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도 간다는데 철옹성을 못 부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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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
현여주
조용했다. 문제가 있는 사람 둘이서 걷는데도 그랬다.
개미 재채기 하는 소리도 들리겠네...
상황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든 간에 일단 나는 긍정적이고 싶었고, 그러려고 노력했다. 쉽지가 않아서 그렇지. 사실 긍정이고 나발이고 그냥 둘 다 설명이 없어도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게 좋았다. 한두 번 오고 간 길이 아니라고 티내는 것 같아서. 이게 뭐냐면 사랑하다 못해 미친 사람의 뒷구르기 정도.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분명히 나를 보면서 그런 소리를 했는데.
“나 술 거의 다 깼어, 혼자 가도 돼.”
“늦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 세탁기 돌려야 된다며. 너희 형 그런 거 잘 못하잖아 그냥 두고 오면 어떡해.”
“지금 형 얘기 하려고 둘이 같이 걷는 거 아닌데요.”
“그럼?”
“누나랑 내 얘기 하려고요.”
그리고 흔들림 없는 고요한 그 눈을 보는 순간, 취기가 싹 달아났다. 하다하다 이젠 숙취해소제 역할도 하네. 여명이 무슨 소용이겠니 동혁이가 세상에 살아 숨쉬고 있는데... 어디가 좋은지 물어보면 3박 4일동안 ppt 만들어서 설명도 하겠지만 딱 하나만 고르라면 동혁이는 눈이 진짜 예뻤다. 근데 그 눈이랑 마주보는 게 힘들긴 처음.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나 힘이 셌다.
“...혹시 내가 취해서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얘기면 나중에,”
“왜 계속 피해요. 화 난 거 없다면서.”
정곡을 찔렸다. 제발 그것만은 들춰내지 않기를 바라면서 꽁꽁 싸매 숨겨뒀는데, 곧장 그걸 찾아서 열어보는 건 일종의 재능이었다. 그게 아니면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어서 은근히 잘 보이는 곳에 뒀나 내가.
피한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피한 게 맞았고. 얘는 내가 피하는 게 싫어서 물어보는 것 같았고. 그건 분명 화났냐고 물어봤을 때랑 같은 온도였다. 사람 헷갈리게. 답을 독촉하는 법도 없었다, 어쩌면 독촉하는 법을 모르거나.
정말이지 사람 속이 그렇게까지 떨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상황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게 막상 닥치니까 입이 안 떨어져서.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와중에 정리가 안 돼서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 화난 거 없지. 누나 원래 너한테 화 못 내잖아.”
“화냈으면 연락 없어서 서운했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텐데.”
"야, 그건...”
어디서부터 어떻게 포장해야 전처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됐다. 어렸을 때 배웠다가 성인이 되고 난 뒤에 다시 치는 피아노처럼 대충 두드릴 순 있는데 그걸 연주할 순 없다. 이렇게 계속 두드려보기만 하면 정말 달라지는 게 없을 텐데.
아무 일도 아니라며 그냥 자연스레 걸음을 옮길까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가면 집이고, 도착해서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당장은 피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렇게 가버리면 우리는 그냥 다시 아는 사이잖아. 아무리 관계가 깊어도 얽히지 않으면 그냥 아는 사람에 그친다.
“서운한 게 아니라 억울했어. 네가 연락 한 통 없는 게.”
직접적인 고백도 아니었는데 이미 다 말해버린 것처럼 목 뒤가 서늘했다. 알아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또 그런 식이었나 보다 했을까.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꼭 이런 상황에서는 남보다 못한 사이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르겠어.
“한 번 그렇게 생각하니까 사소한 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생각이 나는 거야.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요.”
“말하면 알아?”
정말 묻고 싶은 건 그거였다. 말하면 알아? 그냥 친한 누나가 동생한테 서러웠나보다 하는 걸로 넘기지 않고 그 뒤에 숨은 걸 볼 수 있겠어 네가?
이동혁은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걸음을 멈췄다. 그게 한 번 말해보라는 뜻 같아서 나는 한숨만 나왔다. 정리, 정리를 하자. 무작정 내뱉지 말고 정리. 그러는 와중에도 괜히 울컥해서 목에 걸리는 걸 삼키느라 애썼다.
“지난 일 꺼내는 거 웃기긴 한데, 내 증명사진 왜 가지고 있었어?”
