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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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애 따 먹는 애 이름? 김탄소. 왜?'
'김탄소'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생각했다.
이 새끼를 죽이자고.
김태형과 관련 된 일이라면 항상 참았다. 아니, 참아야 했다. 그래야 상처를 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도 한 때 사람이었으니, 나도 한계라는 게 있으니, 나도 감정이라는 게 있으니,
이번 만큼을 참을 수 없었다.
김태형은 아무렇지 않게 김탄소 집, 아니 내 집으로 걸어나갔다.
김태형이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리고 김태형 쪽으로 술 취한 아저씨가 걸어온다.
마침 박경리도 나와 떨어져있었다.
난 아저씨 옆으로 갔다.
박경리는 미쳤나며 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나한테 들릴 리가 없지.
비틀거리는 아저씨를 밀었고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가 들렸고 따라서 둔탁한 소리도 났다.
"민윤기 너 미쳤어?!"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평소와 같으면 며칠을 괴롭게 보낼 만큼 죄책감을 느꼈을텐데 그냥 그저 그랬다.
박경리가 내 팔을 잡고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미쳤냐며, 왜 그랬냐며, 소리를 지른다.
감정이 생길 법도 한데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다.
횡단 보도 앞에 넘어진 아저씨하며,
차에 치여 나뒹굴고 있는 김태형을 봤음에도 난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저렇게 만든 게 아니잖아.
난 그냥 아저씨를 밀었을 뿐이고 아저씨가 넘어지면서 차도로 김태형을 밀었으니.
엄연히 아저씨 잘못이지.
그래,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신음 소리를 내며 팔을 붙잡고 있는 걸 보니 팔을 다쳤나보네.
그 팔 영원히 못 쓰게 됐으면 좋겠다.
아, 머리에 피도 나네.
기억상실증이나 걸려서 네가 김탄소를 잊었으면 좋겠다.
김태형, 네가 꼭 기억하길 바란다.
네가 지금 느끼는 그 아픔은
내가 느낀 잠깐의 아픔보다도 못하다는 걸.
6시 30분이 다 돼 가는데도 선배와 전정국은 올 기미도 안 보였다.
평소에 시간은 칼 같이 지키는 둘이라 걱정이됐다.
태형 선배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여보세요"
"전정국 어디야?"
"당연히 여자친구랑 같이있지. 왜."
"여친이랑 같이 있다고? 그럼 태형 선배는?"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선배 연락 안 받았어?"
"어,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아까 선배가 전화와서 너랑 같이 우리 집에서 밥 먹자고
너 데리고 6시까지 오겠다고 했는데
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아. 연락 없었어?"
"어, 그냥 최근에 거의 연락을 안 했는데."
"뭐지.. 일단 알겠어"
"딴 선배들한테 물어봐 줄까?"
"어어. 그럼 고맙지."
"답 오면 바로 연락 줄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 아니면 약속 한 걸 까먹은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시간은 7시가 다 돼갔고 정국이에게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야.
"어? 민윤기 너 여기 왜 있어? 오늘 안 들어온다며"
언제 온 건지 모르겠지만 내 옆에 민윤기가 서 있었다.
것도 표정이 아주 굳은 채로.
-오늘 집에 온다던 친구가 김태형이지 아마?
민윤기의 말을 들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분명이 말도 안 하고 폰도 잘 숨겼는데 어떻게 알았지..
뭐라고 변명을 하기도 전에 민윤기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친구, 팔 병신 됐던데.
"..뭐?"
-병원으로 실려가서 안 오는 거 같기도 하고.
"네가 어떻게 알아...?"
-친구를 데리고 와도 된다고 했지,
김태형 데리고 와도 된다고 한 적은 없었을 건데.
아, 이제 아예 마음이 식으셨어요?
'친구'라고 말 해도 될 정도로?
민윤기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날 충격으로 몰아갔다.
"아니.. 네가 어떻게 아냐고..."
-사생활 존중이랑 약속 어기는 거랑은 개념 자체가 다르지 않나?
손이 떨렸다. 민윤기의 표정도 무서웠고
팔 병신, 병원 이라는 단어도 무서웠다.
미칠 거 같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찬찬히 생각했다.
태형 선배는 팔을 다쳤고 병원에 실려갔다.
이걸 민윤기가 안다.
길 가면서 본 걸 수도 있지.
그럼, 태형 선배가 집에 온 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쨌든,
"태형 선배.. 많이 다쳤어?"
-씨발.. 넌 이 상황에서 그 새끼 밖에 관심 없지?
지금 내가 화 난 이유 모르겠어? 씨발, 그냥 다 까발릴까?
김태형이 어떤 새낀지, 내가 왜 그 새끼 다치게 했는지,
지금 그 씨발년이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
"...네가 그런 거야..? 네가 태형 선배 다치게 했어?
너 때문에 태형 선배 아픈거냐고!"
-하... 어떻게 말 한 번 할 때 마다 김태형이 빠지질 않냐.
"말해봐!! 네가 태형 선배 다치게 했냐고!"
-내가 했으면 뭐, 네가 어쩔 건데
김태형한테 가려고? 가려면 가 미친년아.
처음부터 내가 잘못했네.
너도 이 집에서 꺼지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냥 사람을 잘못 본 거네...
민윤기의 대답은 감히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왜 이야기가 그 쪽으로 흘러가는지 이해가 안 갔다.
