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김민규 짝녀하기
02
(부제: 주먹이 운다)
2-1
뭐라고? 지금 내 귀를 의심할 뻔했다. 난생 처음 보는 그 살가운 표정으로, 난 너랑 짝하는 거 좋은데. 하고 발랄하게 말해오는 게 김민규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을 꿈을 꾸고 있나?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어, 얘들아. 마냥 쳐다보지만 말고 너네가 무슨 말이라도 하나 해 주지 않을래? 나 진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헐, 김민규. 너 너봉이한테 방금 그 말 한거야?"
"응."
"대박. 너 이제 김너봉 책임지셈."
"왜?"
"이제 너봉이는 전교에 깔려있는 네 빠수니들한테 까일 거거든."
이석민.... 저 새끼. 입을 꼬매 버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우리 반 여자애들이 김민규랑 대화하기를 꺼리는 이유라면 바로 그거였다. 김민규들의 수많은 빠순이들이 학교에 서식하고 있다는 거. 김민규는 인기가 참 좋았다.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지만 아무튼 너무 잘생기고 키 크고 멋지고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게끔 하는 마스크란다. 도대체 그건 또 뭐람. 너네 엑소 외 안헤. 외 경수 안 헤? 저런 애를 빨 시간에 난 떡밥이 수리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 하고 나오는 아이도루를 빨겠어. 언제 우리반 여자애가 김민규랑 부딪혔는데 김민규가 괜찮냐고 물어봤었떤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떤 여자애들이 저 년 김민규랑 일부러 부딪힌 거다, 여우 년이다, 존나 알파고 수준의 지능을 가진 영악한 년이다, 하고 하도 욕을 해서 김민규가 나서서 해명했던 게 기억이 난다.
"아오...."
"내가 감싸주고 다니면 되지."
"와.... 너 진짜 너무나도 낯설다, 민규야."
"야, 김너봉."
뒷문을 바라보니, 부승관이 보였다. 승관아.... 너 뿐이다. 유일하게 정상인 너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거 알아? 반가운 표정으로 승관이에게 달려나가자, 부승관이 징그럽단 표정을 짓더니 뭔가 굉장히 부탁할 게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뭔데. 또 뭐야.
"나 체육복이 없음."
"......그래서?"
"너 아까전에 아침에 들고 나오는 거 다 봤어. 빌려주라."
"누가 첫 날 1교시부터 체육을 하고 자빠졌어."
"아니 한다는데 어떡해! 빨리 내 놔. 나 땀 안 흘릴 거야. 그냥 트랙에 누워 있을게."
"......제발 좀 사."
김민규한테 받아 내든가 하지 왜 나한테 체육복을 빌려달라고 하는 거니! 여자애 체육복 빌리는 남자애는 너 말곤 또 없을 거야. 궁시렁대며 부승관에게 체육복을 건네주자, 부승관이 역시 너 뿐이야, 하는 가식적인 멘트를 날렸다. 저 씨새발끼, 중지 척이라도 해 보일까 싶어 눈알을 굴리는 순간, 내 눈 앞엔 굉장히 어이 없다는 표정의 승관이가 보였다. 왜, 왜. 너 내 마음 읽을 수 있....
"너 왜 너봉이 체육복 빌려?"
"아니, 당신이 잃어버렸는데 그럼 내가 다시 사서 입을까, 응?"
"근데 너봉이 거는 안 돼."
"아까 아침에 김너봉이한테 내가 너랑 친하냐 그랬다? 그랬더니 하나도 안 친할 뿐만 아니라 너가 굉장히 무섭게 생겼다고 말한 바가 있거든?"
"오늘부터 친해질 거야."
"와...... 왠만하면 내가 이런 말 안 하는데 김너봉이 정말 굉장히, 아주 불쌍하다. 너랑 뭐하러 친목질을 하냐. 교통카드 잔액도 없는 거렁뱅...."
정말 내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갈 것만 같다. 덕분에 복도에 지나가던 여학우들이 둘의 대화를 많이 듣게 된 것 같다. 김민규와의 친목질을 시전하는 김너봉. 그녀는 누구인가. 하는 말들이 떠돌아 다니겠지. 이게 내 피해 망상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지만, 나에게 화이팅을 외치는 반 애들을 보니. 개학날부터 인생 조졌음을 확신 또 확신하고 말았다. 난 망했어....
2-2
"저....기 있잖아. 내가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
"나한...테 도대체 이러는 이유는 뭐니?"