버릇처럼 한 번 열린 입은 보통 쉽게 닫히지 않는다. 술 마시고 이런 말하는 거 진짜 멋없고 찌질한 거 아는데 말해보라고 한 건 너잖아. 피했는데 계속 찾아온 것도 너고. 오래 품어왔던 마음이고 혼자 가지고 있던 거지만 내 마음은 늘 같았는데 그걸 변하게 한 것도.
“생일 축하 한다는 말하겠다고 왜 그 밤에 뛰어왔어? 나한테 화났냐고 물어본 건? 내가 돌아선 것 같아서 연락할 엄두가 안 났던 건? 또 그냥, 그냥이었어? 매번 그렇게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이라고 하면 어떡해. 난 아무 것도 모르는데.”
결국 끝엔 목이 매였다. 고작 이렇게 따지는 걸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그마저도 어려워서 미루고 또 미뤘는데 결국엔 징징거리는 꼴이 된 것 같아서 서러웠다. 혼자 간직하던 마음이 후회가 되어버린 것도, 지금도.
“여기서 누나가 울면 진짜 나쁜 거 알죠.”
그리고 이동혁 입에서 나온 말은 진짜 의외의 것이라서 나는 입을 다물고 코만 훌쩍였다. 설마 단순히 울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 누가 봐도 그런 표정이 아니긴 했다.
“누나가 애매하게 굴었잖아요, 나한테. 뭐가 억울해요?”
탓하거나 따지는 게 아니었다. 정말 그냥 묻는 말투. 내가 그 말이 아주 진심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건, 평소에 보던 가벼운 짜증 같은 게 아닌 깊은 날카로움이 말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격성은 전혀 없는. 날카로운 척하는, 이미 닳고 닳아 무뎌진 칼.
“먼저 와놓고 내가 가려고 하면 도망가 버리고. 처음에는 친구 동생이니까 예뻐하나 보다, 그 다음에는 친해지니까 장난 하는 거겠지 했는데 그 다음은 내가 어떻게 생각해요.”
“...”
“누나만 모르는 거 아니에요. 나도 몰랐고, 지금도 몰라요. 누나가 하는 말이 진담 같은 농담인지, 농담 같은 진담인지. 누나가 제대로 알려준 적 있어요?”
너에게서 나에게로 막 쏟아지는 그 말들을 듣고 아주 잠깐, 네가 주고 싶은 것과 내가 주고 싶은 게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말하는 네가 그렇게 말하던 나랑 닮아서.
“매일 나한테 좋다고 하면 뭐해요, 그 다음엔 늘 웃어 넘기기만 하면서.”
그제서야 나는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 비가 온다고 해서 창가에 둔 풀이 그 비를 맞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창을 열고 비가 내리는 곳에 화분을 옮겨야 비로소 풀은 물을 만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방향으로.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 속은 어떤지 신경도 안 쓰잖아요.”
마음을 나누는 데 있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이다. 서투르고 멋 없어도 이게 내 진심이니까. 진심이면 상대방이 충분히 알아줄테니까.
“신경 썼어. 엄청. 그걸 제일 신경 썼어, 네가 어떤지.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야. 웃어 넘긴 게 아니라, 웃음으로 가린 거야. 네가 어떨지 모르니까.”
그냥 아는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되는 순간은 그렇게 복잡한 말로 시작하지 않는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어른스럽지 않아도 괜찮았다. 몰랐던 진심을 알았다는 것부터가 중요한 거니까.
나는 정말 몰라서. 가끔 혹시나 했던 것도 다 내가 혼자 하는 상상에 불과할까 봐. 그래서 일부러 더 모르는 척 했는데.
“나도 겁 많고, 먼저 다가가는 거 무서워. 근데 무서운 것보다 네가 좋은 마음이 더 크니까, 다 모르는 척 하고 있었던 거야.”
늘 기다렸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기다리기만 했다 너를. 내가 네 앞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네가 먼저 뒤돌아보는 날을 기다렸어. 우리가 나란히 걷고 있다는 걸 몰라서.
“좋아해요?”
물음과 확정의 중간이었다. 끝이 올라간 것도 내려간 것도 아닌, 고백과 확인. 서러웠던 건 어디 가고, 그 말 한마디에 주체할 수 없이 속이 간질거렸다. 가장 행복한 순간 곁에 있는 사람과 곁에 있으면 행복한 사람. 그 기준에 서 있는 게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좋아해.”
“알았어요.”
뭘 알았을까 너는.
