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곤 나 빼고 찾아 볼 수도 없는 놀이터. 그 날도 맞벌이라 집에 안 계시는 부모님에 따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을 쯤 이였다. 휑한 놀이터 바닥에 쭈그려 앉아 굴러 다니는 나무가지를 주워 머리 긴 졸라맨 '나'를 그리고 그 옆에 얼굴도 모르고, 심지어 이름도 모를 졸라맨 친구를 그렸다. 그렇게 매일같이 지루한 외로움을 달랬다. 밖에서 이렇게 두 세시간 놀다 보면 집으로 향하던 엄마가 나를 픽업해 갔고, 그제서야 나는 축 쳐졌던 입꼬리를 올리며 엄므아아- 하고 달려가 안겼다. 그때 내 나이 고작, 8살이였다.그렇게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 때 마침 집으로 돌아 온 아빠와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었고, 밥을 먹은 후엔 아빠와 방울샤워를 하며 즐거워했다. 뭐. 지금하라 그러면 미쳤냐며 욕하겠지만. 그렇게 웃음만이 가득한 욕실에서 두세시간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면 노곤한 몸으로 침대에 몸을 맡겨 잠을 청했다. 지금은 안하지만 그 당시엔 자기 전에 꼭 하고 잤던 기도가 있었다. 하나님! 제 옆집에 친구를 주세요!
왜 그랬을까.
일년내내 하던 내 순수한 기도가 통한건 바로 그 다음날이였다. 지금은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적엔 '놀토'라는게 있었다. 궁금하면 네이버에 쳐봐라. 아무튼 기막힌 타이밍에 그 날은 놀토였고, 지금처럼 게으르지 않았던 8살의 '나'는 지 나이처럼 8시면 눈을 떠 안녕 자두야를 즐겨보곤 했다. 분홍색 내복을 입고 사자머리를 한체 쇼파에 앉아 아침부터 만화를 시청하고 계시는 나님께 엄마는 작은 꾸중과 함께 따뜻한 토스트를 만들어 주곤 했었다. 그때였다. 그 날따라 시끄러운 아파트에 TV소리가 묻혀 예민해진 나는 부엌에서 토스트를 만드는 엄마를 뒤로 나의 발 보다 3배나 큰 아빠의 슬리퍼를 끌고 겁도 없이 현관문을 열어 재꼈다.
"……"
"……"
그리고 8살의 나는 8살의 최한솔. 그렇게 내가 바라고 바라던 졸라맨. 녀석과 나의 첫 만남이였다
Mon ami Jollamaen!
2016.09.23.jackpot
졸라맨 최한솔과 나는 그 날 이후 세상에서 제일가는 단짝친구가 되어버렸다. 난 아직도 그 날의 실수에 치가 떨린다. 졸라맨을 그리는게 아니라 졸라걸을 그리는 건데. 하나님은 참 선하셨다. 최한솔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 나와 키가 고만고만 했었다. 4학년에 들어서는 순간, 이 무슨 일인지 키는 최한솔이 아닌 내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고, 녀석은 여전히 작고 왜소했다. 남들과는 다른 외모. 혼혈이라 그런지 그 당시 녀석은 참 웃기지도 않는 따돌림을 잘 당했다. (이 옘병, 지금은 남녀노소 불구하고 박수치며 달겨드는 외모이다. 이젠 오히려 내가 따돌림을 당하게 생겼다.) 아무튼 그 당시에도 의리에 가득 차 있던 나는 흔히 다들 돌리고 다녔을 실내화 주머니를 현란하게 휘두르게 되어 '조폭마누라' 라는 별명을 획득하게 되었다. 시발 웃긴게 그 당시 나는 그 별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래서 초등학교에서의 내 존재는 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암묵적 '최한솔 누나' 였다. 당시 진짜 말도 안되는 헛소문이 돌았었다. 쟤네 둘이 쌍둥이래. 최한솔은 박수치며 좋아했다. 우리보고 쌍둥이래! 난 싫어했다. 내가 왜 너랑. 지금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만약 지금 그런 소문이 돈다면 박수치고 좋아할 사람은 최한솔이 아닌 나일것이다. Because his face very 굿. 여자인 나보다 이쁘니까 말 다했다.
내 1지망은 여중이였다. 온갖 신경쓸게 많은 남자들이 없는 곳. …그냥 한마디로 최한솔이 없는 곳. 체육복을 맘대로 훌렁훌렁 벗고 입어도 되는 곳. 생리대가 사방에서 날라 다니는 판타스틱한 일을 겪을 수 있는 곳. 여중은 내게 환상이였다. 하지만, 내가 없는 최한솔. 가뜩이나 기가 잔뜩 죽어있는 그 모습을. …하, 의리빼곤 시체였던 내겐 최한솔을 남녀공학이라는 지옥으로 버리기엔 너무 가혹한 짓이였다. (시발 이것도 왜 이랬는지 이해가 안간다. 그냥 여중을 썼었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져 있었을까.) 여중을 생각한다는 내 말에 내색은 안하지만 풀이 죽어있는 그 모습에 결국 난 3년동안 최한솔의 얼굴을 또 다시 봐야 했었다. 이게 사건의 시발점이였다.
