석은 찬열과 백현의 언성이 높아지기 전에 말리려는 요량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째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싶더니 결국 저렇게 일을 치고들 있다.
아직 사회의 눈은 곱지 못했다. 안그래도 시선이 집중되었던 판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굳이 자신들이 이반인걸 알릴 필요가 있을까.
하여튼 제 친구나, 저 사람이나 생각이 짧은 건 매한가지였다. 자신들의 지극히 사적인 일을 가지고 이런곳에서 대화를 나누다니.
친구의 위신도 지켜야했지만, 다른곳도 아니고 자신의 카페에서, 제 눈앞에서, 이렇게 민감하고 자극적인 이슈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민석은 억지 웃음을 띄며 테이블 가까이로 발을 옮겼다. 그러나 백현이 한발 더 빨랐다.
'...그래서 지금 가잖아'
찬열의 표정에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을 포착한 민석은 바보같은 제 친구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오지랖 넓게 백현의 옷깃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곧 거두었다. 백현은 제가 찬열의 친구인 것을 몰랐다.
그리고 알았다고 한들 자기까지 끼면 상황이 더 골치아플게 뻔했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저까지 붙음으로 인해 시선들이 더더욱 모이고 있었다. 알려봐야 좋을 것 없다. 저 둘의 사정은 자신들끼리의 일이다.
백현이 싸늘하게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멈칫했다.딸랑이는 출입문 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민석은 문사이로 금빛 머리카락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백현!'
민석은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에는 익숙한 노을빛 머리카락, 두번째로 동그란 발음의 어눌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것이 소름끼치게 낯익어 민석은 잘못들었을까, 잘못보았을까 싶었다.
눈을 벅벅 비볐다. 숨도 몇번 고르게 내쉬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이런 예기치 못한 익숙함은 좋지않아.
민석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얗게 빛나는 그가 웃고있었다. 환상일까 싶었다. 민석은 빠르게 뒤를 돌아 얼굴을 숨겼다.
아니야. 거짓일꺼야. 지난 몇년간 괜찮았잖아.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잖아. 머릿속에서 버석이는 소리가 들렸다.
거짓일거라고, 환상일거라고, 그렇게 치부했지만 겁이나 뒤돌지 못했다. 진짜일까봐. 정말일까봐. 내가 아는 그 사람일까봐.
'민석!'
동그랗게 내던져진 발음이 들렸다. 그 시절의 잔상이 들렸다. 눈 앞에 황금빛의 파노라마가 스쳐지나갔다.
민석은 걸음을 빨리해 카운터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숨을 죽였다.
유리문을 통해 보인, 백현의 팔을 잡고 가는 그는 내가 아는 그가 맞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카운터 밑으로 몸을 쳐박았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주저앉았다. 온 몸이 덜덜 떨렸다. 들킬까봐.
민석은 그 이후로도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정말 들킬까봐
***
"..."
"내가 자신을 보지 않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응? 뭐가?"
"...아냐 물이나 더 마셔."
백현은 루한이 음식을 마무리하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는 순간까지 음식은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루한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백현을 바라보았다.
그럴거면 니가 먼저 연락을 해. 루한이 커피에 설탕을 더 넣으며 말했다. 너무 맛이 없어서 단맛으로라도 먹어야겠다.
"왜? 커피맛이 다 똑같지 않음?"
"틀려 바보야"
"설탕 그렇게 쳐넣으면 안달아? 그럴거면 아이스크림을 시키지."
커피가 더 좋으니깐. 백현은 중얼거리는 루한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잠깐 루한을 쳐다보았다. 쟨 또 왜 축 늘어져 있어? 그리고 곧 다시 끙끙댔다. 보낼까? 보내지 말까?
레스토랑에 있는 그 짧은 시간동안 백현은 찬열에 대한 화가 다 풀린 상태였다. 오히려 자신이 너무 예의없게 굴지 않았나. 애처럼 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고있었다.
애기들 이야기만 쓰니까 내가 애가 되어가고 있나봐. 애처럼 자신을 보아주지 않는다는 것에 섭섭해 무작정 짜증만 내지 않았나...
섭섭? 백현은 섭섭을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속이 콱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기적이고 못되고 이정도 소홀에도 섭섭한 사람이라..
백현은 눈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그래도..그래도..
역시 명분이 있었어야 했다. 찬열도 말하지 않았는가. 왜 불러냈냐고. 자신은 '보고싶다' 고 사실을 말했지만, 이런 개인적인 감정가지고는 찬열은 어림도 없어보였다.
장난이거나,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할게 뻔했다. 그정도로 콱막힌 사람을 보고싶어하는 자신도 우스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장난으로 생각하는게 당연한거 같았다.
뻔뻔해져야 했다. 찬열과 이정도 일을 가지고 연락을 끊는 것은 말도되지 않았다. 이렇게 끝내려고 내가 아래에 깔려가면서까지 지랄한것이 아니었다.
백현은 곧 마음을 다잡았다. 숨을 훅 내쉬었다. 다시 연락해 봐야지. 자존심은 있어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겠고, 되도않는 명분이라도 잡아채 찬열의 앞에다가 바쳐야했다.
그래야 만나지. 백현은 시원스레 물을 마셨다.
"야 니 문자옴"
마음을 다잡으려는 찰나에 루한이 생각의 고리를 끊었다.
백현은 짜증을 내며 테이블에 놓인 폰을 보았다.
[아깐 내가 미안했어요.]
호오,
명분이 없으면 강제로라도 명분을 만들면 되는 거였다. 찬열이 제게 관심이 없으면 관심이 생기게 만들면 되는거였고, 인연이 없으면 인연을 잇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물러날수 없었다. 이미 자신의 마음은 차고 흘러 범람해 있었다. 이 기묘한 감정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찬열씨? 그사람, '환상'에서 좀 유명해요. 금요일밤마다 섹스상대 나꿔채는걸로.'
제 기억력은 나쁘지 않았다. 관심있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랬다. 바텐더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금요일 밤마다 환상을 들러 잠자리를 갖는 남자.
그에게 관심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제게 이렇다할 특별한 무언가를 갖지않았다. 이번엔 자신이 그를 나꿔채고 싶었다. 그에게 관심받고 싶었다.
끝난게 아니였다. 백현은 찬열에게 온 문자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찬열이 백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문자도 보내지 않았을 터.
단순히 문자지만 그가 자신에게 내민 조그마한 속내를 믿어볼 참이었다. 상황은 마음에 따라 바뀐다. 백현은 이제 모든게 다 괜찮았다.
***
진짜 대박 완전 늦었죠 ㅠㅠㅠㅠ 어떡해요 ㅠㅠㅠ
설이 곧이네요!!! 죄송해서 어떻하죠, 오늘도 짧고
특히나 이번글은 정말 마음에 안들었어요. 그래서 다시쓸까 하다가 그냥 올리긴 했는데
텍스트파일은 정말 많이많이 수정하고 있어요. 틀린부분 이상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좀더 매끄럽게 수정하고 있으니까 혹시라도 ㅌ..ㅌ....텍스트파일을 나눔하게도...된다면.....
어쨌든, 곧 다시오겠습니다!! 설에 할일도 없는데 글이나 짜고 있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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