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48분 오늘도 역시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세이프!' 스마트폰 화면을 띄워 시계를 확인했다.
강의실까지 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빠듯할거라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했다.
수업시간은 오후1시... 첫수업치고 상당히 늦은 시간인데도 일찍 도착하는 것이 영 쉽지가 않았다. 내가 뭐 보통 게을러야지
윤리를 다루는 지루한 내용의 교양인데다가 독강이라 영 달갑지 않은 수업..
음료수를 한 개 뽑은 후 강의실로 서둘러서 들어갔다
'뭐야...내가 맨날 앉는 자린데 사람이 먼저 앉아있네?'
자리를 미리 잡아줄 친구가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그냥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내가 항상 앉곤하는 자리에 당당히 앉아있는 남자. 그런데 어쩐지 낯이 조금 익숙하다
'아 쟤 우리과 아닌가? 어디서 몇 번 본 것 같은데....아 맞다 쟤 13학번 김..지원? 이랬나? '
학기초 신입생 환영회 때 -지나칠 정도로- 호탕한 학회장 옆에서 조용히 마시던 사람이었지 좀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상당히 취기가 돌아 실없는 소리를 해대던 학회장 옆에서 조용히 맞장구를 쳐주며 나지막한 웃음을 흘리던 모습이 기억이 났다
쟤도 독강인가 혼자 앉아있네..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 옆자리에 앉았다.
남자도 나를 알아보는지 눈인사를 했다 살짝 어색했지만 교수님이 도착하셨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필기와 낙서를 번갈아가며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남자가 갑자기 자기 책에 글씨를 쓰더니 내쪽으로 들이밀었다
'나 그 쪽 아는데'
뭐야 ...깜짝이야 그래도 먼저 아는척을 해줬으니
'저도 그쪽 알아요'
'우리 같은 과잖아요'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그랬더니 예전처럼 그 슬쩍 날리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김지원이라는 남자. 젠장, 수업이 묘하게 집중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후 전공 수업을 듣기 위해 가방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의실 문을 나선 후 계단쪽을 향해가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네?" 하고 돌아보자 김지원이라는 남자가 서있었다
근데 이렇게 키가 컷었나? 앉아있을 때만 봐서 이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나보다 머리 한개 반은 더 클것 같았다.
나를 불러세우더니 갑자기 무뚝뚝하게 핸드폰을 내민다
"번호좀 찍어주세요"
"제 번호요? 왜요? "
"아 그 저 수업 독강이라 뭐 빠지고 이러면 뭐 물어보게요"
과가 규모가 워낙 커서 마주칠 일도 잘 없는데다가 접점도 없는데...그래도 뭐 먼저 다가오는데 쳐낼 필요는 없지
번호와 이름을 핸드폰에 찍어준 후 돌려줬다
"...이름이 김익인이에요? "
"네 근데 저 지금 수업가야돼서"
내가 바쁜 사람 붙잡았네 빨리 가봐요 하며 나를 보내는 남자
이름도 이쁘네-
뭐야 방금 내가 뭘 들은거지? 잘못 들은건가?
근데 그걸 떠나서 방금...웃은건가? 웃을 수도 있는거였어? 항상 무뚝뚝해보여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줄은 몰랐다
차가워보이는 평소 인상과 달리 웃는 얼굴은....눈웃음 지을 때 눈이 저렇게 접히는건 반칙이야 정말...
듣는 시늉만 한 전공이 끝난 후 사물함에 책을 넣으며 폰을 확인는데 톡이 몇개 와있었다.
그 남자 -김지원-에게서 톡이 몇개나 와있었다 빠르기도 하네
-안녕 익인아-
-사실 나 너 이름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근데 신환회 때 이후로 안보였는데-
-처음 봤을때부터 친해지고 싶었어 이뻐서-
몇줄 되지도 않는 내용이었는데 읽고 나서는 얼굴이 빨개졌다
화법이 무슨 기승전결에서 전은 빼버린듯한 화법....왜 당황스러움은 나의 몫인가요...
뭐야 이름 알고 있었으면 처음부터 안다고 하던가 하고싶은말만 하는 이 사람.... 어떻게하면 좋지
근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거지?
신환회 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퍼부어선지
마지막으로 술게임을 한 다음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의 기억은 흐릿해서 그 때 말해줬는지도 모른다
'아 맞다....그 때 벌칙걸려서 에프엠하고...한 잔 마신다음에... 맞다!'
치욕의 에프엠을 한 후 옆 테이블에 있던 김지원이 내 옆자리가 빈 다음에 바로 안착했던 것이 생각났다
'안녕'
'방금 보니까 목소리 장난아니던데'
'아 뭐에요~~ 선배? 아 몰라 놀리지 마세요오오 아 그건~ 벌칙이고 아 작게하니까! 아! 자꾸 사람들이 안끝내주니까!'
취해서 혀를 마구 꼬아서 말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에....생각해내기도 싫었던 기억들을 헤집으려니까 괴롭기가 그지 없었다
그리고 뭘 했더라?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번호를 찍어달라며 내미는 핸드폰 자판을 못누르고
이상한 애교를 부렸던거 같은데
안되겠다 없던일로 해버려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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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 같은 선배 하나만 있었어도
제 학교 생활이 한 200배쯤 더 즐거워졌을텐데...ㅠㅠ
지원아...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