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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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녁 알바 구한다는 종이 보고 연락드려요
아.. 구했다구요? 네.. 알겠습니다.."
-또 튕겼냐
"어.. 어떻게 전화하는 곳 마다 튕기냐.."
고민이 생겼다.
뭐, 고민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자취방 구할 때와 같은 급의 고민이랄까.
알바가 안 구해진다. 지금이 방학인 게 다행이지.
태형 선배와 하던 알바는 그만 둔지 오래다.
이유는 간단했다. 태형 선배 때문에.
요즘 들어 느끼는 선배의 이상한 행동과 민윤기의 말이 겹쳐 계속 의심이 됐고
괜히 또 의식하고 걱정하면 나만 피해 보는 것 같아 조금의 거리를 두기로 했다.
하지만 내 마음 같지 않게 태형 선배와 우연히든 아니든 자주 만나게 되더라.
웃긴 건 태형 선배를 만나면 여전히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쿵 댄다는 것이었다.
만날 때 마다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해 오는 태형 선배를 보니 내가 너무한가 싶기도했다.
한 번은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 땐 이상한 행동은 찾아 볼 수도 없었고 심지어 내 앞에서 폰을 만지지도 않았다.
이런 선배의 모습을 보면 나 혼자 과민반응 하는 건가 싶다.
-그 식당 알바 계속 하지 그랬냐
"너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민윤기씨.."
민윤기는 괜히 말했다는 듯이 실실 웃어보였다.
"피씨방 알바라도..."
-미쳤냐 여자애가 피씨방 알바하게.
"왜 요즘 피씨방 알바 중에 여자 완전 많아"
-아, 안 돼. 차라리 알바를 하지 마.
"그럼 내 생활비는"
그 뒤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민윤기가 그럼 그렇지.
난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고 보고 있던 컴퓨터를 껐다.
오랜만에 전정국이나 불러서 밥이나 먹을까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켰다.
-걔 요즘 연애 한다고 바쁘다며.
'전정국'이라는 이름을 봤는지 날 보며 말했고 아차 싶었다.
여자에 눈을 뜬 우리 전정국님께서 요즘 불타는 사랑을하고 계신다는 걸 까먹었다.
"어휴.. 누군 연애하는데 누군 집에 틀어 박혀 있고.. 어휴..."
-대신 잘생긴 오빠랑 같이 틀어 박혀 있잖아
브이자를 만들어 흔드는 민윤기를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 입으로 잘생겼다고 말하다니...
오빠라고 말하다니...
양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지랄이 풍년일세"
민윤기에게 엿을 가볍게 날려주곤 휴대폰을 껐다.
너무 심심한 나머지 전공책을 폈고 한 줄 한 줄 읽기 시작했다.
분명히 공부 한 흔적은 있는데 아무 기억이 없다.
또 자괴감이 들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야, 전화 왔다.
'전화'라는 말에 바로 고개를 돌려 폰을 봤다.
내 폰은 민윤기의 손에 들려있었고 민윤기는 누구냐는 듯이 폰을 흔들었다.
전화 번호의 주인은 태형 선배였다.
저장 안 해 놨으니 다행이지, 아마 태형 선배라는 걸 알았다면
폰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누구야, 저장 안 돼있는데.
"글쎄, 그냥 무시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내 거짓말에 민윤기는 폰을 덮었다.
민윤기랑 살면서 '아닌 척'이 많이 늘었다.
민윤기의 눈치를 보며 태형 선배에게 왜 전화 했냐고 문자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전화 돼?'
마음 같아선 안 된다고 하고 싶었지만 전화하려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태형 선배의 목소리를 오랜 만에 듣고 싶었다.
"나 밖에 좀 나갔다 올게."
-왜.
"답답하기도 하고 장도 볼 겸..
그리고 엊그제부터 나가지도 않고 집에 있었잖아"
-근데 갑자기 왜 나가는데.
꼬치꼬치 캐 물어오는 민윤기의 말에 양심이 미친 듯이 찔렸지만
나의 숙달 된 '척'이 상황을 모면했다.
겨우겨우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내가 왜 민윤기의 눈치를 봐야 되지?
누가보면 남자친군 줄 알겠네.
혹시나 민윤기가 베란다에서 보고 있을까봐 집에 완전히 떨어진 다음 태형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탄소야, 어디야?"
"저 지금 집 근처에요. 왜요?"
"밤에 너네 집 근처에서 친구랑 약속있는데
시간이 널널하기도 하고 해서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같이 밥을 먹자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너무 뜬금 없어서 의심을 할 생각 조차도 안 했다.
