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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붑붑님♥
옆집에 애아빠가 산다
12
* * *
승관이의 전화를 끊어버리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있는데, 곧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더듬더듬 손을 뻗어 전화를 받자 다시 부승관이다. 무슨 일이냐 묻자 대뜸 집앞이니 나오라는 말에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물어보니 당당한 목소리로 나와, 내가 술 사줄게. 하고는 뚝, 전화가 끊긴다. 언제나 처럼 잔뜩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나를 알고 먼저 찾아와준 승관이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얼른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집 앞으로 나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승관이의 손에 이끌려 동네 포장마차에서 마주보고 앉아 한잔, 두잔 마시다 슬슬 정신이 몽롱해질 쯤 승관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잔만 채우는 내 몫까지 본인이 다 하겠다는 듯 세상에 있는 온갖 욕들을 다 끌어다 쓰는 부승관에 실실 웃음이 샜다. 뭘 웃냐며 나를 향해 소리를 치는 승관이에 그저 고개만 까딱거리며 잔을 비웠다.
" 아니, 그 새끼는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놓고 왜 다시 돌아온대? 뭐 때문에? "
" ... "
" 평생 다시는 마주칠 일 없을 것 처럼 떠나놓고, 왜 또 다시 돌아왔냐고- "
" ...돌아올 일이 생겼나보지.. "
" 야! 이 답답한.. "
승관이는 멍하니 뱉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테이블에 거칠게 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나에게 삿대질을 해댔고, 나는 또 그저 내 앞에 놓인 잔을 채울 뿐이었다. 말 그대로 였다. 아무 말 없이 떠났던 사람이 또 아무 말 없이 돌아온 이유는, 분명 떠났을 때 처럼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겠지. 길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성질이 난다며 씩씩거리다 손을 번쩍 들며 이모! 여기 소주 한병 더 줘요! 외치는 승관이를 걱정스레 바라봤다. 여자인 나보다도 술이 약하면서 또 뒷일 생각 않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꼴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그 행동을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아 가만히 있었다.
역시나 포차 이모가 가져다준 새 소주병을 깐지 얼마나 되었다고, 승관이는 완전히 정신을 놓고 휘청거리며 제 몸을 겨우 가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셔서인지 나또한 평소보다 훨씬 빨리 취기가 돌아 어느새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기 시작했다. 얼른 승관이를 챙겨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몸은 움직여지지 않아 주머니에 든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승관이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휘청거리던 부승관은 용케 그 전화를 받고 잔뜩 꼬부라진 혀로 겨우겨우 대화를 이었다.
" 뭐야아, 너 누구야? "
" 승가나... 너 취해따.. "
" 누구? 김민규우? 미쳤냐? 니가 뭔데 나한테 전화질이야아- 엉? "
휴대폰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승관이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내저으며 말리려는데, 순간 승관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 석자에 우뚝, 휘젓던 팔을 멈췄다. 어디이? 니-가 뭔데 여주를 찾아? 그래애, 같이있다. 어쩔래? 알려주면, 올거냐? 한참을 더 코웃음을 치며 소리를 지르던 승관이가 지르듯 우리 동네 이름을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미 승관이와 비슷하게 정신줄을 놓은 내가 상황파악 못하고 다시 빈 잔을 채우려는데 승관이가 손을 저으며 말렸다. 취했으니 더 마시면 안된다 나를 말리던 승관이는 결국 완전히 취기가 올라 테이블에 엎어졌다. 그런 승관이를 부르며 몇번 흔들다 곧 미련을 버리고 다시 내 앞에 놓인 빈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술이 잘 넘어가네- 바보같이 자꾸만 웃음도 튀어나와 혼자 잔을 붙들고 실실 웃다가 막 입에 잔을 털어 넣으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손이 나를 막았다.
