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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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너 눈빛 이상했어.
태형 선배 아는 거 같았어."
김탄소에게선 약간의 술 냄새가 풍겨져 왔다.
그냥 술 때문에 그런 건가.
김탄소가 이렇게 예리했었나.
이 애를 안 지 오래 되진 않았다.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일개 귀신인 난
김탄소의 자는 모습이며, 과제하는 모습,
화 내는 모습, 우는 모습, 웃는 모습 등
여러 모습을 관찰했다. 아니, 그냥 내 눈에 보였다.
알려고 하지 않아도 김탄소가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왔다.
내가 봐 온 김탄소는 단순하고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20살 학생이었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 보다 기가 쎘다.
그냥 이거 뿐이었다.
처음 보이는 김탄소의 모습에 많이 당황했지만 늘 그랬던대로 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아무 말 없이 김탄소를 쳐다봤다.
그냥 얘한테 말할까.
"...됐다, 네가 알 리가 없지..
미안하다 계속 의심해서...
지금 술 마시고 와서 제 정신이 아닌가봐"
김탄소는 씁쓸하게 웃어 보이곤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김탄소가 들어가기 전 나에게 보인 웃음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면 또 주책없이 생각에 잠기겠지.
난 쇼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김탄소는 많이 피곤했는지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침대에 다가가 김탄소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봤다.
꼴에 여자라고 서툴게 한 화장이 귀여워보였다.
빨갛게 칠해진 입술이 내 손을 홀리게 했다.
-..민윤기..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존나 미쳤어 씨발새끼...
나는 내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렸다.
분명 이렇게 놔뒀다간 피부도 뒤집어지고 잘 때 불편할 것이다.
그렇다고 얠 깨워서 씻기기도 애매한 상황이고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던 도중 박경리가 생각났다.
난 바로 박경리를 부르러 갔다.
"뭘 어째달라고?"
- 얘 옷 좀 갈아 입혀 줘.
"허... 너 얘 좋아해?"
- 미쳤냐
"근데 왜."
- 저러고 자면 내일 아침에 존나 찡찡 거려.
박경리는 신세 한탄을 하며 저리 꺼지라고 했다.
김탄소, 진짜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이런 귀신이 세상에 어딨어 씨발...
괜히 뿌듯한 마음에 기분이 좋아졌고 시간이 조금 흐르고 박경리가 나왔다.
-안 깼어?
"깰 뻔은 했는데 그냥 자던데"
김탄소의 모습이 상상 됐고 웃겨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맙다. 박경리 존나 예뻐
"미친, 나도 참 불쌍하다. 너도 불쌍하고."
박경리는 발로 날 툭 차곤 다시 가버렸다.
방에 들어 가니 편안하게 옷을 갈아입은 모습의 김탄소가 있었다.
화장을 지우기 위해 화장대와 화장실을 뒤졌고 겨우 클렌징 티슈라는 걸 찾았다.
혹여나 김탄소가 깰까 조심조심 얼굴을 닦았다.
"...차가워...."
웅얼웅얼 들리는 말에 움직이던 내 손은 멈췄고 잠꼬대라는 걸 알아차린 후 마무리를 지었다.
머리를 베개 위에 놓아주고 이불을 꼭 덮어준 뒤 방을 나왔다.
내가 왜 이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애'에게 해 주던 습관이 남아있었던 건지,
아니면 인정하긴 싫지만 김탄소에게 감정이 생긴 건지.
오늘 밤도 내 머리 속은 편안하지 않을 거 같다.
눈을 뜨고 휴대폰 시계를 봤다
"11시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망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당연히 민윤기는 쇼파에 누워있었다.
-굿모닝
"야!! 왜 나 안 깨웠어?!"
-내가 널 왜 깨워
"당연히..!!"
당연히 깨울 이유가 없다.
난 말문히 막혔고 찡찡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빨리 준비하고 가면 두 번째 강의는 들을 수 있겠다.
부랴부랴 샤워기 물을 틀었고 머리카락에 물을 뭍혔다.
-김탄소
"뭐!!"
