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호루라기
13
여행을 다녀오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뤄가다 보니, 어느새 다가온 입대일이었다. 정국이는 입대 당일 친구들이 자신을 배웅해주기로 했다며, 굳이 먼 훈련소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나 역시 울지 않고, 어른스럽게 그를 보낼 자신이 없었기에 -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이의 입대를 하루 앞둔 날, 평소와 같이 데이트를 마치고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 준 그였다. 그가 처음으로 우리 집 앞에 서 있었던 날, 내가 얼마나 놀랬었는데 - 이제는 제법 익숙한 그림이었다.
그가 나를 기다리고, 내가 그를 반기고.
한 동안 그런 정국이, 그런 우리를 못 본다는 생각에 괜시리 코 끝이 시려졌다. 으... 울지말자! 나는 애써 울음을 삼키며 정국이를 바라봤다.
정국이는 어제 머리를 밀었다는 이유에서, 하루 종일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는 한 번만 보여달라는 내 간절한 부탁에도, 제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쓰고는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치... 마지막까지 속을 썩이냐...! 나는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그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왜 그렇게 봐.
"왜 그렇게 봐!"
"내가 어떻게 보는데."
"...그냥, 그냥 보잖아."
"내가 그랬어?"
정국이는 조금은 날이 선 내 목소리에 내게 손을 뻗어오며 묻는다. 내가 어떻게 보는데. 나는 내게로 향한 커다란 두 손을 애써 못 본 척 하며, 그냥 보잖아 -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제 두 손을 내 눈 앞에서 잡아달라는 듯, 흔들어 보인다. 이렇게 나오면 내가...
덥석.
잡아줄 수 밖에 없잖아.
"다녀올게."
"...치. 군대 가는 걸, 무슨 심부름 가는 것처럼 말하냐구우..."
"..."
"그만 쳐다 봐!"
"...지금 많이 봐야지."
"..."
정국이는 정말로 무슨 집 앞 슈퍼를 다녀오는 듯,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다녀올게 - 하고 말을 건넸다. 나는 그런 그에게 섭섭해져 괜히 말꼬리를 늘리며, 그의 두 손만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정국이의 두 손에 고정된 내 시선과 다르게, 그의 시선은 자꾸만 내 얼굴로 쏟아졌다. 나 얼굴 없어지겠다... 언제고 몇 번이고 받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의 눈빛에 애써, 보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이니. 그는 뻔뻔하게도 지금 많이 봐야지 하며, 계속해서 내게 시선을 떼지 않는다. 뭐야! 완전 어이없어! 억울한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그의 손을 아프지 않게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그는 푸흐 - 하고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내며, 묻는다. 왜 물어. 참나. 내가 왜 물었겠어! 미워서 물었지. 그는 어이없는 내 대답에 실없는 웃음을 뱉어내다가, 갑자기 마주 잡은 두 손을 잠시만 - 하고 떼어냈다. 그리고는 한동안 머뭇거리더니.
제 모자를 벗었다.
정국이는 모자를 벗은 제 모습이 쑥스러운지, 짧아진 머리를 자꾸 만져다며 '나 못생겼지?' 하고 물어왔다. 머리가 짧은 정국이의 모습은...
"도토리야?"
"...뭐?"
"너무 귀엽잖아! 도토리지? 그치? 너 도토리지?"
정국이는 내 말에 어이가 없는지, 제 두 손으로 내 양 볼을 잡아오며 묻는다. 뭐?. 나는 그런 정국이에게 너 도토리 맞지? 하며 자꾸만 도토리임을 확인하려 들었다. 아니... 말이 안 되잖아... 너무 귀여워... 이렇게 귀여울 거면 진작에 보여주지!
"완전 귀여워. 하나도 안 못 생겼어."
"...귀여우면 안 되는데."
"왜? 너무 귀여운데!"
"...아니야."
얼마나 집 앞에서 서성였을까. 이제는 정말 그와 헤어져야 할 때였다. 내일 새벽 같이 일어나서 가야 할 텐데... 나는 그에게 두 팔을 벌렸다.
"우리 정국이 누나가 한 번 안아보자!"
"...지금 나보고 안기라고?"
"응! 싫어?"
"...아니. 그게 아니ㄱ"
"얼르으은. 나 팔 떨어지겠다!"
"...진짜."
그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내게 안겨왔다. 내 허리께에 제 두손을 얹은 그가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게 뭐야."
"뭐가!"
"하나도 안 멋져."
내 목덜미에 제 입술을 지분거리며 말을 이어오는 그다. 아 - 진짜 보내기 싫다! 하지만 내가 또 이렇게 말해버리면, 우리 정국이만 더 힘들 거야. 누나답게! 참자아.
"잘 다녀와."
"...응."
"그래!"
"끝이야?"
"응. 난 그거면 돼."
잘 다녀오는 거.
