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여인은 헐레벌떡 방 안으로 들어와 루한의 머리통을 감싸 안았다. 민석이 팔을 뻗어 더듬거린다. 동그란 어깨가 만져지자 다시 한 번 활짝 웃는다. 여인은 퉁퉁 부은 루한의 볼을 두어번 쓰다듬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 민석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곤 여인의 몸을 더듬거렸다. 여인은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꺼내 민석의 입에 까 넣어주었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달콤한 향기과 맛이 민석의 정신을 사로잡는다. 여인의 머리가 아찔해졌다.
고아원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던 여인의 머리를 빠르게 강타해오는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선생님 사랑이 뭐에요?, 선생님 행복이 뭐에요? 순수한 얼굴로, 그 반짝 거리는 눈으로 물어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기 힘들어진 여인은 눈을 감았다. 아직 사랑을 모르는 아이에게 사랑을 가르치려하는, 사랑을 베푸라하는 제 잘못이 컸다.
딱히 병원을 갈 필요가 없었다. 민석이 입 안에 있는 사탕을 돌돌 굴리다가 루한의 손을 잡는다. 여인은 민석과 루한의 맞잡은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루한의 몸이 식어가길 바랬다. 민석의 왼쪽눈이 유난히 예뻐보였다. 하얗게 안개꽃이 가득 핀 민석의 왼쪽눈이. 루한은 그렇게 천천히 체온을 잃어갔다. 루한의 바지에 피가 가득히 맺혀있다. 여인은 살짝 눈물을 훔쳤다. 민석의 눈이 안보이는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루한은 점점 몸이 차갑게 식어갔다.
“루한! 루한!”
“민석아.”
“루우우!”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민석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왜 저와 루한을 떨어뜨려 놓으려고 할까.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민석을 제지하고 천천히 바퀴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왜 그러는거에요? 왜 루한이랑? 여인은 민석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초점없이 흔들리는 민석의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어 말라버린 민석의 눈에서 마지막 두방울이 툭툭 흐른다. 남자가 민석을 들쳐안는다. 힘없이 안겨서 가는 민석의 뒷모습을 보던 여인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 쉬었다.
‘복막염이 오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시간 방치하면 패혈증으로...’
듣기도 싫은 말이었다. 여인은 자신을 탓했다. 제 팔을 긁어 달아나는 루한의 손목을 왜 잡지 못했는가. 왜 그 둘의 싸움을 말리지 못했는가. 왜 루한에게, 왜 그 남자아이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지 못했는가. 민석의 울음소리가 복도를 잔잔히 울려왔다. 고아원에 딸린 작은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수술도, 입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이들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나 더 발라줄 뿐, 할 수 있는거라고는 없었다. 검은 긴 팔의 소매를 걷어 어제 루한에게 긁힌 상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고작 이런 상처도 일상생활을 방해할만큼 따끔거리고 아픈데 복부가 파열될 정도의 고통을 어떻게 꾹 참고 견딘걸까 루한은.
민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췌해졌다. 여인이 입 안으로 까 넣어주는 사탕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입에 넣었다가도 웩 하고 헛 구역질을 하다가 이내 뱉어버렸다. 여인도 점점 지쳐갔다. 매일 민석의 방에 들려 밥은 먹었니, 몸은 좀 괜찮니 하고 물어보는것도, 그에 돌아오는 날카로운 대답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민석의 품에서 루한이 사라진 그 날 이후로 민석은 제 몸에 상처를 하나씩 남기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제가 살아있는지도, 죽어있는지도 몰랐다. 저를 안아줄 따뜻한 품도, 늦은 아침에 일어나 제 머리를 허벅지에 기대게 해 줄 사람도 없었다. 손 끝 마디마디 마다 감각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민석이 선택한 방법은 머리를 뜯어 손 가락에 느껴지는 간질거리는 머리카락의 느낌이라거나, 제 다리, 팔을 긁어 손톱안에 꽉 박힌 살점들을 느끼며 심장이 뛰는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누가보면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 하겠지만 루한의 향기와 박수소리가 없는 민석에게는 가만히 방에 덩그러니 앉아있는것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죽음이라는 것, 죽음. 민석에는 생소한 단어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자살을 어린나이에 지켜본 민석에게는 끔찍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기전 민석을 보며 띠었던 조소며, 맨발이었던 어머니에 발에 작은 유리병 조각이 다다닥 박혀있는 충격적인, 아주 자극적인 장면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석이 앙상하게 마른 자신의 발목을 얇은 손가락으로 웅켜잡았다. 자신의 발도 유리조각이 박혔으면 좋겠다. 엄마처럼. 그러면 루한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 앞은 캄캄하기 그지 없었다. 제 눈을 손가락으로 찔러보아도, 벅벅 두 손으로 비벼보아도 민석에게는 시야따위가 없었다. 어쩌면 바로 앞에 루한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민석은 가슴속에서 작은 돌멩이들이 하나하나 쌓였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제 자신이 원망스럽고 한심한. 민석은 팔로 제 상체를 지탱해 방에서 일어섰다. 비록 제 손을 잡아주는 손이 없었지만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허공에다 팔을 휘두른다. 루한과 함께 갔던 뒤뜰에 가고 싶다. 그리고는 루한이 제 손에 쥐어주었던 길죽한 풀을 만지고 싶다.
민석의 맨발에 늦은 봄의 추위가 쓸쓸하게 불어온다. 거꾸로 신은 신발이며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는 흐릿한 초점이며 민석에게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돌뿌리에 넘어지기 딱 적합한 조건이었다. 민석이 넘어지며 고아원 입구의 활짝 핀 꽃들이 민석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 풀들이다! 얼굴에 화색을 띈 민석이 아픈 얼굴을 두어번 만지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아원 입구, 차가 다니고 있는 도로 앞 고아원 입구에 왼쪽눈에 하얗게 안개꽃이 핀 민석은 활짝 핀 물망초에 얼굴을 묻었다. 민석은 천천히 물망초를 한 송이 한 송이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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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의 꽃말: 나를 잊지 말아요. 다음화가 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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