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데, 정말 국토대장정만 하고 집에 갈 것 같은 느낌이었어.
벌써 열시가 다 되어 가는데, 밥 생각은 별로 없어서 그냥 근처 카페에 들어왔지.
화장실을 갔다왔는데, 지민이 휴대폰을 어이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더라.
내가 맞은 편에 앉자 휴대폰은 바로 내려 놓는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 봤어.
"왜?"
"아, 카톡하고 있었어."
표정이 안 좋길래. 무슨 일 있나 했지. 누구길래 그래.
옷을 정리하면서 앉는 나를 보면서 지민이 카톡 내용을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어이없다는 듯이 웃더라고.
누군데. 뭐라 그랬길래 자꾸 웃어.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는지 계속 헛웃음만 짓고 있길래 더 궁금해진 내가 지민의 팔을 잡고 흔들며 계속 물어봤지.
화장실 간 사이에 무슨 카톡을 하셨기에 이러실까.
"별거 아니고, 김태형이랑 톡 했어."
아. 대답을 보채던 내 행동이 이름 하나로 정지. 그렇구나.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왜 알 것 같지.
이름 하나만 들었을 뿐인데도 주위가 씨끄러워지는 기분이었어.
인간 비글. 왜 다들 주위에 인간 비글이 있으면 진짜 강아지 비글이랑 붙여 놓고 싶다고들 하는데.
김태형은 아님. 붙여 놓으면 진짜 으르렁거리면서 싸울지도.
"얘가 너랑 나랑 사귀냐고 자꾸 물어보네."
"아니라고 했는데?"
"응, 말 더럽게 안 들어."
냅둬. 원래 자체 필터링 잘 하는 애잖아. 뭐라도 잘 해야하지 않겠어.
왠지 김태형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서 금방 수긍이 되더라고.
걔랑 사귀는 내 친구도 참 보살이지. 아닌가, 좋아하는 애한텐 틀린가.
박지민도 그럴까 싶어서 갑자기 궁금해졌어.
18년을 지켜 본 결과로는 얘가 워낙 상식 밖으로 벗어난 독특한 얘라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남의 생각이나 속마음까지 들여다보고 그런 건 아니니까 혹시 모르는 일이었지.
얘도 막 좋아하는 여자 애 앞에서는 진지해지고 그럴 수도 있잖아.
사실 잘 모르겠는게, 얘가 여자 애들이랑 노는 걸 못 봐서.
하긴 어떤 여자 애가 미쳤다고 박지민이랑 놀겠음.
헐 나 미친년인가 봐…… 생각해보니 내가 박지민이랑 놀고있네.
엄마 미안해, 딸이 미친년이야.
아니지, 원인 제공은 우리 엄마한테도 있으니까. 쌤쌤.
아니야, 사실 내가 여자가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면 미친년이 아닌데.
와 미쳤다 진짜. 얘랑 놀았더니 나도 정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네.
나는 천상 여자이다. 나는 아름다운 여자야.
아무튼, 일단 궁금한 게 먼저여서 박지민한테 얘기 했어.
"너도 다른 남자 애들처럼 좋아하는 여자 애 앞에서 행동 달라지고 그래?"
아까 카톡을 보던 표정으로 픽 웃는 녀석.
질문이 너무 이상했나. 여자 애들도 달라지긴 하는데.
나도 달라지는 편이고. 아 생각하니까 열받네.
내가 그 새끼들한테 얼마나 잘 해주고, 얼마나 조신하게 굴고. 그랬는데, 나를 차다니.
물론 나도 찬 적이 있지만. 차일 것 같아서 먼저 말한 거 절대 아님.
"나는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응, 그래.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나중에 김태형한테 물어봐야겠다.
네가 그렇지 뭐. 근데 진지하게 말하는 거지만 좀 달라야 해.
너 그 성격으로 계속 했다간 좋다고 달라 붙은 여자 애도 떨어져 나갈 걸.
이건 소꿉친구로써의 조언이니 새겨 듣도록.
내 말은 귓등으로 쳐 듣는 건지 메뉴판만 보고 있는 박지민.
