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정-이별아 멈춰라
순영의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달달 떨리는 손으로 순영은 다시 내게로 손을 뻗었다. 여주야...,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낮게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그런 순영이 안쓰러워,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아주려 하면, 한순간 순영의 손목이 만져지지 않았다. 공기가 손 안에서 미끄러지듯, 그렇게 순영이 내게서 미끄러져, 달아나고 있었다. 큰 덩어리가 목에 걸린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점점 가빠지는 숨으로 순영을 잡으려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순영은 그런 내 모습을 보다, 제 옷자락을 주먹으로 꽉 쥐며 조용히 말했다.
"그만해 이제, 여주야."
순영의 말에 마치 사고회로가 정지된 듯,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끝내 담아왔던 울음을 터트리며 만져지지도 않는 순영에게 마구 주먹질을 하며 소리쳤다. 어떻게, 어떻게 그만하라는건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되는데. 내 악에 받친 울음소리에 순영도 내 머리 위로 눈물을 떨궈냈다.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힘없이 말하는 순영의 모습에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져 울음을 마저 토해냈다. 순영은 그런 내 모습을 곧 무너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바라만 보다, 가만히 내 옆에 마주보고 누워선 등을 토닥거리는 시늉을 했다. 순영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내 등허리께에 순영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 더 서럽게 울었다. 울음이 잦아들고, 숨이 점점 돌아올 때 즈음, 힘이 들어 색색거리며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날 아득히 바라만 보던 순영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여주야. 맨날 울리기만 해서."
그말에 무어라 대답하고 싶었지만, 파도치듯 밀려오는 졸음에 결국 대답도 못한 채 난 그렇게 잠에 들었다. 머릿속에 온통 순영과의 추억을 띄운 채로.
그리고 그날이, 내가 순영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다 입고 현관을 나설 때까지도 순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교실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달려간 교실에도 순영은 없었다. 그렇게 그날 하루는 멍하니 아무생각도 않고 보냈던 것 같다. 그저 하루동안 어딘가로 갔을거라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리단걸 증명하듯, 순영은 하루가 지나고 또 그 다음날이 올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순영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록 난 점점 더 수척해져 갔고, 눈물로 밤을 꼬박 지새우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권순영이 사라진지 꼬박 2주일이 지났다.
그 2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내리던 장마가 그치고, 마침내 따사롭게 햇살이 온 하늘을 밝혔다. 반 아이들은 간만에 체육시간에 밖에 나가게 되었다며 저마다 들뜬 표정으로 재잘거리며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난 그들 틈에서 퉁퉁 부은 눈으로 억지로 밖으로 나가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파서 오늘만 벤치에 앉아 쉬겠다는 내말에 선생님은 크게 뭐라하지 않았다. 오히려 측은한 눈길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에, 비틀대는 걸음으로 벤치에 힘없이 앉아있었다. 얼굴에 밝게 내리쬐는 햇살이 얄미웠다. 권순영이 없는데. 순영이 없으면 세상의 그 무엇도 아름다울 자격이 없었다. 우울함에 지쳐,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내 옆자리에 앉는게 느껴져 옆을 바라보면, 이지훈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이지훈과 나는 크게 말을 섞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훈이 내게 눈길을 전혀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게 맞겠다. 그리고 지금도 지훈은 마치 내가 없는사람인 마냥 제 위로 비춰지는 햇살을 고스란히 눈을 찡그리며 맞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분나빠 다른 곳에 앉아있으려 일어서자마자, 지훈이 내 팔을 잡았다. 꽤나 거센 그 몸짓에 당황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으면 지훈은 내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앉아있어."
그말을 하는 지훈의 표정은 무심했지만, 잡고 있는 팔에 힘이 더 들어간 것으로 보아 제 딴에서는 꽤나 중요한 문제인 모양이었다. 괜한 반발심에 고개를 저으면, 지훈은 그 특유의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어차피 달리 앉을 곳도 없겠다,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았다. 문득 머릿속에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어쩌면 이지훈은 알지도 몰라. 떨리는 목소리로 지훈에게 말했다. 순영이가 없어졌어. 내 말에 지훈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나도 알아."
그에 굴하지 않고 말했다. 도와줘, 내가 순영이 찾을 수 있게. 그 말을 들은 지훈의 표정이 묘하게 구겨졌다. 도와줘 제발. 애처로운 내 목소리에 지훈이 갑자기 내쪽으로 고개를 날카롭게 돌렸다. 나를 바라보는 지훈의 표정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착각 하지마. 권순영은 원래부터 너한테 보여서는 안될 사람이었어."
말을 마친 지훈은 마치 우리의 대화가 없었던 일인 마냥 제 얼굴에 표정을 지워버리고 멀어져갔다.
순영을 다시 돌아오게 할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수천번, 수만번의 고민 후 내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였다.
