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할 걸 - 버스커버스커
[방탄소년단/전정국] 이과 왕자님이 날 좋아할 때의 대처법 07 (부제: 너와 나의 온도 차)
김석진
야야
김석진
야
? 와
나 맞았어
?
뭔 지랄인데 뜬금없이
그냥 너한텐 말해야 될 것 같길래
누구한테 맞았는데
은승조 동생 무리한테
미친 새끼들; 은승조 때문에?
많이 다쳤나?
아니 그냥 피 좀 나고 입 좀 터지고
니 짐 어디고
:::
"이렇게 될 때까지 내 안 부르고 뭐 했는데"
"맞고 있었지. 연락을 어떻게 하냐"
"빙시 같이 혼자 버티고 있었나? 소리라도 꽥 지르든가 독한 가시나야"
고맙게도 과외까지 째고 학교 정자로 찾아와준 김석진에게 애써 괜찮은 척 웃어보였지만 입꼬리를 움직일 때마다 터진 부위 가득 고통이 밀려왔다. 김석진이 챙겨온 얼음 주머니를 볼에 가져다댔다. 너무 차가워서 볼에 닿는 순간 바로 떼어내려는데 김석진이 상처 투성이인 얼굴로 전정국 맞이하고 싶지 않으면 말 들으라며 억지로 볼에 얼음 주머니를 문질렀다. 주머니에서 뽀로로 밴드와 후시딘을 꺼낸 김석진이 팔꿈치를 비롯한 까진 상처에 연고를 듬뿍 발라 새끼 손가락으로 펴발라주었고 초딩스러운 뽀로로 밴드가 온몸에 덕지덕지 붙여질 때는 쪽팔려서 죽고 싶었다.
"우리 집은 마데카솔 쓰는데. 후시딘 구려"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죄송합니다 형님"
장난스레 쫀 연기를 하고 정자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짧은 치마에 당황한 김석진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치마를 가려주었고 내게 백허그하며 속옷 보인다는 능글거린 말투를 시전한 전정국이 떠올랐다. 내가 왜 계속 전정국 생각만 하는 거지?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승조 때문이지만 연관된 전정국이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내게 화를 낸 것에 대해 상당히 화가 났고 서러웠다. 초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처음 흘린 눈물의 이유가 폭행 때문이라니 수치스러웠다.
김석진이 전정국에게 연락은 했냐고 물었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연락 안 했으면 본인이 직접 전해주겠다며 핸드폰을 집어든 김석진의 손을 탁- 내리쳤고 핸드폰이 떨어졌다. 김석진이 당황했다는 듯 날 쳐다봤고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연락 안 해도 돼"
"마, 그래도 니 좋다고 쫄래쫄래 꽁지 따라 댕기는데"
"..."
"분명 니도 꾹이 좋아한다이가"
"싸웠어"
싸웠다는 나의 말에 김석진이 루즈하게 풀어진 자세를 고치고 허리를 제법 꼿꼿이 폈다. 김석진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자 생각보다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김석진이 내린 결론은 정확하고도 깔끔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정신차리고 보니 난 전정국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고 씹은 여자가 되어 있었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전정국은 화가 났다. 고의는 아니었는데 상황을 모르는 전정국은 내가 귀찮아서 그런 줄 알았겠지. 답답해서 마음에 물을 타고 싶었다.
...아니면 피크닉 복숭아 맛이라든지.
다음날 등교한 내 모습을 보고 정수정과 배주현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 궁금하고 화나는 건 꼭 알아햐 하는 배주현이 집착하듯 누가 때렸냐고 물었지만 은승현이라고 말했다가는 일이 더 커질 것 같아서 그냥 넘어졌다고 둘러댔다. 나만큼이나 은승조를 싫어하는 배주현의 성격을 난 누구보다도 더 잘 아니까. 그러나 둘 다 속을 리 전혀 없다. 눈치가 빠른 데다가 넘어졌다고 입 안쪽까지 불어터진 사람은 없지. 정수정은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지 때려 맞추기 식으로 아는 이름들이라곤 죄다 불러대더니 속상하니까 넘어졌다는 거짓말 말고 누구랑 싸웠는지 빨리 불란다.
