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Me before You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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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품에 안겨 있으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었다. 바보처럼. 아이는 한 손으로 내게 팔베게를 해주고는 제 몸을 틀어, 나를 제 품에 가두었다. 나 역시 그를 마주보기 위해 몸을 틀었다. 아이의 숨결이 귀 언저리에 바로 닿아왔다.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는 내 귓가에 제 입술을 짧게 맞췄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예뻐, 귀.' 하며. 나는 그런 그의 낮은 목소리에 얕은 잠이 몰려왔다. 그의 품을 더욱 파고들며, 졸려 - 하고 잠투정을 했다. 그러자 아이는 내 귓가에 제 목소리를 속삭인다. '책 읽어 줄까?' 느닷없는 그의 질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갑자기? 하고 되물으니 아이는 '잠시만' 하고 내 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책 한 권을 빼 왔다. 다시금 내 옆에 자리를 잡은 그가 책을 펼쳤다. 정국이는 뭐냐는 내 물음에도 '오빠가 읽어줄게요 - ' 하며, 내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정국이는 다 읽는 건 무리니, 제가 마음에 드는 구절들 중에 한 가지만 고르겠다며 능숙하게 페이지를 찾아냈다. ...좋아하는 책인가? 아이는 제법 진지하게 제 목을 큼큼 - 하고 다듬었다. 아이가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Boy Moment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분명, 나보다 더 당황했을 그녀였다. 눈물을 참아내는 그 눈이, 나만은 자신의 편에 서 있기를 바란다며 - 그렇게 말했는데. 바보같이, 그녀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 날카로운 바람이 자꾸만 살갗을 스쳐 갔다. 이 바람이 그녀에게도 닿았을까.
혼자인 그녀에게도.
*
숨조차 고르지 못한 채로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답했다. 나야. 하고. 한동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문 역시 열리지 않았다. 집 비밀번호쯤은 알고 있었지만, 함부로 열고 싶지 않았다. 굳게 닫힌 이 문은, 아마도 그녀의 마음일 테니. 스스로가 이토록 한심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가슴께가 답답해져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녀를 채근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든지, 언제가 됐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쉽게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 앞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벌써부터 잔뜩 붉어진 눈과 콧잔등을 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아. 전정국 미친놈. 진짜. 나는 황급히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녀는 힘없이 내 품에 안겼다. 평소 같았으면 내 허리에 제 작은 손을 둘렀을 텐데. 그 작은 손을, 내가 잡아줬어야 했는데. 또다시 후회가 차올랐다. 누나의 집으로 오는 내내 머릿속으로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정리하고 또 정리했지만, 그녀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늘 그랬다. 누나의 앞에서는 내 모든 게 소용없었다. 그녀는 내 모든 걸 무너트리기에 충분했고 또 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어깨가 작게 떨려왔다. 뒤이어 그녀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전해졌다. '너 진짜 미워.'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말했다. 잘못했어.
침대 끝에 그녀를 앉히고는 물 한 잔을 떠와, 그녀에게 건넸다. 꽤 오랫동안 내 품 안에서 눈물을 쏟아낸 그녀였다. 물잔을 건네받은 누나의 손이 여전히, 파리하게 떨려왔다. 나는 무릎을 굽혀 누나와 시선을 맞췄다. 내 시선을 피하는 누나였지만, 그래도 그 시선을 끝까지 따르며 말을 꺼냈다.
"미안해."
"..."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나만큼은."
"..."
"네 편이었어야 했는데."
"..."
"누나 마음도 못 살피고."
"..."
"혼자 둬서."
"..."
"혼자 돌아가게 해서."
"..."
"미안해."
*
Girl Moment
절대 괜찮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이가 내게 무어라 말을 건네도, 이 상처 받은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을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자꾸만 나를 작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은 물론, 집에 도착해서까지도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문 너머로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그 순간에는, 마음 한 켠이 부서지는 듯했다. 조금 전 나에게 냉대하게 말을 건네오던 그가 떠올라서, 바보처럼 소리내 울 뻔했다. 아이는 문을 열지 않는 나에게 더 이상 어떠한 말도 붙이지 않았다. 한 마디만, 정말 딱. 한 마디만 더 해주지.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문을 열 텐데. 아이는 변함없이 참 저답게 -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묵묵히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정국이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아이의 품에 안겨서,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고, 네가 그렇게 말해서 서운했다. 이렇게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다. 마음이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기댈 곳은, 단 한 군데뿐이었다.
아이는 나를 품에 안자마자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사과해왔다. 잘못했어. 내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주는 정국이의 손길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나를 안아주던 아이가 나를 침대에 앉히고는, 제가 떠온 물을 건넨다. 동시에 나와 시선을 맞춘 그가, 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안해."
"..."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나만큼은."
"..."
"네 편이었어야 했는데."
"..."
"누나 마음도 못 살피고."
"..."
"혼자 둬서."
"..."
"혼자 돌아가게 해서."
"..."
"미안해."
