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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탄소의 집에서 한 걸음씩 멀어질 때마다
가기 싫은 내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집을 완전히 나오고 나서야 김탄소를 놓아줬다.
조금이라도 더 김탄소의 흔적을 기억하기 위해
집 옆의 골목에 앉았다.
내심 김탄소가 뛰어 나와 날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날 잡아주면 안 갈 수 있는데.
혹여나 김탄소가 날 찾을까 하는 마음에 몇 분을 기다렸다.
당연히 김탄소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내가 먼저 이렇게 끝을 내버리곤 뭘 바라겠냐.
하늘을 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죽기 전, 술에 찌들려 살았을 때 여기 이 자리에 자주 앉아있었는데.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땐 항상 울었던 것 같다.
죽어서나 살아서나 다를 게 없다.
악몽 같지만 내 머릿속을 헤집는 그 기억을 거부하지 않았다.
"야 이제 좀 잊어 걔가 헤어지자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러고 있냐."
친구놈을 불러 술을 마셨다.
난 당연히 술에 만취하여 '그 애' 타령을 했고
친구놈은 이럴 줄 알았다며 괜히 나왔다며 후회를 했다.
-잊는다는 게.. 말이 쉽지....
끊임없이 들이키는 내 손을 제지시키고 날 일으켜 세웠다.
-저리 치워 미친놈아....
"너 이 때까지 술에만 얼마를 버린 줄 아냐?
아마 네가 모은 돈의 반은 버렸을 거다. 한심한 새끼."
-그럼 반은 남아있겠네.. 술 더 먹을 수 있겠네..
다행이다...
"민윤기 정신차려. 너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건데"
언제까지?
그러게 언제까지 이러고 살지?
'그 애'를 잊을 때 까지?
'그 애'를 잊을 수나 있을까?
잊는 다면 언제 쯤 잊을 수 있을까?
-죽을 때 까지..
나도 이런 내가 한심한데 친구놈은 날 어떻게 볼까.
괜히 밀려오는 쪽팔림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가 내 부축을 해줬고 난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지새끼가 뭘 계산 한다고. 치워. 내가 계산할 테니까"
날 가게 밖으로 밀어 넣으며 친구가 말했다.
친구놈은 택시를 잡아서 날 집으로 보냈다.
-아저씨... 저희 집 말고...
난 꼬인 혀로 '그 애'의 집 주소를 불렀고
택시 아저씨는 차를 돌려 '그 애'의 집으로 갔다.
택시 값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리자 밤 공기가 날 반겼다.
하지만 곧 나는 허리를 굽혀 고통을 느껴야 했다.
간이 약한 지라 술을 먹으면 안 되는데
요즘 무리해서 마셨는지 간 쪽이 더욱 아파왔다.
괜찮아. 몇 분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난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론 배를 움켜 감쌌다.
-아.. 존나 아프네...
점점 다리에 힘을 풀려가기 시작했고 난 거리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다른 곳이 아파 죽겠는데 간도 말썽이니..
몇 분을 앉아있자 고통이 약간 줄어들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애'의 집에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오늘 내가 찾아 오질 말았어야 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건 '그 애'의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김태형과 '그 애'였고
그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해보지 못한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술이 거의 깨다 싶이 했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난 힘이 잘 들어가지도 않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버텼고
그 둘은 다행이도 짧게 떨어졌다.
김태형이 '그 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애'는 웃으며 대답을 하고
김태형은 '그 애'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곧 둘은 팔을 벌려 껴안았다.
얼마나 개같았는지 고통은 줄었지만 계속 아팠던 간에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애'는 정말 김태형을 사랑하나보다.
김태형은 질이 좋지 않았다.
물론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를 사실이었다.
당연히 '그 애'도 그 사실을 몰랐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질이 좋지 않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남자가 허락하겠는가.
난 수도 없이 말하고 또 말하고 말렸다.
그런데 얼마나 김태형을 사랑했으면 내 말을 믿지 않고 김태형의 눈을 믿었다.
아마 이 기분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벽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벽과 얘기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내가 널 놓아줄테니 날 안 좋아해도 되니까 김태형을 좋아하진 말라는 얘기를 할 때면
'그 애'는 날 피했다.
솔직히 말하면 김태형의 눈빛은 믿을만 했다.
내가 봐도 정말 '그 애'를 좋아하는 눈빛이었고
내가 봐도 정말 순수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난 '그 애'를 믿기로 했다.