-그거 아냐
"몰라, 저리가 씻고 있잖아"
난 한 팔로 민윤기를 향해 휘휘 저었고 민윤기는 한심하다는 듯 날 쳐다봤다.
-오늘 토요일
킥킥거리는 민윤기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곤 샤워기를 내려놨다.
".. 그걸 왜 이제 말하세요"
-네가 말 할 시간이라도 줬냐
급 씻을 마음이 사라졌지만 머리에 물을 뭍힌 겸 머리를 감았다.
민윤기는 바보 아니냐며 화장실 문을 닫고 가버렸다.
미칠 듯한 쪽팔림이 올라와서 난 머리를 다 감았음에도 화장실을 나가지 못했다.
에이씨, 그냥 샤워나 해야지.
샤워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왔을 때 보여야 하는 민윤기가 보이지 않았다.
"민윤기"
-왜
민윤기의 목소리는 방 쪽에서 들렸고 방에 들어가니 베란다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팔을 난간에 올려 마치 바람이라도 쐬는 듯 밖을 보고있었다.
얕게 흔들리는 민윤기의 검정색 머리카락은 외로워 보였다.
"뭐 해"
-바깥 구경
민윤기는 아무런 자세 변화 없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근데 넌 왜 밖에 안 나가? 밖에 나가서 보면 되잖아"
-안 좋아해.
난 로션을 바르면서 거울을 통해 민윤기를 봤다.
-야 너 전화 오잖아. 안 받아?
그의 말에 휴대폰을 쳐다봤고 전정국의 전화가 오고 있었다.
"어, 여보세요?"
"김탄소, 뭐 해?"
"로션 바르는데"
"집이야?"
"어, 왜?"
"오늘 도서관에서 공부 할래? 시험 얼마 안 남았잖아"
전정국의 말에 달력을 쳐다봤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험이 이주 뒤라는 걸 알게 됐다
"미친... 이주 남았네.."
"설마 몰랐던 건 아니지?"
"어.. 몰랐어.."
전정국은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야 근데 너 친구 없어? 왜 맨날 나랑 가자고 해
여자친구가 보면 어쩌려고."
"네가 그러고 있을 까봐 연락한 거다 미친년아
그리고 누나한테 네 얘기 많이해서 오해 안 해.
오히려 부러워하던데."
민윤기에게 전화소리가 들리는지 민윤기는 껄껄 웃으며
병신이냐며 날 놀려댔다.
"그래서 뭐, 갈거야 말거야"
"갈래"
"그럼 점심 먹고 1시까지 도서관으로 와라."
전화가 끊기자 민윤기는 날 쳐다봤다.
-야 넌 학생이라는 게 곧 시험 친다는 거도 몰라?
"다 너 때문에 그런 거잖아 민윤기 새끼야"
-와, 말하는 거 좀 봐.
졸라 곱다.
난 민윤기를 한 번 째려보곤 거실로 내쫓았다.
"어? 김탄소왠일로 일찍 왔냐"
"기분 전환"
민윤기와 살면서 생긴 말투가 있다.
"단답 하지 마라"
전정국은 인상을 찌푸리곤 나에게 짜증을 냈다.
학교 도서관에 도착하기 바로 전까지 나에게 투덜거렸고
난 또 민윤기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시험기간인 만큼 도서관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이 큰 덕분에 쉽게 자리를 잡았고 우린 공부를 시작했다.
"살아서 보자."
"그래."
나와 전정국은 한 번 공부를 시작하면 전투적으로 하기 때문에
집에 갈 때 쯤 되면 좀비가 되어있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됐다.
공부를 시작하지 1시간도 안 되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전정국은 당연히 내가 일어난 사실도 모르고 계속 공부를 했다.
건물 밖 벤치에 앉아 한 손에 캔커피를 들고 사색에 잠겨있었다.
"하..."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갑자기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태형 선배가 있었다.
"어.. 선배, 안녕하세요.. 왜 여기 계세요?"
"나 원래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데"
태형 선배는 히죽거리며 내 볼을 찔러댔다.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어제의 그 실루엣이 떠올랐다.
