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팀장이라는 그 존재에 대하여 03
"김성규씨, 표정이 왜 떫은 감 열개는 씹은 사람 같습니까?"
남팀장의 말에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확인했다. 뭐지, 내 표정 이게 뭐지. 왜 눈꼬리는 평소보다 더 올라가있으며 입꼬리는 왜 한쪽만 슬쩍 올라가있을까. 나는 황급히 표정을 풀어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게요, 떫은 감 씹고 왔나봅니다 제가.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대답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대답이었다고 나는 자신한다. 정말로!
-
사무실에 도착한 나와 남팀장은 서로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내 자리에 앉자마자 보이는 보고서. 어제 나에게 똥을 준 그 보고서. 며칠동안 날 괴롭히는 보고서가 밉고 원망스러워 한동안 보고서만 째려보고 있으려니 부팅한지 얼마 안된 컴퓨터 모니터에 뜨는 메신저 창. '김성규씨, 보고서 미워하지말고 일하세요.' 남팀장의 메신저를 본 바로 그 순간 ESC를 눌러 그 창을 껐다. 이 놈의 남팀장. 제가 참 싫어하는 데요. 한번 없애보겠습니다.
어제 덜 마무리한 보고서를 검토하고 또 검토한 끝에 점심시간을 10분정도 남겨두고 결제를 끝냈다. 역시 김성규, 너는 하면 되는 놈이었어. 내가 괜히 수석입사가 아니라니까? 자리에 앉아 설렁설렁 서류정리를 하며 점심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정말 오늘처럼 점심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린 날도 없을 거다. 왜냐고? 오늘 점심은 다른 부서에서 일하지만 나랑 꽤 친한 사이인 성열이 사기로 했으니까. 그것도 무려 스시, 초밥이다.
"점심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드디어 그 어느때보다도 반가운 남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남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의자에서 일어나 성열의 부서 앞으로 향했다. 온통 머릿속에는 초밥 생각만이 가득한채로. 마음 가득 설렘을 안은채 성열을 기다린지 얼마되지않아 성열이 웃으며 나와 나를 반겼다. 가자가자 배고프지? 성열의 물음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을 제대로 못먹어 위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데 나 왜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지?
"성열이 넌 일하는 거 괜찮냐? 너네 부서는 외근 많잖아."
일이라는 게 다 똑같지. 너는 어때, 괜찮냐? 그 사람은 아직도 여전해? 성열의 물음에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냐? 하루도 거를 생각하지않고 똑같이 깐다.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며 괜히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이런 대답도 엘리베이터에 나와 성열이 둘만 있어서 할 수 있는 대답이다. 다른 사람있었으면 둘 다 입 꾹 다물고 점점 줄어드는 엘리베이터 층수만 바라보고 있었겠지.
"힘내, 인마. 오늘은 형이 쏜다!"
회사를 나와 내 어깨를 두어번 치고는 어깨동무를 하며 하는 성열의 말에 나는 웃으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래 어제의 갈굼은 오늘의 초밥으로 푸는 거야. 김성규,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잖아. 그러니까 넌 현재에 충실하면 되는거야.
-
와, 진짜 맛있어. 회전초밥집에 온 나와 성열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예의 우정어린 아름다운 대화를 언제 나누었냐는 듯이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자고로 음식은 전투적으로 맛을 음미하되 속도는 떨어지지않게 먹는 것이 제대로라고 생각하기에 초밥의 맛을 음미하되 최대한 빨리 먹고 있는 나는 자리에 앉은지 약 20분 만에 15개의 접시를 비웠다. 적게 먹은 것 같다고? 계산에 보면 나는 거의 1분에 한접시를 먹은거라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20분 전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성열과 함께 초밥집에서 나왔다. 커피는 내가 쏜다. 경쾌한 나의 말에 성열이 좋아하며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 자식은 키가 컸으면 얼마나 크지, 많이 크다. 아무튼 키가 크면 큰거지 왜 남의 어깨를 팔걸이로 사용하는 지 도통 모르겠다. 내 어깨에 살이 많아서 다른 어깨들보다 더 편하다던가 안락한 것도 아닌데. 팔이 길어서 무거운 짐승인가.