배주현이 분명 은승조와 관련된 일일 거라며 전정국은 언제 입국하냐고 칭얼댔다. 은승조로부터 날 지켜야 한다며. 과연 전정국이 한국에 돌아와서 날 지켜줄까? 애꿎은 화만 내진 않을까. 전정국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다. 하루 뒤면 전정국이 입국하는 날이었다. 나는 온 마음을 다 해 폭우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 하길, 그래서 전정국이 며칠 뒤에 한국에 도착하길 빌었다. 허나 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로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확인한 아침 뉴스에선 날씨가 쨍쨍하다는 기상 리포터의 음성만이 앵앵 흘러나올 뿐이었다. 에이, 중국 날씨와는 다르겠지- 하며 위로하려 들었지만 띠링 소리와 함께 전송된 중국으로 여행간 사촌 언니가 날씨 좋다며 찍어서 보내준 사진 때문에 모든 기대를 싸그리 싹싹 고이 접어 쓰레기통으로 버려야만 했다.
하복을 입을까 하다가 가디건을 챙겨줄 전정국이 없을 것 같아서 춘추복을 입었다. 항상 사물함에 가디건을 처박아두고 다니는 전정국이지만 오늘은 다정하게 내 허리에 둘러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민윤기. 같이 가자"
"니 생각보다 일찍 나오네? 미련 곰탱이 같이 생기가 맨날천날 지각하는 지각쟁인 줄 알았는데"
"맞고 싶냐?"
민윤기를 때리는 척하며 들어올린 팔 탓에 와이셔츠와 상처가 맞닿아 따가운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표정이 찌푸려지자 민윤기가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난 괜찮다며 민윤기를 안심시켰다. 편의점 앞 횡단보도에선 김태형도 만났다. 정호석네 집에서 논 이후로 학교에서 잘 안 보이더니 얼굴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왔다. 너도 어디서 한 판 굴렀냐, 태형아.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데 김태형이 한 발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김탄손 니 얼굴에 그 밴드 뭔데? 다칬나?"
"어? 아, 좀 까져서"
"다리엔 또 뭔데? 쌈박질이라도 했나?"
살구색 스타킹 너머로 보이는 연갈색 밴드가 창피했다. 그냥 넘어진 거라며 김태형의 팔을 아프지 않게 내리치자 본인은 옆 학교 애 하나와 시비가 붙어서 싸웠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게 자랑거리냐며 김태형의 머리에 꿀밤을 놓던 민윤기가 약간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다리에 붙은 밴드를 빤히 바라봤다. 무슨 의미를 담은 눈빛인지 알고 싶었지만 괜히 은승현 무리에게 털린 걸 들킬까봐, 그래서 전정국의 귀에 들까봐 왜 밴드를 쳐다보냐는 질문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미워도 전정국에게 걱정거릴 안기고 싶진 않았다. 무작정 김태형과 민윤기의 뒤를 따라 걷는 도중 핸드폰 알림이 떴다.
[김석진한테 들었다 - 민윤기]
[전정국이 니 이 꼴 난 거 보면 뭐라 지랄할 텐데 - 민윤기]
전정국 얘기를 듣고 한숨만 푹 쉬었고 내 한숨 소릴 들은 모양인지 김태형은 힘든 일 있으면 이 오빠에게 말하라며 어깨동무를 했다. 키가 안 맞아서 김태형이 거의 무릎을 반 접고 걸어다니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장난스런 행동 덕에 간만에 웃음이 픽픽 났다. 생각보다 더 일찍 도착한 교실엔 아무도 없었고 민윤기와 김석진이 언제 뭔 일이 생길지 모르는 거라며 우리 교실로 와 내 옆자리와 앞자리에 앉았다. 하나 둘 반 친구들이 도착하며 교실은 금세 부산스러워졌고 가방을 쿵- 소리나게 내려놓은 은승조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술을 진하게 바르더니 교실을 나섰다.
"저 년 끝까지 꼴아보고 가네"
영 마음에 안 드는지 다리를 꼰 채로 은승조를 쨰려보던 민윤기가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졌다. 도착한 배주현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민윤기에 놀라서 흡! 소리를 내자 민윤기가 웃으며 자리를 내어줬고 김석진은 혀를 끌끌차며 민윤기를 끌고 이과층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
체육 시간이 끝나고 나서였다. 배주현과 정수정은 먼저 식당에 줄 서 있겠다며 옷을 느리게 갈아입는 내게 천천히 오라는 말을 남기고 체육 창고 밖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짧고 타이트한 반팔과 체육복 반바지만 입은 채로 체육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분명 체육복 가방에 넣어뒀던 셔츠와 니트가 보이지 않는다. 당황스런 마음에 곰곰이 떠올려보자 피구하는 도중 스탠드에 앉아 뭔가를 뒤적거리던 은승조의 모습이 그려졌다. 희대의 썅년.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고 그냥 체육복을 입고 나가야 하나 싶던 순간이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체육관 문이 잠겼고 난 어김없이 갇히고 말았다. 소리가 울리는 복도 특성 상 크큭- 하며 웃는 은승조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고 화가 나서 소리라도 바락바락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우리 학교는 옷을 체육 창고에서 갈아입게 하며 체육 창고는 문을 밖에서 잠굴 수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걸까.