"선배"
"응?"
"요즘 10대들 발육이 참 빨라요. 그쵸?"
표정관리가 안 된 얼굴로 태형 선배를 봤다.
"응, 완전 빨라. 나도 가끔씩 놀란다니까,
무슨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애들이 교복을 입고 돌아다녀"
예상치 못한 선배의 반응에 내심 놀랐다.
선배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나에게 물어봤고 난 대충 둘러댔다.
"아.. 그냥 요즘 애들 발육이 빠르길래..."
"으이구, 너도 몇 개월 전까진 고등학생이었거든요"
선배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심어린 선배의 표정과 말투, 톤 때문에 어제의 그 의심이 미안해졌다.
괜시리 좋아지는 기분에 난 활짝 웃었다.
지금 이 기분이면 공부도 잘 될 거 같아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하고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밤 10시가 되서야 우린 도서관에서 나왔다.
"아.. 피곤해"
당연히 우린 반 좀비 상태였고 인사고 뭐고 없이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갑자기 태형 선배가 생각나서 기분이 또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평소엔 생각하지 못할 걸 생각했다.
오늘은 민윤기랑 술이나 마실까
귀신이랑 술 마시면 무슨 기분일까
완전 이상하겠지?
난 한껏 들떠서 술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왔냐, 손에 그건 뭐야
"술!"
-주책맞게 혼자 술 마시냐...
아님 마실 친구가 없는 거?
민윤기는 날 안쓰럽게 쳐다봤다.
"너랑 마시려고 사 왔지"
난 기뻐서 씰룩씰룩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를 원했지만
의외로 대담했다.
-너 잊고 있는 거 같은데, 나 귀신이거든. 술 못 마신다고요.
얘가 공부를 하더니 미쳤나...
아님 어디 아프냐..
민윤기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내 머리를 짚었고 난 만져지지 않는 손을 잡고 뗐다.
"야, 싫으면 말로 해
기껏 생각해서 사왔구만.."
술을 냉장고에 넣기 위해 몸을 돌린순간 민윤기가 내 손목을 잡고 몸을 반대로 돌렸다.
-나 술 존나 좋아해.
민윤기와 내 입꼬리는 같이 올라갔고 바로 술자리를 폈다.
술을 못 마시는 난 술잔으로 장난을 쳤고 김탄소만 주구장창 들이마셨다.
우린 김탄소의 과거 이야기, 대학 생활 이야기 등을 공유하며 술을 마셨다.
난 김탄소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머리 속에 입력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처음 안 사실이 많았다.
오빠가 있다는 것.
나름 고등학교 때 반에서 1~3등을 해 왔다는 것.
지금 대학교에서 전정국이라는 남자 애와 제일 친하다는 것.
그리고 이 때 동안 자라 온 환경이 그닥 좋진 않다는 것 등등.
-힘들었겠네. 불쌍하다 너도
"네가 더 불쌍하다 윤기야... 술도 못 마시고..."
김탄소는 괜찮다며 날 위로했다.
도대체 왜 위로 받아야 할 지 모르겠지만 난 고분고분 받아줬다.
"나만 술 마셔서 외롭지? 괜찮아 윤기야..."
나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서인지 김탄소는 내 머리 위로 팔을 뻗었다.
"으잉... 통과하네..."
김탄소는 신기하다는 듯 팔을 휘휘 저으며 웃어댔다.
-술도 못 마시는게..
내 말에 히히-거리며 팔을 내렸다.
술에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말을 잘 이어갔다.
"민윤기야.."
-끝까지 오빠라는 말은 안 해요.
"민윤기"
-야, 오빠 해 봐.
"싫어, 민윤기"
-기대도 안 했다.
"아, 민윤기!"
-왜.
"이제 네 얘기 해 줘."
-무슨 얘기.
"너 과거 이야기. 대학 생활은 어땠는지.. 뭐, 그런 거.."
난 2분 정도를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야, 왜 아무 말도 안 해?"
-..너 내 얘기 해 주면 그냥 듣고 흘릴 자신 있냐.
"응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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