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Halloween Jimin!
HHJ
지민과의 약속에 늦은 탓에 걸음을 빨리했다. 매번 일찍 일어나기는 잘 일어나는데, 왜 준비만 하다보면 이렇게 되는지.
횡단보도 건너편에 보이는 지민이는 인정하기 싫지만, 오늘도 멋졌다. 쟤는 뭐 하루가 다르게 잘 생겨지냐. 나 기죽게. 얼마 전 염색 경험이 없는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서, 거의 반강제로 염색을 시켰는데. 어느새 물이 다 빠져 탁한 회색이 되어버린 머리의 지민이었다. 너무하게도 그 머리마저 잘 어울리는 지민이었고. 나도 오늘 나름 꾸민다고 꾸민건데. 나는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며 제 시계를 가리키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나도 알아. 늦은 거.
나는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지민이에게 달렸다. 늦은 주제에 뭔 할 말이 있겠는가. 지민이는 제 앞에서 얕은 숨을 몰아쉬는 내게 '하여튼 말은 겁나 안 들어. 그치.' 하고 답이 정해진 물음을 던진다. 나는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뛰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 그러자 그는 내 어깨를 잡아 제대로 세우고는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말 좀 듣지."
"...힘들어. 말 시키지 마."
"우리 이제 친구 아니고 애인인데. 말도 좀 예쁘게 하고."
"..."
"뛰지마. 내가 너 한두 번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늦어서 미안해. 이제 안 늦을 거야. 절대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오랜 시간 붙어있던 우리가 연인이 된 건, 이 주 전 술을 먹고 찾아온 지민이 덕분이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아이라 나는 고백은 고사하고 친구 사이를 유지하기도 급급했는데, 아이는 술에 취해 나를 제 품에 안고는 어눌하게 제 속마음을 뱉었다.
'너 좋아하는 것 같아. 6년을 아니라고 부정했는데, 그 시간이 더 아니야. 나 너 좋아할래. 응? 좋아하게 해주라. 너도 나 좋아해줘.'
세상에 어느 남자가 제가 좋아하는 대상에게 고백하면서 설득하고 부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박지민이 그랬다. 나한테. 저보다 1년이나 더 오래 좋아한 내 마음도 모르고, 그 예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좋아해 달라고.
**
내가 평소 가고 싶다고 했던 술집 골목은 할로윈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생각보다 큰길가에서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유흥가도 많았고. 그는 술집으로 가는 내내, 내 어깨를 제 팔로 감싸고는 자꾸만 주변을 살폈다.
"누구 찾아?"
"찾긴 누굴 찾아."
"근데 왜 자꾸 두리번거려."
"너 여기 혼자 오지마. 위험하다."
"그 술집 낮에도 열어서 그때 오면 돼."
"안 돼. 골목길도 많아서 길 잃어버리기 딱 좋아."
"그럼 나 맨날 데려와 줄 거야?"
"맨날 술 마시게?"
"너 미운 짓 할 때마다 마시게."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가벼운 웃음을 흘린 지민이가 술집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미운 짓 안 할게. 들어가.' 하고. 그와 함께 들어온 술집은 페이스북에서 봤던 그대로 분위기도 좋았고, 수제맥주의 맛도 좋았다.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지민이가 내가 좋아할 법한 안주들까지 알아서 시켜주었고. 나는 신난 나머지, 취기에 붉어진 얼굴도 모르고 술잔을 기울였다. 지민이는 그런 나를 말리다가 포기하고는 저라도 그만 마셔야겠다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한 쪽 손으로 제 얼굴을 받치고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내 코 끝을 장난스레 툭툭쳤다. 나는 그런 지민이의 손길을 피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지마아. 그러자 지민이는 고개를 푹 숙여 웃고는 내게 답했다. '호박 같아. 호박. 얼굴이 주황색이야.' 아니. 아무리 여자친구가 취했어도, 호박이 뭐야. 호박이. 나는 취기가 올랐음에도 서운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 울린 지민이의 휴대전화에 그는 자리를 비웠고, 나는 호박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더욱이 빠르게 술잔을 비워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치기 시작했다. 나는 지민이가 장난을 치는 듯 해, 내 어깨를 치는 주인공은 보지도 않고 내 어깨 위의 손가락을 잡아 당겨 아프지 않게 물었다. 호박이라고 한 벌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뒤에서는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누구세요?"