십 분 정도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문이 열렸다. 전정국이었다. 어떻게 왔는지 궁금해 할 새도 없이 당황한 마음에 입을 헤- 벌리고 쳐다봤고 전정국은 눈을 마주치자 마자 바로 피하고 헛기침을 두어 번 정도 하더니 자신의 하복 셔츠와 가디건을 던져줬다. 추우니까 가디건 안 입고 나오면 혼난다는 말도 남겼다. 어색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바로 전정국을 앞질러 갔던 것 같다. 배주현의 옆자리로 가서 애꿎은 머리칼만 매만지는데 전정국의 음성이 들려왔다.
"김탄손 니 꼴이 와 이라는데"
"...왜"
"입술은 부르터가지고 눈 밑에 생채기 나 있고, 밴드는 또 뭐냐고!"
결국 일났다. 전정국과 눈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 그것도 보자마자 바로 눈을 피했는데 성큼성큼 걸어와 대뜸 소리부터 지른다. 전정국 덕에 저 멀리서 밥 먹고 있는 은승조는 물론 줄 서는 전교생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옆에서 함께 장난치던 정수정이 놀란 듯 김남준 쪽으로 몸을 움직였고 배주현도 전정국 말릴 민윤기를 찾으러 자리를 떴다. 화가 많이 난 듯 눈을 부라리며 거센 숨을 훅훅 쉬는 전정국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계속 쳐다보다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괜히 미안하기도 했고 이런 상황이 무섭기도 했다.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전정국이 내 양쪽 어깨를 손으로 잡고 앞뒤로 내 몸을 잔뜩 흔들어댔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눈길마저 피하는 내 모습이 어지간히도 답답했던 건지 전정국은 쌀 포대가 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발로 찼다. 쾅-하는 소리가 식당에 울려퍼졌고 성인 남자 키만 한 컨테이너 박스가 찌그러졌다. 전정국은 슬리퍼를 신고 찼음에도 불구하고 아픈 기색 하나 없이 내 두 눈을 뚫을 기세로 쳐다봤다.
"전화는 마음대로 끊고 연락은 다 씹고"
"..."
"그마저도 아예 확인 안 하든가 난주에 보니까 확인하고 답장 안 하더만. 이건 또 뭔 밀당인데? 어디서 배았나? 이딴 게 제일 싫다 내는 진짜!"
"..."
"그래도 니라서, 어? 니라서 참고 왔는데 지금 꼴이 이게 뭔데? 어? 안 보일 줄 알았나? 눈 밑에 빨간 생채기는 뭐고 스타킹 속에 밴드 붙인 건 또 뭐냐고! 전화 대신 받은 그 애새낀 또 누군데? 그 새끼가 이래 했나? 말을 하든가 김탄손 이 답답한 가시나야!"
이젠 즐겨 부르던 찹쌀떡이란 애칭 없이 딱딱한 이름으로 날 칭했다. 심장에 지진이라도 난 듯 온 몸의 피가 굳는 느낌이었다. 전정국이 벽으로 날 밀치며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기 시작하자 주위 시선은 더욱 우리에게 집중됐고 머지 않아 민윤기와 김석진이 도착했다. 날 구석으로 모는 전정국을 끌어안고 막으며 진정하라는 김석진의 팔을 내팽개친 전정국이 큰 소리로 욕하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뭐든 해명을 좀 하고 싶었는데 잔뜩 화난 전정국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민윤기가 날 안타깝게 쳐다봤고 배주현은 많이 놀란 듯 민윤기 뒤에 숨어 입을 틀어막은 채로 눈만 동그랗게 떴다.
"은승현"
"..."
"은승조 동생 있다이가"
"애새끼 어딨나"
"지네 애들이랑 같이 도서관 뒤에. 식전 때리던데"
민윤기의 나지막한 음성이 깔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전정국이 줄 선 아이들을 뒤로 제치고 밥 먹으며 눈치를 힐긋 보던 은승조 쪽으로 걸어갔다. 은승조는 당황한 듯 낯빛이 거멓게 변해 아파 보였다. 은승조 옆에 있던 빈 자리의 의자를 발로 차던 전정국이 네 동생 족치러 간다며 은승조의 이마를 검지로 꾹 누르고는 식당 계단을 거슬러 올라갔다. 은승현에게 가려는 듯 제법 빠른 걸음이었고 박지민은 안절부절 못 한 채로 민윤기의 팔만 잡아 끌었다. 전정국 꼭지 돌았다고, 다 망했다고. 그렇게 칭얼대다가 은승현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식당을 부쉈을 거라며 박지민을 진정시키는 민윤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남준이 침착하게 고민하다가 전정국을 따라가자고 제안했고 다들 줄에서 빠져나왔다.