아이의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깊은 두 눈에, 얕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의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한 내가 그의 눈가로 손을 뻗자, 그는 내 손을 잡아오며 내 손을 제 볼에 가져댔다. '나 용서해주라... 제발.' 하며.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국이가 나 때문에 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된 듯 싶었다. 정국이는 대답 없는 내가 저를 부정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내 쪽으로 기대오며, 고개를 숙였다. 늘 든든하던 아이의 등이, 약하게 떨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아이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정국이를 내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여전히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였다.
"...나 용서해줄거야?"
"...뭘 용서를 해..."
"..."
"너 말 다 무슨 말인지 알아. 그러니까, 그래서. 너니까 괜찮아."
"..."
"와줘서 고마워."
"..."
"사과해줘서 고마워."
"..."
"정국아."
*
둘 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야,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사실은 자꾸만 내게 미안하다고 해오는 정국이에게, 더 이상 그 말을 하면 정말 미울 것 같다고 엄포를 두었다. 그러자 아이 같게도 그 순간부터, '미안해'의 '미' 자도 꺼내지 않는 정국이었다. 못살아. 진짜.
정국이와 함께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아이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다며 나보다도 먼저 씻고, 내 옷장에서 제 옷을 꺼내 입었다. 내가 씻고 나왔을 때, 정국이는 침대의 제 옆자리를 팡팡 - 치며 제 눈썹을 능글맞게 움직였다. '빨리 와.' 하며. 조금 전에 내 앞에서 눈물을 쏟던 그 어린아이는 어디로 간 건지,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한순간에 변할 수 있는지. 화장대 앞에서 로션을 바르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 하루 아이 때문에 울고, 웃고. 하여튼 전정국. 진짜... 신기해.
아이의 품에 안겨 있으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었다. 바보처럼. 아이는 한 손으로 내게 팔베게를 해주고는 제 몸을 틀어, 나를 제 품에 가두었다. 나 역시 그를 마주보기 위해 몸을 틀었다. 아이의 숨결이 귀 언저리에 바로 닿아왔다.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는 내 귓가에 제 입술을 짧게 맞췄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예뻐, 귀.' 하며. 나는 그런 그의 낮은 목소리에 얕은 잠이 몰려왔다. 그의 품을 더욱 파고들며, 졸려 - 하고 잠투정을 했다. 그러자 아이는 내 귓가에 제 목소리를 속삭인다. '책 읽어 줄까?' 느닷없는 그의 질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갑자기? 하고 되물으니 아이는 '잠시만' 하고 내 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책 한 권을 빼 왔다. 다시금 내 옆에 자리를 잡은 그가 책을 펼쳤다. 정국이는 뭐냐는 내 물음에도 '오빠가 읽어줄게요 - ' 하며, 내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정국이는 다 읽는 건 무리니, 제가 마음에 드는 구절들 중에 한 가지만 고르겠다며 능숙하게 페이지를 찾아냈다. ...좋아하는 책인가? 아이는 제법 진지하게 제 목을 큼큼 - 하고 다듬었다. 아이가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클라크. 처음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그랬어요. 그 웃기는 옷들과 거지 같은 농담들과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숨길 줄 모르는 그 한심한 무능력까지. 이 돈이 당신 인생을 아무리 바꾸어놓더라도,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 사랑을 담아서, 윌 - ' [Me before You , 조조 모예스] 인용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이었다. [Me before You] 죽음을 앞둔 남자와 말괄량이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정국이가 읽은 부분은 작품의 가장 뒷부분에 있는 남자 주인공이 죽고 나서, 여자 주인공에게 전해지는 편지였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얼마나 울었던지. 흘러가는 이야기로 아이에게 이 작품 속 여자 주인공이 부럽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한 남자에게 저런 존재로 각인 됐다니. 완전한 '사랑'이란 저런 거구나, 싶었다.
아이의 낮은 목소리가 작품과 잘 어울렸다. 괜히 또 울컥해지는 감정에 정국이를 바라보자, 그는 책을 접고는 내 등을 토닥여준다.
"잘 기억하고 있어."
"...뭐를?"
"내가 방금 읽어준 거."
"왜?"
"...얼른 자자. 졸리다."
"치, 뭐야. 시시해."
"아. 그리고 이거 영화 개봉했어."
"진짜?"
"응. 내일 보러가자."
"그래!"
*
23 preview
"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
"처음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그랬어요."
"..."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한 웃음과 가끔씩 예측되지 않는 당신의 사소한 행동과 말릴 수 없는 호기심들까지."
"...야."
"이 순간이 당신 인생을 아무리 바꾸어놓더라도,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
"내 생각은 언제나 해주세요. 당신이 나로 인해 웃는 그 순간이, 내 존재가 가장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니까."
"..."
"그리고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뭐야아."
"나랑."
"..."
"잘 살아봐요. 우리."
"...무슨."
"결혼해주세요. 저랑."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오늘 언급된 'me before you'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이에요. 사실, 로맨스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 위 작품은 처음으로 저를 울게 만든 로맨스 소설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신다면, 다들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번역체라 문장도 깔끔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정말 '사랑'이구나. 깨닫게 해주거든요! ㅎㅎ
오늘도 변함없이 고맙습니다.
암호닉 + 혹시라도 신청했는데 추가 안 되신 분들 꼭! 말씀 해주세요! ㅜㅅㅜ 꼼꼼히 본다구 보는데, 빼먹는 분들이 계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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