권순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생각이 머리에 들어찬 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자거나, 그저 멍하니 딴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급식시간에는 권순영과 나의 아지트와도 같았던 빈 과학실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시간에 갑자기 거칠게 과학실 문이 열렸다.
"김여주 너 뭐해 진짜. 시위라도 해? 나 데려가주세요, 하고 시위라도 하냐고 지금."
이지훈이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과학실 문 앞에 서있었다. 그에 대꾸할 힘도 나지 않아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불쌍해 죽겠으니까 뭐라도 좀 해, 제발."
애원하듯 말하는 이지훈의 눈은, 내가 처음보는 그런 것이었다. 제게 돌아오는 텅 비어버린 눈빛을 본 지훈은,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과학실 문을 조용히 닫았다.
다시 장마가 시작된다 했다. 어두워진 하늘에 빗줄기가 흐르는게, 내 기분같아 퍽 보기 좋았다. 가만히 창문을 열고 간간히 안으로 들어오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갑작스레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고 현관에 서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이지훈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지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훈은 비를 고스란히 다 맞고 온 듯, 흠뻑 젖은 채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그렇게 온통 물을 머금은 채, 지훈이 아까부터 줄곧 제 품에서 소중한 듯 보듬고 있던 그것을 꺼내어 내밀었다. 지훈의 손에 들린 흰 상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흰 상자 안에는, 내가 순영에게 선물한 운동화가 들어있었다. 이걸 어떻게... 놀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훈이 제 관자놀이를 지분거리며 말했다.
"성가셔서 개입 안하려 했는데, 너 불쌍해서 전해줄께."
"권순영, 걔 찾아왔었어. 나한테 이거 주면서 그러더라."
"이제 자기 찾지 말아달래."
"그러면서 계속 우리 여주 이제 어떡해, 하면서 우는게 병신같아서 안 전하려했는데,"
"보고있는 내가 너네 불쌍해 죽겠더라."
제 머리에서 물기를 두어번 탈탈 털어낸 지훈이 제 뒤로 현관문을 닫으며 말했다. 가야할 사람은 가는거야.
흰 상자 안에는 순영의 신발이 새것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들어차있었다. 대체 이걸 왜, 하고 생각하며 신발을 들어냈을 때, 그 아래에 깔린 흰 종이가 비로소 보였다. 그리고 그 종이에 써있는 말은, 날 그자리에 주저앉아 한참동안이나 울게 만들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는지, 볼펜자국이 가득한 그 종이 안에는 잔뜩 번져버린 순영의 글씨로 딱 한마디가 써있었다.
나중에 나 만났을 때 여주 네가 직접 신겨주라.
온 힘을 다해 순영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현관문을 박차고 달렸다. 비가 내 얼굴을 아프게 때려도 상관없었다. 눈물인지 빗줄기인지 모를 것들로 흠뻑 젖은 내가 마침내 순영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이미 누군가가 가만히 서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보인 그는, 지훈이었다. 지훈은 어두운 밤공기와 대조되는 새하얀 국화꽃을 순영의 대문 앞에 놓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여주도, 너도. 앞으로는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김여주 두고 먼길 가느라 수고했어."
가만히 국화를 매만지다, 일어서는 지훈에게 멀리서 소리쳤다. 나 때문에 죽었어 순영이. 내가, 내가 권순영 죽였어. 내 비명과 같은 소리에 지훈이 놀라 나를 쳐다봤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날 내가 우산 가져와달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멍청하게 건너편에서 권순영이 오고있는줄도 모르고 차 오는 쪽으로 엇갈리게 걸어가지만 않았어도 권순영 안죽었어. 안죽었다고.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동안이나 순영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순영이 너무 보고싶어서, 끊임없이 울었다.
지훈은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않은 채 아무렇지 않게 날 집으로 이끌었다. 쉬어. 그 말과 함께 지훈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현관을 굳게 닫았다. 마치 내가 뛰쳐나갈까 걱정인 사람마냥. 그렇게 들어선 집 안에, 자꾸만 순영이 보였다.
부엌에서 배가 고프다며 맘대로 과자를 꺼내먹는 그애가 보였고, 거실에서 제가 좋아하던 예능프로를 보며 깔깔대던 그애가 보였다.
자꾸만, 자꾸만 순영이 눈에 보였다.
눈앞에 권순영이 자꾸만 아른거리는게 또 너무 아팠다. 온통 비에 젖어 축축해진 몸을 씻으려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필 그때 너무 순영이 보고 싶었고, 하필 내 눈앞에 아빠가 쓰고 놔둔 면도날이 보였다. 그대로 텅 빈 눈을 하고 면도날을 손목에 갖다대고 그었다. 한번, 두번. 긋는 횟수가 잦아지는데도, 아픔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영아. 이번엔 내가 너에게 갈께.
꽃봉오리 |
저 멀리에서 빛나는게 너였으면 좋겠다. 아니, 너다. |
꽃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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