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과 갑작스레 눈이 마주쳐 당황한 찰나 반에 다 왔다는 태형이가 가만히 눈만 마주치고 있는 우리 둘의 등을 밀어 반으로 넣어주었다.
다들 부모님과 만나고 오느라 늦는지 반에는 4명 정도가 앉아있었고 전정국은 서서 잠시 머뭇거리는 거 같더니 내 팔을 붙잡고 창가 쪽 끝자리로 날 끌고 갔다. 아니, 끌고 가다기 보단 데리고 갔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다.
전정국과 나는 자리에 앉아서도 한참 얘기가 없었다. 전정국도, 나처럼 조용한 걸 좋아하는 성격인 듯 했다.
한 10분 쯤 지났을까, 한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11시부터 담임 선생님의 시간이라고 칠판에 적고 나가셨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아직 30분 정도 남았었다.
그 때 갑자기 전정국이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나가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반에 혼자 남겨지기 싫은 마음에 전정국의 마이를 잡고 용기 내어 물었다.
" 어디 가? "
" 김태형 보러. "
" 아.. "
마이를 잡아 끄는 손길에 뭐냐는 듯이 보다 어디 가냐고 묻는 내 말에 태형이를 보러 간다고 답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
" ...같이 갈래? "
" 어.. 같이 가. "
같이 갈 거냐는 전정국의 말에 같이 가자고 답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둘은 옆반에 들어가 태형이를 찾았는데 무슨 일인지 태형이는 보이지 않았다. 교실 뒤쪽에 아이들이 뭉쳐있는 곳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중심에 태형이가 있었다.
진짜 태형이 친화력은 대단한 거 같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신기했다.
그냥 태형이를 보고만 있던 찰나 전정국이 아까처럼 내 팔을 잡고 태형이 쪽으로 갔다.
" 야, 김태형. "
" 어, 전정ㄱ.. 이름이도 왔네! "
태형이는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 왜 왔어? "
" 11시부터 담임 시간이래. "
" 아, 어쩐지 아무도 안 오더라니. 너네 둘이 있기 어색해서 왔구나? "
" 뭐래. "
" 역시 너희한테 이 형이 없으면 안 돼는 건가. "
" 미쳤냐? "
" 야, 이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
왜 왔냐는 물음에 답한 건 나고, 그 다음부터는 전정국과 태형이의 대화다. 역시나 또 태형이는 전정국의 놀림에 입술을 쭉 내밀며 삐졌다는 듯 티를 팍팍 냈고 전정국은 태형이가 어떻든 신경도 안 쓰는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 같았다.
우리는 한참 태형이 옆 자리와 앞자리를 차지하고 같이 떠들었다. 전정국과도 몇번 말을 섞었는데, 전정국은 낯을 가리는게 아니라 그냥 원래 말이 없는 거 같다. 사실 이 주제로 태형이는 나에게 엄청난 하소연을 했다. 말을 하는데 대답을 안 해준다는 둥, 자기가 뭘 해도 관심이 없다는 둥, 이런 식의 하소연을 하는데 바로 옆에서 듣는 전정국은 태형이의 모습을 보고 살짝 웃는 것 빼고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30분이 지나 11시가 되고 우리는 같이 반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들어왔다. 우리 반의 담임 선생님은 2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선한 인상을 가지고 계셨다.
담임 선생님이 입학식이라 부모님들 기다리신다고 일찍 끝내주시곤 점심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도 해주셨다. 좋으신 분 같다.
나도 모르게 전정국이 편해졌는지 무의식에 말을 걸었다.
" 선생님 좋으신 분 같지? "
" ...? "
전정국도 내가 말을 걸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지 살짝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 아, 아니.. 그냥.. 어, 인상이 좋아보이셔서.. 그래서 물어본 거야. "
" 아, 어. "
횡설수설 말을 이은 나는 저 말을 하고 속으로 엄청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속으로 후회하며 내가 한 말을 곱씹고 있는데 전정국이 검지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 어? "
" 김태형이랑 같이 밥 먹으러 갈래? "
" 오늘? "
" 어, 너도 부모님 안 오신 거 같은데 집에서 혼자 먹기 외롭잖아. "
전정국의 마지막 말을 듣고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과 동시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느껴졌다. 왠지 그동안 혼자였던 나를 다 알고 말해주는 거 같고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느낌에 전정국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 ...같이 안 먹을 거면 말고. "
" 아, 아니야! 같이 먹을래! "
내가 계속 쳐다봐서 그런지 전정국은 잠깐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나는 이 아이들과 친해질 기회를 놓치기 싫어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전정국과 나는 교실 밖으로 나와 태형이네 반 앞에서 나란히 기다렸다.
어느덧 태형이네 반도 끝나고 우리 셋은 교문을 빠져나오며 어디서 밥을 먹을지 고민했다.
태형이는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고, 나는 돈까스가 먹고 싶어서 서로 티격태격 하면서 그렇게 길을 걸었다.
" 이름이가 뭘 모르네, 점심은 피자. 몰라? "
" 그런 건 또 뭐람. 요즘 같은 날씨엔 돈까스지! "
" 아, 피자 먹자. 피자아아- "
" 아, 싫ㅇ.. "
" 다 조용히하고 그냥 분식이나 먹어. "
물론 오래 가지 않아 전정국 덕분에 조용해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