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이렇게 문자를 보내-. 너에게 빠진 것 같아 위험해-. 어젯밤에 네가 했던 얘기,'
"으윽... 졸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가요인 '굿모닝'을 알람으로 설정해놓은 후 깨는 게 더 힘들어진 것 같다. 알람벨의 주인공 모곳리가 너무 나긋나긋해서 그런가. 이불을 치우고 일어나 커튼을 쳤다. 아 씨바. 햇빛 오지네. 다시 커튼을 친 후 이부자리 정리는 뒤로하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방문을 열었다.
"뭐야.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지 않았니?"
"그냥 왔어...... 엄마 나 콩나물구욱..."
"누난 돈도 안 벌면서 맨날 밤늦게까지 술만 처먹고 다니냐?"
"좆고딩 새끼가 뭘 안다고 그래! 그리고 돈 벌어오거든? 플로리스트 몰라? 플! 로! 리! 스! 트!"
악센트를 줄 때 마다 동생 새끼의 뒤통수를 갈궜더니 냉장고에서 콩나물을 꺼내는 엄마한테 금새 꼰질러버렸다. 엄마! 누나가 또 때려! 나는 그 입을 막아버릴려다 입 주변에 김칫국물이 튄 걸 보고 마음을 접었다. 엄마는 공부하는 애 머릴 때리지 말라며 나무랐고, 동생에게는 누나한테 버릇없게 굴지 말라며 한 소릴 들었다. 항상 시작은 동생 새끼가 하는데 왜 같이 혼나는 건가. 억울했다.
"됐고 누나, 나 용돈 좀."
"너 저번 주에 내가 2만원 줬잖아."
"고딩이 어떻게 2만원으로 버티냐? 아 쫌,"
"엄마가 줄 테니까 세훈이 너는 얼른 학교나 가. 늦어."
"예쓰."
"엄마 얘 돈 너무 헤프게 쓰는데? 용돈 좀 줄여."
"지는 술 처먹느라 바쁘면서."
"오세훈 뒤질래?"
세훈이는 내 협박 아닌 협박을 듣자마자 '잘 먹었습니다' 라며 자리를 나섰다. 그 후에는 쇼파에 올려놓은 가방을 매고 훅 나가버렸다. 엄마의 칼질 소리 외에는 조용한 집안이 되었다. 낯설은 편안함이었다. 나는 엄마를 도우려다 새벽까지 달린 속이 영 메스꺼워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 식탁에 앉았다. 어제 친구년만 아니었어도 일찍 집에 오는 건데. 쓰린 속을 안고 있다보니 국그릇에 가득 담긴 콩나물국이 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으으 속 쓰려."
"너무 많이 마시지 말어."
"흐흐. 국 완전 짱맛짱맛. 근데 엄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집이 조용하지?"
"옆에 공사 끝나서 그런 거 아니야?"
"...아아."
한 세 달 전부터 아파트 옆에 뭔 건물을 짓는지 공사가 한참이었는데, 정말 더럽게 시끄러웠다. 아침에 시끄러워서 깨고, 밤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고. 어떻게 밤낮으로 공사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드디어 공사가 끝났다니. 나는 수긍하며 밥 한 술을 떠 국에 말아 한 입 크게 먹었다. 오늘부터는 좀 편안하게 잘 수 있겠군. 별 말 없이 먹고 있던 중 엄마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징어야."
"왜."
"오늘도 일 많이 안 들어왔니?"
"아아... 두세 개 들어왔어."
"그래..."
내가 하는 일은 플로리스트다. 물론 직업 이름만 그렇지 꽃집 직원이나 다름 없었지만 인터넷에서 주문을 받거나 꽃집 주변에 있는 웨딩홀에서 주문하는 부케를 만들곤 했는데 요즈음엔 일이 많이 안 들어와 걱정이 되었는데, 정작 본인인 나보다 엄마가 더 걱정을 하는 듯 싶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했지만 엄마 얼굴은 이미 걱정 한 가득으로 변했다. 밥을 먹기 거북해졌다.
