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 de Foudre 17 - 完
(부제: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
"우리 원우, 눈 퉁퉁 부었네."
".......내가 무슨 애야?"
"애 맞지. 아니야?"
눈을 뜨니 퉁퉁 부은 눈으로 누워 있는 원우가 보였다. 어제 그렇게 내 품에 안기다 끝내 울었나 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볼을 꼬집으니 퉁명스레 대답하는 원우다. 완전 애야 애. 나 없이는 못 사는 바보...라고 말해도 되려나. 뭔가 표현이 되게 오글거리네, 헤헤.
토라진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어제의 일은 그냥 조심스레 넘겨야겠다고 다짐하고는 원우의 입에 입을 한번 맞추고는 일어났다.
"어, 내 칫솔 안 버렸네."
"언제 다시 올 줄 알고."
"안 오면 어쩔 건데?"
"그럼 못 나가게 잡아 둬야지."
분홍색 주토피아 늘보가 그려져 있는 양치 컵에는 칫솔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마트에서 장 보다가 늘보가 원우를 닮았길래 사다 줬는데, 안 쓸 것처럼 해 놓고는....
칫솔에 대해 묻자 간단 명료하게 답하는 원우였다. 하긴, 원우 집에는 내 옷도 몇 장있다.
우리 집에도 원우 옷이 몇 장 있고.... 왜 있는지는 말 안 해도 모두가 알 거라고 생각한다. 하하하.
"야, 근데 있잖아."
"......."
"원우야, 있잖아."
"응?"
"너 그러면...."
"왜?"
"내가 첫...사랑이야?"
이런 거 절대 물어보고 기대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왜 물어봐서는. 나도 정말 한 주책을 하는 것 같다. 절대 남의 과거에 대해 묻지 말라고 누가 그랬었던 거 같은데.
상 바보 같으니라고. 결국엔 물을 엎지르고 말았다. 이게 여자 맘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처음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 없을 거 같은데,
나 말고 누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해 지는 것 같다. 괜히 물어본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원우가 낮게 웃었다.
"알려주면 상처 받을까 봐 안 알려주려고 그랬는데."
"......어?"
"궁금해? 안 물어보길래. 굳이 밝힐 필요 없을 거 같아서 안 말했지."
"........"
"알려줄까? 아니다. 아니야. 지금이 중요하지. 그치?"
아, 뭐야.... 어떤 대답을 들어도 이 시대의 신여성답게 아주 깔끔히 받아들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나는 그런 게 안 되나 보다.
손님, 이건 전원우에요.... 전원우를 누가 가만히 냅뒀겠냐고. 이 놈의 인기...하며 자기 성애자가 돼도 모자랄 아이인데.
심장이 트위스트를 추는 거 같이 엄청 쫄깃해졌다.
"아니야.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거 같아."
"궁금하다며."
"아니야. 굳이 듣지 않아도 돼. 너가 멋있는 건 온 세상 여자들이 모두 다 알 거야. 그치? 나 또한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어."
"........"
"너의 필모그래피를 굳이 읊지 않아도 돼! 난 듣지 않을래! 내가 굳이 너의 첫사랑일 이유가 있니? 하하하."
"질투 나서 그러는 거지?"
어.... 정곡을 찔려 버렸다. 그치만 맞다고는 안 할래! 전원우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줄줄줄 말들을 늘어놓았다.
질투 나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야! 이건 진짜야!
"아, 아니?"
"내 첫사랑 누군지 알려줄까."
"......안 궁금하다고 했어, 내가!"
"지금 아마 나랑 동갑인가, 그럴 걸."
"성은 김 씨고."
"......."
"이름은 세봉이?"
*
오늘은 바로 바로 그 문제의 이 석 민 씨의 결혼식이다. 와, 정말 믿겨지지 않는다.
저 깐족거리기 대마왕이.... 턱시도를 입고.... 저 아리따운 여성 분과 식을 올린다는 건.... 정말 내 기준 상식 밖의 일인데.
결혼식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이 석민 씨의 지인인 거 같았다. 역시 석민왕 이인맥.
"제수씨, 오랜만에 뵙네요."
"아, 안녕하세요. 석민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이석민 너 진짜 주책 맞게...."
"1분이라도 못 보면 현기증 나는데 어떡해!"
신부 대기실 쪽에 가까이 가니까 이석민이 보였다. 역시나. 팔불출 이석민 씨.... 정말 박수를 보냅니다.
현기증 난다니.... 그 말에 또 발그레 볼을 붉히며 웃는 미래 와이프 분이 참 예쁘셨다.
둘이 아주 잘생기고 예쁘고 선남 선녀네요.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전원우를 이끌고 이석민에게 다가갔다.
"석민 씨, 결혼 축하드려요."