제아무리 싸움과 운동으로 알아주는 전정국이래도 쪽수가 밀리는 상황이라면 힘들 거란 게 김남준의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같이 싸우자는 것도 아니었다. 멀리서 지켜보다가 싸움날 것 같으면 가서 은승현네 무리 애들 몇 명만 대충 건드리고 전정국을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던 거다. 배주현과 정수정 그리고 난 도서관 근처 벤치에 앉아 작은 골목 틈으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배주현이 왜 말 안 했냐며 어쩌다 그렇게 된 거냐 물었고 차근차근 정황을 풀어내자 정수정은 화가 많이 난 듯해 보였다.
한참 기다려도 조용하길래 말리는 정수정과 배주현을 뒤로하고 용기내어 도서관 뒤로 걸어가자 아무런 말 못 한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아이들과 정색한 채 은승현을 털고 있는 전정국이 보였다. 전정국의 상태를 파악했는지 이미 은승현 무리의 몇 명은 긴장한 표정으로 은근슬쩍 장소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전정국이 은승현을 바닥에 깔아 눕혔고 몇 번의 주먹질 끝에 입에서 피가 줄줄 새기 시작했다. 정호석은 저러다 쟤 사람 죽이겠다며 말리라는 제스처를 취했건만 김남준은 이미 꼭지 돈 전정국은 말릴 수가 없다며 혀를 끌끌찼다.
"ㅎ,헉- 니네 누나나 니나 좆 같은 거, 학, 잘 알제?"
"ㅇ, 으.."
전정국도 힘이 드는지 숨을 헉헉 쉬었고 그러면서도 은승현을 향한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은승현은 반 실성한 듯한 표정으로 침을 질질 흘려가며 계속해서 맞고 있었다. 왜 때렸냐는 전정국의 질문에 은승현이 우물쭈물대자 전정국은 변명할 생각이면 그냥 여기서 맞고 죽으라며 은승현의 복부를 가격했다. 은승현이 콜록대며 누나가 시켰다고 겨우 말했고 전정국을 비롯한 이과 무리가 코웃음을 흘렸다. 전정국이 은승현의 주머니에 있던 담배곽을 주먹으로 일그러뜨려 바닥에 던졌다. 그리곤 긴 팔을 쭉 뻗어 은승현의 목을 짓눌렀다. 도살장 끌려온 소마냥 헐떡거리는 꼴이 보기 역겨웠다.
"그 작은 애 때리니까, 헥- 좋드나? 어?"
"ㅎ, 형 저 숨, 으... 막혀요"
"좋냐고 씨발 새끼야! 누구는 손 한 번 잡아보고 아까워서 못 건드리는데!"
"ㅎ, 하... 학, 학..."
"뭐? 때린다고 닳나? ㅎ, 흐. 니 새끼도 안 닳으니까 때려도, 학- 되나?"
이 광경을 계속 보다간 앞으론 정말 전정국 얼굴 보기가 무서워질 것만 같아서 금세 자리를 빠져나왔고 현장에서 따라나온 김석진이 매너있게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저 새끼 화나면 원래 저런다. 너무 놀라고 그라진 마라"
"...어떻게 안 놀라. 저러는 걸 처음 봤는데"
"내 보기에도 저 정도까지 지랄하는 건 거의 처음이긴 한데 뭐, 그냥 니 많이 좋아한다 이래 좋게 쫌 봐주리"
초등학교 때부터 전정국과 친구였고 부모님끼리도 동창이라던 김석진의 저러는 거 거의 처음 봤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나에 대한 전정국의 감정에 신뢰감이 생겼다. 아마 내가 전정국이었어도 많이 답답했을 거다. 자신이 내 옆에 없는 상황에서 모르는 남자가 전화를 대신 받으며 욕설과 함께 때리면 닳냐는 소릴 지껄이고,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건 전화는 도중에 먼저 끊어버리고, 갑자기 연락도 안 되다가 간만에 얼굴 보니 진짜 맞은 모양인지 상처 투성이인 상태로 눈치만 보며 시선을 피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아무리 잘 생각해봐도 전정국이 걱정하고 오해할만 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내가 전정국의 걱정을 덜기 위해 한 행동이었어도 말이다. 어떻게 미안하단 말을 전할까 싶어 고민하는데 김석진이 내 표정을 보더니 내가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며 큭큭 웃었다. 곧 좋을 날이 올 거란 말도 잊지 않은 채 배고파 죽겠다며 벤치에 앉아 있던 정수정과 배주현을 식당으로 데려갔고 내게도 밥을 먹자고 권했지만 정신도 없고 영 입맛도 없어서 거절했다. 벤치에 앉아 사색하는데 전정국이 준 다 녹아버린 녹차킷캣이 보고 싶어졌다. 치마 주머니를 뒤지는데 아차, 오늘 하복 말고 춘추복을 입고 왔구나. 하복 치마 세탁기에 넣었는데... 자신이 원망스러워져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꾹 깨물고 있었다.