내 말을 끝으로 내 품에서 벗어나, 나와 시선을 마주하는 정국이다.
"잘 다녀올게."
"...응."
"난 할 말 엄청 많은데, 누나 너는 하나 밖에 없어. 왜 -"
"..."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마. 이건 부탁 아니야. 약속해."
"...너 없으면 밤에 돌아다닐 일도 없거든 -"
"글 쓴다고 밥 안 먹지 말고"
"..."
"비 오는 거 좋다고 나가 있다가, 감기 걸리지 말고."
"..."
"주변에서 남자들이 수작 부리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돼."
"...가세요?"
"...퍽이나 가겠다."
"...그럼."
"일단 손을 높이 들어."
"...?"
"그리고 뺨을 때려."
"그게 뭐야. 나 잡혀가."
"안 잡혀가니까 걱정 말고 때려. 그리고서는 꺼져 - 하는 거야."
"...이상한데."
"잘 할 수 있지?"
"...알았어."
사뭇 진지하게 잘 다녀오겠다고 말을 꺼내는 그다. 나는 고요한 그의 눈을 마주했다. 아이는 제게 잘 다녀오라는 한 마디의 말만 건넨 내게 섭섭했는지, 자꾸만 제 짧아진 머리를 어깨에 부벼댔다. ...강아지 같아. 나는 그런 그를 향해 그냥, 아무 말 없이 웃어보였다. 그러자 그는 내게 걱정으로 둔갑한 제 나름의 엄포를 두기 시작했다.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마. 밥 거르지 마. 아프지 마. 걱정이 잔뜩 서린 목소리였다. 내가 애도 아니고! 그는 계속 웃기만 하는 내가 불안했는지, 뜬끔없이 - 다른 남자가 작업을 걸면 어떡하냐고 물어온다. 걱정도 많다. 진짜 -. 나는 그런 정국이의 물음에 가세요? 하고 대답하니,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내게서 몸을 떼어낸다. 그리고는 따라해봐. 하며 '자... 일단 손을 높이 들어 그리고 빰을 때려, 마지막으로는 꺼져 - 하는 거야.' 하고 말해온다. 그게 뭐야. 진짜! 그런 그에게 얇은 눈초리로 이상한데 - 하고 말을 건네니, 그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잘 할 수 있지? 하고 되묻는다. 참나... 아무렴. 누구 애인인데.
"나 여기 더 있다가는 군대 안가겠다."
"...잘 가."
"응.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말을 끝으로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는 그였다. 뭐해?
"뭐해?"
"...이거."
"뭔데?"
"...우리 여기서 처음 본 날."
"..."
"응."
"너가 나보고 호루라기 불었잖아."
"...아."
"근데 그걸로 누굴 이겨. 소리 너무 작더라."
"..."
"밑에 빨간 버튼 누르면 싸이렌 소리 날 거야. 두 번 누르면, 자동으로 위치추적도 된대."
"...정국아."
"집 앞에 분리수거 하러 갈 때도, 꼭 챙겨."
"...알았어."
집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 맞은 편 주택 앞을 서성이는 남자였다. 본능적으로 주머니 속의 호루라기를 움켜쥐었다. 괜찮아. 탄소야 - 괜찮아.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편의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괜찮다. 하나도 안 무섭...
"누나?"
맞은 편의 남자는 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누나? 하고 물었다. 낮았을 뿐, 결코 험악하거나 위협적인 목소리는 아니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반응한 내 몸은 극도로 예민했고, 따라서 호루라기를
삐이이이이익 - 삐이이이이익 -
불어댔다.
남자는 그런 내 행동을 보고 꽤나 당황한 듯,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마시고, 호루라기에 입을 가져댔다. 하지만 호루라기 보다 빨랐던 건.
"정국인데."
남자, 그니깐 정국이었다.
정국이는 그 순간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내가 저에게 호루라기를 불었던, 그 길지 않았던 시간도. 제 가슴 속 깊숙히, 소중한 기억으로.
정국이는 내 표정을 보더니, '울면 안되는데.' 하고 제 주머니에서 꺼낸 호신용 기계를 내게 건넸다.
"이제 나 진짜 갈게."
"...응."
"나 간다는 말만 몇 번째야. 지금."
"..."
"사랑해."
"나도."
"사랑해."
"사랑해."
"나도."
나뭇잎을 작게 일렁이는 바람이 불었다. 동시에 내 머리칼이 흩어졌고, 그는 투박하지만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넘겨주며.
제 입술을 맞대왔다.
자꾸만.
자꾸만. 바람이 불었다.
Boy Moment
여자 호신기.
여자 호신술.
여자 호루라ㄱ...
뭔 놈의 호루라기가 이렇게 많아. 검색창을 빼곡하게 채운 단어들이었다.
입대 전, 문득 - 그녀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조그마한 호루라기까지.