너무 서러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민윤기 네 말대로 우리가 만난 거 자체가 잘못이었을까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민윤기를 노려봤다.
-그리고 내가 한 거 아니니까 허튼 오해하지 마.
"너 진짜 쓰레기다.."
잘 나오지도 않는 말을 끅끅대며 민윤기에게 말했다.
마침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폰을 보니 정국이였고 거절할까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 김탄소, 태형 선배 지금 XX병원에 있다는데?
교통 사고 났나봐, 지금 혼수상태라는데...
여보세요? 야, 듣고 있어?"
혼수상태라는 말에 더 울컥했고, 심지어는 울음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김탄소 울어? 야, 너 어디야? 지금 집이지?
지금 당장 거기로 갈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울지말고. 어?"
전정국에게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민윤기는 없었다.
그제서야 난 소리내어 울었다.
난 그냥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했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커져야만 했을까.
전정국이 오기 전까지 미친듯이 울기만 했다.
태형 선배는 다행히 그 날 새벽에 깨어났다.
태형 선배가 병원에 입원한지 일주일이 다 돼간다.
그리고 민윤기가 모습을 감춘지도 일주일이 다 돼간다.
선배의 말을 들어보니 전정국에게 전화를 막 걸려던 참에 사고가 났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말을 하는데 그냥 내가 괜히 미안했다.
태형 선배는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보이냐며 내 기분을 풀어주려했다.
그래서인지 태형 선배 병문안을 더 자주 가게 됐다.
오늘도 병문안을 왔다. 한참을 태형 선배와 놀고 집으로 가려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문을 닫으려는데 다시 문이 열리고 중년의 여성이 탔다.
"죄송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 괜찮아요"
여자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수척하다고 해야 하나.
그보다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 외모였다.
나는 힐끗 힐끗 여자를 봤고 여자는 땅만 쳐다 볼 뿐이었다.
여자는 태형 선배가 있는 병실의 밑층인 6층에서 내렸다.
왠지 모르게 나도 여자를 따라 6층에서 내렸고
여자는 이런 내 행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 길을 갔다.
여자가 화장실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 잘 있었어? 나야 뭐 계속 병원에 있지.."
여자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난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윤기? 그대로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해. 계속 혼수상태야."
처음엔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너무 똑똑히 들어버렸다. '윤기'라는 이름을.
여자가 손을 씻으며 전화를 하는 바람에 나머지 말은 듣지 못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녀는 608호라고 적힌 병실에 들어갔다.
자연스레 내 눈은 환자의 이름표로 갔고
그 이름표엔 이물질로 성이 가려진 채 '윤기'라는 이름이 써져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이 좆같은지 하필이면 먹잇감을 앞에 두고 사고가 났다.
몇 달간의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된 거 같아 짜증났지만
다행히 김탄소가 자주 병문안을 와서 나름 괜찮았다.
관계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 쉬우니까.
씨발, 여자 한 번 따먹기 존나 힘드네.
친구라는 새끼들은 병문안을 와서 몇 달을 고생했는데 불쌍하다며 날 놀려댔다.
"야, 그냥 이참에 병원에서 따 먹어"
"어디 신성한 병원에서 따 먹냐 미친놈아.
의사양반이랑 간호사들이 들락날락 거리는데.
아, 뭐 하긴 좀 스릴있긴 하겠네."
가볍게 틱틱 던져대는 말이지만 나에겐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왔다.
김탄소가 가고 나서 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친구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몸은 좀 괜찮냐"
"어, 당연하지 그냥 좀 불편한 정도"
"새끼 허세는, 그나저나 불쌍하다 네 놈도"
"그 말 좀 그만해라 지겹다 진짜."
"왜 애새끼들도 그러디?"
"어 미친놈들.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와, 방금 기분 존나 더러웠어.
그나저나, 그 김탄소라는 애는 어쩔거냐"
"야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병원에서 따 먹는 건 좀 무리지?"
"당연하지 미친년아. 말이라고 하냐 그걸."
"하긴, 그렇지?"
"어. 욕불새끼. 개새끼. 발정 난 새끼"
"친구한테 말이 좀 심하네. 여튼, 알겠다."
친구 놈과의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다.
병원에서 하는 것도 나름 괜찮을 거 같은데.
한 번 시도나 해 볼까.
나는 나름 머릿속으로 상황을 구상하며 잠에 들었다.
-김태형.
"...."
-일어나 이 개새끼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 뜨라고.
평소보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계속 들려오는 목소리에 겨우 눈을 떴고
날 쳐다보고있는 민윤기가 눈에 들어왔다.
-눈동자 커지는 거 보면 나 기억하나봐?
존나 오랜만이다, 씨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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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V,J-HOPE - 안아줘
안녕하세요!
일주일 만이죠..ㅎㅎ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저번에도 말했듯이
정말.. 너무 바쁩니다....
일요일이나 평일에 한 번 특별편으로라도 올려고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더라구요...ㅠㅠㅠㅠㅠ
그래도 요새 한 번 쓸 때 마다 나름 분량 늘리고 있어요..!!
안 느껴지신다면 어쩔 수 없죠...
사실 이번 편 내용이 두 화에 걸쳐서 나와야 할 내용인데
너무 질질 끄는 거 같기도 하고
두 화로 적으면 분량도 작아질 거 같아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 그리고 저번 편에서 댓글 못 달아드린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이번에는 꼭! 달아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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