"어.. 근데 여기 주변에 밥 먹을 곳이 별로 없는데.."
"너네 집에서 먹으면 되지. 집 구경도 할 겸."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집을 언급했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저 말은 태형 선배가 집 안으로 들어 온다는 뜻이 아닌가.
솔직히 고민 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태형 선배와 아무런 일이 없는 사이라 해도
민윤기가 다른 사람이 집에 오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당연히 거절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민윤기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저희 집에서요?"
"응. 정국이랑."
정국이라는 말에 불안하던 마음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전정국이 있으면 위험 하지도 않을테고.
태형 선배 말이면 여자친구랑 데이트하고 있는 도중에도 올 것이고.
그럼 나야 좋지. 내 사람과 밥 먹는데 누가 거절하겠어.
나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한 뒤 바로 집으로 뛰어갔다.
"민윤기!!"
-왜 이렇게 숨을 헐떡여. 장 보러 간다며.
"돈 부족해서 못 갔어. 그나저나 있잖아.. 부탁이 있는데..."
-뭐.
"나 오늘 하루만 집에 친구 데리고 오면 안 돼? 응?"
나름 콧소리까지 섞어가며 애교 아닌 애교를 했고 민윤기의 표정은 당연히 어두워졌다.
"웅? 웅?"
-...그러던가.
의외인 민윤기의 대답에 놀랐다.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오케이 해서
순간 민윤기가 맞나 싶었다.
"진짜?"
-어. 저번에 내 친구 때문에 너 놀란 것도 있고
한 번쯤은 뭐..
민윤기를 껴안아 주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오늘 안 들어오면 되는 거지?
"어. 넌 어디 있을 건데?"
-갈 데 있어.
밖엔 절대 안 나간다는 민윤기가 갈 곳이 있다는 점이 이상했지만
물어보고 하고 할 것 없이 난 태형 선배에게 문자를 했다.
'그럼 정국이한테 연락해서
6시까지 정국이 데리고 네 집으로 갈게'
난 당장 씻을 준비를 했고 민윤기는 그렇게 좋냐며 날 쳐다봤다.
"당연하지, 완전 좋아."
-누가 보면 내가 너 감금 해 놓는 줄 알겠다.
"거의 감금이지. 딴 사람 집에 데리고 오지도 못하게 하고."
-불만?
"아니."
민윤기는 읏차-라며 쇼파에서 일어났고
곧 잘 놀아라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나저나 저녁 뭐 먹지?
아마 오늘이 요 근래 가장 행복한 날이 아닐까 싶다.
김탄소의 말을 듣고 솔직히 화가 났다.
뭔가 숨기는게 있는 거 같았다.
장 보러 간다던 애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선
돈 없다고 장을 안 봤다고 하지를 않나,
친구를 데리고 오면 안 되냐고 하지를 않나.
하지만 아무리 같은 집에사는 사이라 해도 사생활이 있으니
최대한 모르는 척을 했다.
마침, 박경리의 말이 떠 올랐다.
오늘 전 남자친구가 결혼을 해서 보러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나로썬 당연히 안 간다고 했지만
김탄소의 친구가 온다고 하니 자리도 피할 겸 박경리에게 가겠다고 했다.
"진짜? 너 뭐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밖에 나가는 건데?"
-어. 알아.
내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박경리의 표정을 봐 줄 만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말이 좀 황당하긴 했을 것이다.
"갑자기 왜?"
-집에 김탄소 친구 온대서.
"너 딴 사람 집에 오는 거 싫어하잖아."
-그렇긴한데 저번에 너 때문에 김탄소 놀란 것도 있고
한 번 쯤은 참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박경리와 함께 결혼식을 갔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많이 어색했지만
자주 다니던 길인지라 나름 반가웠다.
거리를 지나갈 때 마다 지난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밖에 나오니까 좋지."
-어. 괜찮네. 생각보다.
"그러게 내 말 좀 듣지.
이 때 동안 네 여자친구 때문에 밖에 나오기 싫어 한 거 맞지?"
박경리의 말에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내가 죽고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박경리와 길거리를 돌아 다녔던 적이 있었다.
아니, 어떻게 말하면 집에서 1키로도 못 가서 다시 되돌아 왔다.
'그 애'를 봤었다.
'그 애'는 술에 취한 듯 싶었다.
