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 토끼와 순진한 여우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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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요?'
전정국의 문자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문자에서도 순진한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 전정국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에게 이러는지 모르겠다. 혹시 과거에 여우 종족에게 당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애꿎은 나를 대신 괴롭힐 만큼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Rrrrrr - Rrrrrr-
'여보세요?'
'기사 뜬거 봤어?'
'기사요?'
'어, 오늘 너 지각한거 기사 떴다. 도대체 왜 그런거야? 오늘 일찍 도착했잖아'
'...죄송합니다'
'뭐 나한테 죄송할 건 없지... 지금 네가 욕을 먹고 있는데... 기사 댓글같은거 보지 말고 내일 촬영하니까 쉬고 있어 아침 8시에 데릴러 갈게'
'네... 쉬세요 오빠'
매니저 오빠한테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더라도 믿어줄 확률도 미지수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럴 테니까, 그 순진한 토끼가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는 믿을 리가 없으니까, 당한 나도 믿지 못하겠는데 남은 더더욱 믿지 못할 것 같았다. 평소에는 여우 종족이라는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이렇게 억울한 느낌이 들 때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우 종족이 아니었으면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내 말을 믿어줄 텐데... 참 씁쓸한 밤이었다.
■■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오늘도 역시 촬영장에 일찍 도착했다. 곧이어 스태프들과 감독님이 출근을 하셨고 일찍 와있는 나를 보고서 미소까지는 아니었지만 눈빛만큼은 따뜻하게 변해 있었다. 오늘 하는 촬영은 본격적인 스토리를 촬영하는 날이 아닌 초반에 나올 개인분량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전정국은 만날리가 없어서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촬영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컷하는 소리와 함께 쉬자는 감독님의 말씀이 들렸고 곧이어 나를 부르는 감독님이었다.
"확실히 여주씨가 소질이 있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여우 종족이라서 그런가?"
"..."
"사람들이 시선을 가게 만드는게 매력이다 여주씨"
"..."
"근데 또 여우치고는 눈빛이 참 맑네"
"..."
"요새는 드물지만 여우 종족인 배우들이랑 작품을 같이 했었는데 그 사람들이랑은 달라 #여주씨는"
"..."
"속상할 필요 없어. 칭찬이니까, 근데- 그 눈빛은 좀 위험해"
"...네?"
"여우 종족이라서 다른 종족들을 유혹하는 호르몬을 흘리고 다니면서 그렇게 맑은 눈빛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이 환장 하지"
"...아..."
"참나, 내가 여주씨 데리고 무슨 말을 하냐, 기분 나쁜건 아니지?"
"...네, 아닙니다. 감독님"
"그럼 다행이고, 자자- 다시 촬영 시작합시다"
미묘한 감독님의 말이었다. 칭찬인 거 같으면서 칭찬이 아닌 오묘한 말이었다. 호르몬을 뿜고 다닌다라... 언젠가 엄마가 조심하라는 말을 하긴 했다. 여우 종족은 다른 종족들에 비해 이성을 유혹하는 호르몬이 강해서 향수 같은 걸로 숨겨야 한다고, 하지만 소속사 사장님은 오히려 연예인은 그런 게 있어야 한다면서 딱히 제지를 안 하셨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딱히 신경을 쓰진 않았는데 막상 감독님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촬영은 계속되었고 내 머릿속에서도 고민들이 사라지고 내가 해야 할 대사와 동작들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감독님의 '컷' 하는 소리와 함께 촬영이 끝났고 다음 장면을 위한 옷을 갈아 입으려고 대기실에 들어갈려는데 나는 보고야 말았다. 촬영장 한쪽에서 가만히 팔짱을 끼며 바라보고 있는 전정국을 말이다.
"어? 정국씨 오늘 촬영 없는데 왜 왔어?"
"아~ 그래도 여주씨가 상대배우신데 어떤 스타일로 연기하시는지 볼려고요"
"아~ 그래? 여주씨 연기 잘하지?"
"네, 잘하시더라고요... 하하 여주씨 안녕하세요?"
역시나 순진하고 맑은 눈빛을 하고서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전정국이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를 피했다. 내 뒤통수에 전정국의 진득한 시선이 따라오는 거 같았지만 애써 무시하였다. 대기실에 들어와서 코디 언니들이 입혀주는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생각에 빠져있었다. 전정국, 전정국... 그 순진한 눈과 어제 나에게 보여준 오묘한 눈빛이 전혀 매치가 안 됐었다.
똑똑똑-
"어? 저 여주씨랑 할 말이 있는데 자리 좀 피해주시겠어요? 단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그 주인공은 전정국이었다. 놀랐지만 예상은 할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새 무례하고도 오묘한 행동을 할 사람은 전정국밖에 없다는 걸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눈은 웃고 있지만 말투는 묘하게 딱딱한 정국이의 말에 코디 언니들은 의문을 품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나의 대기실에서 나갔다. 넓지 않은 이 대기실에 전정국과 나는 둘만 있었다. 코디 언니들이 나가자 웃고 있던 전정국의 눈도 묘하게 변해있었다. 그리고는 불편한 게 있는지 손으로 자신의 미간을 짚으며 나에게 말했다.
"어제 문자는 왜 답장 안했어요?"