오늘은 바로 개학한 지 일주일 되는 날이다. 와.... 정말. 근데 김민규의 태도에는 변화가 단 1도 없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렇게 친절하게 대하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너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니? 네 친구들하고 쪽팔려라도 한 거니? 아침에 등굣길에 마주치면 원래는 인사도 안 했었는데, 요즘은 안녕, 하고 자연스럽게 나와 부승관이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있는 봉을 잡고 나에게 말을 걸지를 않나. 급식시간에 점심 맛있게 먹으라고 말하고 가질 않나....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겁니까, 네? 오늘도 어김없이 푸드 파이터인 나의 매점 여정에 동참하는 김민규다.
"......."
"음, 그러니까. 어, 너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거는 절대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묻는 건데! 하하하."
"........"
"내가 너에게 무슨 잘못한 것이라도 있는 거니? 그렇다면 정말 사과...할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너봉아, 계산 해야 되는데. 내가 해줄까?"
"......너 아까 전에 지갑 안 갖고 오는 거 내가 다 봤어."
갑자기 김민규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만 같아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았다. 너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건 절! 대 아님을 알아 두라고. 근데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흘려 넘긴 건지, 계산이나 하란다. 그리고 자기가 내준단다. 너가 지갑을 책상서랍에 놓고 나오는 걸 봤는데.... 무슨 너가 내 줘. 웃긴 건 정말 자기가 지갑을 가지고 온 줄 알았는지, 자기 몫의 초코우유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 씨새발끼.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점이 없구나.
"너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 많구나?"
"......그것은 아니야."
"근데 너 말투가 왜 그래. 진짜 웃긴 거 알아?"
"아니, 대화의 핵심은 그게 아니고."
너한테 쏟을 관심은 없어. 김민규. 정말 내가 하고픈 말은 불편해 죽겠다는 거였다. 매점에 내려갈 때만 해도 쟤는 뭔데 자꾸 김민규 데리고 다니냐는 말을 17번 정도 들은 거 같은데, 난 그런 시선들을 받아내고픈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오죽하면 한 3년째 연락 안 하던 제일 뒷반 애가 나보고 김민규랑 썸씽 있냐고 물었겠냐고! 난 그냥 명료하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장난치는 거 좋아하는 거 같은데! 나는! 이런 모든 상황이 불편하고 이상하다고!
"저기, 여자애들 보이지? 쟤네들이 뭐라고 하는 주...줄 알아? 너랑 나랑 뭐 있냐고 수근거리면서 간다?"
"쟤네가?"
"응. 근데 그건 빙산의 일각이고 나는.... 굉장히, 이 상황이 뭐랄까. 좀.... 그, 너가 장난친다는 건 알겠는데. 좀...."
"푸하. 장난이라고?"
"어,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조금.... 너가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뭔지 궁금...."
내 말을 들을 수록 김민규는 더 웃을 뿐이었다. 나는 정말 진지한데.... 이 상황 정말 불편하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장난 아닌데."
"......."
"너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2-3
내가 김민규를 괜히 무서워하는 건 아니었다. 중학교를 같이 나온 사람으로써 김민규는 그닥 평판이 좋은 아이는 아니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지만, 뭐 김민규가 우리 동네를 먹었다, 쟤는 거의 전국구 수준이다, 건달 저리가라다, 이런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온 바람에 선입견이 딱 생겨버린 거였다. 그래서 더 김민규와 거리를 두려는 것도 있었고. 그런 김민규랑 친하게 지내는 부승관을 보고 부승관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부승관 말로는 생긴 거 때문에 오해 많이 받는 애라고 하던데....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너 요즘에 김민규랑 뭐 있냐?"
"너까지.... 그런 걸 물어보는 거니?"
"아니, 그냥. 하도 여자애들이 나한테 많이 물어봐서."
"아니라고! 아니라니까! 걔가 그냥 이상한 거야!"
체육복을 빌려준 댓가로 (이제서야) 부승관이 떡볶이를 사준다고 해서 temple 떡볶이 안에서 진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너 나한테 자꾸 그거 물을 거니, 어? 안 그래도 하루에 수십번도 더 질문 받고 있어. 등 뒤에 붙이고 다닐까봐. 김민규 관련 질문은 절대 사절입니다. 저도 답해줄 수가 없다고요! 변명거리라 할 것도 없어, 왜냐면 정말 100% 거짓이니까.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말하면 알아듣겠어요, 네?
