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지엠 필수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 영화 '건축 학개론' 中
'양
아
치
의
순
정'
06
돌이켜 보면
"그래서 사귄다는거야 안 사귄다는거야?"
"그럼 썸인가?"
여태까지 제가 했던 말은 똥구멍으로 쳐 들은건지. 다시 원점으로 되 돌아 온 대화 주제에 이마를 짚은 여주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안 사귄다니까? 안 사겨! 근데 너네 둘이 도서관에 있다는거 누가 봤다는데? 그거 아까 내가 대답했던 질문인데. 여주가 입 안에서 쌍욕을 굴렸다.
"근데 권순영 걔랑 사귀지 않아?"
"누구?"
"왜 1학년때 우리반에 맨날 와서 권순영 찾았던 애 있잖아. 순영이네 무리."
"아, 현지?"
…그건 누구래. 수인과 인하가 처음 듣는 이름인 양, 눈을 꿈뻑이며 인중만 긁적이는 여주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너 뭐 아는거 없어? 갑자기 쏠리는 둘의 시선에 여주는 당황한 체 어깨를 들썩였다. 난 …이름도 처음 들어 보는데.
"아 왜 갑자기 와서 지랄들이야!"
"아 진짜 한번 만 놀자, 순영아 딱 한번 만."
됐고, 좋은 말 할때 이리 내놔. 시발 김민규한테 비번을 알려주는게 아니였는데. 애절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제 교복 넥타이를 손에 쥐고 있는 현지를 향해 순영이 손을 뻗었다. 아 진짜 귀찮게 하지 말고 내놔.
"야! 차현지 꽉 잡고 있어라! 어, 여보세요? 선생님!"
"아 진짜 뭐하는 짓거리야 시발것들아!"
본인도 아니면서 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거는 민규에게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영이, 제가 발을 뗀지 얼마나 됐다고 뒤에서 넥타이도 모자라 차례대로 와이셔츠, 교복바지, 교복조끼까지 들고 현관으로 뛰어가는 현지에 결국 신경질 적으로 땅을 한번 차곤 멈춘 발걸음에 한 손을 허리로, 고개를 푹 숙인체 다른 손으로 얼굴을 연신 쓰다듬었다. …시발 진짜.
"네, 푹 쉬면 괜찮을꺼에요. 네 안녕히 계세요."
"야, 김민규 됐어?"
"어!"
두 사람의 사이에서 간신히 화를 삼키고 있는 순영이 보이지도 않는지, 누구 덕분에 아프지도 않은 멀쩡한 몸으로 병결을 내게 된 그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에 민규와 현지의 입꼬리는 귀에 걸려 있었다.
"재밌냐?"
헛웃음과 함께 들린 순영의 말에 그제서야 두 사람은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애써 화를 식히려는듯 몇번이나 괜히 머리를 만지작 거리던 순영이 건조한 눈을 띄운체 두사람을 바라보았다. 왜 이러는 건데.
"…뭘 왜 그러긴 왜그래. 그냥 같이 놀려 그러지. 애들도 다 기다리고 있어, 오랜만에 너 온다고."
퉁명스러운 어조와 함께 자신을 원망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민규에 순영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만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듯 민규가 예쁜 덧니를 들어내며 웃었다. 야, 빨리 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신이 난체 현관문을 향하는 민규를 뒤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순영의 눈이 본능적으로 탁자 위에 놓인 여주의 연습장을 발견하였다. 순영을 따라 가던 발걸음을 멈춘 현지가 어딘가를 향한 순영의 시선을 따라 여주의 연습장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ㅇ,"
손 대기만 해. 잡은 손목에서 확 풍기는 담배냄새에 순영이 신경질적으로 손목을 탁, 하고 놓았다. 놀라 저를 쳐다보는 현지가 보이지도 않는지 순영은 더럽다는듯 손을 탁탁 털며 입을 열었다. 야.
"착각 할까봐 말해 두는데."
"……"
"나는 김민규 따라 가는거지."
"……"
"너 따라 가는게 아냐."
"……"
"한번만 더 이런 짓 해봐."
"……"
"그땐 진짜 가만 안 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순영의 몸에 몇 분간 아무것도 못한체, 홀로 현관을 지키던 현지가 어느새 고인 눈물로 여주의 연습장을 노려보았다. 현지가 힘을 주어 주먹을 꽉 쥐었다. 중학교때 부터 순영을 좋아했었다. 어떻게든 붙어 다니려고 못하는 술도 마시기 시작했고, 안하던 담배도 피기 시작했다. 여자애가 독하다며 웃어오는 순영의 모습이 좋아서 더 하면 더했지. 안 하진 않았다. 그렇게 되면 내 마음을 알꺼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꺼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두 볼을 가득 적신 눈물에도 현지는 울음을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숨을 들어마셨다. 엿 같게도 제가 좋아하는 권순영의 냄새로 가득 찬 순영의 집에 현지는 결국 아무도 없는 현관에서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주인 없는 집 보다 주인 없는 마음에 더 목 놓아 울었다.
