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야." "......" "지 언니 산 위에서 밀어서 죽인 애."
구원자 上
내게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증오스러운 관계. 잠들기전 항상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던 생각이 있었다. 하나님, 이것도 시험인가요. 매일 같이 옆에서 잠든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였다. 내게 들어온 작은 기회 조차 박탈해 가버린사람, 그건 언니였다. 가족 중 그 누구도 그녀를 말릴 사람은 없었다. 아니 이기지 못했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나와 닮은 얼굴. 죽어도 싫었다. 그 날은, 그녀가 3년 사귀었던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았던 날이였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술에 찌든체 집에 들어오는 모습, 그런 언니를 안절부절. 걱정하던 부모님의 모습,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이였다. 그 마저도 꼴보기 싫어 내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을 때,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여주야. "...언니랑 바람 좀 쐬러 가자." 싫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옆에서 간절히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빛에 작게 욕을 읊즈리며 그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향한 곳은 집 바로 뒤에 있는 작은 동산이였다. 앞서 올라가는 그녀의 모습은, 술에 취한 사람의 모습 같지가 않았다. 너무나도 멀쩡하게 다리로 단단히 땅을 지탱하며 올라갔다. 아, 넋이 빠진 사람처럼 올라가긴 했다. "......" "......" 가는 날이 장 날이라고 했던가, 그 날 따라 날씨는 평소보다 더 화창했다. 정상에서 맑은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그녀가 술에 취하던 말던, 그건 내 알바가 아니였다. 그녀가 지금 내 옆에 있던 말던, 그건 내 알바가 아니였다. 그녀가 족보 상 내 언니건 말던, 그건 내 알바가 아니였다. "여주야." "......" "너는, 날 왜 싫어해?" 취하지 않았구나.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흩어진 그녀의 냄새속엔 지독한 술냄새 따윈 없었다. 근데, 그녀는 자꾸 얼빠진 사람 마냥 굴었다. 사실대로 말해? 비소로 답했다. 픽- 그녀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난 니가 다 뺏어 갔다고 생각해." 내가 말했다. "...웃긴다." "너 한텐 웃기구나." "보통 그런 생각, 언니가 많이 하지 않냐?" "그런 생각 할 부족함도 없잖아. 괜한 곳에다 화풀이 할 생각이면 접어." "...이왕 뺏어가는거면," "......" "니 인생도 뺏어도 될까?" 잔뜩 굳어진 내 표정을 보고 넌 끝까지 날 비웃었다. 그리고 발을 헛 딛은 척, 그대로 산 아래로 굴렀다. 그녀가 땅을 구르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하면서도 나는 슬픔 보단 허탈함이 가득찼다. 난 너를 이길수가 없구나, 죽어도 언니를 이길 수 없구나. 그 날, 내 이름 뒤에 '살인자' 라는 꼬리표가 붙는 날이였다. "아, 넌 전학와서 모르지?" "...어?" "쟤가 지 언니를 산에서 밀어서 죽인 애야." 죽여? 언니를? '죽인다' 무서운 단어에도 녀석은 별 거 아니라는듯 놀란 내 얼굴이나 가리키며 자지러졌다. 어중간한 머리카락속에 가려진 얼굴을 확인 하는 순간, 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독히도 정상적인 얼굴이였다. 무섭게 태연하기도 했다. ...역시 세상 모르는거구나. "야, 근데 난 존나 김여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는데, 쟨 왜 깜빵 안갔냐?" "모르지 나야." "쟤 지네 누나 죽인거 맞긴 해?" 분명 대화를 다 듣고 있을텐데, 다음교시인 수학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이젠 엎드려 잠까지 잔다. "뭐냐, 살인자 쉴드? 아- 그거야 나도 모르지. 깜빵 안간건 경찰조사때 증거 부족으로 풀려나서 그랬다는데." "돈 먹인거 아니야?" "뭐래, 쟤네 집 그럴 수준 아니던데." 순간, 엎드려 있는 아이의 어깨가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잔뜩 웅크려진 모습. ...자는 것 같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