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도 간다는데 철옹성을 못 부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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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
현여주
“누나도 결국 진심은 아니었던 거네요.”
“동혁아, 나는,”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동혁아, 동혁아? 갈 때 가더라도 누나 말 좀 듣고 가. 동혁아.”
“아 시발 꿈...”
나는 금단 현상을 겪는 중이었다. 동혁금단현상.
내 생각보다 동혁이가 내 일상에 깊고 넓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게 어느정도냐면 10중에 11정도? 어쩌면 내가 당연하게 못 버틸만한 크기로 나한테 있더라고, 난 진짜 몰랐어. 원래 천사같은 게 인생에 들어오면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휘둘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아니요 저 안 울어요. 원래 눈이 촉촉한 스타일. 아, 우리 동혁이 눈이 그렇게 촉촉하니 순정만화처럼... 닥치겠습니다.
일상에서 덜어내고 좀 덜 좋아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그 순간에 커다란 변화가 날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서의 결심이고, 내가 바뀔 마음이 없는 이상 이건 평생을 가도 변하지 않을 문제였으니까. 그래도 말이라도 꺼내본 게 어디야... 난 평생 혼자 동혁이 좋아하며 살다 늙는 게 꿈이었는데.
뻥 안 치고 최근 2년 사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낙을 뒤로 할 정도로 계획 아닌 계획은 세웠음에도 나는 진짜 바보 같아서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면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에 대해 까먹곤 했다.
그럴 땐 내가 뭐 한다고 혼자 이러고 있지, 하면서 핸드폰을 한 번 보면 답이 나온다.
감감무소식 그것은 내 핸드폰을 보고 말하는 것이여.
평소라면 동혁이한테 뭐하냐고, 밥은 먹었냐고 할머니 같은 걱정을 잔뜩 보낼텐데, 부담이라는 단어에 대해 새로이 느끼고 나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니 대체 부담이라는 말은 누가 만든 거야? 정말 제 사랑에 한 획을 그으십니다. 그 한 획으로 제가 우리 코코랑 나뉘고 있거든요.
지극히 동혁이 한정이긴 했지만 나는 기다림에 능숙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우리 동혁인데 내가 기다리는 건 잘 하겠지... 물론 그게 완전한 정답은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확인 했으니까. 홀드키가 닳고 닳아 넋이라도 있고 없고...
야 그래도 나는 연락 하루 종일 없으면 하나 정도는 더 해봤는데 넌 그것도 없냐.
아무 것도 아닌 사이에서 무언가를 따진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찌질하고 초라해서 내 자신이 싫어질 정도였다. 왜 썸타는 사이가 연애하는 사이보다 모든 게 더 힘든 건지 알겠어. 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게 없다.
난 그래도 내가 못난 사람들 중에 제일 낫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지켜온 인생인데 우리 아기사슴이 아기 같아도 휘두르는 힘은 포세이돈이다 이거야. 그에 비하면 나는... 해마...? 동혁이가 창으로 막 휘저으면 회오리라도 좋다고 뛰어드는 멍청이 해마다 ㅅㅂ.
“헐, 미친 전화... 아, 뭐야. 여보세요.”
“목소리 톤 봐라, 딱 보니까 기다리던 전화 아니어서 실망했네.”
“알면 용건만 짧게 하긔...”
“그냥 심심해서 한 거야. 카톡은 하도 안 보길래.”
“졔삼다. 카톡이 동혁이 전용이라...”
요즘 쑥쑥 빠진 동혁이의 자리를 틈틈이 채우는 건 나한테 이런 인생을 걷길 권유한 장본인 되신다. 그래 솔직히 소주 몇 잔에 싸지른 게 있으면 수습도 해야지... 덕분에 내가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 아주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기 사슴 빠진 삶은 좀 어때?”
“그냥저냥 해...”
“진짜?”
“어, 그냥저냥 오늘 내일하며 살아...”
“알바는.”
“하고 있으.”
