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 시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그럼 부탁 드릴게요. 경수가 요즘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저도 마음이 안좋네요."
목례를 마친 백현을 따르는 발걸음이 누구보다 무거웠다. 이런식으로 그를 학교까지 오게 하고 싶진 않았다. 말없이 따르다 우뚝 멈춰선 그의 등 뒤로 머리를 박고서야 멈춰섰다. 내가 실내화를 신고 운동장 흙바닥을 밟고 있다는 사실도 지금에야 알았고. 아 존나 벌점 5점인데 이거.
"도경수."
"...왜요."
"내가 너한테 큰거 바랬나."
"..."
"공부를 하라고 했어, 대학을 가라고 했어."
"..."
"그냥 남들 가는 시간에 학교가서 남들 하는 것처럼 굴다가 조용히 집에 오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왜."
"뭐?"
"왜 남들처럼 사는 거에 그렇게 집착해요."
맨날 그랬다. 입에 달고 사는 말. 남들 하는 것처럼 해. 남들이 하는대로 해. 그러는 자기는 얼마나 남들처럼 산다고. 누가 보면 9급 공무원이라도 되는줄 알겠네.
"도경수."
"그래요, 나 도경수에요. 근데 왜 자꾸 남들처럼 살래요."
"그럼 도경수처럼 사는건 뭔데."
"..."
"학교에서 담배피고 수업이나 제끼는게 네가 말하는 도경수처럼 사는건가."
"..."
"넌 이미 내곁에 머물기 시작한 순간부터 평범한 삶을 잃은거야."
"..."
"난 너한테 평범하고 최대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열여덟을 주고싶어. 그게 다야."
"..."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네가 안다면."
"..."
"이러지마라."
단정하게 갖춰 입은 수트 위로 보이는 그의 표정이 나만 알 수 있게 너무나 지쳐있어서 괜히 짜증이 난다. 존나 폼잡네 씨발. 사춘기에 시달리는 비행 청소년 역할을 좀 해보려고 했더니 택도 없다.
"더이상 내가 너한테."
"..."
"죄책감들게 하지마."
"..."
"견디기 힘들다."
"..."
"수업 다 듣고 와라."
"..."
"간다."
멋대가리 없이 간다. 한마디만 남긴 채 흔한 손인사도 없이 뒤도는 모습을 조금 오래 바라봤다. 죄책감이라. 그가 나한테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고 했다.
"누군데."
"옆집 아저씨."
"병신 취급?"
"알면서 뭘 묻는데."
"도경수 취향 존나 버라이어티하네?"
"정확히 너는 부록이지."
"아, 본편은 저쪽?"
"뭐 굳이 말하자면."
방금까지 흡연을 주제로 교무실에서 불편한 삼자대면을 마친 주제에 또다시 담배를 꺼내 무는 손길이 전혀 열여덟스럽지 않았다. 도경수도 오세훈도.
"너네 누나는."
"롯데 아니면 신세계."
"안오냐."
"오겠냐."
오세훈네 누나는 객관적으로 또라이가 분명했다. 이건 내가 아주 극명한 비행 청소년의 길을 걷는 도경수라서가 아니고 그 누가 봐도 사실이다. 오세훈네 누나는 일단 오세훈과는 전혀 닯지 않았다. 돌아가신 오세훈네 부모님의 사진을 보면 오세훈의 쫙 빠진 몸은 스무살에 미인 대회 출전을 하루 세번 미용실에서 권유 받았다던 그의 어머니를 닮았고 스치면 잘릴 듯한 오세훈의 턱선은 그의 아버지를 쏙 빼다 박았다. 하지만 오세훈네 누나는 차라리 주워왔다는게 믿길 정도로 그와 닮은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내가 다시 묻는데,"
"친누나 맞냐고?"
"어."
"누나잖아 누나 씨발. 나보다 먼저 태어났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
항상 쓸데없이 맞는 말을 해댄다 이새끼는.
"내가 그렇게 죽을 줄 알았냐 엄마 아빠가."