회사 근처 카페에서 나는 화이트모카 아이스를 성열이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해 손에 한잔씩 들고 나왔다. 식후에 길을 걸으며 마시는 이 커피 한잔. 이것이야말로 직장인의 낙, 삶의 활력소가 아닌가. 하늘은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내 볼을 기분 좋게 스치고 내 옆에는 날 즐겁게 해주는 동료가 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찬란한 시간이란 말인가.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베스트 컷이 아닐까.
"김성규씨."
내 인생의 베스트컷? 날 부르는 단호한 목소리에 다 날아갔다. 드라마나 영화로 치자면 NG라고, NG! 날 부르는 목소리에 나와 성열이 둘 다 흠칫했지만 절대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못 들은척하고 가자. 그게 좋겠어. 무언의 대화를 나눈 나와 성열이 좀 더 걸음을 빨리 하려 할때 또 다시 날 부르는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저 목소리.
"김성규씨. 한손에 커피들고 옆에는 장신 한명과 함께 걸어가는 김성규씨."
그의 말에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기분 좋은 미소를 억지로-이거 중요한 포인트- 지으며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내 옆에 있던 성열이도 덩달아 날따라 뒤를 돌아봤다는 건 안비밀. 역시 내 예상대로 내가 뒤를 돌았을 때 보인 인간-사람보다 격이 떨어지는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한 발언-은 내가 근무하고 있는 부서의 팀장, 무려 팀장이신 남우현팀장이었다.
"아하하. 팀장님. 왜 부르시죠?"
아마 지금 내 모든 말과 행동은 경직되어있겠지. 직장인들이 꺼리는 것 중 하나가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직장상사 만나는 거라는 걸 남팀장은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지금 이 순간 한숨을 쉴 수 있다면 땅이 뚫려 한반도의 반대쪽인 우루과이까지 닿도록 한숨을 쉴 수 있을 거다. 김성규씨 부르면 안됩니까? 김성규씨 이름에 금칠이라도 해놓으셨나봅니다. 남팀장의 말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성열이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더 이상 같이 있다가는 속마음을 입밖으로 낼 것같아서.
"야, 김성규. 이대로 회사에 들어와도 돼? 너 남팀장 말 무시할 정도로 높은 자리에 있는 놈이었냐."
얼떨결에 내 손에 잡혀 회사 1층 로비까지 이끌려온 성열이 우뚝 멈춰서서 말했다. 그래, 성열의 말 속에 내포된 뜻대로 난 지금 내 생에서 가장 위험하고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고있다. 감히 일개 사원이 팀장의 말을 무시하고 회사로 들어오다니. 멍청이도 이런 똥멍청이가 없지.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축 쳐진 어깨와 다리를 이끌어 사무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성열이와 헤어지고 사무실로 향하는 길. 굳게 닫혀있는 저 문이 왜 나에게는 지옥문으로 보이는 가. 흑.
작가의 말+암호닉 |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행이 무산되어 이 늦은 시간에 글을 올립니다 이번편은 제가 반정도 정신을 놓고 써서 앞뒤 안맞고 재미없을 지도 몰라요ㅠ 그리고 글 속에서 성규는 반어법을 굉장히 잘 구사합니다. 제가 의도한 바로는.. 그 점 감안해서 읽으시면 성규의 횡설수설을 더 잘 이해하실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ㅋㅋㅋ 제가 생각하는 이글의 장르는 로코물인데 독자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리맨물이기도 하죠 맞아요! 리맨+로코를 지향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코믹한 부분을 넣으려고 노력하지만 능력밖의 일인가봐요ㅋㅋㅋ 오늘 제가 주절주절 굉장히 말이 많죠? 컴배 무대보고 혼자 흥분해서 그래요 다음편 또한 조만간 들고옵니다! 오타나 문맥상 이상한 부분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부끄럽지만..ㅎㅎ 그리고 이 글은 전개속도 느린편이에요. 보면 느끼시겠지만 우현이와 성규는 친해지지도 않은..ㅠ 그런만큼 삼각관꼐같이 진행속도를 더디게 하는 장치들은 되도록이면 쓰지 않을 예정이에요 둘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암호닉은 항상 받고있습니다! 제가 쓰는 다른 글과 별개로 신청해주세요 제가 바보라서 구분짓지 않으면 헷갈립니다ㅜㅜㅜ 암호닉 목록 뇨뇽 감성 꾸꾸미 다음편부터는 말을 좀 줄일게요ㅜㅜ 주절주절 말 많았네요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