알바도 다시 찾아서 시작했다. 저번에 했던 곳은 너무 동혁이 집 근처라 혹시 커피 내리다가 달려갈까봐 이번엔 그런 거 못 하게 하루 종일 자리 지키고 있어야 되는 곳으로. 왜 자리 지키고 있어야 되냐면 사장님이 안 나와... 가게에 나랑 원두만 덩그러니... 원두 동글동글... 동혁이 앞니도 동글동글... 미친. 이러니 내가 동혁이가 보고 싶지 안 보고 싶어? 안 보고 싶으면 그게 사람이야?
“끝나고 뭐해?”
“동혁이 생각?”
“오자토크냐고.”
“나 좀 살려줘.”
도선생은 그러니까, 어미 사자 같은 존재였다. 내 목덜미를 물어서 벼랑 밑으로 던진 다음에 못 올라 올까봐 발을 동동 구르다 내가 올라오면 그대로 다시 던져버리는. 가장 쓸모 있지만 굉장히 날 힘들게 하는 존재. 말처럼 그 날 내가 이상한 현타만 안 맞았어도 부담이라든지, 확신이라든지 같은 말은 내 인생에서 그닥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거다.
"야 진지하게 이게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어?"
"적어도 걔보다 네가 먼저겠지."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야..."
"너한테 네가 없는데 걜 좋아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 그 말 레터링 할까? 사스가 명언제조기."
"네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무작정 좋아하니까 확신이 안 서는 거야."
귀에 박힌 말이 머리에 안착했다. 아마 손님 아니었으면 계속 앉아서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썼을 거다. 나랑 얘는 쓸데없이 진지하게 파고드는 걸 잘해서 문제였다. 남들이 보면 철학이라도 공부하는 줄 알 듯. 철알못이지만 네 자신을 알라 그런 거는 좀 알거든요...
"네, 결제 완료 되셨습니다....헐."
"뭐 문제라도..."
"아, 아녀. 제가 잘못 봤네요. 죄송합니다."
미친 이동혁 카톡 왔어.
이 동 혁 카 톡
내가 하루종일 티 안 내면서 목이 빠져라 기다린 그것이 왔다 이거라고. 아악 너무 좋아서 죽어버리면 안 돼 동혁이 카톡에 답장은 하고 죽어야 돼...
누나
어디예요?
알바 중인데
왜?
알바 다시 해요?
동혁이 겨울에 먹을 귤 사주려고ㅠㅠㅠㅠ 벌써 귀여워ㅠㅠㅠㅠ...라고 쓰면 나 진짜 만두머리 되는 거야? 머리에 뇌가 아니라 만두 속이 찬 그런 사람이 되는 거야? 동혁이가 겨울에 전기장판에 앉아서 귤 까먹는 건 너무 귀여운데... 사실이잖아... 귤 옴뇸뇸...
응 누나 통장 구멍났어 거의 뭐 치즈
암튼 갑자기 왜?
아
형이 노트북 충전기 빌려준 거 받으러 왔는데 없길래
왜 니가 와?
그냥요
싫어?
이동혁은 항상 이래.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인생의 난제를 주고 난리... 그거 받아서 30자 이내로 심경변화 및 심리상태를 서술해야 하는 누나의 마음을 네가 알기나 해...? 형 충전기 아니었으면 하루 종일 연락도 안 했을 우리 코코... 정말 누나 심장을 후벼 파...
아니ㅋㅋㅋ 왜 싫겠어
집 비밀번호 6683이야 들어가서 가져가
누나 언제 끝나는데요
왜? 보고 싶어?
아니
그냥요
얘는 뭐 이렇게 그냥인 게 많지. 내가 그냥을 그냥 못 넘겨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좀 억울한데. 매번 그렇게 아무 것도 안 알려주면 어떡해.
나 4시!
알았어요
대체 뭘 알았을까 너는.