"...아"
"내가 답장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까지 했는데"
"그게... 깜빡하고 답장을 못했어요... 미안해요"
"깜빡이라... 뭐 알겠어요"
나의 대답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전정국이었다. 표정은 믿지 않는듯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입에서는 이해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거기에서 용기가 나왔을까 나는 전정국의 행동에 대한 나의 의문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뱉고야 말았다.
"...근데 정국씨는..."
"..."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
"내가 잘못한게 있나요? 어제 일도 저는 이해가 안가고 오늘도 이렇게 필요 이상을 관심을 두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어요"
"...뭐 여주씨는 모를만도 해요. 이해합니다"
"네?"
"여주씨는 모르겠죠, 여주씨의 호르몬 향기와 그 눈빛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
"애초에 여우 종족답지 않는 눈을 가지고 있어요 여주씨는..."
"..."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여우 종족들은 나를 보면서 환장을 하고 달려들었는데 여주씨는 그렇지 않다는게 신기하기도하고"
"..."
"또 우리는 이미 만난적이 있어요. 근데 여주씨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거 같아서 더 자존심 상하고"
"..."
"그 날은 나만 기억하는거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는 말입니다."
"..."
"그래서 그 일을 기억할 때까지 괴롭히고 싶어요. 나는"
"..."
"내 목표는 여우 종족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주씨의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거... 그게 목표에요"
"...정국씨"
"지금도 충분히 울릴 수 있는데 참는 거에요. 나"
"..."
"지금 당장 그 날을 떠올리게 똑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어요 나는"
"..."
"근데 참는거고요. 이정도면 착한거 아닌가?"
"..."
"이제 나가죠. 촬영, 들어가야죠 이제. 또 기사 뜨고 싶지 않으면"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말들만 내뱉고는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전정국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감독님에 이어 전정국까지 언급한 나의 눈빛은 또 뭐고 전정국을 저렇게 화나게 만든 지난날은 무엇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그날을 기억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
그 뒤로 전정국에게 연락이 올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전정국과 내가 같이 촬영을 하는 날이 다가왔다. 특히나 오늘 촬영하는 장면은 키스신. 남주인공인 부잣집 아들이 클럽을 다니면서 반항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그가 꽂힌 여자가 여주인공이 바로 나였고, 망나니 같은 성격을 가진 남주인공이 나에게 키스를 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상황이 클럽이라는 장소에 맞게 평소 입고 다닌던 옷들보다 더 짧은 치마와 노출이 있는 상의를 입었다. 클럽에서의 촬영이 계속되고 드디어 키스신만을 찍으면 오늘 촬영은 마무리가 되는 상황이었다.
"자 이제 마지막 촬영인 키스신이고, NG없이 빨리 찍도록 하자, 오래 지속되면 민망한건 두 배우니까, 알겠죠?"
"네! 감독님 NG 안나도록 할게요"
빨리 끝내자는 감독님의 명령이 주어지고 전정국은 웃으면서 답했다. 이제 전정국은 지나가는 나의 손목을 붙잡고 나에게 키스를 하면 된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작품을 많이 찍었어도 키스신은 떨리는 장면이었다. 내가 떨려 하자 전정국은 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여주씨 떨려요?"
"...아 네"
"걱정말아요 NG없이 갈테니까"
"자자, 레디- 액션!"
감독님의 사인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고서는 서둘러 클럽을 빠져나오는 중이었고 나를 관찰하던 전정국은 이내 나의 손목을 잡고서는 바로 키스를 했다. 감독님의 요구대로 전정국은 진득하게 입술을 부딪혔고 한쪽 팔을 나의 허리에 두르며 나의 몸을 좀 더 밀착 시켰다. 생각보다 격렬한 키스신이었지만 다행히도 혀는 섞지 않는 키스신이었다. 그렇기에 약간의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정국과 나는 고개를 조금씩 움직이며 NG없이 키스신을 마치기 위해서 노력을 하였다. 이내
"컷!"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의 품에서 서둘러 빠져나오려는데 전정국은 여전히 나에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주위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는 반응에 나는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더욱 강한 힘으로 나에게 입을 맞췄다. 당황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입이 벌려졌을까 매끄럽게 들어오는 따뜻한 무언가에 더 이상 반항을 할 수 없었다. 마치 당황한 나를 달래는 듯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것에 의해 멍해졌다. 무엇보다 지금 이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쪽'하는 야살스러운 마찰음과 함께 전정국은 입술을 땠다. 예상치 못한 전정국의 행동으로 인해 촬영장에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심지어 진한 키스였다는 걸 증명하는지 거친 나의 숨소리 때문에 더욱 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정국은 뻔뻔하게도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곤 자기의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장을 떠났다. 전정국의 퇴장으로 인해 스태프들도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촬영장에서 철수하였다. 나는 마치 영혼이라도 빼앗긴 듯이 멍해있었다. 내가 지금 선명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바로 전정국의 향기와 전정국의 부드럽고도 따뜻한 입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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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족한 글에도 신알신을 해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심지어 초록글까지... 감사해요!
암호닉
겨울/ 몽9/ 퍄퍄/ @불가사리/ 해나/ 떡볶이/ 윤쏭/ 볼우물/ 보라색달/ 국이네/ 꾸꾸/ 요로시꾹/ 11000110/ 효비요니/ 0207/ 새싹/ 다니단이/ 꼬취꼬춰/ 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