달에도 간다는데 철옹성을 못 부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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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도둑.”
“죽는다 진짜.”
“어제도 그렇고 왜 우편함 뒤지냐고 자꾸.”
“아니, 야 여기 있는 젤리 봤어?”
텅 비어있는 803호 우편함을 가리키자 한 번 슬쩍 본 녀석이 어깨를 으쓱인다. 짜증나게 미국식으로 대답하고 난리야... 맥도날드도 한 번 못 가본 게...
“내가 먹었는데?”
“뚫린 입이라고 아무 거나 막 넣네. 그거 동혁이 건데 왜 네가 먹어.”
“이동혁은 네가 또 사주잖아.”
“질투?”
“혈투 벌이고 싶으면 그딴식으로 말해라 진짜.”
어제 밤을 새웠더니 잠이 싹 달아나서 오랜만에 아침 일찍 젤리 수거 하러 왔는데... 헛걸음을 했다. 차라리 다행인가, 동혁이가 발견하기 전에 없어졌으니까. 아니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저건 남 젤리 주워먹은 주제에 뭐가 저렇게 뻔뻔해? 듣다보니 화 나서 멱살을 잡아 짤짤 털었다. 내 눈물과 수치가 담긴 젤리였다ㄱ
“...뭐하냐 둘이.”
인생은 정말이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느 시간에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런 마주침은 너무, 너무하잖아...
익숙한 소리가 들리길래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고개를 돌려야 되는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난 어제의 내 흔적만 찾아서 가려고 한 건데 얼굴까지 마주치면 좀 당황스러운 게 아니라서.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 사람이 그렇게 정신 놓고 고백하고 나서 그 다음날에 태연하게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 할 수 있겠냐고요. 다들 연애 시작은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앞으로 삼개월 정도는 피해 다녀야 될 것 같은데.
“너 미래의 아주버님 멱살 잡아도 되냐?”
“네가 그 전에 호적에서 파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누나 나랑 결혼한다고 그랬어요?”
“아니? 오해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얘가 너 처음 본 날 그 소리 했어.”
“미친놈... 웃냐?”
“웃는다고?”
미친... 동혁이가 웃었대... 결혼 얘기 듣고 웃는 걸 보면 진짜 사랑은 사랑인가 봐... 하, 이 기쁨을 인생에 다 풀고 가려면 다음 세기까지는 살아야겠는데. 역사책에 이동혁 이름 석 자는 남겨야 여한이 없겠는데.
“동혁아 너 누나랑 결혼할 거야?”
“내가 왜요.”
“사랑하니까...?”
“생각해볼테니까 일단 둘이 좀 떨어져요.”
“...질투?”
이 집안은 형제가 나란히 질투라는 말에 알러지가 있나 애써 모르는 척 오져버리고... 귀여운 뽀짝쁘띠코코... 질투한다고 하기가 그렇게 어려워서 둘이 떨어지라는 말하는 건 하는데 아직 질투라고 인정은 못 하겠나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악 개귀여워 내가 저걸 안 보고 살 생각을 했다니 나 또라이였네... 아, 근데 방금까지 나 세 달 정도는 뭐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꿈인가.
“야, 연애는 둘이 나가서 해.”
“그래, 우리 어디 갈래?”
“누나 알바 했던 데요.”
“...굳이?”
“가깝잖아요. 슬리퍼 신고 왔으면서 말이 많네.”
시발... 개좋아 어떡해. (코를 틀어 막는다) 지금 나 많이 걸으면 발 다치거나 아프거나 시렵거나 그럴까봐 걱정하는 거지? 이건 아니라고 하면 그 놈의 이마에 하트모양으로 멍을 수놓아 줄 것이다. 왜냐면 저는 사랑하는 중이라 하트 아니면 표현 불가.
사실 어제 밤에 할 말 못할 말 다 털어놓고 '알았어요' 같은 말로 대화가 끝나버리는 바람에 집 들어가면서부터 씻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종교가 불교였던 것 같은 기분... 내가 다닐 곳이 어리둥절...미안합니다. 동혁이 극락에만 가게 해주십쇼...
아무튼 한참을 잠도 못 자고 이게 뭐지 하며 뒤척였는데 이동혁은 이동혁이었다. 날 모를 리가 없었다.
누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까 알았다고 한 거 뭐야?