"그러지 말고 징어야,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어때? 꽃집 직원, 아니, 플로리스트는 부업으로 해도..."
"...엄마. 그런 말 안 하기로 했잖아."
"그래도... 네 미래를 위해서는,"
"아 또 그 소리!"
"오징어!"
"엄마한테 책임 지란 소리 안 할 테니까 걱정 말라고!"
나는 입에 물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에 내팽개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침부터 찝찝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
"한 쟌 더어-!"
"오징어, 너 그만 머거. 졸라 치했으면서어..."
"지느은..."
"이것들이 둘 다 존나 취했으면서 지랄은. 야, 빨리 택시 불러."
헤롱헤롱. 아주 정신이 빠졌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게 머리가 핑 돌았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한 번 크게 외쳐주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쪽팔린다며 내 입을 막아버렸다. 말도 못 하게 해애... 막힌 상태로 입을 굴리니 친구가 더럽다며 다시 떼버렸다. 아침에 엄마한테 소리 지른 게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걸 술로 푼 게 문제라면 문제라지만 지금은 기분이 째지게 좋다. 집에 가서 엄마 한 번 꽈악 껴안아줘야지. 그리고 일단... 흐흐, 가자! 4차하러!
라는 내 말은 택시에 태워지는 내 몸뚱아리로 인해 무산되었다. 주소를 말해주고 미리 택시비까지 내어준 후 문을 닫는 친구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중엔 꼬옥 꼭 4차 가자! 흐흐. 택시는 곧이어 출발했다. 그리고 활발하던 모습은 거짓말처럼 쉽게 잠이 들었다.
"어이, 아가씨. 집에 다 왔어."
"으응..."
"좀 일어나 봐요. 어?"
"...녜에... 아저씨 감사합니다아..."
택시 기사님이 내 무거운 몸뚱아리를 밖으로 끌어내어 주셨다. 아가씨, 밤에 혼자 이러면 못 써. 얼른 집에 들어가. 엉? 마치 아버지같은 덕담을 해 주시고 기사님은 다시 떠나셨다. 그래... 일단 집에 가서 엄마를 안아줘야지. 오세훈, 이 개새끼는 내가... 내가 너 이 새끼 용돈 쫌 주고 만다! 휑한 길거리에 버럭 소릴 지르며 아파트 입구를 찾아나섰다. 이 놈의 발걸음은 왜 이렇게도 휘청대는지. 짐승의 귀소본능인 것 마냥 어떻게든 입구는 잘 찾아 온 것 같다. 근데, 아파트 입구가 원래 이렇게 넓었었나.
알 게 뭐람. 별 생각 없이 들어가 비밀 번호를 누르기 위해 도어락 기계를 눌렀다. 아무런 반응이 안 왔다. 왜 이래... 고장났나. 몇 번 더 기계를 두드려 봤지만 아무런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아 씨... 왜 이래. 어쩔 수 없이 문을 쾅쾅 두드렸다. 엄마!!!! 하나 밖에 없는 딸래미 왔어여!!!!!! 데후나 누나 왔다!!!! 니 새끼 용돈 주러!!!!!!
허나 다들 자는지 뭘 하는지 문이 열릴 생각을 않았다. 곤히 잠들어버린 걸까. 나는 아까보다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두드렸다기 보다는 부실 듯이 쾅쾅거렸다.
"왜! 다들! 자는데에에!!!!!!"
그리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
"......"
"......누구,"
"야 이 오세훈 개놈아. 안 자면서 문은 왜 늦게 열어!!!!!!!"
세훈이의 배때기를 한 대 쳐버리고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어쭈, 아무렇지도 않아? 근데 이 새끼 왜 이렇게 까매졌지... 밤이라 그런갑다. 새벽 3시가 넘어갔으니, 어두워서 그럴 만해. 거칠은 발걸음으로 들어가 쇼파에 냅다 누워버렸다. 아 좋-다. 실실 웃었다. 다른 날보다 더 푹신한 듯한 쇼파에서 빈둥대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마침 그 생각의 주인공인 세훈이가 현관에서 나에게로 오고 있었다.