"네?"
"...지밍이가 아닝데?"
"...아. 네. 김태형이라고 합니다."
"지밍이는요?"
"네?"
"호박 지미니는 어디써요."
"제가 지민이는 아닌데, 마음에 들어서요."
내가 마음에 든다는 남자의 말에 순간 몸이 휘청였다. 취한 와중에도 이렇게 잘 생겼는데, 깨면 장난 아닐 듯 싶어서. 그러자 남자는 빠르게 내 몸을 잡아주며, 조심하고 낮게 말을 이어간다. 아마 완전히 취했으면 번호고 마음이고 홀랑 줘버렸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지민이가 있으니까.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저으며, 남자친구 있어서 안 된다는 답을 돌려주었다. 남자 역시 내 말에 별 다른 미련을 가지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나 화났는데."
지민이는 남자가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내 앞에 앉으며 말했다. 자기 화났다고. 아니. 나는 번호도 안 주고, 남자친구도 있다고 했는데 대체 왜 화가 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지민이의 행동에 입술을 삐죽였다. 호박이라고 놀리면서.
"...왜 화가 나써."
"누가 남자 손 그렇게 물어."
"...너라고 생각해찌."
"이건 애교부려도 그냥 못 넘어가."
"애교 아니거등."
"말 제대로 해."
"..."
"...뭐야. 울어?"
나도 내 나름 서운한 거 엄청 많은데. 술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박지민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엄청 뭐라고 하고.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이었다. 너무해. 진짜. 나는 지민이의 엄한 말투에 결국은 짐을 챙겨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왜 우는데."
곧바로 나를 따라나온 지민이는 나를 조용한 길목으로 데려가 물었다. 나는 쉽게 멈추지 않는 눈물에 눈가를 소매로 닦기 바빴다. 그마저도 지민이의 손길에 멈춰졌지만.
"세게 하지마. 눈 아파."
상황가 어울리지 않게 다정한 그에 결국은 크게 울어버렸다. 얼굴이 어떨지는 계산도 안 하고.
"...너가 나 호박 같다고... 막 놀리고는..."
"...응."
"나는 진짜 넌 줄 알고 앙 문건데..."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아니었어?"
"...으응."
"...너도 놀랐겠다. 그치."
"...당여나지."
"그래. 이건 내가 잘못했다. 너도 놀랐는데."
"..."
"미안해."
나는 지민이의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그의 품을 파고 들었다. 이렇게 바로 사과 할 거면, 화를 왜 냈어. 지민이는 천천히 내 머리를 쓸어내리며, 내게 말했다.
"이제 안 놀릴게."
"...나 놀리지마아."
"알았어. 미안해. 우리 이제 친구 아닌데. 그치?"
"응."
"대신 너도 이제 남자 손 물면 안 돼."
"너 손은?"
"나는 손 대신 다른데 물어야지."
"...어디?"
내 물음을 끝으로 대답대신, 장난스레 내 아랫입술을 물었다 놓아주는 지민이었다.
"해피 할로윈이야. 애인아."
***
안녕하세요. 겨울소녀입니다! 할로윈 특집으로 '다정한 핀잔'에서 마음 아프게 나온 우리 지민이를 데리고 왔어요! 어떤 독자님께서 후속작의 작품이 지민이이길 바라셨지만, 후속작의 주인공은 이미 정해졌기에...ㅜㅜ 이렇게 단편으로라도 인사드려요. 우리 지민이도 곧 멋진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길 바라며, 다들 10월의 마지막 날도 마무리 잘 하세요! 화이팅 :) + 서둘러 마무리가 됐다는 건, 후속 단편이 하나 더 있을 지도 모르겠죠?ㅎㅎ