카톡이 왔길래 뒷말 오기도 전에 그렇게 물어봤더니 1 사라짐과 동시에 전화가 왔다. 살면서 동혁이가 답답해 하는 거 여러 번 봤지만 그렇게 목소리만으로 답답함을 표현하는 건 처음 봤다 진짜로.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아니... 헷갈리잖아...”
-눈치가 그렇게 없어서 어떡해요?
“눈치는 없지만 이제 네가 있으니까 누나는 괜찮아...”
사람이랑 밤새 통화할 수 있다는 걸 오늘 새벽에 처음 알았다. 동혁이는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는지 내가 물어보는 족족 깔끔하게 대답해줬다. 누구보다 좋은 사람인 건 알았지만 이동혁이 가진 좋음은 사람 하나를 잡고도 백 명은 더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말로만 들었던, 핸드폰이 뜨뜻해져서 반대로 돌아누워 통화를 이어나가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는 꼭 경험을 해봐야 아는 거였다.
이게... 진짜, 진짜 좋은 건데... 되게 좋은 거라서 엄청 좋거든요, 그래서 표현을 해주고 싶은데 너무 좋아서 어렵네. 이렇게 모자른 사람도 사랑해주는 동혁이는 아마 전생엔 천사 그 전생엔 에로스 뭐 그런 거 아니였을까?
“누나 근데 진짜 나 처음 본 날 결혼하겠다 그랬어요?”
현생엔 요정이니까...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듯이, 동혁이랑 나도 여전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예전의 우리를 보듯이 어쩌면 약간 의아해 하며 넘어갈 수도 있다. 근데 나는 그게 아니라서. 어제와 오늘의 이동혁이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충분히 알고 있어서 이런 작은 변화를 느낄 때 맥박이 제철 생선처럼 펄떡였다. 숨도 좀 가쁜 것 같고... 사랑이 사람을 잡아먹네요.
“왜, 놀라워?”
“아니 뭐 겁 많다 어쩐다 그러더니 다 거짓말이었나 싶어서.”
“...그, 인간적으로 어제 일은 꺼내지 말자.”
쪽팔려 미친. 아까 일어났을 때만 해도 어제 했던 말 곱씹으면서 세수하려고 받은 물에 얼굴 처박을 뻔 했다. 세면대에 머리 내리칠까 오백 번 고민하다가 동혁이 볼 생각에 겨우 참고 욕실에서 나온 게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혹시 누나 헷갈린다고 울고 있을까 봐 전화한 거였어요.”
“동혁아 내가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 닥칠래?”
“핸드폰에 저장해 둔 이름도 바꿀까 생각중인데. 겁쟁이로.”
“그건 뒤에 하트 붙이면 인정해줄게.”
[이동혁 집과 가까운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시작했던 알바였다. 그래서 다시는 못 올 줄 알았지 나는.
알바생이 하나 둘도 아니었고, 당연히 모를 줄 알았던 사장님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시길래 나도 어색하게 인사했다. 짧든 길든 인연이라는 건 무섭다.
“다시 올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했죠.”
“함부로 내 마음 읽지 마. 그거 위험한 짓이야.”
“무슨 생각을 하길래.”
진심으로 한 대만 때려볼까 하다가 소중한 짝사랑의 긴 추억들이 생각나서 참았다. 다른 건 다 그냥 넘어가겠는데, 계속 놀리는 투라서 없던 쪽팔림이 계속 피어올랐다. 그 말들 없었으면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 텐데 웃음이 나오냐 이 깜찍한 자식... 그럼에도 너무 사랑스러워...
“솔직히 어제 욱해서 과장한 것도 있죠.”
“미안한데 그건 아니야. 너 짝사랑 2년이 쉬운 줄 아니?”
“텃세 부리네, 나도 누나 오래 좋아했거든요?”
“...아, 심장 제세동기 들고 나온다는 걸 깜빡했네.”
이동혁 만날 땐 그게 필수품인데... 내가 너무... 안일했어... 괜찮을 줄 알고 팔랑팔랑 그냥 나온 것 봐... 요즘 좀 교류가 뜸했다고 빠져가지고.
“그게 왜 필요해요.”
“심장이 아프니까...”
“언제는 심장이 아파서 예쁜 동혁이가 필요해 이러더니 딴 소리 하네.”
“뭐? 결혼 하자고?”
