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라는 그 존재에 대하여 04 |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양치질할 용기도, 기운도 나지 않아 간단히 가글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점심시간은 이제 5분만 남겨두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남팀장은 왜 들어오지 않는 걸까. 나 속타서 죽으라고? 김성규라는 인간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려고? 김성규라는 인간이 그따위 행동을 해놓고도 평온하게 잘 지낼 수 있는 무개념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별별 생각을 다하며 컴퓨터 모니터 안에서 열심히 제 할일을 하는 화면보호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달칵- 하는 소리가 들리고 들어오는 건 역시 남팀장. 슬쩍 훔쳐본 남팀장의 표정은 구겨져있지도, 그렇다고 활짝 펴있지도 않았다. 음,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표정. 다른 팀원들이 남팀장에게 달갑게 인사를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대역죄인 김성규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채 포스트잇에 굉장히 쓸데 없는 말들만 적어 내려갈 뿐이었다. 하, 내 인생 왜 이러지. "김성규씨, 저한테 좀 오세요." 남팀장의 입에서 김이라는 글자가 나올때부터 불안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날 호출하는 남팀장때문에 내 얼굴은 이미 울상이다. 주변 팀원들이 또 왜 부르냐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지만 지금 난 하나하나 대답해줄 여력이 없다. 남팀장에게 불려가 까임 당할 생각을 하기만해도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지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잘못한 것도 있으니 쿨하게 사과하고 넘어가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성규씨. 여기 있는 자료들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서 내 자리에 올려놓고 퇴근하시고 그 옆의 자료들은 내일까지 보고서 작성해서 제출하세요." 남팀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간이 아니었다. 내가 점심시간에 있던 일을 사과하려 입을 떼기도 전에 나에게 멘붕을 주었으니. 아니 도대체 어떻게 두께가 10cm는 되보이는 A4 용지 뭉텅이를 다 정리해서 오늘 제출할것이며 온통 그래프와 숫자들로 이루어진 이 자료들은 어떻게 보고서로 작성해. 지금 남팀장은 나에게 단단히 심통 나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두,세명이 나눠서 할 일을 전부 나에게 떠맡길리 없지. 속이 좁다 못해 내 눈꼽만한 놈. 남팀장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나오는 나를 보는 팀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불쌍함과 안쓰러움으로 점철되어있었다. 그래, 내가 불쌍하겠지. A4용지인지 재활용하려 모아둔 종이 뭉텅이인지 모를 것들이 내 양 손에 가득 들려있으니까. 그 눈길들에 괜찮다는 듯 불쌍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퇴근할때 제출해야할 자료들부터 정리하고 있으려니 스르륵하고 올라오는 메신저 팝업창. 김성규 괜찮아? 해코지 안 당했어? 성열이었다. 나를 걱정하는 메시지 내용에 오늘까지 두께 10cm 가량의 자료들을 정리해야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분명 성열이는 퇴근 후 같이 정리해주겠다고 나설 것이다. 사람자체가 워낙 착하고 바른 인격을 지녀서 누구와는 다르게 잘 도와주고 날 힘들게하지 않지. 내가 답장을 보낸 지 얼마 안되서 온 성열의 답장은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역시 마이 베스트 프렌드 이성열. 그래? 그럼 나 퇴근하고 너네 사무실가서 도와줄게.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료정리에 집중하느라 무감각해져버린 감각에 고개를 살짝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 퇴근까지 30분정도 남았네. 퇴근은 30분 남았는데 왜 내가 정리할 자료는 3분의 2가 남은거죠. 왜죠. 아직 많이 남은 자료에 한숨을 푹쉬고 다시 자료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퇴근시간 지나면 성열이가 하다못해 빵조가리라도 하나 사오겠지. 빵, 빵하니까 남팀장을 총으로 빵빵 쏴버리고 싶다. "그만 퇴근합시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들 내일 봐요." 자료 정리에 열중하는 데 어느 새 30분이 흐른건지 남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몇몇 나와 친한 팀원들은 힘내라며 내 어깨를 두어번씩 툭툭 쳐주고 갔는데 왜 그게 더 얄밉지. 내가 정녕 삐뚤어진건가. 원래 김성규는 남들이 해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며 살았는데 언제 이렇게 속세의 떼에 찌들어버린 걸까. 이게 다 남팀장 때문이다. 내 안좋은 일의 모든것은 남팀장 때문이다. 기승전남팀장같으니라고. "성규야. 밥 먹고 하자." 한창 속으로 남팀장을 까고 있을 때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 성열의 낮은 목소리가 나에게 한줄기 희망을 주었다. 밥이라니. 눈이 번쩍 뜨여 성열의 손을 보았더니 들려있는 건 회사 주변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도시락집의 도시락.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기 힘들었을 텐데 용케 사온 성열이 기특해 한번 꼭 끌어안아주고 나가서 먹자며 성열을 데리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러고보니 남팀장 퇴근 안한것같은데. 회사 옥상에 위치한 직원 휴게실에 성열과 마주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먼저 상황설명하고 사과하려고 했는 데 남팀장은 내 말 듣지도 않고 일거리만 잔뜩 주더라. 그래서 너무 서운하고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를 성열이는 힘들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를 해주었다. 아, 회사 내에 내 편이 한사람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성열이 같은 놈이 우리 팀 팀장이어야했는데. 그러니까 내말은 남팀장 누가 좀 잘라줘요. |
작가의 말+암호닉 |
좀 늦었나요? 아니죠?ㅎㅎ 음 이번편은 남우현질투의 서막이라고 보시면 되요! 질투를 위한 밑밥같은...ㅋㅋㅋㅋㅋ 저번편부터 댓글에 답글 달아드리고 있는데 괜찮나요? 제 글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조금이나마 감사하는 마음 전하고 싶어서 답글 달기 시작했는 데 소통하는 느낌 들어서 굉장히 좋네요! 댓글로 제 문체, 성규 성격, 우현이 성격, 분위기 등등 칭찬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 최대한 표현하려고 답글 되게 길게 쓰는 편인데 혹시 싫으시면..하하하하 줄일게요!! 암호닉 뇨뇽 감성 꾸꾸미 테라규 망태 해열제 사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