김태형이 아니다 싶으면 알아서 거리를 두겠지.
그래, 넌 똑똑하니까 알아서 네 몸을 챙기겠지.
난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게.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네가 행복한 모습만 봐도 난 좋다.
나와 같이 있어서 불행한 것 보다
김태형과 같이 있으면서 행복한 것이 더 나으니.
난 또 괜시리 울컥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했다.
"민윤기?"
뒤에서 들리는 청아한 목소리에 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민윤기 맞아?"
돌아보기 싫었다. 돌아보면 또 너에게 추한 모습을 보일테니.
그런데 또 마음 한 편으론 네 모습이 보고싶었다.
결국 난 뒤를 돌았고 그 뒤엔 당연히 김태형과 '그 애'가 있었다.
-그림 좋더라.
"왜 왔어? 너 또 술 마셨지? 그만 좀 해 지겹지도 않아?"
쪽팔리지도 않았다. 이렇게서라도 네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에게 말을 걸어 주는 게 좋았다.
-언제 키스하는 사이까지 갔냐.
"허.."
-잘 어울리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뭐야"
-확실히 나보다 쟤가 좋긴 한가 봐
"너 빨리 집에 들어가 쟨 내가 알아서 보낼게."
김태형은 '그 애'의 어깨를 부드럽게 밀며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가지 마.
목 끝까지 차오른 이 말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그 애'가 집에 들어가자 김태형은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왜 왔냐"
-네 새끼 보러 온 거 아니니까 집이나 쳐 가 씨발놈아.
"우리 거의 초면 아닌가"
-초면이면 씨발, 뭐.
"네 전 애인 귀한 남자친구한테 쌍욕은 너무하지 않나?"
남자친구...
예상해었다. 둘이 사귈 거란 건.
아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들으니 기분이 더 좆같았다.
"안 쪽팔리냐 술 먹고 찾아오는 거.
전화로 술 주정 부리는 것도. 존나 구차해."
-넌.. 안 쪽팔리냐. 동거하는 년도 있는 놈이 남의 애인 뺏기나 하고..
쟤 만나기 전엔 원나잇 한 년들만 어마어마 했다며
일그러지는 김태형의 표정은 아주 볼 만했다.
진짜였구나.
"아, 알고있었어? 걱정하지마.
나 쟤 존나 좋아하거든.
알아들어? 나도 좋아한다고.
쟤 때문에 원나잇도 끊었어."
의외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저 말이 진심일까.
당연히 의심이 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쟤 자신의 입으로 저렇게 말하는데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는데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겠냐.
믿을 수 밖에.
-...쟤 줄테니까... 이제 너희 앞에 안 나타날 테니까
상처만 주지마라... 제발....
다른 여자 보지말고.. 쟤만 봐...
오랜 침묵을 깨고 한 말이 저런 말이라 그런지 김태형이 헛웃음을 쳤다.
-네가 한 말에 책임지라고.
이 때까진 모든 것이 다 풀린 줄 알았다.
나도 마음을 다 버렸고 이젠 김태형과 '그 애'가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난 뒤를 돌아갔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쯤이였다.
"라고 말할 줄 알았지?
지랄하고 앉아있네.
미친놈. 나한텐 저 년도 곧 따 먹을 년 밖에 안 돼. 병신 새끼야"
그래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멍했었지.
마치 머리에 총을 맞은 거 처럼.
김태형을 죽여버리겠다며 떨리던 다리를 끌고 가려는 순간
클라션 소리가 들렸고 난 차에 치였다.
땅에 온 몸이 쳐박혔을 때 난 죽는 그 순간에도
억울한 마음에 김태형을 쳐다봤고
김태형은 마치 의도한 바대로 됐다는 듯 웃고있었다.
난 그렇게 죽었다.
난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이 난다.
이제와서 나에게 묻는다면,
왜 김탄소에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는지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 인생은 죽는 그 순간까지 비참했단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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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악토버 - acacia
이번 편은 평소보다 많이 짧았죠?
기분 탓이에요.
..ㅎ
사실 한 화를 두 파트로 나누려다가 그냥 썼습니다.
...ㅎ
사랑합니다..ㅎ
아, 그리고 꼭 이 밑에 있는 암호닉 중에 독자님들 암호닉이 있는지,
오타는 나지 않았는지 확인 해 주시고
잘못 된 점 있으면 꼭꼭 말해주세요!!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제가 많이 애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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