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고마워
26
"지금 켜면 안 되겠지?"
"그래도 한 십 퍼센트는 될 때까지 기다려야지."
정국이는 이제 겨우 오 퍼센트가 충전 된 플레이어를 보며 물었다. '지금 켜면 안 되겠지?' 평소 전혀 급한 성격이 아닌 그였기에, 그의 물음에 담긴 많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약하게 주무르며, 조금 더 충전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제 어깨에 있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떨린다.' 나는 아이의 손등을 내 엄지 손가락으로 쓸어 내리며, 나도 - 하고 말했다. 제발 망가지지 않았기를.
그렇게 몇 분을 말 없이 있었을까. 플레이어의 작은 화면 속 글자가 [10%] 로 변했다. 아이는 컴퓨터 위로 떠오른 파일 창을 누르고는, 떨리는 손으로 플레이리스트를 클릭했다. 정국이가 클릭한 플레이리스트에는 다행히도 그의 음악들이 변함없이 담겨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낮게 탄식을 뱉었다. 나는 여전히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왜? 하고 물었다. 그는 내 물음에 곧장 답하지 않고,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대답했다. 분명 울컥해서겠지. 나는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 듬었다.
"노래 다 그대로야."
"진짜?"
"응. 신기하다."
"그러게. 다행이다."
"...맞아."
정국이의 목소리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떨려왔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그의 시간으로 두고 싶었다.
"나 나가 있을게."
"왜?"
"그냥... 너 혼자 노래도 듣고 하면서, 옛날 생각 하라고!"
"됐어. 같이 있어."
"아니야. 괜찮ㅇ."
"같이 있어줘."
"..."
"다 누나 너랑, 나누고 싶었던 노래야."
"..."
정국이에게 잠시 나가 있겠다고 말하자,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왜?' 하고 물었다. 아이의 질문에 되려 당황한 내가 혼자 노래를 즐기라 하자, 아이는 짐짓 제 인상을 찌푸리고는 같이 있어 달라고 말한다. 혹시나 내가 혼자 있는 게 신경 쓰이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다고, 괜찮다고 답하려는데 - 아이는 내 말을 가로채 말한다. '같이 있어줘. 다 누나 너랑, 나누고 싶었던 노래야.'
*
그는 노트북 위로 떠오른 엠피쓰리 파일을 클릭했다. 안에는 그가 좋아했던 노래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는 제 옛추억들을 살피며 회상에 젖었다. 아이는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고는 노래를 설명했다, '나 이 노래 되게 좋아했었다? 아 이 노래도. 아. 아닌가? 저걸 더 좋아했었다!' 하면서. 조금 전 가라 앉았던 목소리와 다르게 한껏 신이 난 목소리였다. 나는 그의 뒤에 서서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그의 추억을 나눴다. 그러던 중, 아이는 제일 끝에 있는 파일 제목을 보고는 '이건 무슨 노래지?' 하며, 마우스를 클릭했다.
스피커에서는 잠시동안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뒤, 작은 소음과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아들.
이제 여기에 좋은 노래 많이 많이 담아서, 추고 싶은 춤 춰.
나중에 아빠한테 춤 보여주는 것도 꼭 보여주고. 알았지?
아빠는 정국이 너가 아빠 아들이라 참 고맙다.
아빠는 앞으로 너가 선택하고 나아가는 모든 순간에 함께 할게.
그러니까 아들은, 아빠만 믿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게 아빠 소원이고, 바람이야.
이런거 처음 사보는데, 직원 아가씨가 녹음도 된다고 해서 괜히 이상한 소리까지 다 했네.
너 이런거 질색하는데...
설마 벌써 듣기 싫다고 끈 건 아니겠지?
이 작은 기계가 내 마음을 다 담았으려나 모르겠다.
정국아. 너는 아빠처럼 직접 말하는거 부끄럽다고, 이런 거에 녹음해서 사랑하는 사람한테 고백하면 안 된다?
이런 건 닮지마.
우리 아들은 사랑하는 사람한테, 좋으면 좋다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세상 모든 축복이 너에게로 향하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내 아들.'