그래 네가 연애하는 거지 내가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원래 시키던 대로 아이스 민트 모카를 시키고나서, 주문을 하고 오겠다며 일어나는 지민을 굳이 말리지 않았어.
쟤 보나마나 또 똑같은 거 먹겠지. 아무튼 민트 겁나게 좋아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뭐. 예전엔 카라멜 마끼야또만 주구장창 먹더니.
내가 먹는 걸 한번 뺏어 먹더니만, 거기에 또 푹 빠진 모양이었어.
한참동안 안 오길래 왜 안 오나 싶어서 뒤를 돌아 봤는데, 아예 받아서 온 모양인지 손에 들고 오더라.
내 앞에 민트 모카를 내려 놓는데, 뭔가 이상했어.
"야, 이거 아이스 아니잖아."
내 부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더니, 이내 맥 빠진 표정을 짓는 지민.
지금 보니까 저도 따뜻한 걸로 시킨 모양이더라.
아니 시원한 거 먹고 싶어서 그거 시킨건데 왜 네 멋대로 바꿔 온거야.
툴툴 거리면서 이미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더니 지민이 말했어.
"밖에 추워."
"그게 뭐."
"요즘 감기 걸리면 고생해."
독하대. 내 친구도 감기 걸려서 한달을 꼬박 고생하더라. 병원까지 가서 약 받아왔는데.
종합감기약도 안 들던데. 열 나고 몸 시리고 그런대. 몸살이랑 같이 오나봐.
아무튼 넌 걱정하고 따뜻한 거 시켜와도 툴툴거리냐. 기집애가. 좀 예쁜 말 좀 해봐.
내가 미쳤다고 너한테 예쁜 말을 하겠냐. 무슨 이득이 있어서.
김태형 친구라고 헛소리하는 건 둘이 닮았네.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자 인상을 찌푸리는 녀석.
뭐 그러다가 별 얘기는 안 하고 그냥 영양가 없는 얘기만 하다가, 커피도 다 마셨겠다 그냥 집에 가자고 해서 나왔어.
박지민 말 대로 밖이 좀 춥긴 하더라. 밤이라서 더 그런진 몰라도.
몸을 움츠리는 날 보면서 또 옆에서 거봐, 내가 춥댔지. 하며 깐족거리는 지민.
한대 칠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주머니에서 손 꺼내기가 싫어서 참았어.
집 근처로 나갔던 게 정말 다행이었지.
금방 집에 도착해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조금 따뜻해진 몸에 내가 손을 꺼내서 박지민 등판을 한대 치자 또 엄살.
아무튼, 맞을 짓만 골라서 해요. 너 그거 고쳐야 해.
깐족거리는 걸 여자애들이 얼마나 싫어하는데. 나니까 좀 받아 주는 거지.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려는데, 지민이 날 불렀어.
"야, 있잖아."
왜. 얼른 말해 집에 찬 바람 들어간단 말이야. 요즘 난방비가 얼마나 비싼데.
집 한번 차가워지면 달구기 힘들다고. 안 그래도 엄마가 난방비 많이 나온다고 내 방에 전기장판 뺄 거라면서 협박한단 말이야.
목도리에 입을 넣고 웅얼웅얼 얘기하는 날 보면서 가만히 있더니, 이내 다시 웃으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더라.
이 새끼가 할 말도 없으면서 괜히 부르긴 왜 불러.
"나 갈게. 내일 봐."
그리고 문을 닫고 들어왔는데.
헐, 나 미쳤나 봐. 오늘 이렇게 박지민하고 놀아줬는데 내일 또 보잔 얘기가 내 입에서 나오다니.
내 무덤을 스스로 파지 내가. 피곤한 몸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더라.
아 그래 뭐, 혼자 있는 것보다는 쟤라도 옆에 껴두는 게 덜 심심하긴 하겠지.
어차피 안 불러도 알아서 찾아올 놈인데 뭘.
신발을 벗는데, 휴대폰 진동이 한번 울려서 확인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박지민이었어.
[나 내일도 놀러갈거임.]
누가 놀러오래. 누가 초대한대. 왜 네 멋대로 정함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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