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을 한아름 안고있던 루한이 뒤를 돌아봤을 때 가만 앉아있어야 할 민석이 보이질 않는다. 루한은 품에 안고있던 강아지풀을 송두리째 떨어뜨렸다. 덜컥 겁이난 루한은 떨어뜨린 강아지풀을 즈려밟고 천천히 침을 삼키고 민석이 있던 자리에 다가갔다.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 함께 고아원에서 지내던 시간 중 루한과 민석은 떨어지는 일이 일절없었다. 잠을 잘때도, 밥을 먹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루한과 민석은 손이라도 묶어놓은 듯 꼭꼭 손을 잡고 다녔고 어딜가더라도 함께 발을 땠었다. 루한이 눈을 질끈 감았다. 목이 메여온다. 뒤뜰. 넓고 넓은 뒤뜰에 보이는건 바람에 흩날이는 강아지풀과 씨를 날리는 민들레꽃 밖에 없었다. 루한은 제 머릿속에 펼쳐지는 그림을 상상하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눈이 보이지 않는 민석이 엉엉 울며 루한을 찾고 있는건 아닐까. 루한의 눈에 그려진 민석은 눈물을 흘리며 목 놓아 우는 민석이었다. 루한은 발걸음을 재촉해 고아원 입구로 빠르게 걸어갔다. 박수를 두번 짝짝 쳤다. 사실 이젠 다 소용 없는 일이었다. 루한 앞에 민석이 있을 때 유효한 언어소통이었지 눈 앞에 보이지도, 귓가에 들리지도 않는 박수소리는 고요하게 고아원을 울렸다.
“루한!”
여인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든다. 눈물로 범벅이 된 눈을 벅벅 비빈 루한이 침을 꿀꺽 삼키며 여인에게 다가갔다. 항상 붙어다니던 루한과 민석이 떨어져있는걸 본 여인이 의아하다는 듯이 루한을 쳐다봤고 눈가가 빨갛게 충열된 루한을 보곤 화들짝 놀랐다.
‘왜그래, 민석이는?’
루한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여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사실 급식실의 개미가 가득한 식판을 치운건 이 여인이었다. 루한과 대화를 하는 이 여인. 작게나마 한숨을 쉬고 처리한 식판을 보고 잠깐 눈물을 훔쳤다. 여인이 끼어들수가 없는 사건이다. 뒤에선 못된 아이들의 여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루한은 여인을 붙잡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며 낑낑 거린다. 민석이, 민석이 좀 찾아주세요. 간절한 말들은 목구멍에서 막혀 입술 밖으로 나오는 말은 끙끙, 거리며 앓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제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친 루한은 답답한 마음에 제 머리를 마구 뜯는다. 작은 손바닥 손가락 사이사이에 여린 머리카락들이 덕지덕지 붙어져 나온다. 여인이 행동을 저지시키자 루한은 엉엉 울며 여인에게 매달린다.
‘갑자기..’
루한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인은 루한을 폭삭 품에 안았다.
민석은 천천히 더듬거리며 고아원 복도를 걷고 있었다. 까슬하면서도 눅눅한 벽지가 민석의 손에 닿자 민석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앞은 보이지 않고 각종 소리로 뒤섞인 복도는 민석의 머리를 어지럽히기 충분했다. 벽지를 짚고 천천히 몸을 끌어내렸다. 복도에 풀석 주저앉은 민석은 손을 더듬거려 다리를 잡아 제 품에 끌어안았다. 민석은 어디에 앉아있는지도, 루한이 어디있는지도 모른 채 가지런히 모은 두 무릎사이에 얼굴을 끼워넣었다. 8살의 작은 체구의 민석이가 동그랗게 말아지면서 더욱 더 작아졌다. 2층 복도 끝에 민석은 앉아서 조용히 목소리를 긁어서 냈다. 루한과 있을 때는 말을 할 이유가 없어 목소리를 꺼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루한이 옆에 없을 때는 조용히 꺼낼 수 있었다.
“루한..”
작고 얇은 목소리가 2층 복도를 잔잔히 울리고 곧 이어 흐느끼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어떤 방의 방문이 철컥 열린다. 민석은 재빨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혹시나 루한이 아닐까 박수를 두번 친 민석은 돌아오는 따뜻함도, 소리도 없어 막 실망을 하려는 참 귓바퀴에 익숙해 지기 싫은, 낯설었으면 하는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괴물”
아까 급식실에서 민석을 괴롭히던 한 아이의 목소리었다. 민석을 괴물이라 말했던 그 아이는 민석에게 천천히 다가왔고 민석은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벽지를 잡으며 위태롭게 뒷걸음질 치던 민석의 등이 퍽 딱딱한 벽과 부딪힌다. 민석은 간절하게 생각했다. 루한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늦은 봄 손에 땀이 차 뚝뚝 떨어져도 좋으니 평생, 죽을 때 까지 손을 잡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민석이 머릿속으로 루한의 목소리를 기억내는 순간 민석의 뺨이 돌아갔다. 8살이 때린 주먹치고는 꽤나 딱딱하고 아픈 주먹이었다. 민석의 여린 입안이 비릿하게 피가 터졌다. 민석은 불현듯 떠오른 감각에 몸이 소스라친다. 피의 비릿한 맛과 개미의 비릿한 맛이 오버랩 되어 민석의 머리를 강타한다. 민석은 아픔도 잊을 정도로 몸을 바들바들 떨어왔다.
“왜이래…….”
제 아무리 고아원의 대장이어도 두려운게 있고, 무서운게 있었다. 한번 두려움을 겪은 아이들은 작고 여린 아이들은 두려움을 피하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을 숨기고 약자에게 더 악을 행하는거다. 사시나무 떨듯 떠는 민석을 보고 아이는 도망치듯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복도에 혼자남겨진 민석은 모래가 잔뜩 묻어 더러워진 제 손을 입 안에 넣고 혀와 입 천장, 볼 등 비릿한 맛이 나는 곳을 사정없이 긁었다. 민석의 손톱이 입 안으로 들락거려 살점을 긁으면 긁을수록 흐르는 피에서 비릿한 냄새가 계속해서 난다. 민석은 목 놓아 울며 제 뺨과, 머리를 때렸다. 다른 곳으로 감각을 돌린다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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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불쌍하고 안타깝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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