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은 오로지 시각만 의지하여 민석을 찾아다녔다. 여인은 민석아, 민석아! 하며 크게 부르고 루한은 휘청휘청 거리며 고아원의 모든 곳을 찾아다녔다. 루한의 머릿속에는 걱정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냥 하얗게 백지장처럼 깨끗했다. 어느정도 눈물을 쏟고나니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여인이 이러다간 루한이 탈수증세까지 보이겠다며 루한을 안정시키려 하자 루한은 가만 표정없는 눈으로 여인을 쳐다보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루한의 몸은 추운 겨울날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아이처럼 떨렸다. 루한의 이가 딱딱 부딪힌다. 그 자식들 짓이다. 루한의 눈빛이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차분히 수화로 여인에게 말을 전할 정신이 없었다. 제 얇은 팔뚝을 잡는 여인의 손을 날카롭게 손톱으로 긁었다. 팔뚝을 잡고 있는 손은 힘없이 떨어졌다.
“누구니?”
한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민석의 귀를 타고 들어갔다. 하얗게 꽃이 핀 눈이 두어번 깜빡 거리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입술이 다 터져 피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민석의 뼈가 선 엉덩이가 아파왔다. 꽤나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는지 민석은 옴짝달싹을 못했다. 사실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두 다리를 감싸안은 민석이 조금 남은 힘으로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민석의 머리의 반틈이 뜯겨져 있다. 남성이 민석에게 다가가려 신발을 바닥에 끌었다. 일부러 소리를 더 냈다. 아까 민석의 하얀 눈을 보았기 때문에 소리를 더 남겼다. 민석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육안으로 보일정도로 민석은 몸을 떨었다. 남자가 한숨을 쉬더니 몸을 돌려 복도를 빠져나갔다. 민석은 다 그만두고 싶었다. 물론 루한과 함께 있는, 풀꽃과 들꽃을 손에 들고 만지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다. 민석이 눈을 조용히 감았다.
“민석아!”
여인의 목소리다. 익숙한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든 민석에게 따뜻한 체온이 훅 끼쳐들어온다.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하얀 눈이 또렷하게 정면을 바라본다.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가지고 싶은것도 없었다. 입 안에 굴러들어오는 달콤한 무언가가 머리를 때린다. 다시한번 느끼고 싶었다. 혀를 감싸도는 그 달콤함을.
루한은 다짜고짜 한 남자아이의 볼에 주먹을 꽂았다. 급식실에서 민석을 보며 히히덕 거렸던 패거리 중 하나였다. 루한은 또래 남자아이보다 체격이 작은편이었다. 그리고 루한이 주먹을 꽂은, 루한의 주먹을 맞은 남자아이는 루한의 체격과 상반되게 또래에 비해 매우 큰 편에 속했다. 남자아이가 제 볼을 쓰다듬으며 루한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는 퉁퉁하고 두꺼운 입술을 벌려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 루한은 입술에 모든 정신을 쏟아 알아들으려 애썼다.
“귀머거리 새끼가!”
루한이 바닥으로 내팽겨쳐진다. 남자아이는 씩씩거리며 루한을 깔고 앉았다. 루한은 지지 않으려 주먹을 들어 제 몸 위에 있는 남자아이의 옆구리를 퍽퍽 때렸다. 힘없이 깔린 루한은 두 볼이 보랏빛으로 물들때까지 사정없이 맞아야 했다. 자신을 깔고 앉은 남자아이의 입술에서 침이 나오며 말을 하지만 들을 수 없는 루한은 계속 입술만 주시했다. 혹시나 민석이 어디있는지 알기라도 할까봐 루한은 정신을 차리고 계속 입술을 쳐다보았다. 찔끔 눈물이 났다. 볼을 강타해오는 단단한 주먹도 아파왔지만 민석이 어디서 자신처럼 맞고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서였다. 남자아이가 벌떡 일어나 루한을 보며 침을 한번 뱉었다. 어린아이의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었지만 자신이 당하고 겪어왔으면 충분히 재현해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 지금 루한에게 침을 뱉으며 발로 배를 퍽퍽 차는 남자아이는 부모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며 살아왔던것이다. 루한은 점점 몸을 새우처럼 동그랗게 말았다. 숨이 턱 막혔다. 그만, 그만해.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 루한은 눈앞에 어룽거리는 민석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또 다시 눈물이 까만 눈동자를 채워들어갔다.
“민석아, 빨리 방으로 가자 응? 거기서 루한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기다릴거야 루한”
민석은 자신의 작은 몸을 끌어당기는 여인의 팔을 거부했다. 여인은 속이 타 들어갈 지경이었다. 터벅터벅 맞은 편 복도 끝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린다. 아까 민석을 보고 뒤를 돌아선 남자였다. 두 손에는 하얀 박스와 사탕꾸러미 한 주먹이 있었다. 남자는 여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남자는 이내 평정심을 찾고 민석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민석이 다시 몸을 움츠린다. 남자는 손에 든 구급용품을 여인에게 보여주며 민석 앞에 무릎을 꿇어 앉았다. 플라스틱이 맞닿는 소리가 들리며 상자가 열렸다. 요란하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민석의 두려움을 더 증폭시켰다.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남자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조심스럽게 남자의 귀에 다가간 여인이 손을 말아쥐며 소리를 차단시켰다.
“이 아이는 지금 치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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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도 나름 불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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