그녀와 맞게 참 작고, 귀여운 호루라기였다. 하지만 - 그게 끝이었다. 귀여운 거.
탄소의 호루라기는 호루라기가 해야 할 제 역할은 하나도 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밤을 새서라도... 찾아 내야 해. 나 대신 누나 옆에 있을 걸로.
엄청 시끄럽고.
엄청 안전한거.
.
입대 전, 마지막으로 찾은 소방서였다. 삼촌들은 나의 입대 소식에 저마다의 반응을 보였는데, 뭐 - 어차피 가야 하는 거. 별로 슬프거나, 억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삼촌."
"어야"
"그..."
"뭐."
"막 장갑이랑... 그런 거 보내준다는 사람 있잖아요."
"아... 그.... 탄소? 아가씨?"
"네."
"왜? 마음에 드나?"
아직 여자친구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괜히 시끄러워지기만 하고, 탄소가 아저씨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힘들어할까봐. 택배를 보고 혼자 흐뭇해했지. 뭐. 하지만 군대에 들어가기 전, 탄소를 옆에서 지켜줄 사람이 한 명 쯤은 필요했다. 그래서 소방서 가장 막내 삼촌인 시혁이 삼촌에게만 살짝 - 귀뜸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벌써부터 로맨스일 촉이 오는지, 두 눈이 반짝반짝거린다.
"저..."
"뭐신데."
"...그 사람이요."
"어야."
"제 여자친구에요."
"...?"
"..."
"...아따! 성님드ㄹ...!"
"조용히 좀...!"
"뭣 땜시"
"그 사람 이런 거 별로 안좋아해요."
"근디?"
"...근데 제가 군대 가니까. 가끔 집에 늦게 가고 그러면, 그냥... 보디가드처럼, 뭐.... 같이 걸어주세요. 안 무섭게."
시혁이 삼촌은 내 말에 두 눈썹을 잔뜩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내 팔뚝을 손가락으로 쿡쿡 - 찔러왔다. 뭐야. 이 반응은.
"정꾸 너는 이쟈 나만 믿음써 - 내가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너의 공주님을 지켜줄거니께!"
이상한데.
.
14 preview
"...너 커피 못 먹어?"
"..."
"...그럼 지금까지 나랑 있을 때, 마신 건 다 뭐야?"
"...못 먹는 거 아니야."
"내가 유치하게 이런 거에 화내고, 질투해야 돼?"
"...그런 거 아니라니깐."
그의 옆자리에 보기 좋게 앉은 여자는 제 입가에 손을 가져대더니 물었다.
"어머. 언니는 모르셨구나 - 정국이 쓴 거 못 먹어요."
"...야. 너 가만히 있ㅇ"
"아니! 여자친구라며어 - 알 건 알아야지. 여자친구가 전 여친보다 몰라서 되냐구... 언니.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
"아무튼 제대 전에 나온 마지막 휴가라니까, 뭐. 제대 금방 하겠네. 연락해!"
여자가 떠나고, 나는 그와 내 앞에 놓여진 아메리카노만 쳐다봤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화가 가장 제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요. 사실, 어제 업뎃을 못 한 거에 대해서 -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제가 생각한 흐름대로 글이 잘 흘러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삭제하고 밤에 14화로 올까. 했는데 - 그러기엔 또 이미 읽으신 분들께 혼란을 가져올 것 같아서... 그냥 두고, 텍파에서 제대로 수정할게요! 사실, 이것도 다 핑계인데...!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아야겠어요. 책임감이 너무 없었어요. 지금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는 제가 창피해요... 으... 14화 힘내서! 알바 끝나고! 열심히 쓸 게요!
14화는 오늘 밤이나 새벽 중으로 올릴게요!
저 댓글 하나하나 잘 읽고 있어요 - 답글은 천천히, 정독하고 쓰겠습니다!
- 암호닉 빠지신 분들 말씀해주세요!
암호닉
미미 / 미스터 / 윤기윤기 / 뉸뉴냔냐냔☆ / 낮누 / 인연 / 청보리청 / 꺙 / 지민이랑 / chouchou / 둘리여친 / 맙소사 / 비둘기 / 2330 / 됼됼 / 정꾸기냥 / 정연아 / 숙자 / 풀네임이즈정국오빠 / 연찌 / ㅇㅅㅇ / ㅏㅏㅏ우유 / 민트초코치약맛 / 민윤기다리털 / 윤치명 / 야꾸 / 가위바위보 / 보라괴물 / 딸기빙수 / 찐빵 / 1023 / 1234 / 뾰로롱(하트) / 공주님93 / 미니 / 쿠키오 / 핑몬핑몬핑몬업 / 쿠야 / 솔트말고슈가 / 라슈라네 / 소다 / 세젤귀모니 / 감정의 꽃 / 굥디굥디 / 아루 / 이상해씨 / 고딩정국 / 밍뿌 / 테형이 / 매직핸드 / 92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