" 뭐야아... 나 이거 마셔야대는데에... "
" 안돼, 너 이미 취했어. 야, 너 부승관 집 알지? 얘 좀 택시 태워 보내라. "
" 누구야아- 승가니... 승가니 내가 챙겨야대... "
" 넌 니 몸이나 챙겨. 자, 일어나자. "
내 손에서 잔을 뺏은 남자는 함께 온 남자가 부승관을 부축하는 것을 대충 도와주고는 중얼거리고 있는 내 한쪽 팔을 제 어깨에 걸치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따라 일어나긴 했는데 나를 부축하는 남자의 어깨가 내가 기대기 불편할 정도로 위쪽에 있어 몰려오는 불편함에 인상을 찌푸리며 칭얼거렸다. 그러자 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술값을 계산하던 남자가 작게 웃으며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업혀, 업어줄게. 눈 앞이 빙글거리는 와중에도 널찍한 등판은 눈에 들어왔다. 몇번 눈을 깜빡거리며 물끄러미 앞에 쪼그려앉은 남자를 보다 한번 더 나를 재촉하는 소리에 남자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대로 업혔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덥썩 업혀놓고, 나는 집 주소를 묻는 남자에게 또 술술 우리 집 위치를 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며 나를 업은 단단한 등이 왠지 익숙하고 편안해서 자꾸만 꿈지럭대며 그 등에 더욱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불편할만도 한데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한번씩 나를 올려 업으며 피식피식 웃어댔다. 내가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집까지 걸어가며 뭐라뭐라 말하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너무도 편안해서 그 내용을 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시선이 가는 사람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얼결에 나의 비밀도 말해버렸다. 단 하루, 몇시간만에 벌어진 일에 집에 돌아와서야 내가 오늘 하루 무슨 일을 한건지 정신이 들었다. 그 사람의 비밀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고, 그 사람은 나의 비밀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유치원에서 시우를 데리고 오는 와중에도 자꾸만 옆집 누나를 찾는 통에 애를 먹었다. 알게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미 시우에게 옆집 누나는 평범한 옆집 이웃을 넘어선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빠인 내 손을 잡고 누나를 보고싶다며 입술을 비죽거리는 모습에 애처럼 서운해지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이 어린 아이에게 벌써 이만큼 커다란 존재로 자리잡았다는게 놀랍고 신기했다.
자꾸만 누나를 보러 가겠다 떼를 쓰는 통에 결국 유치원에서 돌아와 저녁까지 먹은 뒤 시우는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몇번을 눌러도 대답이 없자 따라나온 나를 올려다보며 울상을 짓는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누나가 잠깐 나갔나보다. 하고 아이를 달래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시우와 여유롭게 놀아주다 어느새 졸음이 가득한 아이를 방에 눕히고 잠이 든걸 확인하고 나서야 방 밖으로 나와 TV를 켰다.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다 곧 일기예보가 방송되었다. 나도 모르게 몸울 곧추세우며 기상캐스터의 말에 집중했다. 수도권 지방에 새벽부터 비가 올것이라 말하는 기상캐스터의 맑은 목소리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창 밖을 바라봤다. 아직은 맑은 하늘이었지만 왠지모르게 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해 머리를 긁적였다. 기상정보를 마지막으로 뉴스가 끝나고 광고를 방송하는 TV 전원을 끈 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괜히 신경이 쓰여 발걸음이 느릿해졌다. 잠깐 망설이다 결국 얇은 겉옷을 하나 걸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도 한참 아파트 복도만 서성거렸다. 깜빡거리는 센서등 빛을 받으며 옆집 현관문만 노려보다 내가 왜 나왔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5분 남짓한 일기예보를 보고, 그 와중에 10초 쯤 언급한 비 소식 하나를 듣고 집에서 나와 찬 바람을 맞으며 서성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그러다 아까 비어있던 옆집이 아직도 비어있나 싶어 손목에 매인 시계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여자가 밖에 있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나 자신을 우스워하던 몇 초 전의 모습과 달리 지금의 나는 또 시간을 보며 또 다른 걱정을 늘어놓고 있었다. 양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몇 번 저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들어가서 자자. 그냥 자자. 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층에서 멈추는 알림음이 들려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 여주야, 집 왔어. 비밀번호, 비밀번호 말해봐. 응? "
" 으움... 몰라아- "
" 어휴, 부승관 진짜, 술 좀 작작 먹이지.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건 훤칠한 남자와 그 등에 업힌 그 사람이었다. 이 시간에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만든 사람. 자동으로 찌푸려지는 인상에 한숨을 쉬며 그 둘을 삐딱하게 바라보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완전히 내린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자 숙이고 있던 허리를 세우며 나를 빤히 마주본다. 한참을 말없이 마주보고 있다 먼저 입을 연건 그 쪽이었다. 저기요, 누구신데 그렇게 보시죠? 완연하게 불쾌함을 표하는 말투에 살짝 미소를 띄우며 그쪽이 업고있는 분 옆집 사는 사람입니다. 하자 아아, 하며 씩 웃는다. 여주 옆집 사신다구요? 남자의 입에서 퍽 다정하게 흘러나온 이름에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둘 사이에는 분명 처음 본는 사이지만, 확실히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 네, 근데.. 여주씨 집 비밀번호 모르죠? 많이 취한 것 같은데. "