달에도 간다는데 철옹성을 못 부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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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생을 살만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가끔 내 생각보다 괜찮은 날이 있기 때문이고 그건 절대 내가 집에 오다가 오백원을 주워서 그런 게 아니라.
"4시에 끝난다는 사람이 왜 5시가 한참 넘어서 와요?"
깜짝 선물도 아니고 저렇게 아무 말 없이 와서 내 기력 보충해주는 동혁이 때문이야... 아니 제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고요ㅠ 아까 알바 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 안 좋아서 땅 파고 들어갈까 했는데 지금은 또 알바 때려치우고 동혁이나 보러 다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나는 얼마나 우유부단한 사람인 것인가... 동혁이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 우유같은 사람이라 그런가...미안합니다.
"아, 걸어와서. 연락을 하지, 그럼 버스 타고 왔을 텐데."
"걷겠다는 사람을 뭐하러 방해해요, 누나가 안 하던 운동을 다 한다는데."
"그래도."
그 뒤로 정적.
아니 오랜만에 보니까 뭐라고 할 말도 없고 주접은 어떻게 떨어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냥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 뿐이었나 봐. 시방 내가 한 마리의 짐승이여 뭐여...
"누나."
"응? 아- 설마 동혁이 너 노트북 충전기 내 방에 있어서 못 가져간 건 아니지? 그런 거면 누나가 친히 가져다주고."
"나한테 화났어요?"
방을 향해 돌렸던 발걸음 그대로 우뚝 멈춰선 건 나였다. 왜냐면 존나 찔리고 화난 건 아닌데 이미 쟤가 저렇게 생각해버린 건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둔 것이 1도 없거든요... 아니 애초에 내가 동혁이랑 왜 이러고 있는지 아는 사람? 네? 저 때문이라고요? 그럼 뛰어 내리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너한테 화가 왜 나. 어떻게 화를 내냐 내가."
"그럼 왜 그러는데요."
"뭐가?"
"누나가 봐도 누나 다르잖아요, 평소랑."
아니 동혁이가 원래 저렇게까지 날 잘 알았다고? 도선생님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을 당신이 보셨으면 그린라이트라고 해주셨을까요? 내가 헛다리 대마왕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 대놓고 나를 위한 순간이라서 그래.
"뭐가 다른데?"
"연락도 잘 안 되고,"
"그럼 너는 왜 안 했어? 네가 먼저 할 수도 있는데."
아, 근데 결국 여기서 못 참았다.
만약 훗날까지 우리 관계가 한 줌이라도 남아있어서 이 날을 씹는 날이 온다면 난 그대로 혀를 깨물 것이다.
"동혁아 늘 내가 먼저였잖아. 내가 평소랑 다른 것도 아는 애가 먼저 연락 한 통은 왜 안해?"
입을 틀어 막아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내 20대 최악의 시기는 이제 스물에서 스물 하나가 아니라 한 없이 찌질해서 동혁이 붙잡고 징징 거린 스물 셋이 됐다. 진짜 현여주 개별로. 개썅별로.
그렇게 말해놓고서 하는 거라곤 방에서 충전기 찾아다 동혁이 손에 넘겨주는 것뿐이었다. 원흉의 충전기... 내가 다음생에 일찍 태어나서 단어를 만든다면 충전기를 황천의 전기곱창이라고 이름 지을 거다. 진심임.
"안 한 거 아니고 못한 거예요. 엄두가 안 나서."
"어?"
그리고 신발 신으면서 하는 이동혁 말은 내가 오늘 당장 눈물로 아마존 강을 새로 파도 할 말 없게 만드는 위치에 있었다.
"누나가 갑자기 그렇게 돌아서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렇게 주인 찾은 신발이 나가고 집 문이 닫히고 나는 한 없이 우울하고 외로워졌다. 나는 그저 나를 확실하게 하고 싶었을 뿐인데,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전부 어려운 거 투성이었다.
그 꿈, 개꿈이 아니라 예지몽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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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싸움도 하는데 좋아한다는 말만 못하는 바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