너 내가 웃는 거 다 봤다. 아니 어느 누가 나랑 동혁이랑 이러고 있을 거라고 상상 했겠어? 일단 저는 했는데요. 나는 이미 인생 계획에 동혁이를 다 끼워가지고 이럴 거라고 상상은 하면서 살았어. 미 그렇게 정했고 되돌릴 수 없습니다. 노 빠꾸. 이제야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겠는 거야, 누구랑 살고 싶은지 확실하게 깨달아서...
“코코야 누나한테 인생을 맡겨 봐... 진짜 한 번만.”
“이번 생은 한 번뿐인데요.”
“하이... 아임... 리틀디어 라이프... 컨설팅 매니저...”
“뭐래.”
“너 자꾸 그렇게 웃으면 진짜 잡아간다.”
“이미 잡았잖아요.”
잡아서 아무도 모르는 섬으로 데리고 튀겠다는 소리였는데 저렇게 예쁜 얼굴로 그런 귀여운 말을 하면 좀 내가 쓰레기인 것 같으지 (코쓱) 내가 마약은 안 해봤지만 그것보단 동혁이가 환각 효과가 뛰어난 것 같아요... 계속 우리가 결혼하는 미래가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이게 환각...이 아닐까...
“그럼 손도 좀 잡아줘.”
“참 내.”
그러면서 잡아주는 게 좋은지, 손 잡는 거 자체가 좋은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누가 물어보면 진짜 할 말이 없다.
“동혁아, 내가 왜 좋아?”
“몰라요.”
“진짜 너무한다.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
“뭐가 너무해요, 왜 좋은지 몰라서 좋은 건데.”
“진짜 너무할 정도로 좋다는 뜻이었어.”
좋은 이유는
없거나, 셀 수가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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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 중에 4편으로 나눠서 쓴 글은 이게 처음인 것 같네요?
다들 결말 걱정하시던데 저는 해피엔딩만 보고 달리는 사람입니다... 병임...
아래 더보기란은 후기인데요?
안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하...
더보기 |
-후기- 그러니까 아주 tmi적 설명 타임입니다. 저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뭐든 내용에서 잘 안보이는 것 같으면 일단 덧붙이고 봐야...(코쓱 철벽 동혁이 같은 경우는 간단하게 '연하 철벽남'에서 시작했다가 다들 좋아해주셔서 몇 편 더 쓰다보니 누나의 태도가 상당히 애매하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서가 진정한 시작... begin... 그래서 생각을 한 게 긴 시간을 이렇게 둘처럼 보냈던 사람이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확신을 갖는게 가능할까...하는 이상한 생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어요. 누나 같은 경우는 겉으로는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는 편이었지만 그게 너무 가벼워서 동혁이한테는 진심으로 안 느껴질 것 같았거든요. 오히려 동혁이가 지나가듯이 한 두마디 하는게 더 큰 무게로 느껴지고. 동혁이는 누나한테 너무 좁게 굴었고 누나는 동혁이한테 너무 얕게만 보여준? 제일 친한 것 같아도 서로 방어적으로 행동한 게 가장 큰 걸림돌이자 둘이 서로에게 확실한 마음이 있다는 불씨가 됩니다! 둘이 서로를 그냥 예쁜 동생/좋은 누나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굳이 방어적으로 굴 필요 없었을 거예요. 겁날 게 없으니까. 잠깐 언급했지만 동혁이가 스물한살이 되고 썸이나 미팅이 없었던 건 그린라이트가 맞았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깊어졌다는 걸 의미하고 있어요. 아무 말이 아니라 내가 쓸 땐 그랬는데 그게 쓰고 나니까 안 보여요? 아무튼 사랑을 정말 모르는 두 사람이 그저 서로가 좋은데 겁이 나서 이렇게 숨고 저렇게 숨다가 결국 부딪혀서 펑 터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에피소드 형식으로 써서 티가 안 났을 뿐 생각보다 서사가 좀 있었다는 것... 사실 누나 손해가 크긴 했어요. 단지 두 살 많다는 이유로 ㅋㅋㅋㅋ 솔직히 스물셋도 어리잖아요? 근데 뭔가 두 살 어리다는 이유로 누나한테 못 전하는 마음이 있고, 두 살 위라는 이유로 못 전하는 게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결국 까보니 둘이 전하고 싶은 게 너무 닮아 있었다 뭐 그런 거죠 뭐... 말하다보니 길어졌네요! 그만큼 애정이 많이 가는 글이었다는 뜻입니다. 저는 쓰면서 굉장히 즐거웠는데 그만큼 많이들 좋아해주셔서 다행... 다 덕분이에요 땡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