"근데 걔 원래 여자애들하고 얘기 잘 안 하는데. 이석민이랑은 정반대임."
"이석민은 뭐 맨날 여자애들하고 얘기하는 애라는 식으로 매도하네, 이 놈이."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 이석민은 그래도 교류를 좀 하잖아. 근데 걔는 진짜 전화번호부에 여자 이름만 1000개 있게 생겨선 대화도 잘 안 해."
"인기가 많으셔서 귀찮은거겠지."
근데 김민규 얘기를 나한테 왜 해.... 난 정말 김민규랑 친하지도 않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어어. 대충 흘려듣고 넘겨야겠다 싶었는데 설움이 솟구쳐 버렸다.
"걔 원래 장난치는 거 좋아해?"
"어."
"아니면 걔가 나한테 진짜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지능형 안티...이런 거."
"너 내가 정신과 소개시켜 줄까? 피해망상증 있지, 너."
"아니.... 근데 진짜 이해가 안 돼서. 나한테 뭣하러 그래."
"진짜 김민규 싫어서 그러는 거야?"
"싫고 좋고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부담스럽다고! 왜 그러는 지 모르겠다고!"
아, 그렇구나. 부승관이 대답하더니 떡볶이를 입에 우겨넣었다. 나도 그냥 말 없이 우겨넣었다. 정말 모르겠다니까.
2-4
오늘은 부승관이 선도 서는 날이라며(주제에 선도부다.)아침 일찍 가 버렸다. 덕분에 나는 고독을 씹으며 등교하는 중...이긴 무슨. 이어폰을 꼽고 위풍당당하게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중이시다. 당장이라도 내 안에서 백호가 깨어나 나를 괴롭게 하는 이 사회에 맞서 으르렁거릴 것만 같다. 내 안엔... 흑염룡이 있어. 오늘따라 날씨도 굉장히 좋고 바람도 살랑 살랑 부는 것 같았다. 완전 좋은데.
"......안녕."
"어.... 안녕."
오늘도 어김없이 김민규와 마주쳤다. 등굣길에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은데 요즘따라 널 버스정류장에서도 자주 보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나대로, 걔는 걔대로 그렇게 말 없이 서 있었다. 오늘은 되게 조용하고, 막 그렇고 좋네. 헤헤.
'잔액이 부족합니다.'
오.... 분명히 천원이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나 보다. 뻘쭘함에 얼굴을 붉히고 지갑을 뒤지는 중이었는데, 먼저 가서 앉아 있던 김민규가 쪼르르 내려오더니 천원을 쥐어주고는 다시 앉으러 갔다. 고맙긴 한데.... 되게 뻘쭘하네, 이거. 부끄러움에 그냥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가 노약자석이라서 다시 일어났는데, 남은 자리가 버스 맨 뒷자리밖에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거기에 앉았다.
"......."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인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많은 말들을 걸어왔을 김민규인데, 오늘은 굉장히 조용하다. 그래, 이게 맞는 거지. 마음의 불편함이 사라지는 거 같았다. 그렇게, 늘 그랬던 것처럼. 버스에서부터 학교까지,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저.... 있잖아."
"어?"
교문을 통과하고, 교실로 올라가는 길. 김민규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수줍게 물어 왔다. 왜.... 무슨 일인데. 나는 아직도 얘가 나한테 말을 걸면 무섭다. 모태솔로에, 짝사랑 전문인 나에게 김민규 같이 생긴 아이들과 대화하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고 생각했지만 목소리가 떨린다는 건 김민규도 알아챘을 거 같다. 아, 왜.
"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너 성가시게 안 할게."
"......어?"
"너무 내 입장만 생각한 거 같아서."
"........"
"너가 좋아서 그랬지, 나는."
"........"
"앞으로는 귀찮게 안 할게. 정말. 약속!"
이건 또 무슨 상황입니까, 하느님 아버지.... 다시는 거짓말 안 하겠다고 말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긴장했는지 입을 앙 다무는 모양새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래도, 내가 이러는 거 너무 싫어하지는 마."
"......."
"나 속상해."
부승관 죽어라.
모두가 예상하셨을 것 같습니다...헤헤. 치대는 민규와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운 여주의 조합..
개구장이에, 늘 예상을 비껴나가는 민규의 행동이 이 글의 포인트...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당 헤헤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 봐요 전 이 글에 제 열정을 쏟을 예정입니다 ㅊ치대는 민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