"누구시냐고,"
"내 새끼."
"......"
"아침에 누나가 용돈 못 줘서 미안하다... 개새꺄 누나가 쫀나게 미안하다!!!!!"
"......허."
"2만원 모자랐지? 흐으... 누나가 미안해... 돈 못 버는 누나라 미안해..."
"......"
"자, 여기 오만워언..."
"...이봐요."
"이거면 됐지...? 밥은 먹고 다니냐....."
그 이후로 나는 쥐도새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영춘이 형님이 다 잘 키워놓은 줄 알았더만, 실상은 네가 제일 좆같이 구는구나.'
'......'
'나이트 관리 착실히 해라. 그리고 이자만 갚고 튄 새끼들 이번 달 안으로 다 정리해. 아니면 네가 뒤진다.'
'......네'
'도살장 끌려간 순창이 새끼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박찬열에게 맞은 부위가 쓰라렸다. 입 안에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 가히 기분이 더러웠다. 아까 그 잔상이 잊혀지질 않았다. 순창이처럼, 이라니. 그 말을 곰곰히 되짚으며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들을 모두 찢어버렸다. 쓰레기 같은 새끼. 엇두 살 많은 놈이 죽은 보스를 대신한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그 생각에 밤을 새우는 것 같다. 새벽 세 시다.
책을 읽으며 잠을 청할까 싶어 서재로 가려던 참이었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노크라기엔 거센, 그런 노크였다. 쾅쾅 소리가 나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 현관으로 갔다.
'하나 밖에 없는 딸래미 왔다니까여!!!!! 어무니 아부지!!!!!!!!!!!'
혹시나 생각한 것과 다르게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자였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보군. 무시하려 했으나 점점 커지는 두드림에 내키지 않는 행동을 했다.
"......누구,"
"야 이 오세훈 개놈아. 안 자면서 문은 왜 늦게 열어!"
문이 열림과 동시에 복부를 강타하는 여자에 하마터면 주먹을 날릴 뻔했다. 요즈음엔 여자들이 이렇게 힘이 센가. 그나저나 오세훈이라는 이름을 통해 제대로 잘못 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으나 마음대로 집을 들어오는 여자가 의심스러우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스쳐지나가는 틈에 알코올 향이 났다. 이 상황을 어쩌면 좋을까. 꽉 조여진 샤워 가운을 느슨하게 풀며 쇼파에 누운 여자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은 채 입맛을 다시는 그 얼굴이 희었다.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청초한 얼굴을 관찰하려던 차에, 눈을 번떡 뜨며 가운의 멱살을 잡았다. ...보스가 보낸 적처럼 느껴졌다.
"누구시냐고,"
"내 새끼."
"......"
"아침에 누나가 용돈 못 줘서 미안하다... 개새꺄 누나가 쫀나게 미안하다!!!!!"
"......허."
기가 찼다. 오세훈이라는 사람은 동생인가보군. 봐주는 것도 그만하고 이제 정말 보내려는데, 자기 가방에서 무언갈 꺼내며 내 가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2만원 모자랐지? 흐으... 누나가 미안해... 돈 못 버는 누나라 미안해..."
"......"
"자, 여기 오만워언..."
"...이봐,... 요."
지폐 몇 장을 내 주머니에 쑤셔넣던 그 두 손이, 내 두 볼로 향했다. 저지할 틈도 없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서글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순한 양인 마냥, 그대로 나를 쳐다보다 쓰러져 잠들었다.
"...뭐야......"
잠든 여자를 보낼 생각도 못하고 등을 져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이상했다.
나 두목쓰 사담인디 |
쓰차로 쉬면서 한 번 쯤은 꼭 써보고 싶던 내용임미다... ㅎㅎ... 그냥 흘려가며 봐주세요... 제목도 막 지은 게 티가 나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호닉은 따로 안 넣었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