비틀 거리며 우리 집 쪽으로 오고 있는 모습을 봤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애'를 보고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박경리도 눈치를 챘는지 아무 말 하지 않고 따라서 '그 애'를 봤다.
우리 집 앞에 멈춰 내 이름을 부르며 미친듯이 오열을 했다.
미안하다고. 다시 돌아오면 안 되냐고.
내가 싫어하던 그 새끼랑 헤어졌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빌테니까 한 번만 용서 해 달라고.
난 그 모습이 끔찍해서 덜덜 떨면서 바라만 봤었다.
그 후로 난 밖을 나가지 않았다.
-어, 하여간 눈치는 존나 빨라.
이제는 웃으며 농담으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김탄소를 만나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기분도 안 좋아지고.
근데 넌 네 남자친구 결혼 한다는 데 안 슬프냐.
"놔 준지 오래잖아.
결혼식 가는 건 그냥 '유종의 미'랄까."
박경리의 말을 끝으로 우린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박경리의 남자친구를 소개하자면 이랬다.
둘은 오래 사귀었다.
박경리가 고2일 때 부터 죽기 전까지 사겼으니 5~6년 정도 사귀었을 것이다.
남자 분은 박경리보다 4살 더 많았다.
들은 바로는 능력도 꽤나 좋고 지금은 알아주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박경리는 죽은 후 남자친구의 집에 항상 있었다.
그 집은 박경리의 옆 집이자 내 앞 집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한다고 지인에게 연락을 하는 모습을 본 후 완전히 마음을 버린 듯 했다.
결혼식장에 도착 했다.
박경리는 멀리서만 남자친구를 바라봤다.
그 남자 분은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컸다.
-인사 하지 그래.
"어떻게 인사를 해."
-그냥 잠깐만 모습 보이면 되잖아.
"결혼식 망칠 일 있냐"
박경리의 표정은 밝은 듯 어두웠다.
한참 남자의 모습을 보더니 보이지도 않을 인사를 하곤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이 조금은 불쌍했다.
나는 박경리의 기분을 풀어줄 겸 계획엔 없던 산책을 하자고 했다.
"애쓰네. 우리 윤기 착하다. 누나 기분 풀어주려고 산책하자고 하고."
-좀 모르는 척 해 주면 안 되냐.
박경리는 그제서야 헤실헤실 웃었다.
우린 내가 다니던 대학교로 갔다.
건물도 예쁘고 근처에 공원도 있어서 산책하기엔 딱 좋은 곳이었다.
이리저리 대학교를 둘러 보다가 버스킹 하던 곳이 떠올랐다.
박경리에게 버스킹 하던 곳을 보여주겠다고 하고 시내로 나갔다.
"우와, 네가 여기서 버스킹을 했다고?"
-어. 인기 존나 쩔었어.
"지랄"
오랜만에 와 보는 곳이라 쉽게 발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에 있는 벤치 아무 곳에나 앉아 길거리를 구경했다.
"야, 민윤기."
-왜
"내 눈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네 눈이 이상한 거 맞아.
"저거 김태형 아니야?"
듣기 싫은 이름이 들려 정식이 확 들었다.
박경리가 가르키는 쪽을 보니 진짜 김태형이 있었다.
"쟤 맞지"
난 박경리를 끌고 김태형에게 다가갔다.
그는 당연히 우리가 안 보일 것이다.
김태형은 폰으로 sns을 하는 듯 싶었다.
누구와 연락을 하는가 싶어 폰을 엿보려고 했다.
타이밍도 좆같지, 김태형의 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지금 가고 있어.
씨발 진짜 따 먹기도 힘들어 미친년이 존나 철벽쳐서
약간 눈치 챈 거 같기도 한데
집 가도 된다는 거 보면 눈치 못 챈 거 같기도 해.
저번에 걔? 아 씨발..
그 걸레 년 버린지가 언젠데.
얼굴 반반하면 뭐 하냐 쉽게 다리 벌리는데.
튕겨주는 맛이 있어야 재밌지.
이번에 따 먹는 애 이름? 김탄소. 왜?"
'김탄소'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생각했다.
이 새끼를 죽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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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2LSON - stay with me (feat.강민희)
안녕하세요!
아쉬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ㅠㅠ
저가 요즘 너무 바빠서 그 쓸 시간이 없어요..
오늘은 우연히 시간이 돼서 이렇게 길게 썼는데!
토요일, 일요일에 올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ㅜㅜㅜㅜ
최대한 오려고 노력 해 보겠습니다!
왜냐면 전 독자님들을 싸랑하니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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