중학교에 올라간 최한솔은 당시 154정도 되던 내 키를 훌쩍 뛰어 넘기 시작했다. 남자의 성장판은 무궁무진 하다더니, 외동이던 내게 남동생같았던 최한솔을 올려다봐야한다는 장면. 참으로 내겐 잊을 수 없는 치욕이였다. 녀석은 키가 커지더니 선까지 굵어지기 시작했고, 아이같던 순수한 목소리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녀석에게 변.성.기. 라는 것이 찾아 왔었다. 하지만 여전히 최한솔은 내게 똑같은 남동생이였고, 비교적 좀 커진 보통의 남자아이 덩치에서 여전히 똑같은 순수함을 뽐 내었다. (녀석의 입에서 나온 six play를 내가 s** play로 이해했을때 경악에 가득찬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으니 말 다했다.) 녀석은 예전이나 이 때나 매너킹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식 별로 친하지도 않은 여자아이들이 중학교를 올라와서도 암묵적 최한솔 누나인 내게 말을 걸었었다. 여주야. 한솔이 나 좋아하는 것 같아. 응~ 아니야~. 이 짓을 한 30번 한 것 같았다. 아니 글쎄 한솔이가 나 대신 주번도 대신 해줬다니까? 내가 다치니까 보건실도 데려다 줬었어! 난 직접 약도 사주던데?
난 아무말도 안한체 코만 후비적 팔 뿐이였다. 녀석은 내가 토를 하면 그 토를 치워주는 녀석이였다. 것도 군말 없이. 그런 녀석에게 주번? 보건실!? 약?!?! 별 것도 아니였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최한솔은 이젠 나 없이도 지 친구들이랑 잘~만 싸돌아 다녔다. 이럴꺼면 여중으로 짜지려던 나를 왜 끌여들인건지. 보기좋은 모습이지만 지 친구들이랑 킬킬대는 최한솔을 난 남몰래 노려보곤 했었다. 것 뿐만 아니라 중학교 2학년, 당시 15살 최한솔은 학교 내 인기스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등하교를 나와 함께 했다. 여주야, 오늘은 철수가….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내가 아닌 다른사람과의 추억을 나누는것, 그게 그렇게 낯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과 나는 친구였다. 7년 된 단짝친구.
그리고 녀석의 역변이 시작 되었다. 중학교 3학년. 16살이 된 최한솔과 나 사이엔 어느새 조금씩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벽이라기보단 거리로 정정하겠다. ★학교인기짱스타☆가 되버린 최한솔은 점점 이상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 놈은 날라리가 되기 시작했다. 술먹고 담배피는 성격 좋고, 얼굴 좋고, 매너 좋은 그런 날라리. 녀석은 여전히 친절했고 또 친절했고 성실했고 성실했다. 나? 나는 더 이상 최한솔의 누나가 아니였다.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동안 최한솔은 무려 10cm가 넘게 컸고, 나는 고작 4cm. 그러니까 158이 되버려 녀석을 우러러 봐야 했었다. 한솔이는 더 이상 나와 하교를 하지 않았다. (등교는 했다 앞 집이니까.) 최한솔은 매일같이 종례가 끝나면 나를 보러 우리반에 찾아왔다. 그러곤 짖껄였지. 미안 여주야, 오늘 같이 못 갈 것 같아. 그 말하려고 4층에서 3층까지 내려왔니? 내가 매일같이 녀석의 멱살을 잡은체 묻고, 따지고 싶던 말이였다. 하지만 이르진이 되어버린 최한솔의 앞에선 난 한낱 하룻강아지가 되 버릴 뿐이였지. 응. 알았어, 조심히 놀다와. 그저 이런 역겨운 소리밖에 내질 못했단 소리다.
솔직히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최한솔과 나의 관계는 변함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점점 더 멀어져가는 최한솔을 나는 잡지 못하는게 아니라 안 잡았다. 시발 무서운데 어떡해! 한솔이네 어머니와(내가 이모라고 부른다) 우리엄마는(최한솔이 이모라고 부른다) 여전히 각별했고 우리 둘도 각별했다. 하지만 날라리와 평범한 여고생. 그 갭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이대론 안되겠다고 생각한 난, 다시 한번 찾아 온 기회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여고. 최한솔이 없는 곳. 체육복을 맘대로 훌렁훌렁 벗고 입어도 되는 곳. 생리대가 사방에서 날라 다니는 판타스틱한 일을 겪을 수 있는 곳. 환상의 여고였다. 이제 최한솔은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게 되었고(?) 난 달라져 버린 그를 정면으로 마주 할 수가 없었다. 무섭다고. 무서워. 하지만 다음날 등교중에 귀신같은 최한솔이 샤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주야, 고등학교 어디 갈꺼야? 여고. 여고 갈꺼야. 갈꺼라니까? 눈빛으로 말했다. 아, 디카프리오의 눈빛에 패배했다.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너는?"
가까스로 공을 녀석에게 던졌다.
"나?"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분좋게 웃었다. (보는 나는 기분 나빴다. 날 쳐 비웃는것 같아서.)
"나는 여주 너 가는데 갈껀데."
그렇게 나의 다음생도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최한솔이 휘어잡고 있는 남녀공학이였다. 그것은 졸라맨의 역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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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팟이 부릅니다. 내가 저지른 새작. 본격적인 연재는 시험 끝나규~ 프랑스어로 Mon ami 가 내친구? 아무튼 친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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