"……"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처음엔 오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았는데. 아니 그런 척 했는데 1교시가 지나고, 어느덧 3교시 막 바지를 달리는 수업에 여주는 이젠 아예 대놓고 주인 없는 순영의 자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참 오랜만이였다. 제 옆자리가 비어져 있는 날이. 생각해보니까 우스운 제 모습에 여주는 헛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권순영의 뭐라도 되는지. '너 순영이랑 사겨?' '썸?'
"……"
요즘 들어 아침 인사보다 더 많이 듣는 말이였다. 사실 따져보면 애초에 의심부터 가지면 안되는 말이였다. 권순영은 지 놀꺼 다 놀고 공부는 나보고 챙겨달라하는, 그냥 한마디로 나를 공부벌레 취급하는 행세였다. 아니 그게 맞는거다. 가정통신물셔틀 부터 빵셔틀을 지나, 이젠 필기셔틀까지. 돌이켜 본 순영의 행동에 여주는 허무함에 가득찼다. …그랬다. 애초에 의심을 가지면 안되는 사이였다. 학교를 날라다니는 양아치와, 학교를 기어다니는 평범한 학생과의 벽은 너무나도 두꺼운 걸 이제서야 깨달아 버렸다.
"……"
내내 다리를 꼰체 핸드폰만 주구장창 들여다 보는 순영에, 이상하게 아이들의 분위기가 죽어 있었다. 저들이 아는 권순영이라면 누구 한명이라도 기가 죽거나, 가만히 앉아 있는 꼴을 못보게 하는 그런 녀석인데. 정작 자신이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지도 않고,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인사 하나 끝으로 찍 소리 내지 않고 있다니. 몇주 사이에 많이 바껴버린 순영의 모습은 매일같이 옆에서 지켜보던 민규도 낯설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제대로 놀지도 못한체 순영의 눈치만 보는 아이들의 모습에 보다못한 영수가 입을 열었다.
"야, 순영아. 무슨 일 있냐?"
"아니?"
"뭐야, 담임이 담배라도 뺐었냐?"
농담조로 던진 말이였다. 이제 곧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새끼야. 내가 누군데, 나 권순영이야. 하며 웃어 줄, 평소 다운 순영을 기대하고 던진 말이였다. 하지만, 영수의 바람대로 웃어주긴 했지만, 웃음보다는 그냥 입꼬리만 올린 인위적 미소에 가까운 순영의 모습에 영수 또한 할 말을 잃었다.
"나 담배 끊었는데."
놀라 저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별 반응 대신 어깨를 한 번 들썩인 순영이 다시 핸드폰에 시선을 옮겼다. "야, 권순영." 놀라지 않은 사람은 민규, 단 한 사람 뿐이였다. 딱딱하게 굳은 민규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순영은 고개를 들었다. 아까 지었던 미소는 어디갔는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체.
"……"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급식으로 나온 소세지를 숟가락으로 툭툭 건들며 헛웃음을 지은 여주가 복잡하다는듯 이마를 짚었다. 아무것도 없는 흰 쌀밥 위로 소세지를 얹어주던 순영의 얼굴, 자신은 못봤을꺼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날 그 짧은 순간 여주는 떨리는 입꼬리를 가득 물은체 제게 소세지를 얹어주던 순영을 똑똑히 기억한다. …의심 안한적 있었냐 김여주. 자신에게 묻는 말에 몇분 간 대답을 하지 못하던 여주가 마침내 고개를 작게 저었다. 어떻게 의심을 안하겠는가. 이것이 여주의 답이였다.
권순영 같은 놈. 크게 밥 한숟가락을 퍼 입에 넣은 여주가 꾸역꾸역 소세지 하나를 입에 구겨 넣더니 사정없이 퍽퍽 씹었다. …권순영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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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른 분위기 심장이 시큰해. 아 사실 분량 더 써야 오늘 편이 마무리 되는건데 지금 팔이 넘넘 아파여 8ㅅ8 풍요로운 명절 보내고 계시나요 저는 아무데도 못가.는게 아니라ㅎㅎㅎ 아무튼 아무데도 안가고 집에 콕 박혀있네요ㅠㅠ 이게 무슨 명절이야..(우울) 그래서 걍 글이나 썼어요ㅋ 공부도 안하고...ㅋ 이제 할께....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