"오오. 세봉 씨. 안 올 것처럼 그러더니...."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는 지키고 사는 게 맞는 거죠. 그쵸?"
"예예. 팀장님도 같이 오셨네요."
"결혼 축하드려요."
입이 아주 귀에 걸렸네, 귀에 걸렸어. 석민 씨가 저렇게 기뻐하는 건 처음 본다.
진짜 보기만 해도 좋다는 게 저런 걸까. 신부 분이랑 눈만 마주쳐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렇게 깨가 쏟아지는 풍경도 처음이고, 이런 분위기도 처음이었다. 승관 씨랑 순영 씨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표정이었다.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요."
"......뭔가 아들래미 다 키워 놓고 장가 보내는 기분이랄까요."
"......."
"이제.... 우리랑 같이 술 마시고 놀아주지도 않겠죠....."
누가 봐도 예비 애처가 예약인 이석민 씨는.... 그럴 것 같네요. 아무 말 않고 웃자, 승관 씨와 순영 씨는 서로 부둥켜 안았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가, 식이 시작된다는 말을 듣고 안에 들어갔다. 내가 다 막 떨리네.... 이 기분은 뭐야, 어떡해.
"아, 진짜 예쁘다."
"결혼식이?"
"응응. 진짜 석민 씨 눈빛 봐. 꿀 떨어지잖아."
"석민 씨 아니고 이석민 씨라니까."
"어, 어.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사소한 거에 이 악 물고 말하는 전원우도 진짜 아직은 애같다.
주례는 석민 씨 아는 분이 봐 주셨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 갑자기 불이 꺼졌다.
이윽고 뭉개뭉개 안개 같은 게 바닥에서 피어 오르더니, 석민 씨가 마이크를 딱 들고 서 있었다.
"석민 씨 원래 뭐 노래 같은 거 했었어요?"
"밴드부였을걸요."
"와, 진짜 노래 잘 부른다. 대박."
나 저 노래 정말 좋아하는데. 주책 맞게 내가 다 눈물이 주륵주륵 나네.... 신부 분도 감동 받으셨는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분위기 너무 좋아.... 내가 다 행복해서 눈물이 날 거 같다고.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원우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청혼 좋아해?"
"당연하지.... 만약에 내 남편이 결혼식에서 축가로 저 노래 불러준다면 나 오열해서 죽을지도 몰라.... 근데 나는 다행이다가 더 좋아...."
"......."
"대박.... 진짜 나 같아도 펑펑 울 거야."
정말 드라마 같던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원우가 뜬금없이 나한테 물었다.
"큰 데서 하는 게 좋아, 아니면 그냥 소소하게 하는 게 좋아."
"뭘?"
"결...혼식."
"나는 진짜 거짓말 아니고 크게 하는 것보다는 작게 하는 게 더 좋아."
"아...."
"왜?"
아아. 그 뒤론 아무 말도 안 하던 원우는, 들어가 보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차를 몰고 슁 가 버렸다.
*
이건, 이건 정말 진짜 아닌 거 같다. 내가 전원우랑 몇 년을 만나면서 이건 정말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민 씨 결혼식을 갔다온 게 벌써 3주 정도 된 일 같은데, 그 동안 전원우랑 연락을 2번 정도 한 거 같다.
그것도 내가 먼저 한 거다. 바쁘냐는 말에 어, 미안.... 이라는 시큰둥한 대답 받은 게 끝이라면....
이건 정말 아닌 거다. 회사에서 마주쳐도 얘기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쉭 사라진 게 끝이고.
"진짜 세봉 씨 무슨 일 있어요?"
"없어요, 없다고!"
"근데 왜 이런 걸 쳐 보고 그래요...."
요즘 내가 찾아보고 있는 단어는.... 바로 권태기다. 내가 이런 걸 왜 쳐 보고 있느냐면.
이쯤 되면 의심해 봐도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이런 거나 쳐보고 있다.
Q. 이러면 권태기 아닌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연락도 거의 안하고 만나도 그냥 어..아니.. 이런 얘기만 하고 말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어떡하죠ㅠㅠ 몇주전만해도 서로 좋아죽네 마네 했었는데.....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걸까요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A. 이미 다른 여자가 생겼을 수도 있구요. 권태기까진 아니어도 약간 그 직전까진 가신 거 같습니다.
마음 접으시는 게....
뭘 마음을 접어.... 접냐구요.... 원우가 많이 바쁜 거겠죠. 눈물을 머금고 쓸데없는 지식인 창을 꺼 버렸다.
빨리 너도 결혼을 하라는 엄마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결혼은 우라질.... 지금 전원우랑 헤어지게 생겼다구요.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대화한 걸 합치면 한 문장 나올까 말까한 수준이었다. 만나도 진짜 못 본 사람 취급하듯이 쉭 지나가 버리고.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도대체.
"세봉아."
"......어, 어?"