" 뭐.. 그렇긴 한데 옆집 분이 신경쓰실 일은 아니구요. "
" 아뇨, 어떻게 신경을 안씁니까- 옆집, 사는 사인데. "
" 글쎄요, 옆집 사시는 분 보다는 제가 더 깊은 사이라. "
그냥 들어가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시간도 늦었는데, 남자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계속해서 나에게 불쾌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는 모습이 아무래도 어린 티가 난다 싶어 저절로 튀어나온 웃음이었다. 그런 내 웃음에 더 기분이 나빠졌는지 눈에 띄게 표정을 굳힌 남자는 슬쩍 고개를 돌려 등에 업힌 여주씨에게 다시 비밀번호를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취기가 올라 잠에 빠진 여주씨가 잠에서 깰 리가 없었다. 그냥 여주씨 저한테 넘기고 그쪽이야말로 집에 들어가시죠. 남자에게 다가가 미소를 띄우며 말하자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노려보는 눈을 마주보며 그의 등에서 여주씨를 내렸다. 얼떨결에 제 등에서 여주씨를 내어주고 성질이라도 내려는 듯 입을 달싹거리는 모습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글쎄, 내가 그냥 옆집 사는 사람이 아니라서. "
" 뭐요? "
" 그 쪽이 여주씨랑 확실히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는데. "
" ... "
" 나는, 이미 김여주씨랑 한 집에서 같이 식사하고, 출근하고, 뭐, 아무도 모를 비밀얘기도 하고. 그런 사이거든. "
" ... "
" 그 쪽이야말로, 이제 김여주 나한테 넘기고 집에 들어가서 자요. 시간 늦었다. "
날도 추운데 좀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고.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뒤돌아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데, 아무 말도 없이 뒤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업혀있는 꼴을 보는게 신경질이 나서 홧김에 길게 뱉은 말이지만, 사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한 말이라 뒤늦게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모르는 남자 등에 업혀 있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한 말이 틀린 말도 아니고.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생각했다. 그리고, 여주씨라는 말이 참 딱딱하다고, 잠에서 깨면 호칭 정리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도.
*** 공지 + 사담 ***
안녕하세요, 2월즈 생일 기념 조각 이후에 드디어 옆집에 애아빠가 산다 12화로 돌아온 옆집쓰입니다.
제가 인터넷 조차 접속하지 못한 며칠 새에 꽤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구요.
저도 제가 글을 처음 쓰는 순간부터 고민하고 걱정하던 부분에 관련된 일이라 이번 기회에 정리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껏 '옆집에 애아빠가 산다' 본편에 첨부했던 사진, 움짤들 모두 내리겠습니다.
대신 붑붑님이 선물해주신 로고를 비롯한 앞으로 혹시나 더 받게 될지 모르는 팬아트나 로고들로 사진을 대신해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공개여부도 모두 회원공개로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올리고 나서 순서대로 다른 글들을 수정할거고, 모두 수정된 후에 이 글도 회원공개로 돌리겠습니다.
현재 제 글의 주인공인 순영군을 비롯한 모든 세븐틴 멤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시작한 글 연재인 만큼,
멤버들을 사랑하는 다른 어떤 누군가의 마음을 거북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바로 수정하고 고쳐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을 사랑해주시고 구독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양해의 말씀을 포함한 이 공지를 꼭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담을 살짝 추가하자면,
제가 늘 변명처럼 말하듯이 고3이 되니까 정말 제가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바빠지더라구요.
휴대폰 한번 확인할 틈도 없이 걷고, 달리고, 버스를 타고, 정신없이 학교와 학원을 돌아다니고 있어요. 3월에 개학하면 더 심각해지겠죠..
그렇지만 이 글 만큼은 꼭, 휴재 없이, 연재 중단 없이 완결짓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적고 있습니다.
연재 텀이 기본 일주일 정도로 죽죽 늘어지고 있어서 늘 죄송한 마음 뿐이구요ㅠㅠ
얼마전에 댓글인지 독방에서 글인지 봤던걸 토대로, 앞으로는 멤버들 생일 기념 조각을 제외하고는 다른 단편을 쓰지 않고, '옆집에 애아빠가 산다'만 열심히 연재할게요.
애아빠 권순영 글을 기다려주시는 독자님들께 하는 저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늦어지더라도, 연재텀이 일주일 이상 늘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ㅠㅠ!!
늘 괜찮다고 기다리겠다고 해주시는 독자님들께 정말 죄송하고 감사드려요...♥
추천 버튼 꾹 눌러주시는 독자님들도, 귀한 시간 쪼개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도 정말 다들 감사드려요!
늘 길게길게 장문의 댓글들 남겨주시는 몇몇 독자님들은 정말 볼때마다 자동 엄마미소 짓게 된답니다^____^
제가 글을 올리고 제가 댓글을 달기도 전에 달려오셔서 선댓릴레이 다시는 우리 독자님들도 넘나 대단하시고 귀여우시고..
저는 정말 독자님들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고 감사드려요!
부디 제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13화로 돌아올 수 있길 빌며,
옆집쓰는 이만 학원숙제를 하러...(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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