"...."
"알았으면 물어보기라도 할걸."
"뭘."
"어떻게 눈맞추고 젖 먹였나고. 저렇게 존나 못생겼는데."
연기가 목에 걸려 기침을 하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뭔 전지현 수술이라나 뭐라나 이번주에 그거 한다던데."
입에도 담지 못할 끔찍한 죽음을 맞은 부모님의 보험금과 유산을 마치 물처럼 써대는 그의 누나가 이해가 되지 않는건 어쩌면 그보다는 내가 더한 것 같다.
"경수는."
"아직 귀가 전입니다."
"애 가방이 좀 닳았던데."
"새로 준비하겠습니다."
"학원이라도 보내야하나."
"...안갈것 같은데요."
"그 나이때 애들은 다 다니는데로 하나 알아봐."
"예."
"안나가도 상관없어."
"....."
"그냥, 수학 영어 가르치는 딱 그나이때 애들이 다니는 학원. 등록만이라도 해놔."
"예"
"학원에 돈내놓고 친구들이랑 게임이나 하러다니는게 요즘 고등학생들이 많이 하는거라던데."
제가 모시는 형님은 언제나 빈틈없는 사람이다. 험한 일하는 사람치고 매너있고 상식있고 의리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상사는 없을거라고 종인은 언제나 생각했다. 하지만 도경수가 끼면 얘기가 다르다. 남들이 보는 시선, 기준에 그 어떠한 부합도 관심없는 형님은 도경수의 '남들처럼 살기' 에는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신문에서 고등학생들의 학원 실태라는 기사를 읽은 것이 분명했다. 도경수의 학군을 위해 강남에 산다는 사실을 도경수만 모른다. 두달은 대기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입시학원에 내일 당장 도경수의 이름을 올리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도경수의 앞에서 예상할 수 없는 형님의 모든 행동은 종인에게 언제나 어려움을 안겼다.
"아, 오늘도?"
"안간지 2주는 넘었어."
"아 존나 짜증난다."
"너 그래도 그런 스폰 찾기 힘들다."
"이제 그런거 안해도 되지 않냐?"
"박찬열."
"...왜."
"좀 떴다가 한순간에 훅 간 새끼들 이바닥에 하루에도 수십명이야."
"...안다고."
"지금 너만큼 올라올 수 있는 애들 지하 연습실에 한가득이고."
"그럼 걔네 데려다가 키우면 되겠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씨발. 닥치고 알아서 기라고?"
"잘아네."
"...."
"더이상 누가 건드릴 수 없을 위치에 올라서 깝쳐. 그땐 내가 알아서 네 가랑이 사이 기어갈테니까."
"...."
"여기는 그런 곳이야. 그나마 널 고른 이유는 네 그 잘난 몸뚱이랑 얼굴인줄 알아."
떠오르는 신예 3인조 아이돌 그룹 X 의 비주얼 멤버 박찬열은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셀카를 찍다가 봉변을 당했다. 터널에서 비추는 주황빛 가로등을 조명삼아 피곤해 보이는 제 낮짝을 150장 정도 찍어 그중 제일 잘나온 한장과 함께 올릴 멘트도 이미 준비해둔 상태였다.
오늘도 스케쥴 끝나고 가는 길. 여러분 보고싶은거 아시죵?>_<
숙소로 가 얼른 씻고 얼굴에 팩을 올린 채로 댓글 확인을 하며 즐거운 잠을 청하려는 제 계획이 무너졌다. 아 존나 짜증나. 다음 앨범이 대박나면 다 내 발 밑에 두고 밟아야지.
본격 클리셰 도경수 총수. 가 보고싶어 갑자기 썼는데...요. 뀨?
조직의 보스 변백현과 오른팔 김종인과 세컨드 오세훈과 아이돌 박찬열과
나머지...멤버들도 다 나오는 그런 대박적인 도경수 총수...
이거 써도 돼요...?
우결 마지막 편이 죽어도 안써지는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