찰박- 찰박- 슬리퍼가 교정을 가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전정국이 도서관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오늘도 하복을 입었다. 손으로 팔을 슥슥 매만지는 걸 보면 아마 자신도 추우면서 괜히 내게 가디건을 양보했음이 틀림없다. 먼저 다가가서 대뜸 사과부터 하면 당황스럽겠지? 막상 말하려니 내 성격상 어투가 곱게 나가진 않을 것 같아 일어나려다가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전정국이 가까워졌다. 내가 앉아 있는 벤치가 이동식 벤치라면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말도 안 된다. 확실한 것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다가갔든 전정국이 먼저 다가왔든 이제 내 눈 앞에 전정국이 있다는 거다.
"앞으로 누가 괴롭히고 때리고 그라믄 낸테 말해라"
"...네가 뭔데"
"니 남자친구"
"무슨..."
"하고 싶은 사람"
"..."
"내는, 니 남자친구 하고 싶은 사람"
나도 모르게 네가 뭐냐는 등의 재수없는 대답을 돌려주었지만 전정국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첫 만남 때와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로 내내 웃지 않더니 '네 남자친구 하고 싶은 사람'이라며 살짝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사르르 녹아서 서운한 점을 홀랑 말해버리고 말았다.
"전정국"
"와"
"...오늘은 왜 찹쌀떡이라고 안 불러줘"
전정국이 정색하다가 날 와락 껴안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그 말 듣고 싶어서"
"..."
"그 삐친 말투 듣고 싶어서 한 거 아이겠나"
전정국을 바라보고 딱 세 글자 말했다. 미안해, 딱 세 글자.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변명 없이 다이렉트로 쏠 수 있는 내 용기에 스스로 박수를 쳤다. 전정국이 약속한 거 해주겠다며 큰 손을 머리 위에 올려 쓰담쓰담 매만져주었다. 심장에 무리가 왔다. 이런 걸 심쿵이라고 하나. 아깐 심장에 지진이 온 것 같았다면 지금은 홍수가 나서 모든 게 다 쓸려내려갈 지경이었다. 바람이 불었고 내 몸에 걸쳐진 전정국의 큰 가디건이 펄럭거렸다. 섬유유연제 향기가 코를 감쌌다.
"나 미워?"
"미웠는데"
"지금은?"
전정국이 내 손을 잡고 대뜸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 전정국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따뜻한 물이 아니면 입에 대질 않았다. 더운 여름에도 미지근한 물만 고집하고 겨울에는 학교 급수대에서 나오는 찬 물이 싫어서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싸서 들고 다녔다. 몸에 열이 워낙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은데 요즘들어 자꾸 더워진다. 찬 물을 좋아하게 됐다. 전정국을 만나고서부터 몸이 후끈 달아오를 때가 많았는데 미지근한 물로는 몸이 식지 않았다. 머리를 말릴 때도 찬 바람으로, 하복과 춘추복 혼용 기간 동안엔 거의 하복만 입고. 그렇게 조금씩 내 온도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온도 차가 줄고 있었다. 고위도의 온도에서 시작한 너는 아마 날 만나고서부터 따뜻해졌을 거고 적도의 온도에서 시작한 나는 분명 널 만나고서부터 확실히 시원해졌다.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져갔다.
아, 하복은 그냥 전정국이 자주 입길래 나도 모르게 계속 입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인정하고 싶진 않다, 부끄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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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안에 두 편 올리기 성공인가요? 분량은 좀 짧지만 그래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업로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했어요 ㅋㅋㅋㅋㅋㅋ
정국이가 승현이 때렸다!! (만세) (기쁨) (오열) 저 오늘 나름 열일한 것 같아요 (혼자 뿌듯;;)
사랑해오 독자님들 뿐이애오 늘 댓글 보면서 힘을 내오 정말 한 분도 빼지 않고 댓글 다 봐오... 하투
+) 급하게 업로드한 탓에 실수가 많아서 계속 수정 중입니다!! 크크 (민망)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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