아이의 넓은 등이 흐느낌에 떨려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뒤에서 아이를 끌어 안았다. 감히 짐작 할 수도 없는, 그의 감정을 그대로 감싸 안았다. 아이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물론 아이가 그만 울기를 바라며, 그의 곁에 머무는 것은 아니였다.
나는 여전히 아이처럼 소리내어 우는 그의 뒤에서, 온 마음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을 전했다. 하늘 가장 높은 곳, 가장 밝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 볼, 그의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아이의 곁에 제가 있을 수 있게 해주셔서.
모든 걸 바쳐서.
감사드립니다.
*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어느정도 진정이 된 정국이었다. 나는 서둘러 물을 떠와 그에게 건넸다. 아이는 파리하게 떨리는 손으로 물잔을 받아들었다. 정국이는 목이 탔는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그에게 물을 더 가져오겠다고 말 한 뒤, 방을 벗어나려는데. 아이는 그런 내게 고개를 저으며, 내 손을 힘없이 잡아온다.
"왜?"
"..."
"물 금방 가지고 올ㄱ"
"...안아줘."
정국이는 약해져 있었다. 그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온, 위태로운 '안아줘' 라는 단어가 마음 한 켠을 적셔왔다. 나는 물잔을 내려두고,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의 넓은 등을 토닥이며. 아이가 내 허리께를 강하게 감싸왔다.
"이제 잘까?"
나는 그의 머리칼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이제 잘까? 그러자 아이는 내 품에서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 끌며, 그를 침대 위로 눕혔다. 나 역시 불을 끄고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내가 제 옆에 눕자마자 다시금 내 허리께를 잡아왔다. 나는 아이의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 역시 나를 향해 있었다. 아이는 내 목덜미에 제 얼굴을 묻고는 물었다.
"나 못된 아들이겠지?"
"왜?"
"아빠 미워했잖아."
"...정국아."
"...응."
"나도 아빠 미워했어."
"..."
"엄마도 미워하고."
"..."
"어이없겠지만, 가끔은 내가 나를 미워했어."
"..."
"그런데 아무도 나한테 나쁘다고 한 적 없어."
"..."
"정국아."
"...응."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만 있다고."
"..."
"너가 좋은 사람이라, 내가 좋은 사람이야."
"..."
"너가 나쁜 사람이면, 나도 나쁜 사람인건데?"
"...뭐야."
"그니까 너 나쁘다고 하지마. 난 나쁜 사람 하기 싫어."
"..."
"알았지?"
"...응."
"착하다. 우리 정국이."
아이는 별 다른 반응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내가 장난스레 '나도 나쁜 사람인건데?' 하고 물으니. 그제야 살풋 웃으며, 뭐야 - 하고 답했다. 나는 아이의 품을 파고 들며 말했다. 그니까 너 나쁘다고 하지마. 난 나쁜 사람 하기 싫어. 알았지? 아이는 내 물음에 내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 내리며 답했다. '응' 나는 이제야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그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착하다. 우리 정국이. 내가 좋아하는 아이 특유의 웃음 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였다. 평소보다 유난히 길었던 하루였다. 나는 그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이제 진짜 자자. 정국아 -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 머리 위에 제 턱을 올려두고는, 답했다.
"좋아해."
"...갑자기 뭐야아."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래."
"..."
"그래서."
"..."
"완전하게"
"..."
"너를 사랑해."
정국이의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그가 나와 시선을 맞췄다.
"나 이제부터라도 아빠 말 잘 들으려고."
"...그래."
"아빠가 세상 모든 축복을 진짜 나한테 줬어."
"..."
"고마워."
"..."
"내 축복아."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다음 화가 아마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화는 큰 사건이나 뚜렷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그냥, 늦은 밤 속삭이는 이야기였으면 싶었던 회차입니다.
'재미'는 부족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뮤즈보이'와 함께 달려주신 분들이라면 - 충분히 많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
암호닉은 천천히 댓글 읽으며 추가할게요.
완전하게, 고맙습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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