"오늘 한 일곱시 반 쯤에 잠깐 얘기할 수 있어?"
".......어, 왜?"
"그냥. 좀 할 얘기가 있어서...."
몇 주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할 얘기가 도대체 뭔데, 뭐냐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는 느낌이었다. 저 쎄한 표정을 보니 보통 얘기는 아닌 듯 싶었다.
이럴 때 먼저 선수를 치라는 말이 있었던가. 마음만 같아선 여기서 얘기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망치듯 다시 내 자리로 와 버렸다.
느낌이 안 좋아, 이건 진짜야.
*
"아, 안 된다고...."
-어, 미안.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지금 차 타고 내려가는 중이야.
일이, 그래.... 일이 생겼구나. 근데 내 눈 앞에 보이는 너는 도대체 뭐라고 보면 좋은 걸까, 원우야.
차 키 하나 손에 들지 않고, 저 건너편으로 걸어가는 원우를 보고 그냥 숨이 턱 하고 막혀 버렸다.
거짓말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그랬었잖아. 뭐 그렇게 또 거짓말 할 일이 자주 있다고....
안 그래도 요즘 비 자주 온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뚝뚝 떨어졌다. 아, 그래....
"아, 진짜 이게 뭐야...."
우산도 없고, 비를 피하고 싶은 생각도 더더욱 없었다. 아, 진짜 이게 뭐야.
너를 못 믿는 건 아닌데, 이런 일이 3주씩이나 계속되면, 나도 의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잖아.
결국 급한대로 회사 로비에 계속 서 있었다. 도대체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 비였다.
한 시간 쯤 서 있었을까, 전화벨이 울리길래 핸드폰을 보니, 전원우였다.
왜, 또 왜 전화를 해.
"왜?"
-아, 약속 취소돼서.... 나 지금 근처에 있는데. 만날래?
"......어딘데? 지금 비 너무 많이 와서."
-지하로 내려와.
"응."
지하로 내려가니, 전원우 차가 보였다. 밖에 안 나갔다 온 거 뻔하네. 그 비를 맞았으면 이렇게 차가 말끔할 리가 없지.
웃는 얼굴로 원우를 차마 볼 수 가 없을 거 같았다. 금방 툭 치면 울 거 같은게 이런 기분일까. 원우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왔냐는 짧은 말 한 마디, 그 말이 끝이었다.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그냥 말 없이, 빗속을 뚫고 차는 이상한 곳으로 향해 갔다.
와이퍼가 계속 움직이며 차창을 닦아 냈다. 희미하게 보이는 건 나랑 원우랑 다녔던 중학교였다.
왜 여길 와, 왜 여길. 뭔가 싶어서 전원우를 슬쩍 바라보니, 몇 주간과는 많이 다른, 내가 좋아하는 그 미소를 띄는 원우가 보였다.
"원래 학교에서 하려고 그랬었는데, 지금 비 많이 와서 초도 다 꺼지고, 이상해졌겠다."
"......뭐?"
"내가 이런 거 잘 못 하는데. 그래도 이것저것 해 보려고 그랬거든. 근데 비 와서 다 틀어졌네."
"......."
"내가 왜 몇 주 동안 너한테 연락 안 했게."
어? 갑자기 쏟아지는 말들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졌다. 뒤죽박죽이 돼 버린 머릿속.
씁쓸한 미소를 지은 전원우가 잔뜩 상기 된 표정으로,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아는 전원우는, 열 다섯의 전원우와 아직 많이 닮아 있었다.
소년의 모습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철도 없었고, 좋아하는 법을 잘 몰라서, 표현하는 법을 잘 몰라서 많이 서툴렀었어."
"......."
"지금도 그렇게 너가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올 만큼, 너한테 잘 해주는 건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
"......."
"계속 배워갈게, 그리고 변하지 않을게. 매사에 최선을 다할게."
".....너 진짜...."
내가 언제 안개꽃 좋아한다는 말 너한테 한 적 있었어?
떨리는 손으로, 뒷좌석에서 꽃다발을 꺼내는 원우를 보고 그냥 눈물이 왈칵 나와 버렸다.
아, 진짜.... 미리 눈치를 줬었어야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너가 이렇게 훅 들어오면....
꽃 안에 들어 있는 카드에 필기체로 Coup de Foudre ! 라고 쓰여 있었다.
"이거 뭐야? 쿱....데."
"첫 눈에 반했어요."
"......."
"매일 매일, 안 반하는 순간이 없어."
"......"
"앞으로, 영원히. 지금처럼 계속 사랑할게. 매 순간."
"......"
"나랑 결혼하자, 김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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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순간, 나의 모든 순간이 당신이기를!
Coup de Foure는 여기서 끝납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갑사합니다! ♥
15.10.17~16.08.06
Coup de Foudre,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